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태안

굴포운하 답사

Geotopia 2023. 3. 3. 21:41

▣ 경로

*카카오맵

 

검은여(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산 143) - 검은여다리(태안읍 송암리 1582) - 인평저수지(태안읍 인평리 1023) - 구 인평교(32번국도 / 팔봉면 진장리 1199) - 인평천과 지류 분기점(팔봉면 진장리 1087-1) - 본격적으로 운하를 파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팔봉면 진장리 979-3) - 신털이봉(팔봉면 진장리 950-10) - 운하 정점(팔봉면 진장리 969-2) - 판개골(만조 때 해안선 / 태안읍 인평리 15-2) - 가로림만(팔봉면 어송리 1731)

 

▣ 운하 경로

*Google earth
옛 해안선(밀물 때)과 굴포 운하 일대 지형 *국토지리정보원(1967)과 조선총독부(1919)를 겹쳐서 그림

 

▣ 안흥량이 얼마나 험했길래 500년 간 운하를 파기 위해 힘을 기울였을까?

▶「太宗實錄」의 사례

  -3년 5월5일(申巳), 경상도 조운선 34척이 바다에 침몰되다: 실록에 기록된 가장 큰 조운선 사고

https://lovegeo.tistory.com/6781711

  -6월4일(庚戌), 사헌부에서 삼도 체찰사 등에게 조운선 침몰의 책임을 묻기를 청하다

▶難行梁, 태안반도 뱃길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굴포운하를 만들고자 한 노력은 안면도에서 가로림만 북쪽에 이르는 태안반도 연안 항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대안을 찾게 된다.

  -設倉陸輸式

  -의항운하: 안흥량을 지나 신두리 앞바다로 연결함으로써 관장목(파도리와 가의도 사이 해협)을 피하고자 함

  -안면반도를 자르는 운하: '쌀썩은 여' 만을 피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대책

인평저수지에서 바라본 천수만
인평저수지 상류쪽. 대략 사진 앞부분 일대가 옛 해안선(밀물 때)이었다.

 

  옛 해안선을 기준으로 천수만(인평저수지)~가로림만(판개골) 사이의 거리를 추정해 보면 약 3.5km 정도이다. 이 구간의 대부분은 하천이며, 분수계(지금은 작은 저수지이다)를 중심으로 생땅을 판 구간은 인평천 상류에서 판개골까지 약 1km 정도이다.

 

인평저수지 상류. 인평천이 32번 국도를 지나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인평교 상류. 멀리 보이는 다리가 32번국도의 인평교이다.
인평교 상류. 위 사진에서 180도 돌려서 찍은 상류쪽.
인평천에서 갈라져 운하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 곳: 하천 오른쪽 나무숲이 끝나는 부분.
인평천에서 갈라져 운하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 곳
운하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 지점에서 바라본 인평천(하류쪽). 여기로 배가 올 수 있었을까?
운하 정상부. 작은 콘크리트 수로가 남아있다. 길 건너 집이 있는 부분이 분수계이다.
운하 정상부 분수계: 전봇대와 집 사이의 둑
분수계에서 천수만쪽을 바라본 장면. 길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운하의 자취를 보여준다.
운하정상부에서 가로림만 쪽에 있는 저수지. 이 부분부터 판 흔적이 뚜렷하다.
운하 정상부에서 가로림만 쪽으로
신털이봉(사진 오른쪽) 근처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연안 간척지
변성암질 암석과 풍화토로 이루어진 신털이봉.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서 만들어진 봉우리는 아니다.
판개골: 가로림만쪽에서 정상쪽을 바라본 장면. 이곳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판개골 주민(75세) 증언).

 

▶판개골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판개골 옆에 사는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 일대는 화강암 지대로 풍화가 많이 진전되어 해발고도가 낮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신털이봉으로 해발고도가 40m를 조금 넘는다. 운하터 양쪽은 모두 해발고도 20m~30m 안팎이고 서쪽의 인평천과의 분수계도 높은 곳이 40m를 넘지 못한다. 그러니까 水原이 풍부하지 못한 곳이다. 물이 마르지 않으려면 골이 깊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를 굴포운하와 연결해보자.

  화강암 풍화층 아래에는 암반층이 있다. 운하 건설을 하지 못한 이유로 단단한 화강암 암반층이 거론되곤 할 만큼 이 일대는 얇은 풍화층 아래에 단단한 암반층이 깔려있다. 암반층은 不透水層이므로 토양층으로 스며든 물은 암반층을 따라 흐르게 된다. 곧 지하수층인데 지하수층은 하천이나 바다로 이어진다.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운하를 팜으로써 주변보다 갑자기 10m~15m가 낮아진 이곳으로 지하수가 몰려드는 것이다.  운하 터 양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모두 운하터로 몰려들게 된다. 지금은 대부분 메워져서 흙으로 가득 찬 상태이므로 흙이 물을 거의 포화상태로 머금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씩 하류로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물이 마르지 않을 수 밖에.

가로림만쪽 옛 해안선(밀물 때): 트랙터 뒷쪽
판개골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가로림만쪽에서 바라본 운하 전경. 판개골(사진 앞쪽 집 있는 곳 뒤쪽)과 신털이봉(사진 정면에 있는 작은 봉우리), 멀리 인평저수지가 보인다. 맨 앞에 있는 집 앞쪽이 대략 옛 밀물 해안선이다.

 

▣  옛 지도에 표시된 굴포

 

동여도

 

▶ 1872지방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http://kyudb.snu.ac.kr/pf01/rendererImg.do?item_cd=GZD&book_cd=GM99999_00&vol_no=0000&page_no=0043&imgFileNm=KYKH002_0000_0043.jpg 

 

 1872지방지도 해제(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태안지도 泰安地圖,지금의 충남 태안군 태안읍, 이원면, 원북면, 소원면, 근흥면, 남면, 안면읍 일대. 서해안 반도상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灣과 串으로 인해 해안선이 긴 대표적인 지역이다. 각면 소속의 洞里名과 戶口를 주기하였으며 고을의 건치연혁 대신에 古蹟를 기술한 점이 다른 군현과 다르다. 산줄기를 연결하여 바다로 뻗어 나간 곶을 강조하였다. 하계망은 다른 군현과 달리 검은 점선으로 독특하게 표시하였는데 해안과 구분하기 위해 한 것으로 보인다. 僉使鎭이었던 安興鎭에는 성곽과 관아 건물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데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서 중시되었던 지역이다. 안흥진의 서쪽 小島의 전면에 關障項이 있는데 서해안 해로 가운데 험하기로 이름났던 곳이다. 삼남의 漕運船이 이곳에서 난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태안의 동쪽 지역에 운하 착굴 공사를 고려시대부터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조선시대에서도 세조와 현종 때 논의가 있었으나 지반이 견고하여 착굴이 불가능하자 대신에 남북에 창고를 설치하여 조운에 이용하였다. 남창에 호남, 영남의 세곡을 모아 육로로 북창에 운반하여 다시 조운선으로 서울까지 운반하였으나 폐단이 심하여 중간에 폐지한 사실을 지도의 상단에 기술해 놓았다. 원래 연륙되어 있던 안면도는 굴착하여 섬이 되었는데 그 곳에 掘項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섬이 태안, 홍주, 서산 등으로 쪼개져 소속되어 있는 점도 이채롭다.

 

▣  굴포운하: 5백년의 꿈

 

 

굴포(掘浦)운하: 5백 년의 꿈

▣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했더라면 굴포운하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고자 했던 미완의 운하이다. 이곳이 운하로 선택된 이유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이 가장 가까이 맞닿은 곳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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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영상] 굴포운하

 

[드론 영상] 굴포운하

천수만쪽 인평저수지에서 천수만을 훑어본 다음, 상류쪽으로 인평저수지 상류에서 가로림만쪽 판개골까지 정상 근처에서 가로림만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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