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땅도 사람을 닮았다

Geotopia 2012. 7. 27. 18:13

  어떤 자연적, 인문적 현상을 관찰하다 보면 인간의 삶과 닮은 것이 참 많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 또는 자신의 관심사를 인생에 빗대어 말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야구해설을 오랫동안 해 온 하일성이라는 분이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공을 가지고 하는 경기지만 공이 아닌 사람이 반드시 홈으로 돌아와야만 점수가 나는 것이 야구'라며 삶을 야구에 비유하는 그 분의 말씀에 많은 공감이 갔다. 그것은 그 분이 오랫동안 야구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야구철학'일 것이다.

  지리를 공부하다 보면 비슷한 생각이 든다.

  '땅도 사람을 닮았구나!'

 

<선캄브리아기 산지-충남 차령산지>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억 살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탄생 초기의 지구는 먼지와 가스 덩어리였다. 캐나다 래브라도 고원(로렌시아 순상지)에서 발견된 암석 가운데 연대가 38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 것이 있다고 하니 지구에 암석이 등장한 것은 최고로 잡아도 약 38억 년 전쯤이라고 볼 수 있다. 암석이 만들어지는데 무려 7억년 이라는 긴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명체가 등장하는 데는 더욱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지구에 생명체의 흔적이 등장한 것은 고생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는 5억7천만 년 전이었다. 그래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시생대와 원생대를 통틀어 선(先)캄브리아기(Pre-Cambrian Age)라고 부른다.
  생명체의 흔적이 등장하기 전 지구는 암석이 등장한 38억년 전부터 약 6억년전까지 30억년 이상을 오랜 지각운동과 침식의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생성된 지각은 대부분 안정되었으며 지표에 두드러진 굴곡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오랜 침식의 결과로 지각의 무게가 감소하여 서서히 융기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형태의 지형을 순상지(楯狀地, shield land), 또는 탁상지(卓上地, table land)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형들은 곤드와나 대륙(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브라질 고원 등)과 캐나다 북동부, 중앙시베리아 북부, 발트해 연안 등 판(plate)의 중심부에 주로 나타난다. 

  한반도는 대륙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땅이 여기에 속한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대륙 말단부는 중심부와는 달리 판의 경계에 가깝기 때문에 지각운동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습곡, 단층, 화산, 지진 같은 활발한 운동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동성요곡운동이나 절리면의 형성 정도의 지각운동이 발생하였다.

  
  여기서 잠깐!


  순상지니 탁상지니 하는 어려운 용어는 왜 생겨났을까? 앞에 기술한 것처럼 shield land와 table land를 일본 지리학자들이 번역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를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지형과 관련된 용어들에는 특히 이런 것들이 많은데 말이 짧은(?) 일본 사람들이 새로운 신조어를 한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뜻이 잘 통하는 우리말로 만든다면 ‘책상모양고원’, ‘방패모양고원’ 쯤 되는 셈이다. 용어들을 뜻이 잘 통하면서도 부르기 쉬운 말로 바꾸는 일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약 5억7천만년전쯤 지구에는 본격적으로 생명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식물체와 삼엽충을 필두로 하는 동물들이 출현한 것이다. 지각 운동도 여전히 활발하였을 것이다. 활발한 지각운동의 과정에서 습곡작용도 일어났을 테고 그 과정에서 습곡산지도 만들어졌다. 또한 활발한 지각운동의 과정에서 지하로 매몰된 식물의 유체들이 외부 공기와 차단된 상태에서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탄화되어 석탄이 만들어졌다. 지구상의 유명한 탄전들은 대부분 바로 이시기, 즉 고생대에 만들어진 땅에 자리잡고 있다. 애팔래치아, 우랄, 그레이트디바이딩, 드라켄즈버그, 페나인 등등. 


  그런데 ‘고기습곡산지’라는 이름은 ‘고생대에 습곡작용으로 만들어진 산지’라는 뜻인데, 앞에 서술한 산지들은 판과 판의 경계선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습곡은 판과 판의 충돌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당시의 판의 경계라고 볼 수 있다.

  5억7천만년전부터 시작된 고생대는 대략 2억5천만년전까지 계속되었다. 지구 전체 역사에서 3억2천만년은 짧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현생인류인 Homo sapiens가 출현한 것이 대략 15만년전부터 10만년전 사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엄청나게 장구한 세월이 아닐 수 없다. 지구의 역사를 하루짜리 영화로 묘사할 때 현생 인류는 오후 11시 59분 58초에 출현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긴 세월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긴 세월동안 과거 판과 판의 경계선에서 형성된 습곡산지는 서서히 안정화되어 갔다. 산은 침식되어 구릉성 산지가 되었고, 습곡산지의 연결성은 약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판과 판은 연결되어 거의 하나의 판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땜질이 잘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적 규모에서는 습곡산지의 위용이 남아있다. 


  중생대는 전체적으로 대규모 지각운동이 일어난 시기이다. 하나의 대륙(Pangaea)이 여러 개의 판으로 분리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대규모의 화강암 관입운동이 있었다. 지하의 마그마가 절리면을 따라 올라오면서 혹은 분출되기도 하고, 혹은 지하에 머물기도 하고, 일부는 지각을 밀어 올려 산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얼마나 극심한 지각운동이 있었으면 공룡이 다 멸종했겠는가?(물론 공룡의 멸종에 대해서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산지-충남 보령 성주산>

 

  중생대가 약 6600만 년 전에 끝이 나고 신생대가 시작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판구조가 만들어지면서 판과 판의 경계선 부분에서 대규모의 조산운동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경계선이 바로 아틀라스-알프스-발칸반도-애나토울리아고원-이란고원-힌두쿠시-히말라야-인도차이나 반도로 이어지는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와 서태평양-일본열도-쿠릴열도-알류샨열도-로키-안데스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조산대’이다. 이곳은 조산운동이 지금도 진행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화산, 지진 등이 자주 발생하는 불안정한 땅덩어리이다. 또한 침식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산지가 매우 높고 산맥과 산맥의 연결성이 매우 강하며 동물의 유체가 지각운동의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서 석유가 만들어졌다. 시원육지가 시루에서 꺼내져 쨍쨍 내려쬐는 햇볕 속에서 열흘쯤 말라 엄청 딱딱해진 땅이라면 신기산지는 방금 시루에서 꺼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쯤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각운동의 과정에서 습곡 작용을 잘 받게 되고 충격을 받아도 지층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위쪽으로 구부러진 지형(배사구조)속에 석유가스가 날아가지 않고 잘 보전되어 있는 것이다. 

 

<판구조>


  지질시대의 지형들을 사람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산전수전 공중전, 도시게릴라전까지 다 겪은 노인들은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흥분하지 않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대지들의 성격과 비슷한 것이다.

  고기 습곡산지는 중년에 비교할만하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안정된 연령층에 들어가기 시작하므로 비교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다. 노인들만큼 인생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진 않지만 사회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인생의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작은 꿈들은 간직하고 있다. 사회적 성취와 자식 교육 등등. 인간관계가 훨씬 넓어졌지만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석탄을 매장하고 있는 구릉성 산지, 큰 덩치는 남아있지만 연속성은 약한 산지인 고기습곡산지를 닮았다.

  신생대의 산지는 젊은이에 비교할 수 있겠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좋은 친구를 만나면 마냥 좋기만 하다. 그러니 걸핏하면 몰려다니고 가끔씩 일을 벌이기도 한다. 포장마차에서 쐬주 한잔 걸치다가 얼근하게 취하면 용감해지는 나이이다. 옆 사람이 소주잔 세게 놓았다고 까닭 없이 시비를 걸기도 하는… 하지만 원대한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끓어 넘치는 나이이다. 미래에 나라를 짊어지고 갈 대들보인 것이다. 연속성이 매우 강하고 지진, 화산이 자주 발생하며 귀중한 석유자원을 매장하고 있는 신기습곡산지를 닮은 나이이다.

 

  어쩌면 땅이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환경에서 배우고 거기에 잘 적응해서 살 때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수 있다고 보면 그것이 맞을 것이다. 나이에 맞게 사는 것, 쉽지는 않다. 젊은이가 중년이나 노인처럼 살면 '애늙은이' 소리를 듣고 중년이나 노인이 젊은이 속에 함부로 끼어들면 '푼수', 또는 '주책'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세대를 초월한 관계를 단절하고 살 수는 없다. 나이에 어울리면서도 세대 간의 관계를 잘 맺는 것, 그 판단의 기준은 정말 어렵다.

  땅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