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나의 선상지 답사 실패기

Geotopia 2012. 7. 16. 19:03

  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받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교과서와 지형도로는 수도 없이 보아왔던 선상지를 그때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수업할 때 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 동기모임에서 함께 가볼 것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시절 정기 답사 코스에서도 빠져있었으므로 우리 동기들은 모두 똑같은 입장이었다. 더구나 승용차가 막 보급되던 무렵이어서 차를 소유한 친구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마침내 동기들 중에서도 승용차를 가진 친구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경남 사천의 선상지를 답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구 주제와 이에 따른 대상지역이 선정된 셈이었다. 정통 선상지라고 보기 어렵다는 학설도 있지만 전형적인 선상지의 모습을 관찰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특성상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답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연구, 즉 실내연구라는 것은 이론상으로 누누히 강조되었던 이야기이다. 대학시절의 정기답사에서는 언제나 답사전에 자료를 정리하고 지도를 준비했었지만(물론, 나는 큰 노력없이 과대표가 열심히 준비한 자료를 그냥 챙기기만 했지만…) 이때의 답사는 그렇질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지형도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따라 한 친구가 지형도를 구입하여 당일날 가져오는 것으로 초간편 실내연구를 마무리하였다. '나머지는 감각과 기본지식으로 어떻게 되겠지'하는 근거없는 오만함을 모두 공통적으로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어 승용차 두 대를 나누어 타고 대망의 답사길에 올랐다. 공주에서 모여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까지 간 다음 국도로 옮겨서 순천까지 가서 여수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사천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없었던 옛날 이야기이므로 꽤 먼 여정이었다. 나는 마침 목이 부어서 침을 삼킬때 마다 아팠기 때문에 가는 내내 수지침으로 목을 달래느라 주변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운전사는 더 힘들었겠지만 어쨌든 광양의 어느 휴게소에 도착하여 합류하기로 친구를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키가 큰 그 친구가 저 멀리에서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앗! 빈손인 것이다. 지형도 담당이 바로 그 친구였는데...

  오랫만에 만나서 반갑기 그지없는데 만나자 마자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빠서 지형도를 못 샀다는 말에 모두들 표정이 굳는데, 그나마 사천의 와룡산에 있다는 고급(?) 정보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와룡산을 찾는다 해도 와룡산의 어느 골짜기에 선상지가 붙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2010년에 다시 가서 찍은 사진-평야 한 복판으로 길이 나고 시청이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까짓거 가면 찾겠지 뭐 지리선생이 몇명인데', 서로를 위로하며 길을 재촉하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삼천포(지금은 사천으로 바뀌었다)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진주와 삼천포를 연결했던 진삼선 철도가 폐선되고 그 노선을 따라 도로가 놓였다. 제법 넓은 들판이 나오는데 어째 느낌이 심상치 않다. 마침 검문소가 하나 있기에 차를 세우고 위병을 서고 있는 군인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선상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나요?'

 

  안타깝게도 잘 모르겠단다. 지리학도의 직감(?)으로 근처라는 느낌이 다같이 들었으므로 계곡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올라가다 보니 커다란 계곡의 끝부분에 자리잡은 저수지가 나오는데 물이 거의 말라있다. 일단은 더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점점 길이 좁아지면서 도로 옆으로 계곡이 이어지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헛웃음들을 지었다.

 

  '네가 지리선생이냐?'


  차를 돌릴 수도 없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한참을 더 올라갔더니 암자가 하나 나왔다.

  '냉수 한 그릇씩 먹고 속차리자'

  다같이 물 한 바가지씩 퍼 마시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뭔가 있긴 있는데…'

  때 맞춰 묘안(?)이 떠올랐다. 114에 전화를 걸어 시내의 고등학교 하나를 알아 낸 다음 지리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무릎을 치며 검문소에 있는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한 고등학교를 알아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이 서울분인데 방학이라서 집에 올라가셨단다. 두번째 학교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천우신조, 마침 지리 선생님이 근무조라서 전화를 받으셨다. 얼굴은 알 수 없으나 목소리는 예쁜 여선생님이셨다. 지형도가 시내 모서점에 있으니 찾아가보라며 자세히 서점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삼천포(사천) 시내로 들어가서 서점을 찾았다. 생각보다 쉽게 서점을 찾았고, 지형도를 구입할 수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지형도를 들여다보니 지형도는 금방 눈에 들어온다. 역시 아까 헤메고 다녔던 바로 그곳이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지형도. 우리는 덕곡저수지의 남쪽으로 계속 올라 갔었다. 검문소는 3번 국도 상에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진짜 지형을 보고서는 구별을 못하면서 간접 자료인 지형도를 보면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지리교육의 현실이면서, 답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던 사건이었다. 우리 모두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지형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전체 모양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실내 연구가 마무리 된 셈이다.


  다시 차를 돌려 목적지로 되돌아 갔다. 검문소를 지나치면서 또 웃음이 나왔다. 1년 내내 선상지 한가운데서 근무하는 그 군인 아저씨는 자기가 있는 자리가 선상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지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선상지 한가운데 차를 세운 지리교사(나)는 그 군인에게 선상지가 어디있느냐고 물어본 셈이니…  쩝##
  이미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 원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까 보았던 谷口를 막은 저수지가 농업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 전체가 논으로 개간되어 이용되고 있었다. 중간 부분에는 스며나오는 물을 이용하는 작은 둠벙들도 있고 논과 논 사이는 약간씩 고도차가 나타나는 곳도 있기 때문에 둥근돌로 둑을 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을은 보통의 우리나라 농촌처럼 산 기슭을 따라 나타나고 扇端이라고 볼 수 있는 해안에도 몇채의 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형적인 선상지의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 퇴적 지형 끝에 있는 마을은 바다에 면해 있고 주업이 벼농사가 아닌 어업인 듯 하다(실제로 형성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異論이 있다(사진자료 참조)) 


  사진도 찍고, 관찰도 하고,

  하지만 언제 개간사업이 이루어졌는지 동네 할아버지 한 분만 만나면 알 수 있었겠지만 날씨는 춥고, 돌아갈 길은 멀고, 시간은 잔뜩 흘렀고…  해서 아쉬움을 남긴채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절차인 정리 및 보고서 작성 역시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너무 어이 없었던 그날의 사건들이, 한편으론 재미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하지만(많은 부분은 잊어버렸는데 그 조차도 사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답사의 과정은 자료 정리와 보고서의 작성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나마 이 짧은 글로 보고서를 대신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 때 찍은 사진-필름카메라로 찍어서 인화한 후 붙여서 코팅한 후 수업자료로…(헥헥~). 멀리 계곡을 막은 저수지가 보인다. 논 가운데 있는 작은 저수지는 들어 오는 물길이 없는데도 물이 고인다. 복류천이니까. 오른쪽 논은 둥근 돌을 이용해서 둑을 쌓았다>

 

<반대쪽(바다쪽). 바다로 직접 유입하므로 전형적인 선상지는 아니지만 해수면 상승 이전 환경을 고려하면 선상지일 수도 있다. 허접하지만 추억이 담긴 자료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