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Glocalization -스마트폰이 과연 생활을 편리하게 했을까? -공항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는? -항공로에도 교통체증이 있다 -모두에게 나눠주는 지도였다니… -궁금하기만 한 빈낭가게 -우리나라라면 벌써 터져버렸을 것이다 -경상도와 제주도에 공항이 열 두 개라면? -신호등 하나에서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볼 수 있다 -빨간 눈의 경비병 -고궁박물원에서 인구밀도를 실감하다 -정체가 불명확한 몽골요리 -킨맨다오(金門島)에서 배워야 할 것 -도교신앙이 발달한 타이완 -귀신도 휴대폰을? -타이완에도 산샤(三峽)가 있다
8:40분 인천공항에서 여행사 직원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넉넉하게 잡아서 6:00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불 속에서 조금 뭉기적거렸더니 4:40분, 후다닥 일어나서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시간에 쫓긴다. 5:25경 콜택시를 부르고 바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택시가 안 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택시가 도착해서 우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있었기 때문에 통화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지나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것이 빠를지, 다시 부르는 것이 빠를지 판단이 안 선다. 이런 땐 정말 누군가 정확한 답을 줬으면 좋겠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서 거의 5:40이 되었다. 꼭 이런 대목이 되면 마누라는 짜증을 낸다. 가버린 택시를 원망할 수도 없고 뛰어 갈수도 없고 어쩌란 말인가? 결국 다시 불러서 15분전에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기사에게 여섯시 차를 타야 된다고 말을 했더니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불과 5분 만에 터미널에 내려준다. 일단 안도감에 천원의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순간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당연히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옳지만 과속과 신호위반이라는 무원칙을 격려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각료 청문회 때마다 들려오는 '일만 잘하면 되지 도덕적 흠결 정도야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논리가 떠 오른다. 아마 절대로 신호위반과 과속을 하지 않는 원칙적인 사회라면 나는 차를 놓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칙을 어긴 것이 정당화 될 수도 있을까? 당연히 그런 사회라면 나는 훨씬 일찍 집을 나섰을 것이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하나의 가치관이 사회 구성원 하나 하나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고, '원칙이 서야 나라가 사는' 것이다.
송대현선생님부부와 공주에서 오신 김성래선생님부부와 합류하여 무사히 6:00차를 타고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김성래선생님은 공주에서 막내딸과 사위 차를 타고 오셨다. 승강장까지 배웅을 나온 딸 내외를 소개하시는 표정이 자못 자랑스러우시다.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나이를 먹으면 자식이 자랑이고 방패막이이다.
가는 내내 이를 닦지 못해서 영 찜찜하다. 카메라를 챙기면서 괜히 배낭과 숄더백을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이를 못 닦았다. 숄더백에 비해 속사성은 떨어지지만 여행 중엔 배낭이 편리하기는 하다.
졸다 깨다 하다 보니 벌써 인천에 도착했다. 07:10경 송도의 U-복합환승센터라는 곳에 버스가 들어간다. 이곳은 무슨 기능을 하는 곳일까? 인천대교를 거쳐 인천공항을 왕래하는 시외버스들이 이곳에 들러 승객을 태우는 터미널인데 송도자유도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 공항과 송도 사이를 운행하는 모든 버스들이 들렀다 가므로 송도의 접근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송도가 애초의 기대만큼 인구와 산업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곳에서 내리거나 타는 승객은 거의 없다. 제 기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그냥 들렀다 가느라고 기름만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복합’이란 수식어가 앞에 붙은 것은 시외버스뿐만이 아니라 택시, 광역버스, 시내버스, 셔틀버스 까지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U’는 왜 붙었을까? Ubiquitous에서 온 이니셜이라고 한다. ‘새로운’, 또는 ‘미래형’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언제부터인가 영어를 넣기 시작했다. ‘New’ 정도로는 성이 안 차는지 ‘Eco’, ‘Green’, ‘IT’, ‘Techno’ 등이 붙더니 ‘국내 최초’로 ‘Ubiquitous’가 붙은 것이다. 못 듣던 낱말로 선언만 하면 그야말로 새롭고 상큼한 어떤 것이 탄생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더욱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들은 거의 대부분 외국어 일색이니 이러다가는 한글이 조사만 남고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국가권력은 이런 곳에 활용되는 것이 옳다.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 국가권력이 활용되는 것은 전근대적 전제국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이제는 방임했을 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문화 컨텐츠에 국가권력이 개입해야 한다.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상품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해치운다. 이름 짓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자본은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이런 것을 방임할 경우에는 종국에는 우리 것을 박물관에서나 찾게 될 지도 모른다. 글로벌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소리라고 혹자는 질타할지도 모르지만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이름에 영어 낱말을 꼽사리 끼워 넣은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는 역설적으로 지방적 특성(local characteristics)을 더욱 가치있는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Global thinking과 Making local characteristics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Globalization이다. 따라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새로운 낱말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단위가 필요하며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국가권력의 책임인 것이다.
▶ 스마트폰이 과연 생활을 편리하게 했을까?
U-환승센터를 나온 버스는 77번(미추홀대로)-컨벤시아대로를 거쳐 동춘지하차도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인천대교를 탄다. 이 모두 스마트폰 덕분에 도중에 바로 알 수 있게 된 사실이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보면 칼 안든 강도나 다를 바 없는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한데 단 한 가지 지도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언제든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지리학도인 나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이 쓸 만한 ‘유일한’ 이유이다.
새로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가 사회적으로 일반화가 되면 누구라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없어도 기본적인 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문명의 이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라디오에서 시작됐을 법한 다양한 전자기기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 지불 대상은 대자본이다. 스마트폰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4인 가족 한 가정에서 매월 수십 만 원의 통신료가 나간다면 사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렵게 벌어서 아주 쉽게 대자본에게 도로 바치는 꼴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소비인데 의식주처럼 필수적인 소비가 되어 버렸다. 거시적으로 보면 자본은 이윤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떼어주고 그 대부분을 도로 가져가는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리’하다고 말한다. 없어도 되었던 것을 안 쓸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그렇게 표현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공항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는?
07:40에 공항에 도착했다. 미팅이 8:40분이니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항상 임박해서 다니곤 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이다. 대개는 연세 드신 분들이 부지런히 서두르는 법인데 그건 아무래도 더 많은 세월을 살다보니 시간에 쫓겨 낭패를 본 경험이 젊은이들에 비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미리 서두르지 않아서 낭패를 본 경험이 아직까지도 많지 않은 때문일까? 사실은 여유있게 움직이는 것이 모든 면에서 좋다는 것을 나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미팅 장소가 공항의 서쪽 끝인 M카운터라서 서쪽 창밖을 볼 수가 있다. 시간을 보내려고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우연히 밖을 보니 정원수가 대나무다. 인천에도 대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서울, 금강산 등 전통적인 대나무의 북한계선 이북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이미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은 없지만 어쨌든 인천에서도 대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대나무의 북한계가 상당히 북상했다는 증거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다. 빗방울을 피해 가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서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앞에서 어떤 젊은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있는 곳은 3층인데 1층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다. 1층 경비실에서 3층에서 사진 찍는 장면을 어떻게 알아 봤는지 놀랍기도 하고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는지도 의아하다. 이미 위성영상이 다 공개되고 있는 판에 기밀사항이라고 한다면 좀 우습다. 어쨌든 남의 집에서 규칙을 어겼으니 잽싸게 사과를 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왔다.
<인천공항의 대나무-사진을 못찍게 했던 것을 고려해서 주변 건물은 잘라 냈다>
▶ 항공로에도 교통체증이 있다
한 번 방위를 마음속으로 정하면 이상하게 교정이 안 된다. 얼마 전 몽골의 울란바타르에 갔을 때 처음에 남북을 반대로 잘못 인식했더니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내내 방위 감각이 부자연스러웠었다. 울란바타르를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방위 설정이 되질 않는다. 이 날도 서쪽 끝에 있는 아시아나 주기장의 41번 탑승구로 이동하다가 방향감각을 잃었다. 탑승구 인근의 네이버 인터넷 서비스 센터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나침반을 보고 방향 감각을 바꾸려 해 봤지만 어떻게 해도 교정이 되질 않는다. 지리전공이 내 적성에 맞는지 의심이 되는 순간인데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리전공자들도 그런지 언제 기회가 되면 과동기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되겠다 생각하곤 하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번번이 잊어버리고 만다.
<인천공항(편집)-원본 영상 Google>
출발 예정 시간보다 10분 늦게(11:10) 서쪽 아시아나 주기장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어느 방향으로 이륙하는지가 항상 헷갈려서 이번엔 꼭 확실하게 알아두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방향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공항을 이용하는 빈도라는 것이 기껏 해 봐야 1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하니 탈 때마다 헷갈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에는 17일 만에 또 타게 되어 지난번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좀 더 신경을 써서 관찰을 해 본 것이다.
<출발선에서 가속하는 비행기>
인천공항은 전체적으로 북서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본청사의 양쪽에 있는 활주로도 방향이 북서-남동 방향이다. 본청사의 서쪽 아시아나 주기장을 출발한 비행기는 본청사와 탑승동 사이를 지나 동쪽으로 간 다음 탑승동의 동쪽을 끼고 북서 방향으로 돌아서 동쪽 활주로 앞에서 이륙 대기한다. 비행기가 이륙 전에 대기하는 경우는 물론 없지 않지만 대개는 잠깐 동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대기 중인 비행기가 많아서 이륙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좀 전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이륙하지 못한 비행기들이 여러 대 대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앞서가는 비행기들이 여러 대 보인다. 안내 방송에서 우리 비행기가 일곱 번째로 이륙을 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 대기 중인 비행기가 여섯 대나 된다는 얘기다. 덕분에 비행기들이 출발선에 섰다가 급가속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활주로에 빗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비행기들이 급가속 할 때 마다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는 것이 나름 장관이다. 이륙 대기까지 17분이 걸렸고 이륙까지는 또 20여분이 더 걸려서 11:50이 되어서야 겨우 이륙을 한다. 비행기 가는 길에도 교통체중이 있는 것이다.
<이륙중에 바라본 탑승동>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랬는지 휴대폰, 전자기기 사용금지 안내 방송이 나오질 않는다.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인가? 언제나 이 대목에서 혼란스러운 것이 있다. 내 카메라는 이륙할 때 사용하면 안 되는 전자기기에 포함이 되는가, 안 되는가? 사실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보니 방송이 나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는 분명히 전자기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내 카메라는 다른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기계식 카메라이고 그래서 사용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아전인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타이완으로 가는 비행기인데 한국어와 영어만 있을 뿐 중국어 안내 방송이 없다. 예전에 JAL을 탔을 때 승객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영어와 일본어만 방송해서 속으로 일본 욕을 했었는데 아마도 원칙이 자국어와 영어만 하는 것인 모양이다. 사람이 미우면 하는 짓이 다 미운 것처럼 일본이 하는 일은 그냥 밉기부터 하니…
<본청사와 아시아나, 대한항공 주기장>
▶ 모두에게 나눠주는 지도였다니…
기내식은 치킨밥과 쇠고기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만 먹은 것 같은 것이 우리 한국 사람이다. 전에 JAL에서 국적불명의 음식을 만났는데 무엇보다 차가워서 먹은 후에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내식 때문에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야한다.
<동중국해 상공의 구름바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12:55 현재 상하이 남쪽의 동중국해를 통과한다. 비행속도는 863km/h 이상이다. 아래쪽의 구름은 많이 줄어 있어서 착륙 후가 걱정이 된다. 많이 더울텐데 구름마저 없으면… 다행스럽게도 바로 다시 구름바다가 펼쳐지는데 한낮이라 그런지 구름바다가 별로 아름답지는 않다. 그런데 타이완에 다가갈수록 다시 점점 구름이 걷히고 푸른 바다가 보인다. 바다의 모양이 특이하다. 부유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잔뜩 떠 있는데 쓰레기 인가 생각했더니 너무 양이 많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힘을 주고 여겨 보니 그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모양이 변한다. 부유하는 쓰레기가 아니라 파도인 것 같다.
<쓰레기일까, 파도일까?>
우리 시간으로 13:54에 드디어 다오위안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지난해 2월에 왔었으니 꼭 1년 반 만인데 공항이 많이 바뀌어 있는 것 같다. 당시에 가이드는 ‘세계 꼴등 국제공항’이라고 소개하면서 새로 짓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 사이에 완공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는 지난번에 봤던 그대로인 곳도 있는 것을 보면 전면 개축은 아니고 주요 시설만 새로 세운 것 같다.
<국제공항 주변-다오위안시>
50여분 정도 입국 수속을 마치고 14:45(우리시간)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는 내 나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인데 이름이 朱吉安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름의 어감이 특이해서 놀림을 받기도 한다면서 동생은 주길연이란다. 형님의 이름도 주길O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린 당연히 농담으로 알아들었지만 본인은 진짜라고 말하는데 어색하게 웃는 듯 마는 듯 하는 그 표정이 특이해서 진짜인지 농담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내 주길안 가이드는 허를 찌르는 강력한 반전으로 사람을 웃기기보다는 본론을 말하기도 전에 어색하게 웃는 듯 마는 듯 함으로써 미리 다 들켜버리고 마는 농담을 가끔 구사했다. 그나마 끝난 다음에는 친절하게 ‘농담이었구요’를 꼭 붙여서 농담과 진담을 구별해 놓곤 한다.
하지만 그와의 첫 만남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 이유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타이완 전도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도를 받고 보니 지난번에 왔을 때 우연히 버스에서 주웠던, 줍고 나서 너무너무 기뻐했던 바로 그 지도이다. 그 때도 열심히 봤지만 이번에 오기 전에도 열심히 보고 왔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있다. 관광객에게 다 나눠주는 지도를 줍고 그렇게 기뻐했다니… 그렇다면 그 때 가이드는 왜 안 줬던 것일까? 10세 때 중국인 아버지를 따라 타이완으로 왔다던 그 때 그 가이드는 말도 어눌하고 설명도 만족스럽지 못했었는데 여러 가지로 엉터리였음을 오늘에서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오위안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로 가는 제1고속도로>
▶ 궁금하기만 한 빈낭가게
가이드는 공항에서 타이뻬이로 이동하는 40분 동안 내내 타이완의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표정은 좀 어색하지만 목소리가 구수하고 설명하는 내용도 상당히 다양하다. 그 시간 동안 주워들은 얘기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타이완의 최고봉은 위산(玉山, 3997m)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후지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란다. (하지만 후지산은 3776m로 위산에 비해 더 낮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의 범위를 중국 전체로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산에 비해 높은 산은 중국 서부지역에 매우 많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타이완에는 벽시계가 없다고 한다. 벽시계의 ‘종(鐘)’이 ‘끝(終)’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타이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四’를 ‘死’와 발음이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원화와의 환율은 1:40 정도이고 물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타이베이분지(편집)-원본지도 Bing Maps(http://www.bing.com/maps)>
수도인 따이뻬이는 동남부를 가로막은 슈에이샨(雪山)산맥과 북부의 양밍샨(陽明山), 그리고 서부의 虎頭山․竹林山으로 이어지는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분지 사이를 흐르는 강이 단슈웨이(淡水河)강으로 남서부에서 발원하는 다한강(大漢溪), 남부에서 발원하는 신디안강(新店溪), 그리고 북동부에서 발원하는 길룽강(基隆河) 등의 지류가 모여 북쪽 타이완해협으로 유입한다. 이 분지 안에 타이완 전체인구 2,300만 명 가운데 630만 명이 모여 살고 있다. 간선고속도로는 대부분 타이뻬이와 남부의 가오슝(高雄)을 연결하는데 총 연장은 373km이며 주로 서부 평야지역에 발달한다. 산간고속도로가 419km에 달한다는 말을 가이드가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다.
특이하게 생겨서 인상적인 버스는 지난번에 이미 문화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엔 익숙하다. 아래층은 넓은 짐칸이고 좌석은 다락방처럼 2층에 있어서 앞자리에 앉으면 전망이 아주 좋다. 버스 가격은 우리 돈으로 대략 2억4천만 원에서 3억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자동차 공장이 없는 나라이므로 수입을 하거나 아니면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을 한다는 뜻이다.
<우주충한 색깔의 건물들>
타이완에는 ‘3多’가 있는데 혹시 무엇인지 아느냐고 가이드가 묻는다. 지난번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이라서 귀가 쫑긋하는데 짧은 사전지식을 아무리 동원해 봐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사실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어야 말하는 사람이 신이 나는 법이다. 타이완의 ‘3多’는 사찰, 태풍, 그리고 빈낭가게라고 한다. 태풍의 발생지에서 가까우므로 태풍이 많이 통과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사찰이 많은 것은 기복신앙이 발달하여 복을 빌기 위한 사찰들이 다양한 종류로 발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빈낭가게라…? 우선 듣느니 처음이니 그게 왜 많은지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가이드가 궁금증을 한껏 부풀려 올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것이고 많이 있는 곳을 지날 때 알려 줄테니 기대 하란다. 한 가지 더 호기심을 자극 하는 것은 빈낭가게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 때는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들이 판매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국의 단속이 심해서 비키니 아가씨는 보기가 어렵단다. 도대체 빈낭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로 궁금하다.
▶ 우리나라라면 벌써 터져버렸을 것이다
다오위안을 출발한지 25분 정도 경과하면서 린코우(林口) IC를 통과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 묵었던 곳이 이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띠는 것이다. 다오위안공항과 타이뻬이 시내는 버스로 약 40분 정도 거리에 있으므로 린코우는 타이뻬이 시내에서는 조금 외곽에 해당한다. 지난 번 여행은 상당히 저렴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외곽에 숙소가 정해졌을 것이다.
거리에는 색깔이 우중충해서 노후한 것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이건 지난번 가이드도 똑같이 얘기했던 것인데 그 원인이 태풍과 높은 습도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번 가이드가 제공하는 정보는 언제나 한번쯤 의심을 하게 만들었었지만 이번 가이드는 상당히 신뢰가 간다.
<단슈웨이강의 시멘트 제방>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단슈웨이강을 건넜다. 우리시간으로 오후 3시18분이니 다오위안에서 출발한지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이다. 강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여름이어서 그런지 강물이 제법 많다. 그런데 눈길을 확 끄는 구조물이 있다. 하천의 양쪽으로 높은 시멘트 담이 쳐져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은 두터운 흙 구조물이고 안쪽에 콘크리트나 돌 등으로 보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슈웨이강은 멀리서 보기에는 보통 담처럼 생긴 폭이 좁은 시멘트벽이다. 하상의 높이로 볼 때 홍수나 밀물로 범람이 일어날 경우 주변 저지대는 큰 침수 피해를 입게 생겼다. 그런데 그 벽이란 것이 거친 홍수를 막아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의 홍수는 두터운 제방을 터뜨려 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나라의 제방은 이 나라의 기후 환경에 적당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홍수의 파괴력이 우리나라보다는 적다는 뜻이다.
<제1고속도로상의 단슈웨이교에서 바라 본 단슈웨이강>
▶ 경상도와 제주도에 공항이 열 두 개라면?
단슈웨이 강을 건너면 1번 고속도로의 오른편으로 송산비행장이 보인다. 이 비행장은 우리나라의 김포공항과 성격이 비슷하다. 과거에는 타이뻬이의 중심 비행장이었지만 다오위안공항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국내선 전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상도와 제주도를 합친 크기의 나라에서 국내선 공항이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싶은데 사람의 판단 기준은 자신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건 내가 걱정할 것이 못된다. 중국인들이 1주일 정도 가야만 하는 거리를 ‘멀다’고 느낀다면 타이완 사람들은 ‘자동차로 몇 시간 되는 거리’를 ‘멀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중국본토에서는 자동차로도 충분한 거리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비행기로 가야 하는 거리라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타이완에는 국제공항이 둘(다오위안, 가오슝)이고 국내선이 취항하는 도시가 무려 열 개(후아리옌, 타이퉁, 헹춘, 핑동, 타이난, 치아이, 타이충, 킨맨, 베이간, 난간)나 된다. 남북간의 거리가 직선거리로 380여km 정도로 남한보다는 약간 짧은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국내선이 발달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다. 또한 타이완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기 어려운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아리옌이나 타이퉁 같은 동부 해안 도시들은 특히 항공로가 유용할 것 같다. 킨맨이나 베이간, 난간 등은 중국 본토에 붙어있는 섬으로 항공로가 꼭 필요한 지역이다.
<송산비행장과 101층>
송산비행장 건너로 높다란 빌딩 하나가 군계일학처럼 눈에 들어온다. 세계 2위 높이를 자랑하는 101층 빌딩으로 높이가 무려 508m나 된다. 국내 최고인 63빌딩이 249m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높이인 것이 분명하다.
▶ 신호등 하나에서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볼 수 있다
<비내리는 타이베이-충렬사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빗줄기가 약간 굵어지는 것 같다. 신호대기 중에 보니 신호등이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도 보행자 신호등에는 녹색신호의 잔여 시간이 표시되는 것도 있는데 이곳은 도로의 빨간신호에 잔여시간이 표시된다. 대기중인 자동차들이 남은 시간을 보고 조바심을 덜 쳐도 될 것 같다. 조금만 시민의 입장에서 고민을 해보면 이런 편의 시설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권력이 집중되고 인사권이 무원칙하게 남용될 때 조직은 원활한 작동을 할 수가 없다. 이처럼 시민의 입장에서 편의장치를 마련하는 단위가 활성화되는 것도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민주화 시기 정부의 최대 공헌은 바로 이점이다. 공무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가려 했다는 점. 즉,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공무원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능력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강제적인 상명하달과 그 명령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 명령을 수행을 했는가 만이 평가가 되는 조직에서는 진정한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생계형 음주운전자는 단속하지 말라’든가, ‘생계형 노점상을 단속하지 말라’는 고위공무원의 탈법적 명령은 국가 조직의 기본인 원칙을 무너뜨림은 물론 담당 공무원의 자발적이고 원칙적인 업무수행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나는 최근의 교통신호체계 변경이나 음주단속 축소, 심지어는 갑작스런 보행자 우측통행 등의 조처에서 어떤 논리적 타당성도, 실질적 편의의 확대도 발견하지 못한다. 신호등의 작은 편의장치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남은 시간이 표시되는 차도의 빨간 신호등>
<충렬사 경비병 교대식>
▶ 빨간 눈의 경비병
타이완 첫 번째 일정은 충렬사이다. 타이완 호국영령들을 모셔놓은 곳으로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큰 장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 관광객에게는 그다지 의미있는 장소는 아니다. 지난번에는 멋모르고 안에까지 들어갔었지만 오늘은 문에서 휘 돌아보고 말았다. 문 앞에는 경비병 교대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가는 빗줄기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보면 정말 굉장한 구경거리가 있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구경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이런 틀에 박힌 행사는 내 구미에 맞지 않는다. 경비병은 눈도 깜박거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한참 동안 관찰을 했더니 실제로 거의(아주 가끔 깜박거리기는 한다. 사람이니까) 깜박거리지 않는다. 한 병사는 입대한지 얼마 안됐는지 눈동자가 벌건한 것이 아마 숙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깜박거리지 않으려고 참은 것 같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절도를 강조하는 행사라 하더라도 본능적인 방어행위인 눈 깜박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는 것 아닌가? 이건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마치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심장을 잠시 멈추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충렬사 입구-앞쪽의 나무 뒷쪽은 킬룽강의 제방으로 도로 기능을 겸하고 있다>
<충렬사의 경비병>
▶ 고궁박물원에서 인구밀도를 실감하다
타이완 관광의 대표선수는 언제나 고궁박물원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갖고 있는 이곳은 하지만 그 명성에 걸 맞는 곳이라는 느낌은 솔직히 들지 않는다. 원래는 뻬이징에 있던 유물이었는데 중일전쟁으로 유물의 약탈을 우려한 국민당 정부가 임시로 유물을 충칭으로 옮기면서 타이뻬이 고궁박물원의 특이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전쟁 후에 베이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그 와중에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게 패퇴하여 타이완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보물들이 타이완해협을 건너게 되었던 것이다.
고궁박물원의 3대 보물은 청동기 솥(鼎), 옥배추, 상아공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우 정교하고 당시의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옥배추와 상아공의 세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귀신이 만들었다’는 말이 이해가 될 만큼 도저히 만든 방법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상아공은 특히 감탄이 절로 나오는 보물이다. 이러한 공예품들은 당시 지배계급의 사치와 절대권력을 상징한다. 왕가의 보물이었으므로 오래됐음에도 보전도 아주 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헤드셋을 통하여 우리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인파에 밀려 가이드를 쫓아다니기 바빠서 제대로 설명을 듣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아니, 이 나라의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대중 시설에 갈 때마다 인파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전혀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높음을 실감할 수 있는데 타이완의 전체 면적은 3만3천㎢이고 인구는 2,300만 명이므로 산술적 인구밀도가 무려 697명/㎢이나 된다. 우리나라(약 510명/㎢)에 비해서도 훨씬 인구밀도가 높은 세계적 인구밀집국가인 것이다. 관광지에는 어딜 가나 사람이 많지만 특히 이곳은 외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국내 관광객들도 아주 많아서 특히 더 혼잡하다. 오죽하면 가이드별로 주파수를 달리해서 딸린 관광객들에게 헤드셋을 통해 설명을 전달할 수 있는 무선 송신 장치를 만들었을까?
인구밀도가 높으니 당연히 부동산이 비싸다. 고궁박물원 앞은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 지역인데 아파트 한 채에 우리 돈으로 무려 48억 원 정도를 호가한다. 대리석 등 고급 자재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명당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지만 타이완에도 명당 개념이 있다. 시내의 화시야시장 같은 구도심의 경우는 평당 3천만 원 정도나 한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비싼 반면에 음식 등 생활용품은 싼 편이다. 보통 봉급생활자의 급여는 한국의 2/3 수준이지만 생활용품이 싸기 때문에 서민 생활에 유리하다. 그러나 생활용품이 싼 것은 꼭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값싼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수출드라이브 정책에서는 농산물 가격을 정책적으로 억제하여 공장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방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의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타이베이 시내>
▶ 정체가 불명확한 몽골요리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로 이동했다. 大戈壁이라는 이 음식점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는 필수코스인 모양이다. 지난번에도 왔었기 때문에 음식은 낯이 익다. 하지만 위치와 주변 거리 풍경은 상당히 낯설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가 본 곳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몽골식 고기요리 전문점이라는데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샤브샤브나 볶음으로 먹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것이 몽골식이라는 증거는 적어도 나의 짧은 몽골여행 경험 속에서는 없었다.
<大戈壁의 저녁>
뷔페식이므로 먹고 싶은 고기와 채소를 가져다가 끓는 냄비에 넣어서 데쳐 먹고 고기와 필요한 양념을 담은 그릇을 볶는 곳에 가지고 가면 요리사 세 명이서 둘러서서 기다란 뒤집개로 재료를 볶아서 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전혀 몰랐던 코스인데 그 때 가이드가 이것도 제대로 안내를 안 해줬기 때문이다. 1년6개월 사이에 똑같은 음식점에 왔는데도 그 때와는 아주 다른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볶기에 쓰이는 판은 세 명이 둘러서서 일할 만큼 아주 커다란 철판으로 두께가 10여cm는 됨직한 두툼하고 평평한 철판이다. 세 명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주문한 재료를 볶지만 밀려드는 손님에 비해 결과물이 나오는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리기만 하다. 게다가 순서대로 볶기는 하지만 그릇에 이름이 써있는 것도 아니라서 아무래도 좀 헷갈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서 있던 어떤 여자가 자기 것이 없어졌다고 하더니 분명 내 것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간다.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기는 했었지만 나도 확실한 것이 아닌데다 안 먹어도 그만인 볶음요리 한 그릇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기 싫어서 그냥 말았다. 어쨌든 나도 원래 주문한 그릇 수는 맞춰서 가져 왔으니 비긴 셈이다.
<입구에서 바라본 大戈壁>
▶ 킨맨다오(金門島)에서 배워야 할 것
킨맨(金門)고량주는 타이완의 어느 음식점을 가든 만날 수 있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고량주이다. 고량주의 원료는 수수이므로 사실 타이완의 자연환경에 비춰보면 특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타이완의 문화는 대부분 중국본토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문화이므로 중국을 대표하는 술인 고량주가 자연스럽게 타이완의 대표 술이 되었다.
킨맨현은 중국의 유명한 경제특구 가운데 하나인 샤먼시와 바로 인접한 섬으로 중국본토와 불과 2km 떨어져 있는 반면에 타이완과는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무려 180km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특이한 위치이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눈엣가시 같은 곳인 반면, 타이완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실제로 화강암 암반을 뚫어서 지하기지를 만들어놨는데 그 견고함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타이완과 중국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냉전시기의 유물로 60~70년대에는 실제로 엄청난 양의 포탄을 주고받았던 곳이다. 타이완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요충이기 때문에 상당한 자본과 인원을 투자하여 요새를 구축하였고 그 덕분에 엄청난 포격전에서도 주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10년 11월 연평도에서 벌어졌던 남북간의 포격전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연평도 사건 직후 이명박대통령이 서해5도 요새화를 지시했고 그것을 추진하기 위해 국방부 관계자들이 이 섬을 방문하기로 했었다고 한다.
<킨맨다오와 맛수열도>
하지만 이미 중국과 타이완은 냉전 시대를 넘어 협력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타이완 기업들이 중국의 경제개방구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킨맨다오와 중국 본토 사이에 다리가 연결되고 있어 한 때 냉전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오히려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의 연평도와는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방문단들이 다녀와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들은 바가 없지만 요새만 보지 말고 다리도 보고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도교신앙이 발달한 타이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표적인 도교사원인 룽샨사(龍山寺)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작년 겨울에 왔던 곳이라서 큰 기대감은 없다. 그러니까 오늘 일정은 모두 지난 번 일정과 겹친다. 겹치는 일정을 보려고 멀리 바다 건너까지 온 것은 물론 아니다. 내 여행 스타일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정이지만 모임 구성원들의 의견이 가지각색이라서 결국 막내인 우리가 겹치는 일정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일과 모레 일정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룽샨사 중심 전각의 뒷면>
두 번째 오는 룽샨사는 첫 번째 왔을 때의 느낌도 있지만 다시 보니 다른 점도 보인다. 지난번에는 화려한 연등이 건물 외부에 아주 많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볼 수가 없다. 마당의 커다란 향로에서 타고 있는 촛불과 향, 그리고 탁자 위에 놓여있는 음식물과 꽃 등은 지난번과 같다. 그런데 지난번과 결정적으로 다르게 새로 깨달은 사실은 이곳이 도교사원이라는 것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름이 ‘龍山寺’이고 연등장식이 많아서 그냥 절이거니 했었다. 가이드가 특별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주마간산으로 지나쳤기 때문에 여러 전각에 봉안되어 있는 조상(彫像)들을 우리나라 산신 정도로 이해를 했었다. 우리나라의 산신각이나 이곳의 여러 조상들이 공통적으로 도교에서 비롯된 것은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신각은 조선시대 억불정책 하에서 민중에게 접근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그 역사가 짧고 절의 가장 후미진 곳에 딱 한 채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이곳은 중심 전각들에 대부분 도교와 관련된 조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신각과 의미가 같은 것은 맞지만 이곳은 불교 중심의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이곳은 도교 중심의 종교경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복을 비는 사람들>
그 때도 사람이 많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타이완의 토속신앙과 관련된 특별한 날(가이드는 ‘귀신의 날’이라고 했다)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아주 많다. 모든 전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남녀노소 특별히 치우침이 없는 것을 보면 도교신앙이 상당히 일반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룽샨사 중앙 전각 앞 마당>
정문과 연결되는 본 건물 옆에는 꽃이나 향 등 제물로 바치는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원의 밖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사원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판매를 하는 것이 특이하다. 차림새나 숫자로 볼 때 사원과는 무관한 장사치들로 보이는데 아마도 사원 소속은 아니지만 공생관계이리라. 큰 길로 나와 보니 길옆에도 제물로 바치는 물건을 파는 노점상이 길을 따라 빽빽하게 진을 치고 있다. 마치 스키장 주변에 랜탈 업체들이 밀집하고 있는 것처럼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전광판 현판>
정문의 현판이 재미있다. 일반적인 크기의 현판이지만 나무에 서각으로 만드는 보통 현판이 아니다. 잠시 ‘IT강국 타이완의 상징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생각하게 만드는 직사각형의 디지털화면이다. 여러 글씨가 번쩍거리면서 지나가는데 觀世音菩薩도 아니고 ‘慶世音菩薩’은 또 무얼까?
<귀신의 날 퍼레이드>
도로에는 연등과 꼬마전구, 대나무 등으로 호화로운 장식을 한 소형트럭들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트럭의 짐칸에는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타고 시끄러운 연주를 하면서 지나간다. 오늘(음력 7월15일)이 마침 ‘귀신의 날’이어서 우연히 이런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불빛을 밝히는 것은 망자들이 밝은 세상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대대적인 전통축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지역축제가 매우 활성화되었지만 대부분 관이 주도하는 형태로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축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말살된 전통문화가 해방 이후에 부활하기는 커녕 일제의 전통을 암암리에 이어받은 지배층에 의해 ‘전근대적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거의 절멸하기에 이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귀신도 휴대폰을?
룽샨사에서 큰길 하나를 건너면 화시(華西)야시장이 있다. 이곳 역시 지난번에 왔을 때와 같은 코스라서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일행들을 따라 시장에 들어섰다. 코스도 같아서 뱀집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간다. 타이완에는 24시간 운영하는 가게들이 많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지 밤인데도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울리지 않게 서점이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문밖의 가판대에 지도책이 전시되고 있으니 안 들어가 볼 수가 없다. 홀린 듯 들어가 보니 ‘臺灣縣市地圖集’이라는 책이 350원, 달러로는 13달러이다. 얼마 전 몽골에서 산 47달러짜리 몽골지도집에 비하면 훨씬 자세하고 페이지도 많은데 값은 훨씬 싸다. 내 경험으로는 후진국으로 갈수록 책값이 비싸다.
<화시야시가>
이 일대는 오래된 시가지로 건물도 낡고 길도 좁지만 땅값이 상당히 비싸다고 한다. 이런 금싸라기 땅이 재개발이 되지 못하고 노후한 건물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지주들이 재개발을 거부하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옛집을 없애버리면 조상들이 못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어디서 좀 들어본 것 같은 얘기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주변 사람들도 죽은 조상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창문을 독특하게 만들고 이사할 때는 목조 건물을 뜯어서 옮긴다고 했었다. 하지만 타이완의 조상숭배는 유교적 전통에 기인하므로 시베리아와는 다른 근원을 갖는다. 오히려 유교적 전통이라는 면에서는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훨씬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타이완 사람들은 조상들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해서 조상을 기리는 행사에 투여하는 비용이 아주 많다고 한다. 오늘 ‘귀신의 날’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날로 조상(망자)들에게 정성을 바치는 날이다. 조상들에게 보내고 싶은 물건들을 종이로 만들어서 태워서 보내는데 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들이다. 별별 물건들이 제물로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휴대폰을 만들어서 태우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시내의 사원 앞에서 귀신의 날 행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
<大戈壁 앞-귀신의 날 행사로 태운 물건들의 잔해>
아내도 나도 뱀집 골목에 큰 흥미가 없는데 서점을 나와서 뒤따라 가다보니 일행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골목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이다. 더 갈 것도 없이 도중에 돌아서서 일행과 합류를 했다. 다른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 봤지만 역시 시장구경은 뭔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별 볼일이 없다.
<야시장의 뱀집 골목>
▶ 타이완에도 산샤(三峽)가 있다
숙소로 갈 때는 제3고속도로를 탄다. 다오위안공항에서 타이뻬이 시내로 들어갈 때는 제1고속도로를 탔지만 나올 때는 제3고속도로를 타는 것이다. 제1고속도로가 타이베이시의 중간지역으로 연결된다면 제3고속도로는 타이베이의 남부와 연결이 된다. 그런데 제1고속도로가 타이베이의 중간지역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시내 중심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타이베이 번화가는 시를 남북으로 나눌 때 중간 아래 부분에 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시의 중간 지역을 통과하는 제1고속도로의 아래쪽에 중심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제1고속도로의 북쪽에도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지만 동북쪽으로 산지가 많아서 남부지역에 비해 시가지의 발달이 적은 편이다. 고궁박물관이나 충렬사는 모두 제1고속도로 북쪽에 있으며 고궁박물관 주변의 아파트처럼 주택가가 발달하는 경우도 많다.
<신베이시의 산샤쿠 일대>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나가는 것이 시 외곽에 숙소가 있는 모양이다. 지난번에는 린코우(林口)에 숙소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시내의 호텔보다는 외곽의 호텔이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3고속도로의 슈린(樹林) IC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슈린쿠의 남쪽 산샤쿠(三峽區)에 우리의 숙소가 있다. 산샤구는 타이베이를 둘러싸고 있는 신베이시(新北市)에 속하는 행정구역이다. 타이베이와의 거리는 산샤쿠가 린코우쿠보다 약간 멀다. 양쯔강 상류의 유명한 산샤와 한자가 같은데 지형을 보면 세 개의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다이한천(大漢溪) 본류와 남쪽(다오위안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지류, 그리고 산샤 동남쪽에서 흘러나오는 지류가 만나서 동북방향으로 흘러나가는 위치이다. 약간 과장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三峽’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타이완의 三峽>
시내를 지나면서 창밖을 보니 왠 기차(氣車)수리점이 여럿 있다. 기차를 시내 복판에서 수리할리는 없겠고 가만히 보니 ‘카센타’이다. 자동차를 기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짜 기차는 列車, 또는 火車라고 부른다. 우리가 묵을 곳은 타이베이대학을 오른쪽에 두고 學成路를 지나 산샤 시내에 자리를 잡은 호텔로 이름은 풀롱호텔(福容大飯店)이다. 그런데 타이베이대학은 왜 이곳에 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산샤에 있는 타이베이대학은 일종의 제2캠퍼스로 제1캠퍼스는 물론 타이베이시내에 있다.
내일은 다른 버스가 오기 때문에 짐을 모두 내려야 한단다. 출국 전에 바리바리(?) 싸서 가져온 술과 안주 박스를 내릴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국외 여행을 할 때 이런 먹을거리들을 챙겨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정말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여행인데다 모임의 총무라서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플라스틱 병에 든 소주를 비롯해서 육포와 오징어포 등의 안주류, 주전부리용 과자 등등을 한 박스 챙겨왔더니 짐이 좀 많다. 게다가 이것이 박스다보니 간수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영 폼도 안 난다. 오늘은 첫날이라 개봉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과 무게가 만만치 않다. 내 신수가 편안하려면 얼른 먹어 없애야 하지만 남은 사흘간을 위해 소비를 잘 안배해야만 한다.
박스를 얹은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널찍한 로비를 지나 건물 뒤쪽으로 나가니 건물이 사방으로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는 노천카페처럼 생긴 사각형의 공간이 있다. 그러니까 로비가 있는 전면 건물을 중심으로 네 개의 건물이 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이날은 테이블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끔 행사를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묵을 곳은 로비가 있는 건물의 맞은편 건물로 가운데 공간을 오른쪽으로 지나서 가야한다. 가다보니 오른쪽 건물 1층이 수영장이다. 혹시나 해서 수영복을 가져왔는데 아주 잘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수영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