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이름표, 누구를 위한 것일까?

Geotopia 2012. 2. 3. 11:22

  자연은 그대로일때 가장 아름답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자연에 간섭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간섭을 최소화할 때 자연과 인간은 영원히 공존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환경을 이용하는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영원히 이용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데 까지 인류는 숱한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

  누구에게나 환경을 아끼고 보존해야할 의무가 있지만 특히 자연과 접하는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 큰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산을 좋아하고 산행을 즐기는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산이 전국적으로 아주 많고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환경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산에 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우선 썩지 않는 쓰레기를 볼 때 그렇다. 仁者樂山이란 말이 무색하게 의외로 산을 찾는 사람 중에는 산에 대해 인자하지 않은 사람이 꽤 많다. 산길에 버리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손이 닿기 어려운 골짜기에 떨어진 쓰레기는 도대체 누가 치운단 말인가? 쓰레기를 던져버릴 때 그 생각은 한 번도 안하는 것일까?

  또 한 가지,

  길 안내 표지이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가다 보면 길이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원색의 리본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등산로를 알려주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길의 원색 리본은 그렇게 출발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어느 仁者가 다음 사람을 위해 달아 놨을 것이다.

  그런데,

  본래의 뜻이 왜곡되는 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우선 안내 표시가 전혀 필요없는 일반 등산로에 매달려 있는 리본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통행을 하기 때문에 안내 표시 없이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곳, 더욱이 갈림길도 아닌 곳에 매달려 있는 리본을 많이,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과잉친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술 더 떠서 다른 사람이 이미 리본을 매달아 놓은 곳에 또 매달아 놓아서 아예 무슨 서낭당의 오색천처럼 울긋불긋 해진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마 그걸 달고 있는 나무는 숨이 막힐 것이다. 仁者와는 거리가 먼 이런 행동은 도대체 어떤 발상에서 나온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리본을 보면 그 답을 금방 알 수 있다. 예외 없이 'OO산악회'라는 이름이 써있다. 어떤 리본에는 회사 이름도 있다. 남을 위한 마음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매달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55년만에 2월 날씨로는 가장 추웠다는 2012년 2월 3일 광덕산에 올랐다. 상당히 추웠지만 하얗게 쌓인 눈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이곳을 지나칠 때 마다 항상 보는 현수막이었지만 눈 덮인 이 날은 더욱 두드러지게 잘 보였다. 지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데 이날은 더욱 그랬다. 작은 등산로 표지 헝겁띠와는 비교도 안되는, 네 귀퉁이를 끈으로 묶어야만 하는 커다란 현수막인데...>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고 나무를 괴롭히는 이름표들: 대둔산 능선>

 

<누구도 이런 곳에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가야산 원효봉 등산로 입구>

   

<가야산 석문봉에서 원효봉으로 가는 능선 등산로의 광고용 리본>

 

  나만의 속좁은 생각일까? 개인적으로 또 한 가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있다. 산이 좋으면 그냥 가면 되는 것이지 왜 OO산악회의 이름을 알려야 하는 것일까? 더 많은 회원을 모으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왜 더 많은 회원이 필요한 것일까? 너무 좋으니 함께 가자는 '仁者的' 발상일까? 이미 산행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그 리본을 볼 수 있으니 그건 아닐 것 같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을 좋아한다면 한번만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말 산을 좋아해서 다음 사람을 위해 길을 표시해주고 싶다면 아무 것도 씌여 있지 않은 리본을 들고 나서보자. 화학섬유가 아닌, 나무가 자랄 때 쯤에는 저절로 삭아서 없어지는 천연소재의 리본을 가지고 나서보자. 몇 개쯤 넣어두고 다니다가 다음 사람을 위해 정말 필요한지를 여러 번 생각해 보고 매단다면 아마 열 개만 가지고도 몇 년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산이 행복해지고, 그래서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

 

<제발 이러지들 좀 마세요~: 대둔산에서>

 

<청산도 보적산에서-처음 온 사람도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는 개활지에 붙어있는 이름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