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타이완

넷째 날

Geotopia 2012. 8. 4. 06:07

◉ 넷째 날: 2011.8.16(화) 일정

 

: 중정기념당-다오위안 국제공항-인천

 

◉ 넷째 날 내용

-아쉬운 여행 코스

-중정기념당에서 이산가족이 되다

-진보적일수록 정치혐오증을 크게 느낀다

-집에 가면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기념품

-사람의 마음이란…

-올라가다 마는 제주도행 비행기

 

▶ 아쉬운 여행 코스

 

  마지막 아침은 국수와 계란찜, 두부요리 등이다. 어제 저녁의 술기운을 희석시킬 수 있을까 해서 멀건 스프를 떠 왔다. 어제는 사실 2차까지 가긴 했지만 그다지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기 때문에 다소 거친 음식에도 손이 쉽게 간다.

 

<마지막날의 아침 식사>

 

  오늘은 중정기념당 외에는 다른 일정이 없어서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작년 여행에서도 갔던 곳이기도 하지만 여행지의 특성상 새롭게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타이완 국가주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중정기념당은 자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타이완 집권층 중심으로 해석한 주관적인 역사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관광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거의 다시 올 일이 없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곳 보다는 타이완 특유의 인문․자연환경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직접 가보지 않고 문서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고 일반 답사지와는 달리 그 정보가 직접 가서 얻는 것과 그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역사를 강요당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코스에 아쉬운 점이 많다. 우선 작년에 왔던 코스와 겹치는 곳이 많아서 그렇지만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여행사들의 타이완 여행 상품 중에는 (따로 요청하지 않는 한) 남부지역 관광 상품은 없다는 점이다. 나흘 동안 북부지역만 돌다가 가는 셈인데 남부지역도 상품으로 개발이 된다면 두 번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출발하는 단체 관광객들로 부산한 풀롱호텔의 아침>

 

  날씨가 무척 좋다. 8월 날씨가 좋다는 얘기는 엄청나게 더울 것이라는 뜻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배경으로 풀롱호텔이 솟아 있는데 호텔이라서 그런지 다른 건물에 비해 조금 더 컬러풀하다. 호텔 앞 도로에는 여러 대의 관광버스들이 줄을 서서 호텔에서 나오는 손님들을 나누어 태운다.

 

<용적율과 건폐율이 매우 높은 공동주택>

 

  다오위안 공항으로 가려면 다시 나와야 하겠지만 오늘 일정이 중정기념당이므로 공항과 반대쪽인 타이베이 시내를 향해 달린다(전체일정 지도 참조). 도로변에 3층짜리 공동주택은 건물 사이의 공간이 매우 좁고 발코니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나와 있는 것이 서민주택인 모양이다. 건물 사이에 주차공간이나 화단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는 우리나라 공동주택과 비교하면 매우 좁은 느낌이 든다. 건물에 붙여서 가건물로 지은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고 작은 오토바이들이 여러 대 주차가 되어 있다.

  동남아시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오토바이가 많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충분히 보급되기 어려운 후진국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이완은 분명히 경제수준으로 보면 동남아 국가들보다 한 수 위지만 거리에 오토바이가 많은 것은 동남아시아와 비슷한(물론 절대 수는 동남아보다 훨씬 적지만) 특징으로 보인다. 타이완에는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타이베이 시내의 오토바이들>

 

▶ 중정기념당에서 이산가족이 되다

 

  입구에 내리자 마자 작렬하는 태양에 숨이 턱턱 막힌다. 1층 전시관에 들러 이런 저런 설명을 들었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이드의 설명이 훨씬 자세하고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작년 가이드는 우선 우리말이 어눌한데다 타이완 공무원 출신답게 일방적으로 장졔스를 찬양하는 설명으로 일관했었다. 이번 가이드는 그가 장졔스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지 않는 고수이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관광객들을 오랫동안 상대해 오면서 터득한 방법인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이 있다. 왜 모든 영문 설명에서 장졔스를 Chiang Kai Shek으로 표기했는지를 물으면 이 가이드는 정확히 알려줄 것만 같다. 작년에도 가이드에게 물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식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일본식 발음은 蔣介石しょうかいせき(쇼카이세끼)다) 도대체 왜 이런 표기가 나왔단 말인가?

 

<장졔스 좌상과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서 눈이 벌개진 경비병>

 

  이곳에서도 마침 경비병 교대식인가 무언가를 한다고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장졔스 좌상 앞에서 경계를 서는 경비병은 충렬사 경비병과 마찬가지로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서 눈이 벌건하다. 영국 왕궁 근위병 교대식이야 전통경관이므로 볼 가치가 있다고 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이런 인공경관을 무엇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기다려서 봐야 하는지 나는 항상 의문이다.

 

<경비병 교대식을 보려고 운집한 사람들>

 

  덕분에 처음으로 이산가족이 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더운 날씨에 지루하게 계속되는 위병 교대식 때문에 송대현샘 부부와 김성래샘 사모님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던 것이다. 날씨가 덥고 지치고 볼거리도 시원찮으니까 세 분은 다시 교대식이 진행중인 곳으로 올라오시지 않고 우리가 버스를 내렸던 입구로 되돌아 가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정된 코스는 기념당의 동쪽에 있는 후문으로 들어와서 남쪽으로 나 있는 옆문으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경로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으므로 나도 그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중정기념당. 장졔스 좌상 앞에 경비병 교대식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있다>

 

  세 분을 찾으러 갔던 가이드가 돌아와서는 다 오셨으니 출발하잔다. 엥! 아직 안 오셨는데? 가이드가 찾으러 나간 사이에 버스에서 기다리던 일행 중에 몇 분이 잠깐 내려서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서 가이드를 만난 것이다. 가이드는 그 분들을 모시고 와서는 다 오신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우린 당연히 안 오신 것을 아는데 가이드는 왜? 아하! 우리 일행 하나하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가이드는 누가 없어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하튼 곡절 끝에 이산가족 상봉! 자초지종은 듣고 보면 다 이해가 된다.

 

<중정기념당 건물에서 바라본 정문>

 

▶ 진보적일수록 정치혐오증을 크게 느낀다

 

  식민지 역사, 냉전과 분단, 매카시즘과 독재, 미국의 지원(냉전체제에서의 교두보)과 빠른 경제성장 등 우리나라와 타이완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인구밀도가 높아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줄을 서는 것이 일상인 것도 우리와 꼭 닮았다. 심지어는 싸움질하는 국회도 닮았다고 하는데 작년 가이드는 타이완이 원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나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다면 타산지석, 또는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들까지 이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1당 독재를 했던 쟝졔스가 타이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검소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스스로 부정축재를 하지 않았고 관료들의 축재에 대하여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쟝징거총통도 그 면에서는 똑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완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국민당 1당 독재를 종식시킨 민진당의 첸수이벤은 두 번의 총통 임기를 마치고 수뢰 혐의로 구속되어 현재 19년형을 받고 수감중이다. 그는 물론 현 총통 마잉주의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처가를 비롯한 일가 친척이 모두 연루된 그의 혐의에 대하여 많은 타이완 국민들은 큰 실망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고 슬픈 일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금전적으로 부패함으로써 일당독재의 주역들을 정당화시켜주는 어이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으로 이어졌고 현 집권층인 국민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어느 나라고 정치혐오증은 이상하게 보수적인 당보다는 진보적인 당에 불리하게 나타난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정치 혐오감을 더 느낀다는 뜻일까?

 

▶ 집에 가면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기념품

 

  출국하기 전에 쇼핑센터를 하나 더 들렀다.(쇼핑 옵션이 없다고 하더니…) 주로 과자나 사탕 같은 먹을거리들이 주를 이루는 매장으로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선물을 사기에 적당한 곳이다. 일행들은 부산하게 이것저것 흥정하고 사는데 아내는 의외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다 큰 아들들에게 과자나 사탕을 선물하기도 그렇고…

 

<원산호텔>

 

  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서 물건을 사고 매장을 나왔다. 인터벌이 짧아서 좋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라는 원산대반점을 지난다.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큰 건물인데 건물이 단순하게 생겨서 멀리서 보면 그다지 큰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버스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가이드가 미안한 표정으로 운전기사가 파는 거라면서 젓가락 셋트와 아크릴로 만든 101층 모형을 내 놓는다. 이런 종류의 기념품은 집에 들여 놓는 순간 애물단지가 되기 때문에 지각이 생긴 후로는 사본 적이 거의 없다. 가이드의 얼굴을 봐서 사줘야 되나 싶기도 한데 모두들 생각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애물단지가 될 것이 분명한 101층 모형보다는 실용적인 젓가락셋트를 선택한다. 안 살 수가 없다면 그래도 쓸모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기사에게 미안함은 덜었다.

 

▶ 사람의 마음이란…

 

  공항의 구조는 아주 생소하다. 나는 건물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상당히 느린 것 같다. 작년에는 환승을 했고 대한항공을 탔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공항 전체가 처음 보는 곳만 같다. 로비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있는 곳은 제2터미널의 C 탑승구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다오위안 공항은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 둘이 있는 것 같은데 A, B 탑승구는 제1터미널에 있고, C,D 탑승구는 제2터미널에 있다. 지난번에는 A탑승구를 이용했으므로 제1터미널이었던 것이다.

 

<다오위안 국제공항 청사 안내도(제2터미널 3층)>

 

  한 시간 전(12:00경)에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런데 검색대에서 걸려 난생 처음 가방 수색을 받았다. 가방을 열어 보였더니 엑스레이 검색원이 렌즈를 보고 금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통과하란다. 엑스레이에 금속성의 렌즈가 대포(?)처럼 길쭉하게 나오니까 뭐래도 되나하고 의심을 했던 것이다.

 

<다오위안 국제공항 로비>

 

<면세점에 있는 타이완 지형 모형>

 

  한 시간 이상 시간이 남는다. 면세점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가 청사 건물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비행기 사진이나 한 장 찍어볼 요량으로 포인트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내내 잘 뜨던 비행기들이 영 뜨질 않는 것이다. 한 동안 꼼짝 않고 창에 붙어 서 있는데 아내가 데리러 왔다. 내가 오질 않으니까 노심초사한 어른들께서 빨리가서 찾아 보라고 아내를 보낸 것이다.

 

<다오위안 국제공항. 이 장면 하나 찍으려고…>

 

<화물작업중인 아시아나 비행기>

 

  1:30에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1:05부터 탑승을 시작한다. 비교적 자리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이번엔 비상구 옆의 맨 앞자리라서 앞이 넓어서 비즈니스석 같다. 아시아나 비행기에서는 처음 타 보는 개별 모니터가 있는 럭셔리한 비행기인데, 앗! 앞좌석이 없으므로 모니터도 없다. 의자 옆에 콘트롤러가 있어서 모니터는 어디에 있나 찾아보니 앞의 공용 모니터뿐이다. 그렇다면 그 공용모니터를 조정하는 콘트롤러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콘트롤러를 눌러 봤지만 화면이 변하질 않는다. 아내는 음악채널 조정용이라고 주장한다.

 

<비상구옆 좌석에서 바라본 전면. 저 앞의 모니터가 내 전용 모니터인줄 알았다는…>

 

  한참 헤매다가 문득 옆을 보니, 앗! 다른 좌석엔 모니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벽면의 모니터가 내 눈앞에 있으니 그것이 가까이 있어서 좋다고 하고 있었는데 다른 좌석에는 모두 개별 모니터가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의 상대적 박탈감이란… 내내 마음에 들던 자리가 한 순간에 나쁜 자리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사람 마음이란 참…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항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는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요녀석이 의자 밑에 숨어 있었다>

 

  투덜거리고 있는데 그게 좌석 아래에 숨어있다. 여러 가지가 특이한 자리다. 탁자는 시청각실 탁자처럼 팔걸이에서 나오고 포켓은 벽에 붙어있다. 비상시에는 승무원을 도와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줘야 하는 자리라서 승무원의 특별 교육(?)도 받아야 하는 자리이다.

 

▶ 제주도행 비행기는 올라가다 만다?

 

  비행중에 간간이 ‘띵!’하고 나는 소리는 왜 나는 것일까?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승객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과연?

  잔여거리가 479km 대략 제주 상공인데 제주도에 걸려 생성된 것 같은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제주 남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 구름바다는 제주도를 지나면서 바로 사라진다. 남풍이 한라산에 부딪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해안에 접어들자 다시 짙은 구름이 나타나고 난 기류 때문인지 비행기가 흔들린다. 잔여 비행시간 42분. 바다색도 짙은 청색에서 흐릿한 하늘색으로 변한다. 깊이가 얕고 육지에 가까워지면서 육상에서 공급된 부유물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짙은 구름이 끼어있는 제주도 상공>

 

  남해안에 도달하니 남은 시간이 약 35분, 마침내 고도를 내리기 시작한다. 언제쯤 고도를 내리기 시작하는지 궁금했었는데 대략 이 정도의 거리에서부터 하강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그러니 제주도까지 가는 비행기는 정상 비행고도에 오르기도 전에 내리기 시작하는 셈이다. 만 미터(남해안 10,058m)를 넘던 고도가 만 미터 이하(9,953m)로 떨어지면서 속도 역시 870km/h 정도로 하강한다. 광주에 이르니 9,448m에 853km/h,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낯 익은 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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