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산지(천안)

태조산,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가 담겨 있는 산[I]

Geotopia 2024. 6. 10. 05:30

▣ 태조산 왕건길

  천안의 상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태조산.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래서 태조산을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등산길에 '왕건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왕건길에는 왕건과 관련된 고려초의 역사가 차례로 기록되어 있어서 등산을 하면서 고려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천안에 '태조 왕건'이 있을까?

태조산 태조 왕건길. 청송사~태조산 6.32km. 이 글은 청송사~구름다리 구간 *Google earth
청송사 앞에 있는 왕건길 안내판

▣ 고려의 전략 요충 천안

  천안은 왕건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던 전략 요충이었기 때문이다.

  천안 남쪽에는 금북정맥이 가로 놓여서 공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줄기를 넘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금북정맥을 넘는 대표적인 고개는 차령이다. 흔히 쓰이고 있는 '차령산맥'이라는 용어가 이 고개에서 비롯되었다. 차령을 사이에 두고 고려와 후백제가 오랫 동안 다툼을 벌였는데 차령 이남은 줄곧 후백제의 영역이었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차령을 넘어야만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니 차령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고, 차령을 넘기 위해서는 그 배후지인 천안을 잘 활용해야만 했다. '하늘 아래 편안한 곳'이라는 뜻인 '천안(天安)'이라는 이름을 왕건이 지었다고 하는데 천안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염원이 담겨있다. 즉, 통일 대업을 이뤄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자연재해가 심하지 않아서 '하늘 아래 편안한 곳'으로 불렀다는 해석도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보면 그보다는 통일 염원이 담긴 뜻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 왕건의 후백제 견제와 천안

  나중에 견훤이 왕건에게 항복을 하기는 했지만 후백제를 굴복시킨 뒤에도 고려는 오랫동안 차령 이남의 후백제 영역을 포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주민들의 저항이 컸다는 뜻이다. 견훤의 묘를 논산에 썼다거나, 광종이 관촉사와 은진미륵을 세운 것 등은 고려초에 국가적으로 차령 이남을 위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왕건이 후백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훈요십조'에 잘 드러난다. 

훈요 8조: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외(外)의 산형지세가 모두 본주(本主)를 배역(背逆)해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랫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해 왕후(王侯)·국척(國戚)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혹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또 일찍이 관노비(官奴婢)나 진·역(津驛)의 잡역(雜役)에 속했던 자가 혹 세력가에 투신하여 요역(徭役)을 면하거나, 혹 왕후·궁원(宮院)에 붙어서 간교한 말을 하며 권세를 잡고 정사를 문란하게 해 재변을 일으키는 자가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도 벼슬자리에 있어 용사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노골적인 지역 차별은 한때 왕건이 견훤에게 크게 져서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송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제1화가 서있다. 차령을 경계로 고려와 후백제가 대치하고 있던 상황을 그렸다.
유량동 천안향교 갈림길 앞 표지판
천안향교쪽으로 내려가는 길
향교말 갈림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계단 옆으로 길이 났다. 걷기 편하라고 만들어 놓은 계단을 피해서 새 길을 만든 결과다. 흙이 다져지고, 그렇게 되면 비가 올 때 물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렇게 침식이 빨라진다. 편한 길을 찾는 인간의 본능을 탓하기는 어려우니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야자매트가 나름 괜찮은 대책 가운데 하나다.
천안향교로 내려가는 산줄기가 갈라지는 지점에 제2화가 서있다. '개성에서 탕정까지 반나절'은 과장이 지나쳤다.

▣ 왕자산을 지나서

  향교 뒷산인 왕자봉 앞에는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천안 시내는 보이지 않고 유량동과 태조산이 보인다. 전망대에 가기 직전에 시내가 보일만한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시내가 잘 보일법한데 잘 보이지 않아 늘 아쉬운 곳이다. 가끔 갈때마다 잠깐 올라갔다가 사진도 찍지 않고 내려오곤 한다. 내려올 때 생각하면 늘 같았는데 어째 올라가기 전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까?

왕자산에 가기 바로 앞에 전망대가 있다. 앞에 태조봉과 금북정맥, 금북정맥 너머로 흑성산이 보인다.
전망대에 제3화가 서있다. 성거산도 왕건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전망대 옆의 선캄브리아기 변성암(호상흑운모편마암)
전망대 위쪽 봉우리가 왕자산이다. 삼각점 표지에 해발고도가 250m로 표시되어 있다. 청룡사~구름다리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 왕건이 산에 올라 천안의 지세를 살폈다

  전설에 의하면 술사 예방이 태조에게 아뢰기를 '삼국의 중심으로서 오룡이 구슬을 다투는 형세이오니 만일 큰 고을을 두면 백제가 스스로 와서 항복하오리다' 하므로 태조가 산에 올라 스스로 형세를 살피고 비로소 천안부를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

  ▶ 왕건이 올랐던 산은?

  그렇다면 태조가 올랐다던 그 산은 어디일까? 당연히 '태조봉'이 떠오른다. 그런데 많은 옛 기록에는 '왕자산'이 등장한다. 위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산 이름이 쓰여있지 않지만, 약 80여 년 뒤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 (중종25, 1530)에는 그 산을 '왕자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군 동북쪽 12리에 있는 진산으로 고려 태조가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켰다.윤계방이 아뢰기를 오룡쟁주 지세라 하여 성을 쌓고 왕자성이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 산의 형세가‘왕(王)’자였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 기록에 따르면 왕건이 올랐던 산은 '왕자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외에도 『동국여지지』(1656-1673), 『여지도서』(1757-1765), 『호서읍지』(1871/1895) 등 여러 책에도 ‘왕자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 왕자산(王字山)은 어디일까?

  그런데 오늘날 지도에는 '왕자산'이 두 군데에 표시되어 있다. 유량동 천안향교 뒷편과 안서동 백석대학교 뒷쪽이다. 둘 중 어디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왕자산'일까? '군 동북쪽 12리'이며, '천안의 진산'이라는 진술이 유일한 단서다. 일단 두 산이 모두 방향은 천안군 관아에서 동북쪽에 있다. 그렇다면 '12리' 떨어져 있는 산이 왕자산이 된다.

  조선시대 10리는 몇 km나 될까?

  10리는 보통 4km라고 하지만 실제 조선시대에 쓰였던 10리는 오늘날 미터법으로 환산하기가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 '程里考'에 따르면 1리의 거리는 대략 459m이다(김현종, 2018, 대동지지」 '程里考'에 기반한 조선후기의 1리(里), 대한지리학회지 제53-4, pp. 501-522.). 그러나 조선시대 거리는 사람의 걸음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편차가 매우 커서 대동지지 내에서 조차도 3.12km~6.50km에 달한다. 여러가지 자료들을 종합하면 조선시대 10리는 대략 4.6㎞~5.7㎞였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즉, 오늘날 흔히 쓰고 있는 '10리=4km'는 미터법이 들어온 이후 쓰이게 된 대략적인 환산법으로 옳지 않은 것이다.

  위의 기준을 적용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12리'는 5.52km~6.84km이다. 

  먼저 유량동 천안향교 뒷산인 '왕자산'은 관아가 있던 중앙초등학교에서 동북쪽에 있으며, 산줄기가 관아로 이어지므로 진산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천안군 관아에서 약 3.7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12리가 되지 못한다.

  반면에 백석대학교 뒷산은 직선거리로도 6.5km 정도로 약간 멀기는 하지만 12리 범위 안에 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천안 관아터와 천안을 둘러싼 산줄기들을 조망할 수가 없으므로 '왕건이 올라 지세를 살폈을' 수가 없다. 더욱이 산줄기가 혈(穴)로 이어지지 않고 백석대학교 뒷편에서 끝이 나기 때문에 '천안의 진산'이 될 수가 없다.

 

천안에는 왕자산이 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옛 문헌들은 천안의 진산(鎭山)을 '왕자산'이라 하고, 고려 태조가 이곳에 올라 '오룡쟁주'의 지세를 살핀 다음 행정 치소를 설치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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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태조산은 어떨까?  3편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천안군 관아 자리와 두 개의 왕자산, 그리고 천안향교와 태조산 *카카오맵

유량동고개 구름다리

유량동~안서동을 잇는 길을 넘는 구름다리. 뒷쪽으로 대머리봉이 보인다.
옛 유랑동고개 옆으로 터널을 뚫어서 새길을 냈다. 그래도 옛길 위를 지나는 구름다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구름다리에서 유량동쪽으로.
구름다리에서 안서동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