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인가, 아라비아만인가?
동해(East sea)인가, 일본해(Sea of Japan)인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은 愚問 중의 愚問에 속한다. 혹여 외국인과 대화라도 하다가 상대가 '일본해'라고 대답한다면 우린 어쩌면 귀싸대기를 날릴려고 할 지도 모른다. 이름은 단순한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름은 정체성의 다른 표현이며 특히 땅 이름(地名)의 경우는 그 속에 강력한 권력관계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라와 나라가 걸려 있는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나라의 지명들은 어떨까? 생각없이 책에서 본대로, 또는 지리부도에서 본대로 쓰고 있는 지명들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갈등의 요소가 숨어 있는 예는 혹시 없을까?
분명히 있다. 제3국 사람들이 '동해'인지 '일본해'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듯이 우리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하지만 상당히 민감한 국제관계가 얽혀있는 이름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페르시아만(Persian Gulf)이다. 이란의 옛이름인 페르시아가 만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 상당히 많은 나라들과 접하고 있다. 그런데 왜 페르시아만 이라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는 것일까?
<페르시아만으로 표기되어 있는 일반적인 지도 *지도: Bing Map>
그런 의심을 조금은 했었지만 한 때 일세를 풍미했던 대제국 페르시아에 대해 주변국가들도 인정을 하는 것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다만 미국의 언론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걸프전쟁(The Gulf War)'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에 대해 지리학도로서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지도들이 페르시아만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라비아만이라는 이름 역시 널리 쓰이고 있다.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때 조직위원회가 페르시아만 대신에 아라비아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이란이 거세게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첨예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실수로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란이 거세게 항의를 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이란, 아시안게임 地名 문제로 中에 항의' 연합뉴스 2010.11.1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768920)
<아라비아만으로 표기되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지도 *출처: http://www.aquaphoenix.com>
합의되기 어려운 문화적 차이-아랍국가와 이란의 차이점
-민족 구성
페르시아는 BC815년 경에 시작된 고대 왕국으로 그 기원이 지금의 카프카즈산맥 남부 아제르바이잔 일대로 알려져 있다. 즉, 이들은 서남아시아의 아랍족과는 그 기원이 다른 북방계 코카서스(아리안) 민족이다. 1925년 팔레비왕조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란(Iran)이라는 국호도 페르시아어 아리아(Ariya)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Islam과 Ariya의 합성어이다. 전성기였던 다리우스 1세(B.C. 521~486 재위) 때의 페르시아의 영역은 북부아프리카에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는데 이 가운데 북쪽으로는 카프카즈산맥에서 중앙아시아, 남쪽으로는 이란에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이 페르시아인(아리안)의 분포 범위였다. 인도의 지배계급이 된 힌두족 역시 이 아리안의 한 지파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란족(페르시아족)은 서남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족과는 다른 민족이다.
<전성기 페르시아의 영역 *자료: 역사부도(교학사)>
-종교와 언어
종교면에서도 이란은 다른 아랍국가와 다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1세는 국교를 조로아스터교로 삼았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세월 아랍세력과 접촉하면서 이슬람을 받아 들였다. 페르시아로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사산왕조가 아랍군에 멸망한 637년 이후이다. 아랍 침략 이후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페르시아 문화가 말살된 것이 아니라 아랍문화와 혼합되면서 독특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하였다.
시아파 이슬람이 페르시아의 국교가 된 것은 1501년 이란 민족국가였던 사파비왕조가 성립되면서 부터이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탄생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에 그 뒤를 잇는 지도자 칼리프(신의 사도의 대리인) 선출과 관련한 이견에서 비롯되었고 4대 칼리프 알리와 그 반대파와의 갈등에서 본격화 되었다. '시아'는 원래 '분파'라는 의미로 '수니(정통)'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4대 칼리프 '알리의 추종자(시아알리)'에 그 어원이 있다. 시아파는 전체 이슬람의 10%에 불과하므로 소수 분파로 불릴만 한 소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에서는 주도권의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현재 이들은 대부분 이란에 분포하며 일부 이라크에도 분포한다. 지금도 이란에서는 최고의 명절이 아슈라인데 이 날은 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로 680년에 3대 칼리프 오스만의 출신 가문인 우마이야 가문에게 살해 당한 알 후세인을 기리는 날이다. (시아파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00630 참조)
언어 역시 이란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데 북아프리카에서 서남아시아에 걸쳐 널리 쓰이고 있는 아랍-베르베르어와는 어군(語群)이 다른 북방계(인도-유럽어) 언어이다.
이처럼 역사적·문화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랍권에서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페르시아만'이라는 지명을 의심없이 쓰고 있는 것일까?
석유 산업의 발달과 서구 자본의 침입
서남아시아의 석유 산업은 20세기 초반 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더불어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덩지가 커서 연료를 충분히 싣고 다닐 수 있는 기차나 배와는 달리 자동차는 석탄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승용차의 경우는 더더욱 석탄 사용이 불가능하다. 좁은 공간 어디에 연료를 싣고, 누가 불을 때 준단 말인가? 운전하고 가다가 차를 세우고 석탄을 집어 넣고 또 달리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 해 준 것이 바로 석유였다. 액체인 석유는 탱크에 넣어만 두면 저절로 흘러 나와 엔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석유 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최초로 서구 자본이 진출하여 대규모로 유전을 개발한 곳이 바로 이란이었다. 1901년 페르시아 국왕이 영국인 다시(William.K.D’Arcy)에게 60년간의 석유 개발권을 준 것이 그 시초였다. 1909년에 유전이 발견되면서 영국자본과 이란의 합작회사인 Anglo-Persia Oil Company가 설립되었다(이 회사가 지금의 B·P Amoco의 전신이다).
그러나 이 영국 자본은 1951년 모사데크 총리의 석유 국유화 정책으로 석유사업권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1953년 군부 구데타가 발생하여 1954년부터 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콘소시엄이 석유사업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고 귀국한 무하마드 레자 샤(팔레비 국왕)에 의한 왕정이 복구되었다. 미국 유학파였던 팔레비국왕은 1957년 사바크(비밀경찰) 설치와 미국과의 군사협정 체결로 독재권력을 강화하면서 친미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미국과 밀월관계였던 이 때 미국의 지지에 힘입어 페르시아만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한 '미국의 적'이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페르시아만이라는 이름이 적에 의해 널리 퍼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밀월관계는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혁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실각한 팔레비국왕의 망명과 함께 미국은 이란에서의 모든 석유산업과 관련된 이권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 간의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의 언론들은 The Persian Gulf War, 또는 The Arabian Gulf War 대신에 The Gulf War라는 얍삽한(?) 이름을 만들어 썼던 것이다.
미국도 지금은 둘을 함께 쓴다
<P.W.English, 1995, Geography: People and Places in Changing World, West, p.524>
페르시아만, 또는 아라비아만의 문제는 이름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당사국 간의 다툼을 넘어 국제 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페르시아만'이라는 이름을 일반화시키는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은 이제 대부분 지도에서 'Persian Gulf'와 "Arabian Gulf'를 혼용한다. 원인 제공자는 이미 국제관계를 읽고 지명의 병기를 선택했는데도 우린 여전히 그들이 제공한 잘못된 표기를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의 교과서, 또는 지리부도의 표기를 눈여겨 볼 일이다.
http://www.koreaherald.com/lifestyle/Detail.jsp?newsMLId=20100527000192 (East Sea (2) National names for international seas, Korea Herald 20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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