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광덕산

앞 봉우리가 높아 보이는 마법

Geotopia 2013. 10. 20. 15:20

▶ 강당골-철마봉-정상-이마당약수터-멱시(2013-10-19)

 

<*원도: Google>

 

  토요일 오후를 이용해 광덕산에 올랐다. 어제 마신 술기운이 남아서 몸이 상당히 무겁지만 산에 다녀오면 노폐물이 빠져나가리라 기대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주말인데 이상하게 주차장에 차가 많지 않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는 날인데 나만 모르고 산에 올라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올라오는 길에 보니 외암리에서는 짚풀문화제를 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었다. 도로 양 옆까지 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은데 산에 올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간 것일까?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등산로 입구 강당골 계곡의 작은 폭포를 찍어본다.

 

<삼각대 대신 바위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오늘은 맨 먼저 돌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돌이고 나무지만 갈 때 마다 보이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은 돌을 찍어 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등산로의 초입은 사진과 같은 돌너덜길이다. 일종의 블록스트림인데 등산로 양쪽으로 숲속에 숨어 있는 블록스트림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편마암 암편들이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줄을 서 있는데 이것이 분포하는 위치는 대략 해발250m 아래쪽이다.

 

<등산로 초입의 돌너덜길>

 

  처음 광덕산에 왔을 때는 이런 돌길이 무척 불편해서 '이 돌길이 언제 끝나나' 마음 속으로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으니 산에 많이 적응을 한 것이다. 산은 의례히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니 돌길에 대한 불만이 없어졌다. 하지만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가 훨씬 편한 것을 보면 돌길이 불편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숲 속에 숨어있는 블록스트림>

 

  조금 더 올라가면 숲속에 숨어 있는 블록스트림을 만날 수 있다. 빙하기의 유물인 이 지형은 대표적인 화석지형이다. 바위 틈으로 들어간 수분이 동결 팽창하면서 만들어진 암설들이 사면을 따라 쌓여 있는 지형이다(암괴류(Block Stream에 대하여: http://blog.daum.net/lovegeo/6779843).

 

<등산로 옆의 블록스트림>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등산로가 고운 흙으로 덮여있다. 비라도 내린 다음날이나 겨울에는 땅이 질퍽거려서 불편할 정도로 보수력(保水力)이 좋은 편마암 풍화토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평상. 이 평상을 지나면 바로 로프가 쳐 있는 고바위길이 나온다>

 

  등산로 중간에 평상들이 가끔씩 놓여 있는데 이상하게 이 마지막 평상이 자꾸 헷갈린다. 평소에 잘 알던 사실이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면 치매라는데 알콜성 치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 번에 아내랑 왔을 때는 아내가 자꾸 힘들다고 투정을 해서 조금만 올라가면 평상이 있다고 했었는데 예상한 곳에 없어서 한참을 더 올라갔던 적이 있다. 그 다음 주 쯤이었던가 월광팀과 왔을 때는 이 평상에서 간식을 먹고 '이마당으로 갈까요?' 하고 물어서 좌중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여러번 왔어도 왜 이 평상이 이마당 갈림길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상하게 한 번 헷갈리면 고쳐지지 않고 계속 헷갈리는 것이 있다. 이 평상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도 올라 오면서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니 철거한게 틀림없다고 혼자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엔 사진을 찍어서 다음부턴 안 헷갈려 보리라 다짐을 해 본다.

 

<NNW-SSE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는 고바위길의 절리면. 능선의 방향도 이 방향이다>

 

  정상 직전의 고바위 길은 3백여m에 불과한데 초보 광덕산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간이다. 오늘은 나도 몸이 무거워서 철마봉에서 한 번, 임도에서 한 번 발길을 돌릴까 잠깐 고민을 했었다. 임도 직전 굵은 마사토로 되어 있는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서 거의 넘어질 뻔한 뒤로 약간 더 망설임이 생겼었다. 하지만 고민을 하면서도 발걸음은 그냥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왕에 왔는데' 보다는 '몸의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쪽이다. 한 두번 온 산도 아닌데 정상 '정복'에 의미를 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냥하듯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엔 '정상정복'이란 말이 아예 없으면 좋겠다. 저항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받아주기만 하는 산을 왜 '정복'한단 말인가?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정상 부근>

 

  고도에 따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정상 직전 부분(해발 650m 부근)은 벌써 이렇게 낙엽이 떨어져서 하늘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한 반면 아래쪽에서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여전히 푸른 잎을 달고 있다.

 

<정상의 빛내림. 멀리 오서산이 보인다>

 

  드디어 정상.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 시간쯤이면 사람들이 꽤 많아야 하는데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상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올라오지만 대부분 역시나 하고 그냥 내려가는데 오늘은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보여서 다른 날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약간 흐릿한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귀한 풍경이니 한 번 찍어본다.

 

<한 장 더. 마침 수면이 햇빛을 받아서 반사가 되는 타이밍이어서 예당저수지도 보인다. 정면의 하얗게 반짝이는 부분>

 

<정상 능선의 편마암 풍화토>

 

  정상과 이어지는 능선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고운 흙이 덮여 있는 곳이 많다. 보수성이 좋으므로 활엽수가 자라고, 활엽수는 다시 풍부한 유기물을 토양에 공급하는 호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앞 봉우리가 높아 보이는 마법>

 

  앞 봉우리가 높아 보이는 마법(?)

  능선을 타다 보면 항상 앞 봉우리가 높아 보여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마당 약수터로 빠지는 길 다음에 있는 봉우리는 650m가 약간 넘는다. 정상쪽에서 내려오면서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데도 이상하게 높아 보인다. 이유가 뭘까? 비밀은 나무이다. 나무의 높이는 작게는 10여m에서 크게는 30여m에 이른다. 즉, 실제 높이보다 보통 20~30m가 더 높기 때문에 충분히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마당 약수터에 들러 물을 한 바가지 퍼 마셨다. 본래 물을 잘 먹지 않는데 오늘은 어제 술기운 때문에 물이 많이 당긴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이마당에서 철마봉 코스로 되돌아 갈까 잠깐 생각했지만 한 동안 못가본 멱시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이마당에서 멱시로 내려가는 길도 두 갈래이다. 하나는 야생화 꽃밭이 있는 쪽으로 빠지는 길과 그 길의 계곡 건너편으로 빠지는 길. 야생화 꽃밭 길이 조금 짧다. 지난 번 월광 모임 때는 야생화꽃밭 쪽으로 갔으므로 오늘은 바깥쪽 길을 택한다.

  정말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전에 이마당에서 야영할 때 만났던 야간 산행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깜깜한 밤길을 가다보면 도토리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고 한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하느냐고 했더니 그게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단다.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다.

  멱시 마을로 내려와서 포장도로를 걷다가 장군봉 막걸리 아저씨를 만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는 모양인데 오늘 어째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외암리 축제 때문이란다. 역시 그것 때문일까?

 

<수도 없이 지나쳤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강당사. 절집을 증축하고 있다>

 

  광덕산은 생태적 잠재력이 뛰어난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사찰이 많지 않다. 남쪽에 있는 광덕사와 북쪽의 강당사가 대표적이다. 강당골 꼭대기에 약사사라는 절이 있지만 그곳은 등산로가 아니어서 가본 적이 없다. 그 동네 이름이 절골인 것을 보면 꽤 오래된 절인지도 모른다. 약사사가 이름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옛날에 어떤 절이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더>

 

<석양에 물든 온양시내-돌아오는 길에 장재리 새아산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