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

Geotopia 2012. 11. 19. 09:58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에서 2007년 5월 우연히 발견된 마애불. 무게 70t, 높이 6.2m 돌에 높게 돋을새김(양각·陽刻)한 이 여래입상은 불상 높이 5.6m, 얼굴 높이 1.2m의 ‘수퍼 헤비급’이다. 이 불상이 흙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조성 기법으로 볼 때 8세기 후반~9세기 초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신기하게도 거의 풍화가 진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훼손의 흔적도 전혀 없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또한 관심을 끌었다. 아마도 조성 직후에 흙 속에 묻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애불  2013.10.26 현재>

 

  그렇다면 이 '수퍼헤비급' 불상이 왜 조성되자 마자 흙속에 묻히게 된 것일까?

  무게가 70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바위가 넘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먼저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인위적인 원인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조성한 불상을 넘어뜨릴 어떤 종교적, 정치적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적 요인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거대한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 자연 에너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급작스런 홍수가 수십 톤의 바위를 이동시킨 사례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고려해 볼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곳은 하천에서 떨어진 능선으로 물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불상을 물 가에 조성했을 리가 없다. 바람?, 동파?, 산사태? 바람은 어림도 없고 동파 역시 우리나라의 기후 환경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요인이다. 산사태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산사태라면 불상이 이동하거나 주변의 다른 물질들이 이동하면서 불상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화강암 지역은 심층풍화 속성이 있어서 풍화층이 깊기 때문에 풍화층이 얕은 편마암 지역에 비해 산사태 가능성이 적다.  


<코 끝이 암반과 불과 5c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출처: 한겨레신문, 2007.9.11>

 

  결국 이 정도의 크기의 바위(마애불이므로 입상과는 다른 거대한 덩어리 바위이다)가 쓰러진 것은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지진 밖에는 이유가 없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주에는 여러 차례 지진이 있었는데 779년에는 큰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불상이 조성된 시기가 8세기 후반~9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대략 역사에 기록된 큰 지진이 있었던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1200여년 전이면 지질시대로 볼 때는 아주 가까운 과거이다. 아주 가까운 시기에 큰 지진이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경주는 영남지역에서는 드물게 화강암(불국사 화강암)이 분포하는 지역으로 마애불 조성이 가능한 곳이다. 불상, 특히 석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다. 풍화가 자연적 훼손이라면, 불상 코를 갉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俗信)은 인위적 훼손의 예에 속한다. 그렇지만 남산의 마애불은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엎어지면서 불상은 최상 조건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해야할까?

  70t이나 되는 이 마애불을 세우기 위해서는 100t 정도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크레인이 있어야 하지만 가파른 산길로 거대한 중장비를 가지고 갈 방법이 없다. 헬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미군의 치누크 헬기도 최대한 들어올릴 수 있는 게 50t 탱크 한 대 정도에 불과하다. 차선책으로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마애불을 90도로 돌려 와불처럼 눕혀놓기로 했다.



<2007년 당시 발굴 진행 중인 장면  * 출처: 연합뉴스, 2008.1.7>

 

<2013년 10월 현재의 마애불-완전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로 일반 공개가 제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