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위치&지도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지도

Geotopia 2013. 3. 17. 22:10

  ▶ 삼국시대의 지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지도의 제작과 직결되어 세계적으로 이미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지도를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지도 가운데 조선시대 이전에 제작된 지도는 없다. 그러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 이전에도 지도가 제작되어 활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유일하게 지도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로는 4세기경의 고구려 고분에 벽화로 남아있는 집안 삼실총의 '성곽도'(이외에도 벽화로 남아있는 성곽도로는 안악 1호분의 殿閣圖, 藥水里 벽화고분 성곽도, 龍岡大塚 성곽도 등이 있다)를 들 수 있다. 벽화였으므로 실제로 사용된 지도는 아니었으나 당시에 지도가 제작,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해준다. 실제로 <삼국사기>에는 영류왕 때 封域圖라는 지도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요동성도'를 통해서 고구려의 지도제작 수준을 추측해 보면,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축척을 사용했으며, 方格의 기법과 기호화된 그림 수법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악1호분 전각도>

 

   백제에는 『圖籍』과『백제지리지』가 있었음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도적은 지도와 서적을 의미하므로 백제에도 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통일 후 행정구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도를 이용하였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지도가 제작되었으며 대부분 국가 차원에서 통치, 군사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고려시대의 지도

 

   고려시대에는 성종, 현종때 등 수차례에 걸쳐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지도를 사용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기록에 <5도양계도>가 있었음이 나타나고 있다.또한,『고려사』에 의하면 목종 5년(1002년)에 거란에 고려지도를 보낸 일이 있었으며, 의종 2년(1148년)에는 이심등이 송나라 사람과 공모하여 고려지도를 송의 진희에게 보내려다가 들켜서 처벌당했다는 기록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비슷한 예가 北宋 元祐4년(1089) 11월 3일에 杭州知事였던 蘇軾(東坡)이 북송 철종에게 올린 『論高麗進奉將』이라는 기록에 전한다. 이 상소문에서 소식은 고려 사신들의 중국 내왕으로 인한 피해를 논하는 가운데 '고려사신이 올 때는 중국의 산천을 그리고 서적을 구매합니다'라고 강력히 진언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11세기 당시에 고려는 사행원 중에 화원을 동행시켜 중국의 실경을 그리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세계지도도 제작되었는데, 윤보의 <오천축국도>와 羅興儒의 '중국 및 본국 지도'가 기록상에 남아있다. 이는 아라비아 상인과의 교류 등 중국이외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5도양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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