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 날: 2011.8.14(일) 일정
: 타이베이역-(바두(八堵)-루에이팡(瑞芳)-샨디아오링(三貂嶺)-풀롱(福隆)-일란(宜蘭)경유)-타로코(太路閣=신챙(新星))-치싱탄(七星潭)해변-점심(光隆)-아메이(阿美)족 민속쇼-옥공예품 및 대리석 공장-타로코(太路閣)국립공원-저녁식사(新城)-숙박(풀롱호텔)
<둘째 날 여정(편집)-원본 지도: 노키아맵스(http://www.worldmapfinder.com/NokiaMaps/Kr.html)>
◉ 둘째 날 3편 내용
-좁지만 다양한 환경을 가진 나라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나는 가봐야 한다.
-타로코에서 확인한 타이완과 우리나라의 공통점
-동서 횡단고속도로는 꿈도 못 꾼다.
-아픔이 담겨있는 치무챠오
-지리적 사실도 안내 표지판의 내용이 될 수 있다.
-아쉽다! 헤후안산 횡단도로
-그 유명한 빈낭
-백발이 성성한 노인 역무원
-선진국은 소득 수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 좁지만 다양한 환경을 가진 나라
타로코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다. 협곡이 발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유년기 협곡이다. 협곡을 건너는 다리는 버스에서 보기에도 아래가 까마득하다. 먼저 장춘사(長春祠)라는 사당에 들렀다. 타로코 협곡을 지나 종양산맥을 관통하는 동서 연결 도로를 놓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이 사당은 협곡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는 길을 모두 터널을 뚫어서 만들었다. 중국 무협지에나 나올 것 같이 생긴 이런 계곡과 사당이 중국 본토가 아닌 이곳 타이완에도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작은 나라지만 중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장, 허풍, 또는 뻥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은 다만 그들이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것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땅은 좁지만 의외로 다양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나라가 타이완이다.
<타로코 입구>
하천 건너로 장춘사가 보이는 곳에 주차장과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절까지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서 가야만 한다. 일행들 모두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장춘사를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면서 바로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이 다리는 철골 구조물로 만들었는데 공주의 옛 금강다리가 떠오른다. 다리 위에서 보니 하류 쪽으로 아까 건너왔던 다리가 보인다.
<장춘사>
냇물은 석회석이 용식되어 탄산칼슘 성분이 많기 때문에 탁한 듯하면서도 특이한 옥색을 띠고 있다. 하천의 양 옆은 모래로 덮여 있는데 모래의 색깔도 역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금빛 모래가 아니라 흰색에 가까운 모래이다. 또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날씨가 따뜻한 나라이고 더욱이 한여름인데도 하천 양 옆에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기 때문에 좀 황량한 느낌마저 든다.
<장춘사로 들어가는 다리와 굴 앞에서 책을 읽는 노인들>
▶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나는 가봐야 한다.
다리를 건너 암반을 뚫어 만든 굴을 한 참 지나면 장춘사에 도착한다. 굴 입구에는 노인 두 세 명이 앉아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냥 독서하러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무슨 도를 닦는 사람들 같다.
멀리서 봤을 때 절에서 하천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는 사당 뒤쪽의 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의 색깔과 주변에 이끼가 낀 것으로 보아 산속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아니고 어디서 인공적으로 퍼 올려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춘사에서 올라 올 생각이 전혀 없는 우리 일행들>
유서 깊은 사당이나 사찰이 아니니 내용은 별로 볼 것이 없는 것 같고 나는 뒷산이 궁금하다. 사당 뒤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당연히 따라올 줄 알았던 일행들이 그냥 마당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올라올 기세가 아니다. 아내와 사모님 두 세분이 올라오는데 먼저 가란다. 다행스럽게도 송대현선생님이 동행을 해 주셔서 용기를 낼 수가 있었다. 혼자라면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을 텐데 동행이 한 분 계시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돌이 떨어질 수 있으니 빨리 통과하라는 난감한 표지판>
깎아지른 것 같은 급경사의 사면을 깎아서 만든 계단은 산을 감돌아 이어진다. 중간에는 낙석주의 표지판까지 있다. 이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후다닥 통과하라고 되어 있는데 후다닥 통과하면 혹시 돌이 떨어져도 피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지진도 가끔 나는 나라이니 지진이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저런 쓰잘데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타로코 협곡과 주차장>
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은 과연 절경이다. 급경사의 석회암 산지를 수직으로 침식해서 만든 계곡은 전형적인 유년기 하곡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망대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끝이 저릿저릿하다. 그런데 작은 봉우리 하나 너머에 또 작은 절이 하나 있다. 도대체 저 곳까지 어떻게 건축 재료들을 날라다 절을 지었단 말인가? 시간이 충분하다면 당연히 그곳까지 내려가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멀리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아내는 아마도 따라오지 않은 것 같다. 내려오는 길 중간에 옆으로 빠지는 길이 하나 있다. 혹시나 다른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하고 내려가 봤더니 작은 전망대 같은 것이 있고 막다른 길이다. 아무생각 없이 나는 내려갔는데 송샘은 혹시라도 여인들이 따라 왔다가 길이 엇갈릴까봐 걱정을 많이 하신다. 평소 말이 없지만 배려가 참 많으신 성품이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협곡과 어떻게 지었을까 신기하기만 한 절>
혹시 길을 단축할 수 있을까 하고 내려갔던 길이 결국은 시간을 더 허비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좀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마음이 바쁜데 빗방울까지 가끔씩 떨어져 더욱 바쁘게 만든다. 내려와 보니 역시 일행들이 모두 차에 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번 여행을 함께 했기 때문에 이제 대부분 나의 특징을 이해를 하시지만 모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다. 이번엔 공범(?)인 송샘이 계셔서 큰 방패막이가 되었다. 아내는 괜히 미안하니까 짐짓 먼저 잔소리를 하는데 가이드도 오후 일정이 바쁘다는 말로 약간의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웃음과 함께 완곡한 표현을 했지만 그의 말은 우리가 제법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그래도 난 거기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장춘사 뒷산에 오르는 길>
▶ 타로코에서 확인한 타이완과 우리나라의 공통점
다시 출발! 차창에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곡 옆 급경사의 산지를 깎아 만든 길은 앞자리에서 보면 정말 스릴 만점이다. 깎아지른 듯 급경사의 사면을 파내어 길을 만들었는데 어떤 곳은 버스 두 대가 교행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장졔스 전 총통이 특별히 이 길을 만드는데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열악한 장비로 망치와 정만 들고 이런 난공사를 했다니 공사 중에 사망자가 다수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1956년부터 4년 6개월에 걸쳐 완공된 이 공사에는 군인이나 죄수가 동원되었는데 무려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이다. 한라산 산간도로(속칭 5.16도로)를 내는데 동원했던 인부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는… 타이완의 현대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이데올로기 갈등과 독재, 경제발전과 독재자의 미화 등 주어를 빼고 들으면 우리나라 현대사라고 착각할 만한 요소가 상당히 많다. 실제로 장졔스 전 총통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상당한 정치적 교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구간은 낙석이 심해서 길을 폐쇄한 곳도 있다. 버스들은 대개 이 길의 요리를 잘 알아서 좁은 구간에서는 서로 마주쳐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승용차들이 때때로 주책없이 끼어들어서 길을 막아 놓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 동서 횡단고속도로는 꿈도 못 꾼다.
<옌쯔커우 협곡과 옥색의 석회수>
이 길의 중간에 옌쯔커우(燕子口)라는 곳이 있다. 좁은 협곡 양쪽의 절벽에 제비들의 서식지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말로 옮긴다면 제비 계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제비들은 민가의 처마 밑에 집을 짓는데 이곳의 제비들은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집을 짓는 모양이다. 협곡을 왔다 갔다 하는 제비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옌쯔커우를 지나는 터널과 관광객들>
어디서 버스 두 대 분량을 될 것 같은 타이완인 관광객들이 몰려 와서 갑자기 길이 혼잡해졌다. 국내 여행도 이렇게 떼거리로 다닌다는 것은 좀 특이한 풍경이다. 아니면 중국 본토 관광객들인가? 이 구간에서는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면서 관광을 하고 차는 앞서 가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옌쯔커우의 퇴적층과 타포니>
옌쯔커우 협곡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유년기 협곡이다. 생성연대가 오래되지 않은 것과 함께 풍화에 강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넓게 풍화되는 우리나라의 화강암 지역과는 달리 좁고 깊은 협곡이 발달하는 것이다. 제비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작은 구멍들은 일종의 타포니(tafoni)로 보인다. 퇴적층 가운데 풍화와 침식에 약한 부분이 먼저 파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협곡을 따라 길을 낸 것일까? 하천을 따라 길을 내는 것은 우리나라나 타이완이나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하곡은 비교적 넓기 때문에 길을 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를 내는 것은 지금도 난공사에 속한다. 산맥이 동쪽에 치우쳐 남북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완은 그 정도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는 단 한 개뿐이긴 하지만 동서를 횡단하는 4차선의 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를 만들었다. 높이가 96m에 이르는 엄청난 교각을 세운 기록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난공사 구간이 많았지만 이곳은 2차선 도로도 겨우 만들 만큼 지형적 조건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열악한 것이다.
협곡으로는 특이한 색깔의 석회암 용해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관광객들이 이동하는 통로는 절벽의 안쪽을 파서 만든 반 터널이라서 중간에 밖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여기서도 타이완의 인구밀도를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한적한 경치를 찍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른 관광객들은 안전모를 하나씩 쓰고 있다. 안전장치가 잘 마련될수록 선진국이다. 바보스러울 만큼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선진국이라면 대범하게 안전을 무시하는 것이 후진국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타이완은 선진국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낙석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대비책을 세워둔 것일까? 그런데 왜 우리 일행에게는 안전모가 제공되지 않는 것일까?
▶ 아픔이 담겨있는 치무챠오
인파에 휩쓸려 옌지커우를 통과하니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협곡을 지나 약간 넓은 자리에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역시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상당히 혼잡스럽다.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출발.
<치무챠오에서 바라본 하류쪽 협곡>
버스를 타고 계속 상류쪽으로 올라간다. 비슷하게 연속되는 협곡과 아슬아슬한 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면 현수교가 하나 나오는데 다리의 이름이 치무챠오(慈母橋)이다. 다리 앞에는 치무팅(慈母亭)이라는 누각이 있다. 무언가 스토리가 있어 보인다.
<치무챠오와 란팅>
장졔스의 아들 장징꿔(蔣經國)가 행정원장 시절 이 도로의 건설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때 아들을 이 공사장에 보낸 어느 어머니가 매일같이 아들을 기다리다가 그만 태풍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났었다고 한다. 장징꿔는 어려서 아버지 장졔스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친어머니와 일찍 헤어져서 친어머니의 정을 많이 못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인부와 그 홀어머니의 슬픈 사연을 듣고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치무팅과 치무챠오 아래로 흘러 리우강으로 유입하는 지류. 주일루고도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치무챠오는 협곡을 흐르는 본류인 리우강과 합류하는 지류를 넘는 다리이다. 빨간 색을 칠해 놓은 현수교인데 색깔을 제외하고는 모양이 단순해서 그다지 큰 특징은 없는 다리이다. 그 건너 편에는 란팅(蘭亭)이라고 이름이 붙은 작은 정자가 또 하나가 있다.
<치무챠오에서 바라 본 리우강과 란팅>
▶ 지리적 사실도 안내 표지판의 내용이 될 수 있다.
치무챠오 앞에는 두 개의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 가지가 단연 나의 눈을 끈다. 바로 리우강의 유로 변동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안단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 놓은 표지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안내 표지판을 본 적이 없다. 거의 역사적 배경이나 전설 같은 것이 주를 이루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내 표지판이다. 타이완이 우리나라보다 지리학의 위상이 더 높은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리학도로서는 상당히 부러운 측면이다. 예전에 일본의 후지산에 갔을 때 후지산의 지질사를 적어 놓은 표지판을 보고 부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이다. 역사적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지식’의 측면이 강하다. 이에 반해 지리적 지식은 실제 생활에 활용이 가능한 지식인 경우가 많다. 지질구조나 지형 같은 것들은 자원이나 도로 건설 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식이니까.
설명 내용은 한자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대략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안내 표지판을 옮겨 보면 이런 내용이다.
리우강 유로의 변동
대리석 사면에 매달려 있는 구 하도
치무교에서 리우강을 내려다 보면 하천 양쪽으로 구불구불 거칠게 대칭을 이루며 발달한 높은 대리석 벽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하류쪽으로 가면서 점차 하강한다. 강물의 유로가 구부러지는 지점에서는 다양한 시기에 걸쳐 발생한 유로 변동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진행된 침식은 현재의 형태를 만들었다. 지각의 융기나 해수면의 하강, 또는 일시적인 침식 등 다른 원인들도 강물의 침식을 가속화하고 지금의 깎아지른 듯한 하상과 수직의 협곡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다.
퇴적 계곡
벼랑 사이에 발달한 헬리우 단구를 관찰해 보면 하천에 의해 만들어진 자갈들이 쌓여 있는 두터운 퇴적층을 발견할 수 있다. 건조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도 많지만 이 퇴적층은 단단하지 않은 상태라서 침식에 아주 약하다. 과거의 한 시기에 U자형의 협곡이 만들어졌고 이들 퇴적층이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유형의 계곡에서 ‘퇴적 계곡’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퇴적계곡은 리우강의 역사적인 변천과 헬리우 단구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상이 현재의 퇴적계곡 깊이까지 침식이 되고 리우강이 남쪽방향으로 흘러감에 따라 퇴적층이 헬리우에 얇게 남아서 헬리우 하안단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개의 안내 표지판이 더 있다. 가이드는 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전해 주지 않았지만 이 표지판에 의하면 이곳에서 옌지커우까지 연결되는 옛길이 있는데 차량으로는 통행이 불가한 길이다. 아마도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구간이 많아서 상당히 위험한 길인 것 같다. 트래킹 노선으로 개방이 되고 있지만 사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 표지판도 옮겨 보면 이런 내용이다.
<주일루(錐麓)고도 안내 표지판>
주일루(錐麓) 古道
주일루고도의 어제와 오늘
1914년 일본이 타로코에서 산 넘어 우셰까지 군사도로를 놓았는데 타로코전투에 필요한 군인과 전쟁 물자를 옮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이 구 헤후안산(歡越嶺) 횡단도로의 전신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제는 지역 토착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원주민 평화 도로’로 바꿨다. 1933년에는 도로의 일부가 헤후안 연결도로로 바뀌었는데 관광 진흥이 목적이었으며 1935년에 ‘헤후안산 횡단도로’로 명명되었다. 총 연장이 145.3km였으며 도보로 최소 나흘이 걸리는 길이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하이킹로였다.
주일루고도는 산지아오주이산(三角錐山) 중심부를 통과하는데 헤후안산 횡단도로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부분으로 1915년에 완공되었다. ‘주일루(錐麓)’는 ‘산지아오주이산(三角錐山) 기슭’이라는 의미이다. 절벽을 통과하는 부분은 넓이가 90cm에 불과하며 해발고도는 750m에 이른다. 옛날에는 ‘누구든 이 길을 통과하려면 절벽의 벽을 짚고 한 발자국씩 게걸음을 해야만 했으며 완전히 통과할 때 까지 절대로 옆 사람과 말을 하는 대담함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이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타로코국립공원이 설치된 후에는 주일루고도의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고고학 보존구역으로 설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주일루고도의 자연적, 문화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 년 동안 계획을 수립하고 수리를 하여 현재 방문객들에게 개방이 되고 있다. 입장 허락을 받아야 하며 방문객 수는 제한이 된다. 옌지커우에서 치무챠오까지의 거리는 10.3km에 이르며 편도 여행을 마치는데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주일루고도 노선 *출처:타로코국립공원 안내판>
정말 매력적인 길이다. 여행 당시에 알았더라도 갈 수는 없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 아쉽다! 헤후안산 횡단도로
다시 버스를 타고 상류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이곳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찻집이 있다. 꽃잎을 이용하여 끓인 차는 독특한 맛을 내는데 물을 부으면 계속해서 우러나서 여러 잔을 마실 수 있다. 남성들은 덤덤하지만 사모님들은 알뜰살뜰 여러 잔을 만들어 마셔서 본전을 톡톡히 뽑으셨다. 맛이 괜찮아서 나도 역시 사모님들 덕분에 여러 잔을 마셨다.
꽃잎 차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다시 출발! 출발하기 전에 찻집에서 일하는 원주민 아가씨에게 포즈를 청했다.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개발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이런 이권을 줬다고 들은 것 같다. 아내와 둘이서 포즈를 취해 달랬더니 마눌은 대번 눈치를 챈다.
“기념으로 나를 찍으려는 것이 아니라 인종인가, 민족인가 비교하려고 그러는 거지?”
마누라도 이제 반은 지리학도가 되었다. 이 사람들은 체구는 크지 않은데 눈이 큰 서구형 얼굴을 하고 있다.
<원주민 아가씨와 포즈를 취한 아내>
버스에 올랐더니 내 기대와는 달리 버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산맥을 통과하여 이 길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행 코스는 되돌아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개인 여행이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 길을 따라 종양산맥을 넘는 길을 택했겠지만 이것 역시 지리학도의 호기심일 뿐이다. 산을 넘어도 그럴싸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관광버스가 모두 타로코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되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관광버스를 완전히 전세 냈을 테고 당연히 산을 넘어서 타이베이로 돌아갔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길을 수도 없이 운행했겠지만 버스기사가 상당히 신중하게 운전을 해서 신뢰감을 준다. 위험하기 때문에 앞자리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계곡의 절경을 놓칠 수가 없다. 가이드에게 부탁을 해서 그가 앉는 간이 의자 옆으로 내려가서 한 컷을 노렸지만 비는 내리고, 차는 흔들리고, 마땅한 찬스를 잡기는 어렵고… 어느덧 버스가 계곡을 벗어나고 있다.
<타로코에서 내려오는 길>
▶ 그 유명한 빈낭
타로코역 앞에서 관광 버스와 이별을 한다. 그리고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대규모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대규모 식당은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흔히 봤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가 않다.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식당의 홀 마다 손님이 가득 들어차서 아주 혼잡하다. 잡곡이 섞인 쌀밥과 만둣국 처럼 생긴 말간 국이 메인 요리로 나오고 갖가지 기름진 튀김 요리들이 곁들여 나오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먹을 만 하다. 두부, 생선, 돼지고기 등을 재료로 활용한 요리는 중국 본토식이 타이완식으로 변형 발전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저녁식사>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킨맨고량주로 얼근한 상태에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열차 출발 시간이 30분 이상 남아서 기다리는 동안 맥주라도 한 잔 하려고 했더니 역 앞에는 가게가 하나도 없다. 아침에 가방에 챙겨온 소주는 올 때 기차 안에서 모두 해결을 했기 때문에 천상 다시 구입을 해야만 한다. 시간이 약간 애매해서 조금 망설이다가 일단 한 번 가게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마트가 하나 있다는데 아내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다 보니 이게 생각보다 멀다. 아무래도 제 시간에 돌아올 수가 없는 거리라는 것을 가다보니 알 수 있다. 택시도 없고. 눈물을 머금고 도중에 돌아와서 보니 역 앞에 그 유명한(?) 빈낭 가게가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거라도 한 곽 사서 일행들 맛이라도 뵈 드리자고 아내가 제안을 한다. 이럴 때 보면 아내는 상당히 반짝이는 머리의 소유자다.
빈낭은 약간의 환각 성분이 있는 열매로 한 참 씹다가 삼키지 않고 뱉는데 씹으면 입안이 빨개진다. 그리고 중독성이 있어서 먹을수록 끊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런 열매이니 당연히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심한 사람은 이빨이 다 상한다고 한다. 어쨌든 경험 삼아 한 개씩 씹어 보는데 나는 어쩌다 그걸 못해 보고 말았다.
▶ 백발이 성성한 노인 역무원
역 대합실이 터무니없이 작아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두 역 앞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기차를 기다린다. 이건 좀 문제인 것 같다. 역 광장이 널찍하고 많은 관광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관광 수요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는 뜻인데 역 대합실은 진짜 코딱지만 하니 여행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한 것이다.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간다. 개찰을 시작해서 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앞서 가는 역무원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다. 느긋하다 못해 휘적휘적 걷는 노인 걸음인 것이다. 얼른 쫓아가서 보니 칠십도 훨씬 넘어 보이는 진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어떤 고용구조이기에 이 정도의 노인이 역에 근무할 수 있는 것일까? 공무원의 정년이 이 정도로 길 것 같지는 않고 퇴임 후 비정규직으로 재고용을 했을까? 철도가 개인 기업 소유라서 정년과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타로코역의 노인 역무원>
어쨌든 부러운 장면이다. 노인들이 일을 하는 풍경은 선진적인 사회의 특징이다. 타이완은 선진성과 후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라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선진국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 선진국은 소득 수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돌아오는 돌아오는 길은 모두들 피곤해서 인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어디서 온 팀들인지 내내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후아렌과 타이베이를 잇는 관광열차는 전차(專車)로 중간에 승객을 내리거나 태우지 않는 전용노선이다.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이 팀들은 광주 어디에서 왔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탄 5호차에는 한국 사람만 타고 있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이유는 공공의 장소를 사유화하는 무례함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 후아리엔으로 갈 때도 사정이 비슷했었다. 가만히 보니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유독 목소리가 크고 계속해서 무슨 게임인가를 주도하면서 떠든다. 모두들 피곤해서 신경이 쓰이는 눈치지만 어쩌랴!
불편해도 대부분은 참고 마는 것이 또한 우리의 문화다. 하지만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하는 문화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공공의 장소를 사유화 하는 것은 대통령이 전용기에 업무와 무관한 가족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소득 수준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늦게 호텔에 돌아와 보니 수영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 피곤해도 한바탕 수영을 하면 피곤이 풀리는데 좀 아쉽다. 수영은 내일 아침으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