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마애삼존불상이 거기에 있는 이유

Geotopia 2012. 8. 22. 23:04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 옆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당진 석문간척지로 유입하는 역내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이곳은 주요 도로와는 상당히 떨어진 오지이다.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전통적으로 깊은 산중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위치지만 사실 이 마애삼존불은 조성 당시 백제와 당나라의 통상로 상에 위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태안반도, 또는 당진에서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는 가야산을 통과하여 삽교천 유역의 평야지대를 지나 차령산지를 넘는 경로였다. 당진에서 공주에 이르는 최단 코스는 해안에서 당진천을 따라 남쪽으로 올라와 가야산지 북록을 넘어 삽교천 유역을 가로지로는 길이었다. 태안에서 공주에 이르는 길 역시 서산을 지나 가야산지를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산지 중심부를 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가야산지의 북록이나 남록을 이용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이 일대의 지형적 조건으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추정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이 글에서는 이것을 지질구조와 관련시켜 다르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한반도는 지질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생성연대가 오래되어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지각운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 암석은 편마암 계열의 암석이다. 편마암은 가장 전형적인 변성암으로 퇴적암이나 화산암 등의 암석이 열과 압력에 의해 ‘성질이 변한’ 바위이다. 그러므로 오래되고 지각운동을 많이 받은 땅에는 당연히 변성암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전체 암석 가운데 변성암의 비율이 약 40%에 이르며 그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편마암 계열의 암석이다. 이 암석의 외형상의 특징은 열과 압력으로 암석 내부의 물질이 재배치되면서 편리구조(층을 갖는 구조)를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강하지 않다.

 

 

  그 다음으로 많은 암석이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마그마에 기원하는 화성암이지만 현무암이나 조면암처럼 지각을 뚫고 지표로 분출한 암석이 아니라 분출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땅 속에 박힌 상태로 서서히 굳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그러므로 화강암의 형태는 층이 없는 거대한 통바위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물리적으로 강하다. 화강암이 가장 많이 만들어진 시기는 중생대(대략 2.5억 년 전~6천만 년 전 사이)인데 이 시기에 가장 격렬한 지각운동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중생대의 대표적인 지각운동으로는 송림변동, 대보조산운동, 불국사변동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대보조산운동과 불국사변동 때 화강암이 관입(마그마가 지각의 틈을 타고 끼어드는 현상)하여 대규모의 화강암이 만들어졌다. 마그마가 관입한 방향은 대략 북동-남서 방향인데 그 이유는 중생대 당시 한반도가 아시아판의 남동쪽에 있는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남동쪽에서 공격을 당하니까 그 공격방향의 수직방향으로 땅이 갈라졌고 그 갈라진 틈으로 마그마가 비집고 올라온 것이다(지질도 참조).

 

  우리나라 최대의 화강암통은 강원도 오대산에서 태안반도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지역이다. 이 일대에는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등 동부산지와 가야산, 용봉산, 덕숭산, 팔봉산, 백화산 등의 서부산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산지의 공통점은 기암괴석이 노출된 돌산이라는 점이다. 노출된 화강암은 매우 단단하고 암질이 균질하기 때문에 불상을 조성하기에 적당하다. 마애불은 자연 상태의 암석에 불상을 새긴 것이므로 기암괴석이 노출된 화강암 지역이 조성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편마암이나 퇴적암 계열의 바위는 층이 있기 때문에 암석이 물리적으로 단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상을 만든다고 해도 통바위가 아니라서 아름답지가 않다.

 

  하지만 화강암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기암괴석이 노출된 돌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주이천평야, 예당평야 등의 너른 평야도 역시 이 화강암통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화강암은 절리(암석이 갈라진 틈)의 밀도와 수분의 공급정도에 따라 매우 극명한 양면성을 갖기 때문이다. 즉, 절리밀도가 높고 지속적으로 수분이 공급되는 상황에서는 화강암의 구성 물질 가운데 일부 광물질이 물과 반응하여 가수분해 되면서 깊숙하게 풍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반면에 절리밀도가 낮고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매우 강한 속성을 유지한다. 화강암 지대에 기암괴석이 노출된 바위산(설악산, 금강산, 속리산 등등)과 너른 평야(호남평야, 안성평야 등등)가 동시에 분포하는 것은 화강암의 이러한 속성 때문인 것이다.

 

 

은진미륵-충남 논산시 관촉동

 

  한반도 최대 화강암통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충남의 서북부 지역은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편암 및 편마암을 관입한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으로 특히 절리밀도가 낮은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에 견디고 남아 지표에 노출되어 산지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마애불이 조성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오래전부터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은 중국과 백제에 통상로 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물적 토대인 지질구조에 대한 고려도 그 위치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태안 백화산 마애삼존불,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등 ‘백제의 미소’ 이전에 조성된 마애불뿐만 아니라 홍성 용봉사 마애불(통일신라), 용봉산 신경리 마애불(고려) 등 조성 연대가 다른 많은 불상들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통상로 상의 위치’라는 역사적 원인 외에 지질구조적 토대가 또 하나의 원인임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름 없는 돌부처들을 이 일대의 곳곳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화강암 산지-충남 서산시 팔봉산

 

  그런데 이 일대에 필적하는 대규모의 화강암 지대가 이천평야와 충북 진천을 거쳐 청주-대전-계룡산-논산을 지나 전북 익산-전주-정읍으로 이어진다. 익산시 황등 일대는 지금도 석재로서 매우 품질이 좋은 화강암(황등석)을 생산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연히도 한반도 최대의 화강암통은 과거 백제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다. 주변에 화강암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과거 백제인들은 화강암을 다룰 기회가 많았을 것이고 화강암을 다루는 기술을 축적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 그리고 토함산의 석굴암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강암 조형물로 백제의 영역이 아닌 경주에 있다. 하지만 석가탑을 만든 당시 최고의 석공이었던 아사달은 백제인이었다. 이미 백제가 멸망한 다음이었지만 아사달은 백제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호남평야의 화강암-전북 부안군 백산면 백산산성

 

  그런데 백제 사람인 아사달이 왜 경주까지 불려가서 다보탑을 만들었을까? 백제인들이 신라인들에 비해 화강암을 다루는 기술이 보다 뛰어났다는 뜻은 아닐까?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신라 땅(지금의 경상도)에도 화강암(불국사 화강암)이 있기는 하지만 신라 땅은 백제 땅만큼 화강암이 풍부한 땅이 아니다. 중생대 후반부터 신생대 초반에 만들어진 퇴적암이 대부분이다(사진-경상계 퇴적암). 이런 퇴적암으로는 마애불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신라인들은 화강암을 다루는 경험을 백제인 만큼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백제인들이 돌을 다루는 기술이 신라인들보다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산마애삼존불이 거기에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경상계 퇴적암-전남 여수시 화정면 추도

 

화강암 풍화층-아산시 배방읍 망경산

 

서산마애여래삼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