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갓난 아들에게 지리를 배우다(1)

Geotopia 2012. 8. 19. 17:57

  8월 19일, 입추가 벌써 지났는데 오늘도 덥다. 도대체 이 더위는 언제 끝이 난단 말인가? 여름의 시작은 언제이고 끝은 언제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름이 점점 길어진다는 말만 들려온다. 길어질 뿐만 아니라 기온도 점차 올라가서 소위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실제로 늘어만 가고 있다.

 

<여름 한 낮 더위에 시들어 버린 호박잎>

 

  굳이 지구 온난화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원래 우리나라의 여름은 세계 어디에 내 놔도 부럽지(?) 않을 만큼 덥다. 대륙성 기후라서 태양에너지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한여름이 되면 온도가 해양성 기후에 비해 훨씬 많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덥지근'하기 까지 하다. 아열대 건조지역은 우리나라보다 온도가 더 올라가는 지역도 많지만 습도가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후덥지근'하지는 않다.

  하지만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도 해마다 어느 순간엔가 슬그머니 끝이 난다. 오늘도 무척 덥지만 사실 잠 못 이룰 만큼은 아니다. 한 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고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도 돈다. 더위가 '한 풀 꺾인' 것이다. 그렇다면 더위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시기는 언제일까?

  신기하게도 '한 풀 꺾였다'는 표현은 정확하게 8월 둘째 주 부터 적용이 된다. 나의 이십 수 년 경험이므로 '정확하다'고 자부한다. 나의 아들에게 배운 경험.

 

  큰 아들의 생일은 8월 3일이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후 산모가 찬바람을 쏘이면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산후조리법인지라 무더위 속에서도 창문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산후조리를 해야만 했다. 8월에 에어컨, 선풍기는 고사하고 창문조차 못 열고 1주일 입원을 했으니 그 더위가 오죽했으랴. 당사자인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수술 후유증으로 아픈 아내에게 미안하여 옆자리를 지키느라 나 역시 엄청 더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더우려니 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만 알고 1년을 키웠다.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었지만 예쁜 아들을 위해 돌잔치를 마련했다. 가족들과 친지들을 초대해서 나름대로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는데 손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는 한결같이 서둘러 옥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집은 3층짜리 연립 주택의 꼭대기 층이었고 게다가 손님들이 좁은 거실을 꽉 채우고 있어서 더욱 더운 줄만 알았다.

  또 한해가 지나고 아이의 생일이 되었다. 가족끼리 조촐한 생일상을 마련했던 그해 생일날도 어김없이 엄청나게 더웠다. 왜 이렇게 내 아들의 생일날은 더운 것일까? 우연치고는 참 괴로운 우연이라고 생각하였다.

  세 번째 생일은 좀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한 다음이었다. 5층짜리 아파트의 4층이었고 바람이 잘 통해서 평소에는 매우 시원했던 그 집에서 치른 세 번째 생일날은 윗통을 벗고 방바닥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려면 어깨며 등짝이 방바닥에 붙어서 쩍쩍 소리를 내는 날이었다. 샤워를 해도 옥상의 물탱크 물이 덥혀져서 효과가 30분을 넘지 못했다.

  네 번 정도 비슷한 일을 경험하고서야 이러한 날씨가 우연히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어서 정확하게 그 시기가 되면 가장 더운 날씨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이 지나면 바로 거짓말처럼 무더위가 가셨다. 정점을 지나면 바로 내리막인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8월 첫주가 바로 더위의 정점인 것이다. 생일이 괴로운(?) 나의 큰 아들 덕분에 지리교사인 아빠가 제대로 지리 공부를 한 셈이다.

  올해(2012년)는 8월 둘째 주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출발하는 날이었던 8월 6일은 무지하게 더웠다. 바다 위에 떠있는 팬션에서 바닷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면서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8월 7일)부터 온도가 내려갈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네 생일이 지났구나. 고맙다!^^"

 

  태양의 회귀로 북태평양의 기온이 상승하여 우리나라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간은 대략 7월말에서 8월초 약 2주 정도이다. 우리나라 기후의 특색 가운데 ‘무더운 여름’이라는 것은 길게는 20일에서 짧게는 15일 정도에 이르는 기간인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있지만 더위의 흐름은 7월 마지막 주에서 8월 첫 주가 정점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2주만 잘 버티면 더위를 무사히 견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