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하천(천안)

천안 시내 하천 답사(5)

Geotopia 2012. 6. 3. 23:56

 

 

仁鳥樂山 智鳥樂水

 

  다시 출발. 시내를 관통한 두 하천이 합류한 지점부터는 하천이 제법 넓다. 일봉산 남사면은 이제 별천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산을 사이에 두고 시내와 격리되어 있는 근교농촌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여러 개 들어선 신흥 주택가가 되었다. 내 눈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명당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 때 이쪽으로 이사를 올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 이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의 조건이 만족스러우면 무언가 다른 조건이 걸리는 것이 있다. 전에 이사를 자주하는 어떤 분께 ‘참 부지런 하시다’고 했더니 ‘이사는 결단’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맞는 말이다. 당장 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유부단하게 차일피일 하면서 머물러 사는 사람이 바로 나다.

 

<천안천과 원성천의 합류지점 아래쪽의 천안천. 오른쪽은 일봉산 남쪽의 신설 아파트촌이다>

 

 

  천안천의 남쪽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눈들다리를 건너 동일아파트 앞에서 하천의 북쪽을 타기 시작했다. 남쪽 제방의 길은 1차선의 좁은 도로지만 북쪽에는 아이파크, 우림, 동일, 삼성, 한라동백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2차선의 도로가 놓였다. 눈들다리를 건너다 보니 왜가리인지, 두루미인지 다리가 기다란 새가 냇물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이 녀석은 어찌나 의심이 많은지 사진 한 장 찍고 가려고 배낭을 내리는 사이에 날아가 버린다. 광덕산의 새들은 사람을 잘 따른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먹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정상에 날아들어서 심지어는 손바닥에 올려놓은 먹이를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왜 그럴까? 이 날 하천에서 노닐고 있는 덩지 큰 새들은 하나같이 카메라를 꺼내기도 전에 날아가 버리곤 했다. 仁者樂山이라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성이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仁鳥樂山(?), 그런 원리가 새들에게도 통하는 것인가? 어쩌면 물가의 새들에게 지나던 꼬맹이들이 돌팔매질이라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들도 분명히 학습을 한다. 사람들이 지나칠 때는 멀쩡하게 먹이를 쫓던 녀석들이 내가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면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다.

 

<눈들다리에서 상류쪽을 바라본 장면. 천안천의 오른쪽으로는 청수동의, 왼쪽으로는 일봉산 남쪽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승규는 해결사!

 

  용곡교 옆으로 남부대로를 통과하는 2차선의 굴다리가 있다. 탕이 맛있는 금미옥을 지나면서 이따가 저녁을 여기서 먹을까 잠깐 생각을 하는데 눈앞에 지갑이 하나 눈에 띤다. 주워보니 3만원이 들어 있는 누군가 흘리고 간 지갑이다. 그런데 명함과 신분증과 카드의 주인이 가지각색인 재미있는 지갑이다.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찾으러 오라고 하자니 나는 계속 움직이는 중이고, 이따가 저녁 식사 때 오라고 할까 어쩔까 잠시 고민을 했더니 승규가 간단히 해결을 해준다.

“우체통에 넣어요”

그렇지! 그러면 되는데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했단 말인가?

 

 

 아쉬운 쌍룡천 유역

 

  신방체육관 뒤편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딱 한 번인가 지나가 본 상당히 낯선 길이다. 신방통정지구로 연결되는 서부대로(이 길도 서부대로라고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래를 지나 남서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왼쪽의 하천은 아래쪽에 보가 있는지 물의 양이 하곡을 꽉 채울 만큼 상당히 많다.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지만 가끔 차가 지나갈 때면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천안시환경사업소(하수종말처리장)이 여기에 있다. 천안천, 원성천 등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양쪽에 따로 묻은 오수관을 통해 내려온 오수들이 이곳에서 정화처리 되어 하류로 배출이 되는 모양이다. 아까 천안천 서부역 근처쯤인가에서 하천 안에 하수관이 드러난 것을 잠깐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아주 상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한 악취가 나거나 눈에 거슬릴 정도로 물색이 탁하지는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시설 덕분이다. 하지만 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는 분명히 아니다. 바닥을 볼 수 없는 탁한 물색과 악취로 최악의 상태였던 한 때를 우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물로도 ‘많이 깨끗해 졌다’며 안도를 하지만 사실 물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도시 복판을 흐르는 하천에서 맨발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는 있을까?

 

<천안천과 합류하기 직전의 쌍룡천>

 

  하수종말처리장을 조금 지나면 쌍룡천과 천안천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쌍용천은 봉서산 동쪽의 쌍용공원 부근에서 시작되어 쌍용대로 방향(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장항선 철도 노선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 쌍용동 대우아파트 부근에서 서쪽 줄기와 합류한다. 전에 해원이와 장항선 폐선 구간을 답사했을 때 쌍용역 부근에서 하수구에 사는 특이한 새를 본 적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생긴 이 녀석은 철새인데 날아가지 못한 녀석이 아닌가 싶었다. 본 바탕은 화려한 자태를 자랑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하수구가 오버랩되면서 무언가 구질구질한 느낌과 함께 돌아가지 못한 처지에 대한 연민이 함께 일었었다. 날지도 않고 우리를 보더니 슬금슬금 하천의 복개 부분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 까지 했었다.

 

<그 때 그 녀석>

 

  그 때 거기에서 그 녀석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는데 지금 이곳에서 보는 수질도 그 때의 그곳과 큰 차이가 없다. 천안의 대표적인 도심을 통과하는 하천인데 정화시설이 잘 안 갖춰진 것인지, 아니면 갖춰졌지만 하수가 오수관으로 집적되는 양보다 그냥 방출되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이 하천도 잘 살리면 도심의 명물이 될 수도 있을텐데 복개 구간이 많고 이미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쌍용동 일대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도시 계획을 세울 당시에 이면도로를 좀 더 넓게 확보하고 하천 유역을 여유 있게 확보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당천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높은 것을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계획적인 도시 구역은 계획 단계에서 보다 철저하게 사전 예측을 하고 다른 도시의 사례를 연구해서 기본 설계를 완벽하게 해 놓아야 한다. 일단 건물이 들어서면 해체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쌍룡천의 상당 구간은 장항선 폐선 구간과 유로가 일치한다. 지금이라도 장항선 폐선구간을 잘 활용하여 하천을 정비한다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도시 환경의 활력소로 훌륭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장항선 폐선 구간을 자전거도로로 만들면 어떨까? 장차 천안과 아산이 연담화 될 것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두 도시를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를 생태 공원와 결합하여 만들면 휴식공간 겸 친환경 도로로 활용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도심 복판의 자전거 도로라면 전국적 명물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정체 불명의 저수지 

 

  쌍룡천의 또 다른 줄기는 봉서산 남쪽 계곡의 습지에서 시작이 된다. 봉서산에서 유일하게 물이 나는 자연습지였던 이곳에는 지금 동일아파트가 들어서있다. 나는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많이 안타까웠었다. 봉서산은 물이 풍부하게 날 만큼 큰 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습지가 있다는 것은 생태적으로 상당히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고라니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도심 속에 고립된 산지인 봉서산에 살 수 있는 것은 이 물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동일아파트 뒤편에는 습지가 남아있고 습지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땅도 있다. 일반 주택과 아파트는 많이 다르지만  습지를 주택지로 바꿨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을 때 아마도 물을 막는 대책을 특별히 세웠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본 바로는 택지보다는 생태공원으로 보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쌍용동 동일아파트 옆에 표시된 정체 불명의 저수지 *원도-천안시행정지도>

 

 

 

  그런데 지도를 보다 보니 동일아파트 옆에 제법 큰 저수지가 표시되어 있다. 2010년도에 편집된 지도이니 동일아파트에서 시청로로 나가는 터널과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해한다고 치고 동일아파트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에 저수지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니… 단지 안에 있는 작은 호수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커다란 저수지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KTX노선 아래쪽에서 바라 본 천안-아산역과 주상복합 아파트들>

 

 새로운 곳을 마다 한다면 지리학도가 아니다!

 

  원래 우리 계획의 종점인 천안-아산 경계 지점에 도착했다. 천안시 쌍용동과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가 쌍용천 합류지점에서 약 50여m 아래쪽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은 나중에 지도를 보니 그랬다. 나는 경계선을 정확히 모르고 아직 경계에 도착을 못했으니 좀 더 가자고 말했다. 쌍용동 자이아파트 쪽으로 나가는 도로를 가로질러 하천을 따라 직진을 했더니 바로 자동차 정비공장이 나오고 길이 끊어진다. 되돌아 와서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다리(휴대교)를 건넜다. 휴대리? 상당히 낯익은 이름이다. 정근부선생님께 많이 들었던 지명인 것으로 보아 이곳은 풍세면 일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하천변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KTX 노선 아래를 지날 즈음 승규가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경계에 도착하지 않았잖아?”

  “벌써 지났어요”

 

  오잉! 지도를 보니 휴대리는 배방읍에 속해 있다. 시간은 대략 여섯시, 답사를 시작한지는 다섯 시간 정도 되었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냥 돌아가자니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후배들 눈치를 살폈다. 후배들도 역시 약간 힘들어하는 것 같기는 한데 강행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새로운 곳을 가는 데 괜찮지 않다면 그건 지리학도가 아니다.

 

<KTX노선 아래쪽에서 바라본 천안천의 하류 방향. 멀리 천안천과 불당천의 합류지점이 보일듯 말듯>

 

  KTX철도에서 300여m를 더 내려가면 불당천과 천안천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이 일대는 하천의 폭도 넓고 주변에 식물군도 많아서 자연정화가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상류보다 오히려 물이 깨끗해 보이고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좀 더 내려가니 마을도 없는 곳에 의외로 음식점이 두어 개가 있다. 메뉴는 주로 토종닭 같은 것으로 한적한 이런 곳에서 여유 있게 음식을 즐기려는 매니아들이 오는 모양이다.

 

<천안천과 불당천의 합류 지점-오른쪽이 천안천, 왼쪽이 불당천>

 

 

 뜻하지 않게 구경하게된 말 훈련장 

 

  뜻하지 않은 진귀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말을 훈련시키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합류지점에서 좀 더 내려갔더니 도로의 왼쪽에 말을 훈련시키는 곳인지, 아니면 영업으로 승마를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시설이 있다. 그런데 둥그렇게 펜스를 친 공간 안에서 커다란 백마가 열심히 펜스 안을 돌고 있다. 원의 중심에는 조련사 같기도 하고, 주인 같기도 한 사람이 지휘봉 같은 것을 하나 들고 서 있다. 가끔씩 알아 들을 수 없는 짧은 한 마디를 말에게 던진다. 승규가 대뜸 한 마디 던진다.

 

  “얘는 왜 벌을 받고 있대?”

  “벌 받는 거 아닙니다”

  “아, 그럼 훈련시키는 중이십니까?”

  “예”

  “근데, 그 녀석이 말을 알아 들어요?”

  “그럼요”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주인의 말에 따라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훈련장 옆에는 커다란 마굿간이 있는데 안을 기웃거렸더니 말을 훈련시키던 분이 들어가 봐도 괜찮단다. 안에 들어가 보니 안에도 말이 한 마리가 있는데 주인이 몸을 닦아주고 있는 중이다. 수건으로 물을 적셔서 온 몸을 구석구석 닦아 주는데 이 녀석은 마치 주인의 손길을 즐기는 것 같다. 이 녀석은 갈색말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늘씬하고 잘 생겼다. 제주도나 몽골의 조랑말을 떠올려 보니 그들보다 키가 훨씬 크다. 그런데 얇은 발목을 보면 저런 발목으로 사람을 태우고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도 손목이나 발목이 얇은 사람이 더 민첩성이 뛰어나다. 대표적인 반대의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이 바로 나다. 손목과 발목은 굵고 몸은 둔자발이고…

  이 말들은 경마장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한 말들이라고 한다. 아랍종 말이 가장 명마에 해당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아랍종인지 물었더니 유럽에서 수입한 종이라고 한다. 정확한 종 이름은 말 주인이 마침 기억을 하지 못해서 알 수가 없었다. 경마장에서 은퇴는 했지만 여섯 살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보면 늙어서 은퇴를 한 퇴물이 아니라 경주마로 최전성기를 넘겨서 방출한 말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예전에는 이곳이 승마를 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말을 소유한 사람들이 와서 승마를 즐기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 본 두 마리의 말은 주인이 따로 있는 개인 소유의 말로 주인들이 각각 훈련도 시키고 몸도 닦아주고 있는 것이다.

  한 마리 당 1500만원 정도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자료에서 보니 마사회에서 나오는 퇴출마는 20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하는데 승용마로 이용하기 위한 '순치과정'에서 발생하는 운반비, 교관의 인건비 등을 합치면 보통 5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 사이에서 승마용 말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경주마는 최소 1억5천만원에서 심지어는 200억 짜리도 있다고 한다. 값도 값이지만 키우고 훈련시킬 장소가 따로 있어야 하므로 말 타기를 즐기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정록이 아버님께서 평생을 꿈꾸셨다는 그 말 타기, 멋져 보이긴 하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다시 출발, 이제 해가 많이 기울어서 길을 재촉해야 한다. 쌍용동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으므로 냇물을 건너서 쌍용동으로 가야 하는데 가까운 곳에는 다리가 없다. 지도를 보니 천안천과 봉강천의 합류지점 약 1km 전방에 다리가 하나 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되돌아가는 것 보다야 새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지리학도의 기본 속성이다. 하천을 따라 내려가자니 한 무리의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낚시를 끊은 지가 어언 6~7년 정도가 지났지만 지금도 지나다 낚시꾼을 보면 걸음이 멈춰진다. 앉았다 하면 최소한 몇 시간을 그냥 날려야 하기 때문에 낚시란 것이 참 신세 편한 사람들의 취미이다. 갔다 올 때마다 후회를 하면서도 그것을 끊을 수가 없었던 그 때 나는 네 시간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고 낚시터에 가곤 했다. 마음은 바쁘기만 한데 낚시는 끊을 수가 없어서 나름 나와의 타협책으로 정해 놓았던 궁여지책이었다. 어찌어찌 곡절 끝에 이젠 낚시를 완전히 끊었지만 지금도 지나다 낚시꾼을 보면 걸음이 멈춰지는 것이다. 낚시도 참 하릴없는 취미지만 더 하릴없는 사람은 낚시 구경하는 사람이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다리 모서리에 핀 들꽃>

 

  천안천을 건너는 다리는 비가 오면 잠기는 잠수교이다. 정근부선생님께서 언젠가 이 길로 댁에 가실 때가 있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봉강교 앞쪽에서 논 사이로 난 길을 지나 이 다리를 건너 세교리 들판을 지나 봉강천을 건너가는 길이 있다. 난간도 없는 다리를 건너가다 보니 다리 모서리 콘크리트 틈 사이에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꽃을 피운 야생화가 한 그루 있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흔들리지 않고~' 이런 꽃들을 볼 때면 어김 없이 떠오르는 신영복의 시이다. 이런 장면을 찍어 봤자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은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천안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바라본 월봉산과 KTX노선>

 

  다리를 건너 장재리 쪽 제방으로 올라섰다. 작년에 천안․아산역 앞에서부터 불당천을 따라 내려 왔던 적이 있었는데 비가 내린 후라서 포장 구간을 넘지 못하고 돌아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길은 당연히 처음이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신라아파트 뒤쪽이 보인다. 역시 작년에 신라아파트 뒤쪽까지 왔다가 돌아간 적이 있었지만 그 날 담배 피우는 녀석들을 만나 야단치느라고 시간을 빼앗겨서 더 내려오지 못했던 길이다. 이곳에서 보니 품위 있게 자란 소나무 옆으로 구불구불 꼬리를 슬그머니 감추고 있는 제법 운치가 있는 길이 나 있다.

 

<불당천을 향하여 달리는 용진>

 

  비포장의 제방을 따라 올라가서 천안천과 불당천의 합류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21번국도 바로 아래쪽까지 하천 산책로가 내려 와 있다. 불당동의 불당대로 아래까지 연결된 이 산책로는 지금 펜타포트 구간이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완전히 연결이 되어 있지 않다. 제방에서 아래로 내려서서 불당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휴먼시아 모델하우스 앞에서 다시 도로로 올라섰다. 하천 산책로가 완전히 연결이 되어 있다면 불당동까지 올라가도 좋겠지만 중간에 끊겨 있기 때문에 그냥 도로로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진퇴양난 육교의 엘리베이터

 

  하천을 떠나 KTX역을 지나서 장재휴먼시아아파트를 지나면 다시 천안시가 된다. 휴먼시아아파트 앞쪽의 대로를 건너려면 육교를 이용해야 한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를 수가 없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엘리베이터란 놈이 속도가 엄청 느리다. 지난 여름에 자전거를 타서 땀이 약간 난 상태로 탔다가 엄청 더워서 혼난 적이 있다. 속도는 느리지, 바람은 안 통하지…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남용하는 것을 막고자 생각해낸 방법인 듯 하다. 나름 의미가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자전거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불당동 원형육교처럼 계단 대신 경사로라면 좋겠다. 이곳 신도시의 육교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모두 이렇다. 불당동 육교의 엘리베이터는 남용이 문제인데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육교의 엘리베이터는 아예 이용을 안하고 학생들이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진퇴양난이다. 속도를 높이면 남용될 것이 뻔하고 그대로 두면 무단횡단이 횡행하고… 누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빨리빨리 세상’으로 몰아넣었단 말인가? 속도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체득한 성과주의 속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가치관이다. 무단횡단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때때로 절망감이 밀려온다. 내려가는 길에서 승규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며 자전거를 번쩍 들고 내려가 버린다. 묵직한 자전거의 소유자인 용진과 나는 늦어도 엘리베이터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장재리 휴먼시아아파트와 쌍용동 동일아파트 사이로 난 언덕길을 오르는데 자전거 체인에서 뚝뚝 소리가 나면서 순간순간 겉도는 현상이 일어난다. 전에도 가끔 언덕길을 오를 때 저단 기어에서 일어났던 현상이었지만 오늘 장거리로 무리를 한 싸구려 자전거가 본격적으로 고장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도중에 고장이 났더라면 계획에 차질을 빚었을 텐데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승규가 바리바리 챙겨온 펑크 때우는 기구며 바람 넣는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다.

  쌍용고등학교 앞에서 장장 일곱 시간, 약 38km에 이르는 우리의 대장정을 끝맺었다. 꽤 힘든 일정이었지만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숙제를 한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다. 붕장어 구이와 함께 한 뒷풀이는 어느 때보다도 즐겁다. 뜻을 같이하는 地理 同志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가지고 난 후의 뒷풀이니 얘기 거리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상태에서 상가를 다녀온 원기가 합류를 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확 느껴진다. 우린 또 설레며 걷는 날을 꿈꾼다.

 

 

▶후기 Ⅰ-천안시 행정지도의 오류에 대하여

   

  답사를 마치고 다음날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찾아보니 천안천의 유로는 정확하게 지금의 유로로 되어 있다. 심지어는 포털 사이트의 지도와 위성영상 역시 정확하게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위성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구하도 부분에는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고 기다랗게 하천 모양을 유지한 채 공원 비슷한 녹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후배들에게 문자를 띄웠다. 혹시 근처를 지나는 기회가 되거든 구하도가 지나는 마을에 들러 노인들에게 자초지종을 여쭤보라고. 바로 다음날 승규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 부지런한 승규! 다음 날 마을을 찾아가 할머니 한 분에게 여쭤봤더니 약 15년 전에 물길을 바꿨다고 하더란다.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행정지도가 틀렸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지역을 알고 표시를 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직무유기이다. 15년 여 전에 바뀐 것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 간 행정지도를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버젓이 기본 지도로 참고를 했다고 지도에 써 놓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원도가 바뀌었는데…

 

 

 

 

▶후기 Ⅱ-다섯 마리의 용에 대하여

 

  오룡쟁주의 주인공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천안천과 원성천의 합류지점에서 여의주를 다투는 네 마리의 용은 그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일봉산 동쪽 끝, 남산, 원성천과 삼룡천의 합류지점, 그리고 원성천과 천안천 합류지점 남쪽 등 네 줄기는 확실하게 여의주 근처에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마리는?

 

<빨간 용 네 마리는 분명히 爭珠하고 있는 용이다. 나머지 한 마리는 노란 용 네 마리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 내 눈에 잘 안 보이는 용이 옛 사람들의 눈에는 더 잘 보였을 리가 없다. 즉, 예나 제나 나머지 한 마리의 용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死와 같은 어감 때문에 절대 四龍을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雙龍을 제외하고는 三龍, 五龍, 七龍, 九龍 등 홀수를 선호했다. 따라서 어떻게든 한 마리의 용을 더 만들어서 五龍 만들어 줘야만 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다섯 번째 용은 당연히 그 모습이 확실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성정동의 서부역 앞에서 끝을 맺는 작은 산줄기인지, 아니면 구성동의 삼룡천에서 끝을 맺는 줄기인지, 또 그것도 아니면 도리티에서 선문대 뒷산에서 갈라져 천안천과 원성천의 합류지점으로 내려오는 줄기인지…  취암산에서 내려오는 줄기는 흐름이 명확한 반면 삼거리초등학교 앞에서 끝을 맺기 때문에 爭珠에 참여 하기에는 너무 멀어 보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 세 마리의 용 가운데 나머지 한 마리의 용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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