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주말 농장-우리 농업이 살 길?

Geotopia 2013. 8. 21. 17:28

  어느 날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요즘 가장 흔하고 만만한 음식점이 삼겹살집인지라 그 날도 고깃집엘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집은 수입 쇠고기가 유명한 집이니 쇠고기를 먹자는 제안을 일행 가운데 한 분이 하셨다. 알량한 애국심인지 무언지 나는 여태껏 수입 쇠고기를 사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먹지 말자고 했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삼겹살도 다 수입고기란다. 그러고 보니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실제 푸줏간에서 고기를 살 때 많이 올랐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도 음식점의 삼겹살 값은 크게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허탈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국산 담배를 애용하자고 양담배를 안피웠는데 국산 담배 생산량을 줄여 버렸던 옛날 일이 생각났다. 이제 고기를 끊을 때가 되었나보다…

 

  여기서 잠깐! 삼겹살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삼겹살 얘기를 조금 하고 가자. 우리나라는 가히 '삼겹살의 블랙홀'이라고 할 만 하다. 이미 2000년대 중반 국내 삼겹살 수입량은 9만t 정도를 넘겼고 매년 최고치를 경신해 왔다. 수입한 삼겹살을 다 소비했다고 가정하면 200g 1인분 기준으로 4억2000만명 분이 팔렸다고 한다(2006년 현재).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불과 5~6년 사이에 두 배 규모에 이르는 엄청난 증가율이다. 국내 돼지 도축수가 조금씩 줄면서 국내 소비를 맞추기 위해 앞다퉈 삼겹살 수입을 늘린 결과다. 수입 국가도 벨기에, 칠레,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미국 등 15개국에 이른다. 이쯤 되면 한국인이 전세계 삼겹살을 먹어 치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의 삼겹살에 대한 집착이 놀랍다. 왜 하필 삼겹살인가? 대한양돈협회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삼겹살 말고 다른 부위도 먹자’는 광고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그럼에도 삼겹살 소비는 더욱 늘고만 있다. 1인당 삼겹살 소비량은 소고기나 닭고기에 비해 훨씬 많다. 수입 쇠고기에 대한 거부감, 한우의 가격 부담, 푸짐한 안주로는 적합하지 않은 닭고기 요리 방식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의 우리 농촌 현실로 볼 때 농업의 위기는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내부적으로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머지 않아 실질적인 ‘전업 농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경제, 문화, 교육 등에서 도시와의 격차가 커져 온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 농가부채 문제 등 농촌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수도 없이 널려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외부적으로 엄습해 오는 어려움들이다. 바로 수입개방의 거대한 파도가 우리 농촌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과일, 양념류, 육류는 물론이고 채소까지도 수입이 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할 만한 삼겹살의 경우를 보면 농산물 수입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는데 고기 뿐만 아니라 상추, 마늘, 양파 등이 모두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수 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식량이 되어온 쌀마저 이 땅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책은 거의 농민들 개인의 노력에 내 맡겨진 상태이다. 결국 제조업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는 전략으로 인해 농업은 점점 그 기반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농업은 부가가치로만 계산해서는 안 되는 산업이다. 아무리 산업이 발달해도 ‘먹는 것’은 기본적으로 1차산업으로부터 얻어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는 것이 부족한 것은 그 어느 것 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우람한 공장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배고픔을 참을 수는 없다. 식량 생산 기반을 상실하고 곡물 메이져라고 불리우는 기업과 곡물 생산국가에게 경제적, 정치적 종속을 당하는 사례들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 농업 피폐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산업구조가 이미 매우 고도화 되어있는 나라인 미국이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한 위기의 우리 농업을 살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고 품종을 개량하여 수익을 올리는 농민들이 가끔씩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농업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순전히 농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에 농업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일뿐 만 아니라 실효성 면에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이 땅에서 농업 인구가 사라지고, 그래서 우리의 들판에서 농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식량 안보’ 문제뿐 만 아니라 많은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밭농사도 그렇지만 특히 벼농사는 많은 생태적 장점을 갖고 있다. 벼농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여름집중호우에 대한 가장 큰 충격 완화 장치를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반 습지 상태라고 볼 수 있는 논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때문에 생태계 전반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농업은 ‘경제적 이익’의 차원을 넘는 문제로,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땅의 농업을 지키기 위한 해법에는 경제적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주말 농장에 우리 농업의 해법이 있다’고 하면 욕먹을 소리일까?

 

주말 농장에 관한 기사나 이야기를 최근에 부쩍 많이 보고, 듣는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부자들만의 유희’ 정도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주말 농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땅을 소유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일정한 양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하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땅’이란 것이 어떤 존재인가? 토지 자체의 생산력보다는 개발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떼돈’을 안겨주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점점 보통 사람들의 손에서 멀어져 온 것이 우리나라 땅의 실체이다.

 

<충남 천안시 시청로변의 주말농장. 안타깝게도 지금은 꽃밭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농장’이 해법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정답은 아니지만 보다 전향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주말 농장이다. 주말농장은 ‘전업농이 아닌 사람이 여가활동으로 농사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생업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이득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생산물의 유통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부담 없는’ 농업이다. 이러한 주말농장은 먼저 땅을 방치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농업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때 이것은 단순한 의미를 넘는 것이다. 또한 주말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자신이 생산한 순수 국산으로 판로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엄청난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는 셈이기 때문에 농산물 수입의 태풍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유통구조의 불합리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나아가 이를 개선할 수 있다. 외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은 결국 국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국산 농산물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외국산을 살리고 국산을 죽이는 그야말로 매국행위이다. 친일파의 만행과 견주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나쁜 짓이라고 하겠다. 주말농장은 이러한 관행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주말농장을 확대할 것인가? 지금처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어서는 위에 열거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농업보조금 등 직접적인 농업 지원정책을 불허하고 있는 현행 WTO 및 FTA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즉,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토지를 확보하고 임대 형식으로 분배하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주말농장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근교에 토지를 확보하고 농사를 짓는 것은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권장하고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대부분 주말농장이 밭농사 중심이지만 나아가서는 밭농사뿐만 아니라 벼농사로도 확대해야 한다. 밭농사에 비해 벼농사는 시기를 잘 맞추어 노동력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농장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식량안보를 고려해 본다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다. 즉 ‘밭벼’ 같은 품종을 연구, 개발하여 생산량이 적더라도 노동력을 덜 투자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벼농사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또한 소규모의 논농사가 가능하도록 농법을 개량하는 노력도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주말 농장’,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의 유희를 넘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이것은 생산적인 여가활동, 취미활동으로서 이 땅의 농업을 지키고 환경을 보전하며 나아가 식량안보를 이룩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