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산경(山經)과 산맥(山脈)

Geotopia 2012. 7. 14. 10:47

▣ 산줄기를 표현한 산경, 지질구조를 반영한 산맥

  우리나라의 산지 인식체계는 산경의 개념과 산맥의 개념,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산경도는 산줄기의 이음, 즉 분수계를 강조한 것이며, 산맥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산줄기보다는 지질구조상 동일한 성질을 가진 산지의 덩어리를 표현하였다.

 전통적 산줄기 인식체계, 산경 

  산경은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지형인식 체계이다.

<산경도> *조석필, 1994, 「산경표를 위하여」, 산악문화.

 

산의 족보 「산경표(山經表)」

  산경의 개념은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경표」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산경표」 는 조선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두산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들이 이어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한반도의 모든 산은 백두산과 이어져 있는데, 어느 산에서 출발해도 단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에 이를 수 있다. 「산경표」 는 그 경로를 족보 형식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의 여러 산으로 이어지는 「산경표」 의 첫 부분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고지도에는 산경 개념이 잘 나타난다. 

산경이 잘 표현된 <대동여지도>

 

지질구조선을 표현한 「산맥도」

<산맥도>  *출처: 조석필, 1994, 「산경표를 위하여」, 산악문화. **오른쪽은 고또분지로(1903)의 한반도 구조선 연구를 바탕으로 야쓰소에이가 작성한 <한국구조산계>

이러한 인식체계는 식민지 시대 일본인 지질학자 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가 작성한 산맥도에 가려 오랫동안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산줄기를 따라 등산을 하려는 경우에는 산맥도보다는 산경도가 훨씬 유용하다.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일단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고또분지로의 실수(?)는 山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산맥=산줄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이다. 신기조산대에 속하는 일본은 지질구조상의 특성과 산지의 배열이 일치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안정지괴에 해당하는 우리나라는 오랜 침식의 과정에서 지질구조와 일치하지 않는 산계와 수계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차령산맥은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부분에서 남한강에 의해 그 줄기가 절단되어 있다. 만약 산맥도를 기반으로 차령산맥을 종주하려고 한다면 가던 산줄기가 잘려있는 황당한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경도를 보면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갈라진 지맥(한남금북정맥)이 남한강의 남쪽 상류로부터 남한강 본류와 거의 평행으로 흐르다가 경기도 칠현산에 이르러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산줄기를 따라 종주등반을 하기위해서는 산경도를 보고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맥도는 잘못된 것일까? 강원도 오대산에서 갈라져 남한강을 넘어 충주, 음성, 진천, 천안을 거쳐 아산, 예산, 청양, 보령에 이르는 차령산맥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지질 구조를 보면 쉽게 의문이 풀린다. 즉(첨부파일 참조), 차령산맥의 양쪽으로는 화학적 풍화에 약한 화강암이 자리를 잡고있어 오랜세월 풍화,침식을 받아 구릉이나 저지대가 형성되었다. 화강암 지대 사이에 끼어있는 편마암 지역은 비교적 화학적 풍화에 강하기 때문에 오랜 침식과정에서도 침식에 견디어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산지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지의 연결성이 약한 반면 지질 구조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지질구조를 상세하게 조사한 이유는 자명하다. 지질구조는 곧 지하자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자원 수탈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지질구조를 샅샅이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질도의 기본적인 정보가 그 때 일본 지질학자들이 수집해 놓은 것이니 그들의 의도와 자원 수탈에 투여한 노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쨌든 산맥도는 지질구조를 반영한 것이므로 땅속의 지질 구조 이해에 유리한 특성을 갖고있다. 만약 고또분지로가 '山脈'이란 용어대신 '山地'라는 용어를 썼더라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가령 '차령산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연결성은 없지만 한 무리의 성격이 비슷한 '산의 덩어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산경도가 맞을까, 산맥도가 맞을까?   

  우리의 민족 감정은 당연히 산경도로 달려 가지만 산경도와 산맥도 가운데 '어떤 것이 맞느냐?'는 질문은 상당히 어패가 있는 질문이다. 심지어는 '어떤 것이 좋으냐?'라는 식으로 단순 비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진달래가 좋으냐, 빈대떡이 좋으냐?'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아름다움을 비교 기준으로 삼아야 할 꽃과 맛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음식을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산경도와 산맥도는 한 가지 주제를 만든이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제의 인식체계이다. 그러므로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이용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성태, 2010, 「신산경표」, 조선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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