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하천(천안)

천안 시내 하천 답사(3)

Geotopia 2012. 6. 3. 00:20

 

미래 지향적인 선의의 오류

  장항선 철도를 건너기 전 봉명동 일대는 전형적인 구시가지이다. 승규는 신혼집이 근처였다는 사실을 통하여 역시 터줏대감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서부광장이 만들어지고 천안역으로의 접근성이 높아져 경부선 철도의 동서분리 기능이 많이 약화된 지금은 역 후면의 이미지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구주택가의 경관을 보여준다. 서부역광장과 함께 이 지역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인은 장항선 철도이다. 수도권 전철이 신창까지 연장되면서 이 구간의 장항선 철도가 모두 고가교로 바뀌었기 때문에 역시 철도의 분리 기능이 거의 사라졌다.

 

<봉명동 일대 구 시가지>

 

  신동아아파트를 지나면 바로 하천 산책로가 끝이 나고 도로로 올라서야 한다. 산책로 대신에 유채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보기는 좋은데 길이 끊어져 있어서 좀 아쉽다. 지금 한창 정비중이기 때문에 아마도 하천 정비가 끝나면 하천 산책로가 조성이 될지도 모른다. 도로로 올라서니 인도가 거의 없는 좁은 도로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 길은 나의 생활권과 가깝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좁기 때문에 지날 일이 많지 않은 길이다. 지도에 보면 천안고 앞에서 직진해서 와촌초등학교와 경부선 철도를 지나 버들육거리로 이어지는 대로로 표시되어 있지만 나는 그 길을 지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길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매우 통행이 많아야 할 길인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지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 길만 뚫린다면 우리가 가끔 이용하는 CGV 영화관이나 중앙시장에 가기가 아주 쉬워질텐데…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동부 구시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길이 꼭 필요하다. 지도는 아마도 미래 지향적인 선의의 오류를 범한 모양이다.

 

<요길이 뚫린다면 정말 좋겠다>

 

  온양나드리로 이어지는 지하차도 앞에서 다리(봉명교)를 건너서 건너자 마자 다시 도로를 가로질렀다. 하류쪽으로 가려면 서해그랑블아파트를 지나야 하는데 아파트 쪽으로는 하천을 따라 도로가 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봉명교에서 상류쪽을 바라보니 하천의 서쪽으로 노란 유채꽃이 가득 피어 경치가 제법 괜찮다. 하지만 다리가 좁아서 정작 서 있는 곳은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할 겨를이 없다. 하천의 동쪽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조금 어수선하다.

 

<봉명교에서 상류쪽으로. 장항선 철도가 보인다>

 

 중앙시장의 화려한 부활-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서해그랑블아파트 앞의 좁은 길은 우리 네 명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질 만큼 좁은데 마침 오고가는 차도 많다. 중앙시장을 잠깐 들러 요기를 하고 가기로 했다. 중앙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해그랑블아파트를 지나 다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작은 굴다리를 통과하여 좌회전하면 역시 오고가는 차가 부담스러운 구시가지의 좁은 길을 만난다. 잠깐 시장에 들러 시장 구경도 하고 안주거리도 장만해서 남산에 오르기로 했다.

  남산 앞 계단 옆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담소를 즐기고 있다. 그 옆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생각 밖으로 많다. 공무원 복지 포인트를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지급한 것 때문은 아닐 것 같고(^^),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누가 재래시장이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변화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이다. 그냥 변화를 수긍했더라면 얼른 손을 떼고 떠나버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골리앗에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고 짱돌을 벼린 다윗이 있었던 것이다. 아케이드를 조성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쇼핑가트를 준비했으며 재래시장 상품권을 개발해 내었다. 무엇보다 기꺼이 상품권을 받아들이고 주차권을 내어주는 수많은 상인들의 통합된 마인드가 있었다. 적극적인 홍보 사업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시장 곳곳에 ‘남산중앙시장 사생대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입구에는 ‘전국 최고 재래시장’ 상을 받았다는 현수막도 붙어 있다. 이런 노력들이 중앙시장의 오늘을 만든 것이다.

 

<남산중앙시장. 사생대회 알림 현수막이 붙어 있다>

 

  원기는 ‘남산중앙시장(꼭 ‘남산중앙시장’이라고 불러 달라는 시장 번영회장님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번영회장님에게 한 번 전화를 해볼까요?‘ 하고 제안을 한다. 원기는 학교에서 답사모임을 만들었는데 첫 번째 답사지로 중앙시장을 선정하고 첫 답사를 추진하기 위해 남산중앙시장 번영회장님과 통화를 했었다고 한다.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다. 오늘 답사를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도 그의 이런 열정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분명 번영회장을 만나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꺼져가는 불꽃을 되살려서 변화를 역전시킨 마인드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면 오늘은 그 분을 만나는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중앙시장의 명물 꼬마족발 하나와 막걸리 세 병을 사들고 남산으로 향했다. 입술이 얼얼할 만큼 매운 맛이 특징인 이곳 꼬마 족발은 가끔 중앙시장에 올 때 사다가 먹었던 음식인데 커다란 포장을 왜 꼬마족발이라고 하는지 항상 의아했었다. 알고 보니 흔히 보는 ‘왕족발’의 반대 개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무릎 아래 부분을 몽땅 썰어서 긴 뼈 위에 담아 놓는 왕족발이 족발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실제 족발은 말 그대로 돼지의 발 부분 만을 요리한 것이 맞다. 그러고 보니 ‘족발’이라는 말이 참 우습다. 틀림없이 ‘足발’일 것 같은데 왜 굳이 뜻이 같은 글자 두 개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을까? 강조하려고?

 

<남산중앙시장의 꼬마족발>

 

 

 도시내부지역은 각자의 나이가 있다

 

  남산 계단은 정말 오랜만에 오른다. 천안으로 이사를 왔던 그 해, 그러니까 2004년에 처음 오르고 여태까지 한 번도 더 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나마 내가 가장 최근에 오른 사람이다. 승규는 어렸을 적에 올랐다고 하고, 외지 태생인 원기와 용진이는 난생 처음이란다.

  계단 중간쯤에 옆으로 빠지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노숙자인지 동네 노인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거주지와 거주자의 연령은 묘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구 시가지인 이곳에 노인들이 많은 것은 단지 구 시가지라는 느낌 때문일까? 계단을 올라 산의 위쪽에 조성된 공원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무를 새로 심는 공원 가꾸기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젊은 연령층이 즐겨 찾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사람이 이사를 결행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경제적 조건이 이주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직장에서 전보 발령이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쉽지 않다. 경제적 조건이 옮기기 전과 후에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사람들은 쉽게 이주를 결행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역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큰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구 시가지에 노령층이 많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분가하여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원래 살고 있던 부모 세대는 그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산 부근에서 볼 수 있는 노인들도 대부분 이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천안에는 용(龍) 십 수 마리가 산다

 

  태조산의 왕자봉을 타고 흘러내리는 천안의 주맥은 향교말 뒷산을 거쳐 오룡동 중앙고 뒤쪽 능선에서 천안공고 쪽으로 이어지고, 이어 동남구청 고갯마루를 넘어 중앙시장을 지나 남산에서 끝을 맺는다.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오룡쟁주(五龍爭珠)’ 형국이라는 천안에서 이곳은 바로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이다.

  천안은 유난히 용이 많다. 쌍용동, 삼룡동, 오룡동, 구룡동, 삼룡천 등등 천안에 사는 용이 십 수 마리나 된다. 천안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분수계에 위치하는 최상류 지역에 해당한다. 그래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지형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산지로부터 분지 내부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발달하며 이들이 용으로 표현된 것이다. 용의 출발점은 천안의 동쪽으로 지나는 금북정맥이다(금북정맥은 천안시 목천읍과 천안시의 동(洞)지역을 가로지르는데 목천은 과거 독립된 현(縣)이었기 때문에 보통 천안의 풍수상의 위치를 말할 때는 목천은 고려하지 않는다). 천안의 주산(主山)은 태조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봉인 태조봉(421m)에서 직접 산줄기가 시내로 뻗어 내려온 것은 아니다. 태조봉 북쪽 1km 지점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줄기가 천안의 중심부로 내려오는 산줄기이다.

  여기서 중심부라고 하는 것은 과거 천안현의 중심부를 일컫는 것이다. 천안현과 관련된 유적은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된 데 이어 1910년에 천안에서 장항선 철도가 분기하여 온양까지 완공이 되었을 만큼 일찍부터 근대교통 수단이 발달한 곳이 천안이다. 철도가 현의 중심을 완전히 이동시킬 만큼 과거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가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보다도 빨랐기 때문에 일찍부터 전통 경관이 파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아 건물도, 읍성 터도 찾아 볼 수 없지만 지리적 특징과 지명을 통해서 천안현의 중심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평지와 만나 중심지를 이루기 적당한 곳은 문화동-대흥동-오룡동 일대라고 볼 수 있다. 이 산줄기는 전체적으로 서남쪽을 향해 뻗어 있으므로 전반적으로 읍성은 동남향으로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앙시장 서쪽에서 온양나드리 일대를 사직동이라고 하는데 左廟右社의 원칙에 따라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社稷壇은 오른쪽에 배치하므로 천안현의 중심, 즉 읍성의 위치는 사직동의 왼쪽, 바로 오룡동, 대흥동, 문화동(중앙초~중앙고) 일대가 되는 것이다(중앙초등학교 일대가 천안현 관아터로 알려져 있다).

 

<천안읍성의 위치 비정> 

 

 과연 다섯 마리의 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자에 올라 안주와 막걸리를 펼쳐 놓고 중간 정리 시간 겸 쉬는 시간을 가졌다. 족발과 막걸리를 펼쳐 놓고 조촐한 술상을 만들었는데 용진이가 제주도가 처갓집인 사람답게 주먹만 한 한라봉을 내 놓아서 제법 풍성한 술판이 되었다. 예전보다 약간 달큰해진 천안 막걸리지만 답사 중간에 전망 좋은 곳에 앉아 마시니 진짜 꿀맛이다. 무엇보다 생각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꿀맛의 가장 큰 원인이다.

  총무 승규가 미리 천안시청을 방문해서 챙겨 온 천안시 행정지도를 펼쳐 놓고 이후의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원기는 함께 근무하는 역사선생님이 ‘천안의 다섯 마리 용 가운데 네 마리는 찾았는데 한 마리는 아직도 못 찾았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말을 전한다. 오잉? 오래 전에 다섯 마리 용을 찾아보고 지도에 그림도 그렸던 생각이 나서 자신 있게 나섰다. 하지만 설명을 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다섯 마리의 용은 광덕산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포함한 것으로 그 용은 너무 멀리 있어서 남산을 여의주로 볼 때 쟁주(爭珠)를 할 만한 위치가 못된다. 지금의 천안을 기준으로 막연하게 오룡을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나도 원기가 말하는 그 선생님과 같은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마리 용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봉서산에서 갈라져 호반아파트-대원아파트-월봉산으로 연결되는 용이 있기는 한데 이 용은 일봉산에서 끝나는 용과 함께 쌍용(雙龍)은 되지만 오룡에 끼기는 어렵다. 이 용은 쌍용고-자이아파트를 거쳐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의 천안천과 불당천 합류지점에서 끝을 맺기 때문에 역시 쟁주에 참여할 만한 위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안의 다섯 마리 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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