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 날: 2011.8.14(일) 일정
: 타이베이역-(바두(八堵)-루에이팡(瑞芳)-샨디아오링(三貂嶺)-풀롱(福隆)-일란(宜蘭)경유)-타로코(太路閣=신챙(新星))-치싱탄(七星潭)해변-점심(光隆)-아메이(阿美)족 민속쇼-옥공예품 및 대리석 공장-타로코(太路閣)국립공원-저녁식사(新城)-숙박(풀롱호텔)
<둘째 날 여정(편집)-원본 지도: 노키아맵스(http://www.worldmapfinder.com/NokiaMaps/Kr.html)>
둘째 날 2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타이완식의 경제 안전판
-고수 가이드-기대를 줄여서 실망을 줄여라
-인간의 능력을 어디까지 일까?-아메이족 민속 공연
-눈치가 없어서 얻어먹은 망고
-해외 관광객의 소비가 국내로 환류되는 비율은?
-바나나의 수수께끼
▶ 타이완식의 경제 안전판
오늘 점심은 광롱(光隆)이라는 곳이다. 식사 후에 관람하게 될 아메이(阿美)족 민속공연장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식사와 공연뿐만 아니라 옥 공예품 및 대리석의 생산과 판매까지 겸하고 있는 'Super multi-complex'이다. 공연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종종 있지만 제품의 생산 및 판매까지 결합된 곳은 보기 어렵다. 그 자체로 특이한 곳인데 운영 방법도 특이하다. 정부투자기관이지만 운영은 개인 기업이 하는 일종의 위탁업체라고 볼 수 있다. 민영화가 선진화란 이름으로 강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형태의 운영방식이다. 운영은 개인 기업이 하지만 소유는 국가가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공기업의 효율성이 정말로 떨어진다면 고려해 볼만한 운영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활용하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구조이므로 국가의 수익도 보장되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를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는 생산성이 낮은 반면에 생산과 분배를 계획적으로 관리하므로 노동력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자원의 과소비를 방지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자본주의에 이식한 수정자본주의로 자유주의 경제의 불가피한 난제인 경제공황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은 미국을 필두로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 정책으로 반영되어 오늘날은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익과 무관하게 사회간접자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적정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며 생산과 소비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행위를 완전히 자본의 손에 맡길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에 대한 안전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생 이래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온 자본은 이제 국가권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냉전체제의 해소로 라이벌이 사라지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등장한 이후에는 더욱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은 정부’와 ‘자율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의 안전판을 제거하고 경제행위를 자본의 손에 온전히 되돌려 주는 케인즈 이전의 경제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행위를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지만 안전판마저 제거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율화, 또는 민영화로 미화된 안전판 제거의 명분이 ‘생산성 향상’이라면 바로 광롱식의 해법은 어떨까? 작지만 강한 타이완 경제의 비밀을 모두 알아낼 수는 없지만 이것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 고수 가이드-기대를 줄여서 실망을 줄여라
<광롱의 점심 식사>
어릴 적 들일을 하는 어른들이 드시던 모둠밥이 떠오르는 커다란 양푼에 하얀 쌀밥이 나오고 김치와 콩나물 등 낯익은 반찬이 나온다. 다른 반찬은 새우튀김, 두부튀김, 냉채, 버섯요리 등 중국식이다. 김치와 콩나물이 나오지만 맛이 없을 거라는 가이드의 사전 작업 때문인지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 하긴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만은, 그러니까 이번 가이드는 상당히 고수다. 기대를 잔뜩 부풀려서 실망을 안겨주는 것 보다는 기대를 낮춰서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전략이다.
▶ 인간의 능력을 어디까지 일까?-아메이족 민속 공연
식사 후에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전면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형의 객석이 계단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공연장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규모이다. 관람객은 당연히 우리와 같은 한국 관광객들인데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숫자가 꽤 많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도 우리나라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우리나라가 단체 여행이 발달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일찍 입장했기 때문에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메이족의 민속공연>
아메이족은 생김새로는 타이완 사람과 크게 구별되지 않지만 타이완 사람들보다는 눈이 크고 가무잡잡한 것 같다. 전통음악은 단순한 편이고 중국식 음악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커다란 대나무통을 바닥에 두드려서 리듬을 맞추고 특별히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연주뿐만 아니라 공연 소도구로도 굵은 대나무를 많이 활용하는데 더운 기후 덕분에 대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공연인 것 같은데 스토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천과 대나무를 활용하는 아메이족의 공연>
공연 후 관객을 끌어들여 한바탕 대동놀이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손잡고 둥근 공연장을 몇 바퀴 돌고 끝난다. 대동놀이 참여를 권유하는 총각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내가 의외로 벌떡 일어나 대동놀이판에 끼어서 몇 바퀴 신나게 돈다. 그런데 대동놀이가 끝나자마자 공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진이 들어간 대리석 패넌트를 가지고 흩어지기 시작한 객석으로 온다. 사진의 주인공은 대동놀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가이드가 돈을 받는다고 했었는데 바로 이걸 말한 것이었다. 값은 400원 우리 돈으로 16000원쯤 된다. 당연히 아내도 찍혀서 사진을 가져 왔는데 이쁘게 나왔던지 망설임도 없이 냉큼 산다.
<원주민 청년 공연자의 손에 이끌려 나간 아내>
여러 가지가 이해가 안될 만큼 신속하다. 사진을 찍어서 출력하고 그것으로 상품을 만들기 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 다음 놀라운 것은 사진의 주인공을 재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모두 공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혹시 스텝이라면 공연 중에 관객들을 유심히 관찰해서 얼굴과 앉아있는 위치를 파악해 둘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공연 중이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관객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일까?
그 자체도 신기하지만 더욱 놀랍고 존경스러운 것은 그걸 기획한 사람이다. 쉽게 이해가 안 될 만큼 빠른 제작 속도와 눈썰미가 훈련과 시스템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을 도모했을 것이다. 모두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상품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이다. 또 한 가지 더불어 놀라운 것은 인간의 능력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사진으로 알아 본 다음 실제 주인공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하게 주인공을 찾아내는 것은 숱한 훈련을 통해 개발해 낸 능력일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정말 놀라운 것인데 우린 대부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눈치가 없어서 얻어먹은 망고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자동차에 과일을 싣고 와서 파는 사람이 있다. 망고 등 여러 가지 아열대 과일을 파는데 어떤 중년의 여인이 맛보기인 듯 망고를 깎아서 동료들과 나눠 먹는다. 나도 끼어서 한쪽을 얻어먹었는데 알고 보니 맛보기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값을 치르고 산 것이란다. 돈 주고 사서 동료들과 나눠 먹고 있는데 어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한쪽을 달라고 하니 안 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줬던 것이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열대 과일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긴 그건 꼭 열대 과일이어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장면이나 삼겹살 같은 기름진 것이 생각나지 과일은 생각나지 않으니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날도 먹고 싶었다기 보다는 그냥 호기심으로 하나 얻어 먹어본 것이다.
▶ 해외 관광객의 소비가 국내로 환류되는 비율은?
다음은 옥공예품 전시장 관람이다. 관람이라기보다는 쇼핑 순서라고 하는 것이 옳다. 로마의 신전을 연상하게 하는 돌기둥과 벽돌로 지어진 전시장의 입구에는 돌로 만든 십이지신상이 있고 비취색과 흰색이 섞인 커다란 옥 원석이 서 있다. 한국인 안내원이 나와서 타이완 옥의 특징과 옥이 많이 생산되는 지질구조적 특징 등을 간단히 설명한다. 동남아 관광지의 쇼핑점에는 모두 한국인 안내원이 있으니 한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크단 이야기인가! 개도국의 관광산업을 실질적으로는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개도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급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선진국 식의 대규모 투자는 부족하지만 특히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국내 여행관련 업체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잘은 모르지만 상당한 규모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광 수지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그 이익이 국내로 환류되는 경우도 꽤 있으므로 관광산업을 단순하게 계산할 일은 아니다.
<옥 제품 판매장 앞의 12지신상>
전시장 입구에는 쉬지우(石之屋)라는 간판이 걸려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장식용 옥공예품이 버티고 서있다.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해 놓은 이 공예품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사진을 찍는 것을 자꾸 통제를 해서 전시장 관람의 매력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공예품을 살 생각이 없는데 사진을 못 찍게 하면 내가 안내원을 따라 다닐 이유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정한 전시장의 단계가 있는 듯, 한 단계를 넘으면 자바라로 된 칸막이를 닫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다음 팀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다른 팀이 없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인 것도 같은데 어쨌든 지나치게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껄끄럽다.
<쉬지우 입구>
더 이상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되돌아 나왔다. 출입구로 돌아 나오니 전시장 들머리 앞 로비에 타이완 동부지역의 옥 생산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있다. 지도를 보면 옥광산은 주로 화롄현과 타이둥현에 집중되어 있다. 슈에샨-종양-유샨산맥으로 이어지는 동부산지의 동부지역으로 판 운동에 의한 경동성 요곡운동을 받는 과정에서 강한 열과 압력이 가해져서 이 일대에 다양한 변성암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형 옥 공예품>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출구에서 역방향으로 전시장을 들어갈 수 있다. 겉은 보통 돌인데 속에 자수정이 들어있는 커다란 돌은 보기만 해도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이런 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여긴 사진을 찍는다고 제재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기는 한데 그러고 보니 막상 찍을만한 대상이 없다.
<자수정>
<타이완 동부의 옥 생산지>
▶ 바나나의 수수께끼
타로코로 가는 도중에는 물이 많지 않은 하천이 바다로 직접 유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배후 산지가 해안에 인접하고 있고 경사가 급해서 하천이 짧을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하천 양쪽에 쌓여 있는 퇴적물들의 입자 크기도 대부분 자갈 같은 굵은 것들이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도 많이 관찰되는 경관이다. 하지만 (멀리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것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해안에 흰 모래로 된 백사장이 발달한 곳도 많다.
<타로코 가는 길의 동해안>
길옆의 밭에는 고구마 같은 넝쿨 작물이 자라고 밭가의 둑 같은 곳에는 바나나가 자란다. 열대의 바나나에는 못 미치지만 키가 큰 바나나 나무들에는 생각만큼 바나나 열매가 많이 달려있지 않다. 나는 바나나를 볼 때마다 의아한 것이 있다. 먼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까지 건너온 필리핀산 바나나의 가격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어떤 과일보다도 값이 싼 것을 고려하면 나무 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바나나 나무는 그 덩지가 무색하게 열매가 조금 밖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볼 때 마다 모두 수확을 한 상태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곳은 아직 수확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렇다. 열대 지역에 비해 계절이 뚜렷한 곳이기 때문에 바나나의 수확 시기는 한여름이 지난 후일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큰 덩지가 봄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즉, 바나나 줄기는 1년생이라고 한다. 물론 같은 뿌리에서 다시 줄기가 나오지만 1년 만에 그만큼이나 자라서 겨우 몇 개의 열매를 만든다니 참 비효율적인 식물이다. 궁금한 점은 하나 더 있다. 이 과일은 씨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채소밭과 밭 둑의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