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논산·계룡 신규 교사 연수 지역 답사(II)
▣ 광석마을학교: 광석면사무소
▶ 왜 논산(論山)일까?
'산을 논한다', 하지만 논할 산이 가까이에 없다. 오히려 '들을 논하는 것(論野)'이 더 이 지역에 맞는다. '놀뫼'라는 이름도 자주 쓰인다. '노는(遊) 산'일까?
논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조선시대 은진, 노성, 연산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전국의 대부분 지역들도 모두 2~3개 군현을 합쳐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들었는데 이름은 그중에서 한 군현 것을 골라 썼다. 그런데 논산은 이전 군현 이름을 쓰지 않았다. 이는 전국적으로 봐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옛 이름을 아주 잃은 행정구역이 논산만이 아니라 대전과 홍성까지 모두 세 곳이나 된다. 이 또한 아주 특이한 사례다.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은 주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졌고, 이름 역시 특별한 원칙 없이 붙여졌다. 그렇지만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지역과 연관성이 있는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이는 원칙을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추측만 할 뿐이다.
논산은 군현의 이름은 아니었지만 일찍부터 지명으로 쓰였다. '논산리'라는 마을 이름으로 쓰였고, '논산'이라는 실제 산 이름으로도 쓰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논산은 '논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논산'에 대한 기록은 많은 사료에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여지도서」(1757-1765)인데, '논산리'라는 마을 이름과 함께 책에 수록된 지도에는 논산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 여러 문서와 지도에 산 이름, 마을 이름, 포구 이름, 다리 이름 등으로 등장한다.
▶ 그렇다면 그 산 이름은 왜 '논산'이었을까?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는 공통적으로 은진현을 '논이 많은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들이 넓은 만큼 일찍부터 많은 땅이 경지로 쓰이고 있었으며, 물이 풍부한 곳이었으므로 특히 논이 많았던 것이다. '論山'이라는 한자로 문서에 기록되기 전 사람들 사이에서는 '놀뫼', 또는 '논뫼'라는 이름이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논뫼'란 '논과 산이 많은 곳', 또는 '논 사이에 있는 작은 동산'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논하다(論)'가 아니고 '논(畓)'이었는데 이것이 한자로 옮겨질 때 음차된 것이다.
▶ '논산'은 어디일까?
그렇다면 논산은 어디일까? 당연한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논산이 표시된 지도들을 보면 모두 논산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을 논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논산천 가까이에 있는 산은 모두 세 개이다. 그중 하나는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둘은 특별한 이름이 없는 작은 산이다. 셋 모두 '논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19세기말까지 '논산'이라는 산이 있었는데도 1915년 지형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셋중에 하나가 논산임은 틀림없지만 어느 산을 논산으로 불렀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셋 중에 가장 높은 산인 봉화산(73.8m)은 '논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에 이 산은 '황화봉대'라고 따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둘 중에 보다 논산천에 가까운 작은 동산은 주변이 모두 저지대로써 도시화로 주변이 모두 주택지로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너른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동산에는 지금도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작은 숲이 유지되고 있어서 '논 가운데 산'이 될만한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 조선 개국과 천도 계획 : 동여도, 계룡산전도, (신도안 명당도),
▶ 기호학파의 본산
-돈암(遯巖)서원: 세계문화유산
·1634년(인조 12) 유생들이 세움
·김장생(1548, 명종 3 ~ 1631, 인조 9)
·1658(효종 9) 김집(1574, 선조 7 ~ 1656, 효종 7) 추가 배향
·1688(숙종 14) 송준길(1606, 선조 39 ~ 1672, 현종 13) 추가 배향
·1695(숙종 21) 송시열(1607, 선조 40 ~ 1689, 숙종 15) 추가 배향
· 1660년(현종 1) 사액
-노강(魯岡)서원
·1675(숙종 1)년 김수항(1629, 인조 7 ~ 1689, 숙종 15) 등이 세움
·윤황(1571, 선조 4 ~ 1639, 인조 17) 배향
·1682(숙종 8) 사액을 받으면서 윤문거(윤황의 아들, 1606, 선조 39 ~ 1672, 현종 13) 추가 배향
·1723(경종 3) 윤선거(윤문거의 동생, 1610, 광해군 2~1669, 현종 10), 윤증( 윤선거의 아들, 1629, 인조 7~1714, 숙종 40) 추가 배향
▶회덕과 니산 사이: 노론과 소론
'충청남도 > 논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3대 시장 강경의 입지와 성쇠 (0) | 2024.05.12 |
---|---|
다름이 만나 만든 새로움, 논산·계룡 (0) | 2024.05.08 |
회니시비(懷尼是非)와 노소 분당 (0) | 2020.02.18 |
병사리 종족촌락 (0) | 202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