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734∼BC721년 지금의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에 있던 이스라엘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고향을 떠났다. 이후 BC598~BC587년에 걸친 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남부지역에 있던 유대왕국이 멸망하면서 유사한 유대인 이주가 발생하였다. 이때 바빌로니아로 끌려간(바빌론 유수) 유대인들의 아픔은 구약성서(시편 137편)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 잠깐!
흥겨운 디스코 음악이 풍미했던 1980년대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Boney M이라는 그룹은 이 성경 구절을 가사로 만든 노래를 히트시킨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의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겼던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 노래는 흥겨운 리듬에는 전혀 걸맞지 않게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바빌론유수를 소재로 만든 'Boney M'의 'Rivers of Babyl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There wer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ed from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There wer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ing from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Let the words of our mouth
and the meditationm of our heart
be acceptable in thy sight
here tonight
Let the words of our mouth
and the meditation of our heart
be acceptable in thy sight
here tonight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BC4세기)한 이후에는 그리스인의 이주가 적극 장려되어 유대인들의 이주가 더욱 촉진되기도 하였다. 이후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이집트)에서 서남아시아, 터키, 남부유럽(그리스, 로마) 등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특히 로마제국의 3대도시였던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에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현지문화(그리스문화)에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야훼(하나님)에 대한 제사는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성전)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한 유대교의 교리를 간직하고 있었고 로마에 의해 정신적 지주인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도 시나고그(Synagogue)라고 불리는 현지 회당에서 예배를 보면서 종교적 신념을 전수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 배타성과 경제적 우월성 및 사회적 특권은 현지인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켜 반 유대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 러시아 등 동유럽 일대에 휘몰아쳤던 유대인 박해나 나찌의 유대인 박해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박해의 회오리 속에서 이들의 오랜 신념이었던 시오니즘(zionism)이 현실화되게 되었다. 시오니즘이란 유대교에서 약속의 땅으로 상징되는 시온으로 돌아가고자하는 종교적 신념이 '영토의 실현'이라는 유대국가 재건운동과 연결되어 발생한 사상 및 운동을 말한다. 즉,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者) 유대인이 받는 차별과 박해의 해결을 '유대인 국가건설'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구약성서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한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고향으로 확정하고, 그곳을 유대교도만의 영토(유대인 국가)로 획득하려는 운동이었다. 이 시오니즘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문제가 시작되었다.
유대인이 떠난 후 팔레스타인 주민은 대부분 이슬람교도이고, 나머지는 그리스도교도와 약간의 유대교도였는데, 이들은 종교상의 문제를 떠나 한결같이 아랍화해서 살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 위임통치하에서 본격화된 시오니즘 운동은, 주로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량 이입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유대인의 실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으로 이어져 갔다. 한편, 땅과 생활권의 위협을 받게 되어 시오니즘에 저항할 수밖에 없던 아랍 주민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시오니즘의 전개를 정당시 하는 유럽 세계의 압력에 직면하게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대전 중 영국 수상 처칠의 제안으로 유대인이 연합군에 도움을 주었던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 주민이 '유대인 국가건설'이라는 위협에 저항하고 있을 때, 유럽은 비유대교도인 아랍주민이 유대교도에 적대하고 있다는 시각으로만 보고, 아랍 주민이 시오니즘과 대결하는 진정한 의미를 묵살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1948년, 그 전 해의 국제연합 결의에 의거하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추방하고 탄생한 것은, 유럽의 유대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종교의 차이가 빚은 적대'라는 형태를 취하며 새로이 팔레스타인에서 재생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충돌을 계속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의 변화 [자료=Health, Development, Information and Policy Institute(HDIP)]>
☞ 관련 기사 하나!
여기저기에서 총을 쏘아대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은 놀이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히히덕 거리며 시위대를 향해, 아니 팔레스타인의 아름다운 산야에 총탄과 최루탄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 무슨 미친 짓인가. 어쩌자는 것인가. … 눈물이 넘쳤다. <한겨레신문 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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