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제주도 민가에는 왜 굴뚝이 없을까?

Geotopia 2012. 10. 24. 23:04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동위도 상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여러 시설이나 생활 풍습, 농업 등에서 변화가 매우 심하다. 특히, 가옥의 구조는 기후를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우리나라의 가옥은 여름 공간과 겨울 공간이 구별되어 있는 경향이 있고, 남부와 북부 간의 차이가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여름보다는 겨울이 혹독하기 때문에 가옥은 주로 겨울 기후를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 전국적인 공통점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조건을 반영하여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 바로 온돌이다. 온돌은 다른 난방 기구와 비교했을 때 효율성이 매우 높은 장치이다. 즉, 구들장을 달군 다음 그 구들장의 열을 이불 등으로 보존하기 때문에 투여하는 연료의 양에 비해 열효율이 높은 것이다. 온돌은 구들장을 1차적으로 달군 다음 거기서 발생하는 간접적 열을 이용하므로 직접적으로 열을 이용하는 난로에 비해 열의 확산이 다소 늦은 대신에 오랫동안 열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적절하게 시간을 맞춰 연료를 공급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도 온돌의 큰 장점이다. 즉, 한꺼번에 열을 저장해 두고 이를 밤새도록 나눠 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온돌은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로서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옥 시설물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겨울 난방을 특별히 하지 않고 바닥에 짚을 엮은 다다미를 깔아 냉기를 막는 정도이다. 우리나라보다 남쪽에 있는 지역이 많은데다 대양에 면해있는 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살을 에이는’ 겨울 추위가 없는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어떨까? 겨울 기온이나, 강수 유형 등 기후 특징이 우리나라 본토보다는 일본과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에 어쩌면 제주도 민가에는 온돌이 없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온돌이 있다. 제주도 역시 우리 민족의 땅이니 당연히 온돌이 있는 것이다. 다만 기후 특징을 반영하여 육지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 온돌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온돌은 아궁이와 굴뚝을 연결하는 긴 통로인 고래 위에 큰 돌(구들장)을 덮은 것이다. 그리고 아궁이에 바로 이어서 솥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한여름에 무더위가 심할 때는 마당에 따로 솥을 걸 수 있는 시설을 임시로 설치해서 취사의 열이 난방으로 들어가 방이 더워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렇지만 취사와 난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열효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여름이 길고, 겨울이 그리 혹독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형적인 육지의 구조를 하고 있지 않다.

 

<제주 민가의 가옥구조>

 

  가장 큰 특징은 난방을 위한 온돌 아궁이와 취사를 위한 아궁이가 분리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왼쪽에 벽 쪽을 향하여 설치된 것이 조리용 솥이고 온돌아궁이는 방 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고팡에서 바라본 부엌>

 

 사진에서도 역시 조리용 솥이 바깥벽 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솥의 윗부분에 밖으로 나 있는 창문이 보인다). 또한 가운데에 대청마루가 있기 때문에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긴 고래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주도 민가에는 고래가 없고 당연히 굴뚝도 없다. 일설에 의하면 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연기를 피우지 않기 위해 굴뚝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굴뚝의 원래 목적이 고래로 불이 잘 들게 하여 난방 효과를 높이는데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제주도에 굴뚝이 없는 이유는 왜구라는 사회적 요인보다는 난방의 중요성이 그리 높지 않은 저위도 해양성 기후라는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민가의 부엌 *제주돌문화공원>

 

  또 하나의 특징은 집의 양쪽에서 난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궁이에서 굴뚝으로 이어지는 고래가 없고 중간이 대청마루로 차단되어 있어서 대청마루 건넌방은 부엌에서 하는 난방의 영향을 받을 수가 없다. 중부 이북의 'ㄱ’字형 가옥의 경우는 집이 구부러지는 부분에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고래는 본체를 관통하도록 되어있으며 건넌방은 따로 난방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민가에는 굴뚝이 아예 없기 때문에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집의 양쪽으로 작은 아궁이를 만들어 놓고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다 보니 난방용 아궁이에는 아궁이와 이어지는 부뚜막이 없다.

 

<중부지역의 가옥구조>

 

<제주 민가의 난방용 아궁이>

 

  한눈에 보기에도 규모가 작은 아궁이는 장작을 잔뜩 집어넣고 군불을 때기에는 비좁아 보인다. 실제로 제주도의 온돌은 육지의 온돌과는 달리 고래와 굴뚝이 없기 때문에 간단히 군불을 때는 정도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겨울이 춥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된 또 하나의 이유는 해안에 주로 분포하는 가옥들이 난방용 연료를 충분히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므로 주로 소똥이나 말똥 등 초식성 가축의 분뇨를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연료들은 난방의 효과가 썩 크지 않지만 강한 불꽃이나 연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굴뚝이 없는 제주도 민가에 적절하다. 그래서 제주도 민가의 난방의 효과는 아랫목에만 겨우 미치는 정도이다.

 

  이처럼 제주도는 겨울 기온이 그리 낮지 않기 때문에 겨울을 대비한 시설인 온돌이 육지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로 발달하고 있다. 이것은 가옥의 구조가 기후를 반영하는 하나의 대표적 사례이며, 특히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구조는 ‘겨울 기온’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