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 날: 2011.8.15(월) 일정
: 옐류(野柳)지질공원-진샨(金山)온천-점심(옐류, 美觀園)-타이베이 101층-옥공예품 판매점(澎湃臺灣精品)-발마사지(滋和堂)-저녁식사(한궁)-야시장(싼샤)-숙박(풀롱호텔)
<셋째 날 여정(편집) *원본 지도: Bing maps(http://www.bing.com/maps/)>
◉ 셋째 날 내용 -풀롱호텔의 수영장을 독점하다 -동포 덕분에 -‘터널’을 우리말로 옮기면?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점-기복 신앙 -정보는 심사숙고를 뛰어 넘는다 -Geo-Park, 지리공원? 지질공원?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半지리학도가 된 아내 -진행중인 지형-파식대와 절리 -어색한 과잉 친절-여왕의 머리 -기준이 잘못되면 수 많은 오류가 뒤따른다 -온천은 오직 물로 승부하면 된다 -선택관광을 염두에 둔 일정 -101층-공간의 창조를 통한 가치의 창출 -눈길을 끄는 소재는 남녀에 따라 다르다 -‘센터’를 우리말로 옮기면? -전두엽이 나쁘다? -소심한 일탈 ▶ 풀롱호텔의 수영장을 독점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수영장에 내려갔다. 너무 일찍 내려왔나? 7시에 내려갔는데 수영장 문이 잠겨있다. 로비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직원이 얼른 와서 열어 준다. 아주 넓지는 않지만 혼자서 수영을 즐기기에는 과분한 수영장이다. 달랑 나 혼자인데 불을 켜고, 기포 만드는 장치도 가동하고 수영장의 기능을 풀가동하는 것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혼자서 다양한 영법을 마음대로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래도 혼자서 하려니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한참 동안 물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잠깐 물 밖으로 나오다 보니 풀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수경이 하나 놓여있다. 수경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이곳에 주인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문을 열자마자 내내 나 혼자 수영을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까 풀에 들어갈 때는 없었는데 청소아줌마가 다녀가더니 생겨났다. 내가 아까 내려갔던 계단 옆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까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청소 아줌마가 내 것 인줄 알고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당연히 그 안에 나 밖에 없으므로 그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어차피 주인을 찾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수경을 안 가져온 마누라 생각에 나올 때 가지고 왔다. 올라와서 이따 저녁때나 내일은 당신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전혀 좋아하는 기색이 없다. 하긴 수영을 나나 좋아하지 아내는 개구리헤엄을 겨우 치는 수준이다. ▶ 동포 덕분에 식사를 하러 내려갔더니 입구에서 또 식권을 받는다. 대개 호텔 투숙객에게는 특별한 확인 절차 없이 식사를 제공하는데 첫날 나눠준 식권을 어제 아침을 먹을 때 내 버렸었는데 오늘 또 내라니 이게 웬일인가? 알고 보니 투숙객에게 제공된 식권은 식사할 때 마다 보여만 주고 다시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제 확인만 하고 돌려 줬어야지… 그나저나 이를 어쩌나?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식권을 검사하는 직원이 한국인이다. 설명이 쉬워졌다.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이해를 해 준다. 다음날도 이 동포 덕분에 무사히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진한 커피에 쌀죽, 그리고 하얀 색의 삶은 계란과 소시지, 약간의 나물류로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빵을 먹는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빵에 손이 가질 않는다. <풀롱호텔의 아침식사> 이번 여행에서는 모두 세 명의 기사를 만났다. 첫 날, 후아리엔에서, 그리고 둘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여러 날 여행에서 버스와 기사가 바뀌는 경우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 비춰 보면 특이한 현상인데 수시로 있는 일인지, 이번 우리 여행이 특수한 사례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모두들 한 결 같이 상냥하다. 시장에서도 풍경이 비슷하다. 지나치지 않게 적절히 친절하고 정찰제가 확고하다. 원칙대로 물건을 파는데 굳이 낯을 붉힐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가지 씌우고 남을 속이려다 보면 과잉 친절이 나오거나 아니면 불친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자기 직업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충실 한다면 굳이 가식적으로 친절을 가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면들은 타이완의 선진적인 측면들이다. ▶ 터널(tunnel)을 우리말로 옮기면? 오늘의 주 여행지는 옐류 해안 국립공원이다. 예전에 학교 축제 때 지리사진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용진샘이 출품했던 사진 중에 바로 이곳 사진이 있었다.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그 형성 원인을 고민했었지만 정확한 답을 낼 수 없었던 바로 그 지형을 오늘 마침내 가 보게 된 것이다. 기대가 많이 된다. 싼샤 시내를 빠져 나와 3번 고속도로(福爾摩沙 高速公路)를 탄다. 지형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고속도로 주변 풍경이 익숙하다. 가끔씩 다리를 건너고, 또 가끔씩 터널을 지난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 터널은 수이다오(隧道)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굴길’ 정도 되는 셈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말에는 터널을 표현하는 적절한 말이 없다. 순 우리말은 물론이고 한자말도 적절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전북 무주에 신라와 백제를 연결했던 羅濟通門이 있는데 거기에 쓰인 ‘通門’이 그럴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난 김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북한에서는 ‘차굴’이라고 한단다. <산 사면과 능선에 들어선 주택> 고속도로 옆 산 중턱에 연립주택처럼 생긴 주택가가 발달하고 있다. 후줄근한 달동네가 아니라 정갈한 다세대 주택들인데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전원주택의 느낌이 나면서도 도로를 내기가 어려워 보여서 달동네의 느낌도 같이 난다. 구릉의 능선에도 집이 들어서 있는데 이 나라도 겨울이 매우 춥지는 않기 때문에 구릉 위에도 집을 짓는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점, 기복신앙 산중턱 주택가와 유사한 입지에 커다란 사찰이 보인다. 사찰이 크다기 보다는 금빛의 커다란 조상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곳인데 가이드가 강조를 하면서 창밖을 보라고 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그 조상은 불상이 아니라 복덕(福德)신이라고 한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중계업소를 복덕방이라고 했었는데 둘은 아마도 의미가 통하는 신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다양한 기복신앙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거리에서 봤던 풍경도 그렇고 룽샨사에서 봤던 많은 인파들을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도 기복신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이 나라는 우리보다 더 발달한 것 같다. 일본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공통점이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이다. 상당히 이질적인 면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공통점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복덕신이 있는 절> ▶ 정보는 심사숙고를 뛰어 넘는다 3번고속도로를 타고 길룽시 서쪽을 통과하여 옐류해안지질공원으로 들어간다. 해변으로 난 도로 옆으로 백사장이 발달하고 멀리 옐류반도가 보인다. 이곳도 역시 넓은 백사장에 비해 해수욕객은 거의 없는 편이다. 월요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식으로 보면 피서 휴가 절정기인데 이 나라는 왜 그럴까? 어제 치싱탄에서는 파도가 높고 바다가 깊어서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지 못했으려니 했었는데 여긴 듬성듬성 파라솔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수욕장으로 개발된 곳인데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일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정보가 부족하면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답을 낼 수가 없는 법이다. <멀리 옐류반도가 보이는 해수욕장. 넓은 백사장이 무색하게 사람이 없다> ▶ Geo-Park, 지리공원? 지질공원? 옐류해안공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공원 입구 반대편에 있는 절벽이 눈길을 끈다. 수직 절벽이 노출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때가 낀 듯 검은색이고 군데군데 붉은 기가 약간 도는 진한 황토색 부분이 마치 때를 벗긴 것처럼 드러나 있다. <옐류공원 주차장에서 보이는 사암층 노두> 입장료를 받는 입구에는 野柳地質公園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데 그 아래에 영문 표기는 Yehliu Geopark라고 되어 있다. 타이완에서는 地理와 地質이 어떻게 구분되어 사용되는지 모르지만 ‘Geo’가 ‘지리’가 아닌 ‘지질’로 번역된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의 하나인 제주도가 유네스코의 Global Geopark Network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를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우리 지리학도는 'Geo' 하면 무조건 ‘지리’가 떠오른다. ‘지질공원’ 대신에 ‘지리공원’을 쓰면 어색한가? <옐류지질공원 입구> 영어권에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데 그것이 다른 언어권으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땅(Geo)의 논리(logy)를 따지든, 묘사(graphy)하든 둘 다 땅(Geo)에 관심을 갖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지질공원’이 아니라 ‘地(땅)공원’이 맞다. ‘Geo-Park’를 ‘Geology-Park'로 과다 번역을 한 셈이다. 옐류의 특이한 경관은 지질구조와 관계가 깊지만 그것이 유명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은 ‘지리’이기 때문이다.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 로고>
▶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지도나 안내 자료가 있는지 관리사무소에 들러 물어 보느라 일행과 떨어졌다. 잠깐 화장실에 들렀더니 화장실 표시가 재미있다. ‘女賓止步’ 우리말로 옮긴다면 ‘여인은 걸음을 멈추시오’ 쯤 될까? ‘남자용’, 또는 ‘여성출입금지’ 보다는 훨씬 부드러워 보인다.
날씨가 엄청 더운데 벌써 멀리 가버린 일행을 뒤쫓아 가려니 땀이 줄줄 흐른다. 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될 것 같다. 아예 운동하는 셈치고 땀을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한다. 그래야 즐겁게 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쪽으로 상록수들이 자라는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으니 기암괴석이 즐비한 공원이 펼쳐진다. 본격적으로 공원에 들어가기 전에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데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작은 팜플릿보다 더 설명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표지판을 통해서 그간 궁금했던 점들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표지판의 내용을 바탕으로 옐류해안에 여러 지형들이 발달하게 된 원인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옐류지질공원의 지형 형성 안내 표지판에 있는 옐류반도 지형 모식도>
해성퇴적층이 융기하면서 절리면이 발달하였다. 해성퇴적층은 석회암 계열과 사력암 계열의 층이 교대로 분포하여 경층(硬層)과 연층(軟層)이 구별이 된다. 융기하면서 압력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수평, 수직의 절리가 발달하였다. 지층의 상층부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파도의 영향으로 침식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침식은 절리면을 따라 진행이 되면서 일종의 시스택(sea stack)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융기가 진행되어 상층부는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그 아랫 부분이 수면상에서 침식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머리 부분 보다는 그 아랫 부분이 더 침식을 당해 얇아져서 버섯 모양의 바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버섯바위는 보통 사막에서 모래 바람의 침식으로 만들어지지만 이곳에서는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버섯바위=건조지형’ 이라는 도식을 머리속에 세워 놓으면 이런 지형을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다. 자연은 변화무쌍하고 단순한 공식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 수준의 지식에 갇혀 다양한 지리적 사실에 대하여 견강부회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을 축적 해야만 한다. 고등학교 교과 수준의 교육은 ‘연구’ 측면보다는 지식을 전수하는 ‘테크닉’의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이 나라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다양한 지형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소재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지괴로 지각운동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빠른 속도로 융기하면서 지형이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 사람은 경험으로 판단을 한다고 보면 우리의 경험적 사고만으로는 이런 지형을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작지만 다양한 환경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 半지리학도가 된 아내
버섯모양의 바위가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바위 사이로 난 좁은 통로이다. 선명한 퇴적층이 드러나 있는 이 바위는 사력암 계열의 바위인데 특히 사암층은 긁거나, 심지어는 관리인이 비로 쓸어도 쓸릴 정도로 경도가 약하다. 바위의 경도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쉽게 파도에 침식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공원 초입에 발달한 퇴적층>
<버섯바위의 형성 과정>
입구에서 버섯바위까지 건너가는 통로는 얕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아니라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건 분명히 해수의 이동을 차단하는 구조물인데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사를 한 것일까? 다른 동남아 국가였다면 그러려니 생각을 했을텐데 타이완이라서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버섯바위에서 인증샷>
정말 절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줄을 서 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모양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방향성은 지각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절리면의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양은 윗부분은 검은색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고 아랫부분은 표면이 매끈한 황토색이다. 경층(硬層)과 연층(軟層)이 교대로 분포하면서 차별적으로 침식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해안쪽으로는 길쭉하게 뻗은 퇴적층이 드러나 있다. 자갈들이 중간중간 끼어있는 사력암인데 아내한테 앞에 한번 서보라고 했더니 고개를 살짝 돌려서 얼굴을 기술적으로 가리면서 스케일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이젠 내가 서있으라고 하는 위치를 보고 자신을 찍는 것인지 스케일로 활용하는 것인지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챈다.
<옐류반도 해안에 북동-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는 사력암 퇴적층 노두>
▶ 진행중인 지형-파식대와 절리
일행들과 떨어져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해안에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데 거의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절리면과 절리면 중간에 발달한 둥근 구멍을 볼 수 있다. 모양으로 보면 포트홀(pot hole)이지만 바닷물이 닿지 않는 위치이기 때문에 물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타포니(tafoni)인가?
<타포니인지 포트홀인지 구분이 안되는 지형.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절리상에 발달한다>
옐류반도를 따라 끝 쪽으로 계속 들어가 보았다. 거리상으로 보면 오늘도 틀림없이 제 시간에 맞춰 버스로 되돌아가기는 틀렸다. 하지만 재미있는 지형이 많아서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가 없다. 오늘도 선배님들께 용서를 구하리라 마음먹고 그대로 가 보기로 한다.
<옐류반도에서 남쪽방향(길룽시방향)으로>
반도의 끝 쪽으로 좀더 내려가니 북쪽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한다. 해식애 아래로 파식대가 펼쳐지는데 그 모양이 정말 신기하다. 마치 보도블럭을 바닷속에 깔아놓은 것 처럼 네모 반듯한 절리면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버섯바위가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융기를 한다면 이곳에도 버섯바위가 만들어질 것이다.
<북동-남서방향의 기본 절리와 거의 수직(서북서-남남동)으로 발달하는 2차 절리>
옐류 반도의 끝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틀림없이 일행들은 거의 구경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고 있거나 이미 돌아갔을 것 같다. 산책로의 마지막 부분에는 전망대 시설이 있고 그 건너편이 옐류 반도의 끝부분인데 다행스럽게도(?) 끝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없다. 갈 수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은 직접 이어진 산책로가 없으니까 그냥 돌아가도 될 핑계(?)가 생겼다.
<차별침식이 진행중인 공원내의 암석 노두>
산책로는 순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숲 사이로 길이 나 있지만 나무들의 키가 크지 않아서 햇빛이 들어오는 구간이 많다.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매우 덥다. 내려오다 보니 줄기 모양은 소나무가 분명한데 잎이 굉장히 긴 특이한 침엽수가 자란다. 더운 지역이라서 소나무 잎이 길어진 것일까? 그건 말이 안 된다. 더운 지역이면 침엽수가 아닌 활엽수가 자라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 침엽수의 잎이 길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잎이 긴 소나무>
▶ 어색한 과잉친절, '여왕의 머리'
숲을 빠져 나와서는 왔던 길이 아닌 해안의 평지로 내려가 보았다. 남북(북북서-남남동)방향으로 발달한 절리면과 절리면의 수직방향(동북동-서남서 방향)으로 발달한 버섯바위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버섯바위의 방향성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절리>
<동-서 방향에 가깝게 배열된 버섯바위>
<버섯바위의 머리 부분이 벌집모양으로 발달한 과정>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빠져나왔다. ‘여왕의 머리’라고 이름 붙여진 버섯바위 모조품이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침식이 계속 진행되면 결국 버섯바위의 머리 부분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모조품을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왕’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뜻한단다. 보면 닮은 것 같기는 한데 하필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타이완이 영국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외국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급조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울릉도의 ‘탱크바위’처럼. 탱크가 등장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 분명하니 예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이름이 아니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때도 왠지 억지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또 하나, 쓸데없는 생각. ‘여왕’이면 됐지 ‘여왕의 머리’는 또 뭔가? 어색한 과잉친절에 생각하기 따라서는 불경하기까지 하다.
또 한 가지 의문점. 융기와 함께 해수면으로 올라온 암반이 바닷물의 차별 침식 작용으로 이런 특이한 지형을 만들었다고 표지판에는 설명이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해수면 밖으로 노출된 상태에서도 침식이 진행될 수 있다면 침식 에너지는 물 뿐만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바람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암석의 강도가 낮기 때문에 바람이 강한 계절에는 서서히 침식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입구에는 어제 타로코역에서 봤던 중국 천안문사태에 항의하는 그 극우파 시위대가 있다. 타로코에서는 사람은 없고 승용차의 보니트를 덮어 놓은 판넬들만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판넬을 들고 서 있다. 썬글라스를 쓴 노인들이다. 이 나라 역시 고령층으로 갈수록 이데올로기 문제에 집착하는 냉전시대의 사고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란다. 지나가는 행인이 시위대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했다는 뜻이다.
<옐류공원 앞의 시위대>
▶ 기준이 잘못 되면 수많은 오류가 뒤따른다
타이완은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호상열도일까, 아니면 대륙판의 말단부일까? 위성영상으로 보면 타이완 해협쪽은 수심이 깊지 않은 대륙붕으로 중국대륙과 이어진 대륙의 말단부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어쨌든 필리핀판의 영향으로 비대칭 요곡운동이 일어나 동쪽이 밀려 올라온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각의 절리가 발달하고 이후 침식을 받아 다양한 지형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퇴적층이 경연(硬軟)의 호상층(互狀層)을 이룸으로써 차별침식을 받아 더욱 지형이 특이한 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암층이 침식이 잘 되는 층이라면 침식을 방어하는 층은 석회암층으로 보인다. 가이드도 탄산칼슘( CaCO3)이라는 말을 했었다.
<타이완 주변의 판구조 *Google 영상>
타이완섬 전체적으로 보면 섬의 방향이 대체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우리나라의 구조선 방향 보다는 좀 더 남북 방향에 가깝다. 필리핀판의 영향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필리핀 판의 북쪽에 위치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타이완은 필리핀판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배열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옐류반도에 발달한 절리면들은 타이완섬의 전체 배열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반도의 모양은 전형적인 북동-남서방향을 하고 있고 기본 절리면도 역시 북동-남서 방향으로 우리나라와 같다. 하지만 오늘 답사 경로에서 관찰한 것은 대체로 북북서-남남동 방향이 많은 것 같다. 2차 구조선이 1차 구조선의 수직으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틀어져 있는 셈이다.
<북동-남서방향으로 발달한 옐류반도와 북북서-남남동 방향의 절리 *Google 영상>
더욱 이상한 일은 위성영상의 절리면 방향과 내 나침반으로 관찰한 방향이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지난 번 몽골 여행 때도 나침반이 맘대로 움직여서 몽골에 있는 내내 방향을 헛갈렸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이 녀석이 기능을 상실한 모양이다. 아니면 자북점이 러시아쪽으로 이동한다고 하더니 그 영향인가? 그렇다면 나침반도 오래되면 오류를 일으킨다는 뜻이 된다. 돌아와서 위성영상을 찾아보기 전까지 내내 이 녀석 때문에 애를 먹었다. 기준이 잘못되면 엄청난 오류들이 연속적으로 파생되는 것이다.
▶ 온천은 오로지 물로 승부하면 된다
예상했던 대로 이미 버스에는 모든 일행들이 타고 기다리고 있다. 얼굴 모습이 땀이 모두 식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음을 알 수 있다. 죄송하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넉넉하신 선배님들께서는 모두들 괜찮다고 기를 살려주신다. 이런 때 좋은 것이 막내라는 점이다. 게다가 든든한 후원군 아내까지 대동하고 있지 않은가?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진샨(金山)이라는 곳에 있는 노천 온천을 가는 것이다. 가다보니 원자력 발전소가 길옆으로 있다. 높직한 담장을 쳐 놔서 키가 큰 원자로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각이 불안정한 이 나라는 원자력발전소에 특별히 주의를 해야할 것 같다.
<진샨의 카오후아위안 온천>
카오후아위안(草花源)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은 온천은 단층의 아담한 건물이다. 주위에는 다른 건물들이 거의 없는데 노천 온천이므로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는 곳이어야 할 것 같다. 옷을 벗고 들어가는 탕도 있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는 목욕 보다는 수영에 관심이 많으므로 수영장으로 직행했다. 넓지는 않지만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없으므로 여기도 나 혼자 독점이다. 따뜻한 온천물에서 혼자 여유 있게 수영을 하는 기분은 썩 괜찮다. 아내와 몇 분 일행들이 잠깐 다녀가실 뿐 수영장에는 큰 관심들이 없으시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온천 내부>
혼자 기분을 내다보니 이번에도 꼴찌다. 이놈의 만성적인 느긋함. 이 나이에 고치기는 틀렸고 이젠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모양이다. 마무리를 하려고 후다닥 탕으로 달려갔더니 여긴 시설이 별로다. 샤워시설이며 탕의 크기하며 낡았고 좁다. 완전히 닮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작고 정갈한 일본 같은 느낌이 든다.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지만 따지고 보면 온천이 물로 승부하면 되는 것이지 시설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 선택 관광을 염두에 둔 일정
온천을 나와서 다시 옐류공원으로 되돌아 간다. 공원 주차장 옆에 메이구안위엔(美觀園)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약간 낡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 한 가운데 있는 음식점이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좀 답답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오래된 건물 냄새가 난다. 음식의 종류는 단순한 편인데 쌀밥에 미역국 같은 것이 나와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계란찜, 두부, 새우찜, 생선찜 등이 곁들여 나온다. 물놀이를 한참 해서 배가 고팠던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후다닥 먹어치우다 보니 음식이 거의 바닥난 뒤에 사진을 찍을 생각이 났다.
<옐류공원 주차장 옆에 있는 음식점 메이구안위엔>
오늘 오후 일정은 선택 관광이다. 어제 오후에 가이드가 의견을 물었었다. 두 개의 선택관광 상품이 있는데 하나는 101층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나는 발마사지보다는 당연 전망대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사모님들은 발마사지 쪽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결론은 둘 다 가는 것으로 났다. 오후 일정을 위해 오전 일정을 좀 서두른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 원래 그렇게 되어있는 것 같다. 출발할 때 여행사 직원이 노옵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강요하진 않았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오후 일정이 매우 느슨하게 잡혀 있는 것을 볼 때 옵션을 염두에 둔 일정이라고 생각된다.
<메이구안위엔의 점심 식사>
▶ 101층-공간의 창조를 통한 가치의 창출
첫 번째 목적지는 101층 전망대이다. 모든 방면에서 세계 최고는 주목을 끌지만 세계 2위는 주목을 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1층은 세계 2위라는 사실을 열심히 홍보한다. 101층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이베이 시가지의 동남부 신이(信義)구에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전망대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역시 이곳도 타이완답게 사람이 많다. 두 줄씩 길게 늘어서 있는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에 아주 낯이 익다.
<101층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전망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 있는 줄>
한 참 기다린 끝에 드디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물론 안에 안내원이 타고서 버튼을 눌러주는 서비스를 한다. 속도가 워낙 빨라서 200m/min을 넘나든다. 그러니 508m(전망대까지는 500m가 좀 안되겠지만)를 겨우 2분30초 만에 주파를 한다.
2005년 건설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빌딩이었는데 2010년 두바이에 Burj Khalifa(흔히 버즈 두바이라고 부른다)가 완공되면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부르즈할리파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주건설업체로 참여하여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부르즈할리파가 무려 162층, 828m로 사실 2위와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화면>
올라가는 동안 엘리터 벽에 현재 위치가 표시되는 작은 모니터가 있다. 모니터로 보니 우리가 정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건물 높이가 508m이면 이 일대의 지대가 아무리 낮다고 해도 5백 몇 십 미터는 된다는 얘기다. 천안 주변에서는 흑성산이 519m이니 대략 그 높이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건물의 위치가 타이베이의 동남쪽 끝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전망이 좋은 방향은 서쪽 방향이다. 서쪽으로 곧게 뻗은 2번대로(信義路)를 중심으로 늘어선 고층 건물들을 볼 수 있고 2번대로의 끝에는 S字로 크게 곡류하는 단슈웨이강이 보인다.
<101층에서 바라본 서쪽. 멀리 단슈웨이강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양밍산지와 그 앞으로 흐르는 길룽강이 보인다. 건축물로는 왼쪽에 주황색의 전통식 지붕을 한 낮은 건물이 눈에 띄는데 바로 국립쑨원기념관이다.
<101층에서 바라본 북쪽. 쑨원기념관(주황색 지붕), 길룽강과 양밍산지 등이 보인다>
타이베이시의 확장을 가로막는 산지가 시가지의 남동쪽으로 가로놓여 있어서 동쪽과 남쪽은 상대적으로 시가지의 발달이 미약하고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진 녹지가 눈에 띈다.
<101층에서 바라본 북쪽. 산지에 막혀서 시가지가 더이상 확대되지 못하는 경계부분이다>
<101층에서 바라본 남쪽. 동쪽은 산지로 막혀있다>
전망대 한 쪽에는 세계 10대 고층 건물이 소개된 표지판이 있다. 828m-508m-492m(상하이 월드 파이넨셜)…421m(10위). 10위 짜리는 높이가 꼭 우리 천안의 태조산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2012년 현재 부산의 주상복합건물 두산위브더제니스로 301m(80층)이다. 아직까지도 고층 건물의 상징인 63빌딩은 약 249m로 일반 사무용 빌딩으로는 여전히 가장 높다. 천안의 랜드마크인 펜타포트는 235m로 전국적 수준에서는 수위권을 넘보지는 못하는 위치이다.
<세계 10대 고층빌딩을 표시해 놓은 게시판>
<전망대에 설치된 사진 설명판>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타이베이 시가지를 구경하고 나서 걸어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거대한 쇠구슬이 건물 한 가운데에 매달려 있는데 이 거대한 구슬이 이 건물의 비밀이라고 한다. 즉, 강한 바람과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하려면 약간의 진동을 허용해야 하는데 그 진동을 규제하고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쇠구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이 이 구조물을 보기 위해 타이베이에 몰려온다고 한다. 이젠 더 높은 건물이 생겼으니 건축가들의 눈이 다른 곳으로 쏠렸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아시아권에서는 건축 관련자들의 주요한 학습교재라고 한다.
<우주선처럼 생긴 완충장치>
건물이 다만 전통적인 기능, 즉 수동적인 거주나 업무 등의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적극적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경제복합체의 역할을 한다. 이곳이 101층이라는 높은 건축물이 필요할 만큼 땅값이 비싼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가와 건물 높이의 상관관계의 방정식을 벗어났지만 이런 랜드마크를 만들어냄으로써 기본적인 기능과 함께 상업 및 관광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최고층의 빌딩이 주로 주거 기능을 하는 건물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건물 자체가 수요를 창출하는 생산적 기능보다는 전통적인 기능에 머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간을 공유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기 보다는 사유를 배경으로 하는 공간의 독점을 선택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의 전자제품 매장. 우리나라에 컴퓨터 메인보드 등을 많이 팔고 있는 ASUS사 매장이다>
▶ 눈길을 끄는 것은 남녀에 따라 다르다
'팽파이타이완징핀(澎湃臺灣精品)'이라는 상호가 붙은 옥공예품 판매점을 잠시 들렀다. 어제 후아리엔에서 들렀던 공예품 전시장과 비슷한 것이 많아서 그다지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어차피 옥공예품을 살 생각은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거의 그렇지 못하다. 왜 이곳이 코스에 들어있을까?
<옥공예품 판매점 팽파이>
그래도 아내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관심을 표하기에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있나 했더니 결국 그냥 나온다. 나는 살 것이 없다고 미리 속단을 하고 아예 쳐다볼 생각도 안하는 쪽이라면 아내는 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을까 하고 둘러보는 쪽인 것 같다. 대개 남녀가 이런 행동양식의 차이를 보이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차피 정해진 시간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것 보다는 둘러라도 보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띠면 좋고 안 걸려도 그만이지 않은가? 하긴 남녀의 눈길을 끄는 품목의 차이가 있다. 이 매장이 카메라나 전자기기 매장이었다면 아마 입장이 바뀌었을 것이다.
<열심히 eye&finger shopping 중인 아내>
▶ ‘센터(center)'를 우리말로 옮기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발마사지이다. 간판에 ‘중의원(滋和堂中醫聯合診所)’이라고 써있는 곳인데 그 간판 아래에 ‘건강센터(滋和堂健康養生中心)’라는 또 다른 간판이 붙어있다. ‘센터(center)’라는 말은 우리말로 옮기기가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센터’라는 낱말을 우리말처럼 쓴다. ‘글’ 워드프로세서에서도 ‘센터’를 쓰면 빨간줄(맞춤법 오류 표시)이 안 나타나는 것을 보면 외래어처럼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타이완에서는 ‘中心’으로 바꿔 쓴다. 이 사람들은 가능하면 외국어를 그대로 쓰지 않고 자기들 식으로 바꿔 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노력은 정말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개인 차원에 내맡겨서는 뜻도 통하고 어감도 좋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관을 설립하여 새로운 낱말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하고 기업과 개인에게 권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말 속에 외국어 낱말을 한 두 개 끼워 넣는다고 해서 외국어 실력이 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잡탕만을 만들어서 우리말을 더럽힐 뿐이다.
<발마사지>
▶ 전두엽이 나쁘다?
계단을 올라 실내로 들어가니 빽빽하게 푹신한 의자들이 배열되어 있고 각 의자마다 마사지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방의 규모는 우리 일행 외에도 다른 일행들이 함께 들어갈 정도이다.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다. 흰색 가운은 이곳 직원들의 근무복인지 아니면 의사이기 때문에 입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의사처럼 보이기 위한 것인지 궁금한데 물어보지는 못했다.
마사지사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은데 가이드의 말로는 굳이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단다. 이 사람들도 물론 직업으로 이 일을 하겠지만 동남아에서는 어쩐지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부업처럼 약간은 즐기면서 일을 하는 느낌이다. 선입견인가?
나에게 배정된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아줌마이다. 두터운 쌍꺼풀에 널직한 코를 가진, 어떻게 보면 남자처럼 생겼는데 사람 좋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발이 못생긴 나는 발을 맡기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지 땀을 뻘뻘 흘리는데 다른 사람도 비슷한 걸 보면 원래 그런 모양인데도 나는 왠지 내 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올리브기름 같은 것을 바르고 구석구석 마사지를 하는데 나눠준 자료에 의하면 각 부위마다 몸의 장기가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즉, 아픈 부위를 보고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지침과 원리가 비슷한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아픈 곳에 대해서 묻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잘 모르는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가 정해준 프레임에 갇히도록 되어 있다. 그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순서인데도, 더욱이 시간이 지나면 대개 그것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리면서도 순간적으로는 그 프레임에 갇히곤 하는 것이다.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이런 프레임을 활용하여 대중들을 선동한 대중 조작술의 대가였다. 우리나라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대에 이 땅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쓰인 프레임은 물론 이데올로기였지만 그 외에도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나 전두환의 ‘사회 정화’ 등은 그것을 주장한 측의 문제점을 가리고 온 국민을 그 프레임에 가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현 정부의 ‘청렴’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하는 프레임이다.
나는 이상하게 엄지발가락 끝이 엄청나게 아프다. 아프다는 표시를 하면 분명히 무슨 설명을 하러 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참고 가만히 있었다. 설명서에 보니 ‘전두엽’ 부분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대장이나 무릎 관절에 대해서는 자주 고민을 했었는데 전두엽이라니… 점점 기억력이 감퇴하고 머리가 나빠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나도 프레임에 갇혔다.
<민망한 내발>
곰발을 내민 주제에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얼굴이 안 나오게 신경 써서 한 장을 찍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문직에게 1달러의 팁을 주는 것은 어쩌면 모욕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일종의 약속이니 더 줄 수도 없고… 확실히 나는 팁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소심한 일탈
삼겹살이 나오는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항상 이런 음식점이 반갑지 않다. 한 끼도 먹지 않고 굶어도 괜찮을 만큼 겨우 며칠 머무는데 왜 맨날 먹는 한국 음식을 멀리 타국에 와서 먹는단 말인가? ‘한궁’이라는 음식점 로고가 한글로 써 있는 개인 식탁 커버가 놓여있는 이 음식점은 상추에 고추, 태극 모양으로 가운데를 가른 그릇에 담겨있는 쌈장까지 모두 낯이 익은 우리나라식이다.
<삼겹살과 함께 한 한정식>
킨맨고량주와 가지고 온 진로소주가 사라지는 속도는 식사 횟수를 더해도 전혀 줄어들지를 않는다. 대단하신 체력들이시다. 더욱이 오늘은 마지막 저녁이니 더 의미가 부여되어 알콜 농도가 올라간다. 결국 술이 술을 부르고 말았다. 2차로 술집에 가서 한잔 더 하기로 한 것이다.
<출국 전야제>
숙소 근처에서 가이드와 함께 술파들만 차에서 내렸다. 가이드는 값이 싸면서도 맛이 괜찮다며 하천변의 어느 허름한 집으로 안내를 한다. 젊은 청년들이 서빙을 하는 이 집은 맥주와 안주를 파는데 고량주는 없다. 고량주를 구해다 달랬더니 나가서 한 병을 구해왔다. 매운 고추에 채소, 볶은 육류 등으로 만든 요리들은 입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새로운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해진 스케쥴에서 일탈하는 것은 어쨌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