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청양

까치내(鵲川)와 지천(之川)

Geotopia 2022. 6. 29. 20:50

 

 

▣ 까치내, 지천, 금강천

  ▶ 군내 대부분의 지역을 아우르는 하천

  청양군을 대표하는 냇물은 '지천(之川)'이다. 칠갑산지 서쪽에서 발원하여 청양 읍내를 지나 남양면-대치면-장평면을 두루 지나서 하류에서는 부여군 은산면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청남면 인양리에서 금강과 만난다. 그러니까 지천은 금북정맥 북쪽의 화성면, 비봉면, 운곡면 일부, 그리고 치성천 유역의 정산면과 어천 유역의 목면을 제외하고는 청양읍, 남양면, 대치면, 장평면, 청남면(일부) 등을 아우르는 청양의 대표 하천이다. 

 

산경도

 

   ▶ 칠갑산지 서쪽에서 시작되는 지천

  지천은 금북정맥에서 갈라진 칠갑산 줄기의 서쪽 사면(대치면 형산리)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면서 횡천, 농소천과 만나고 이어 위라천을 만나면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청양읍에 도달한다. 

 

칠갑저수지

 

  ▶ 남북길이 7km의 청양분지

  청양읍의 우산 남쪽에서는 칠갑저수지를 거쳐 내려온 대치천과 만나 몸을 불린다. 이때부터 지천은 제법 넓은 산간 분지를 만들어 내었다. 이 분지는 청양읍에서 남양면에 이른다. 청양분지에서 지천은 청양읍을 동남쪽으로 감싸며 흐르다가 시가지를 지나면서 고운식물원 일대에서 내려온 장승천, 청양읍 서북쪽에서 내려온 송방천과 만난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어 남양면 금정리에서 동쪽의 적누천, 서쪽의 봉암천과 만난다. 이 분지는 금정리 남쪽까지 이어진다. 우산 남쪽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7km 정도이며, 폭은 넓은 곳이 2km를 약간 넘는 정도의 좁은 분지이다. 

 

우산에서 바라본 대치천 유역. 멀리 칠갑산지가 보인다.
청양분지. 멀리 금북정맥이 보인다.

 

  ▶ 본격적인 산지 곡류의 시작: 대동계 퇴적층 지역

  금정리 남쪽에서 지천은 서쪽 건너편으로 남양읍 용두리와 경계를 이루는데 이곳에서 금북정맥의 백월산과 성태산 동쪽에서 흘러 내려온 흥산천과 만난다. 흥산천을 만난 바로 뒤부터 지천은 본격적인 산지곡류로 변한다. 쥬라기 대동계 퇴적층이 분포하는 곳이다. 

 

금정리(오른쪽)와 용두리(왼쪽) 사이를 흐르는 협곡. 대동계 퇴적층을 갈랐다.

 

 ▶ 온직천: 퇴적암 지대에 발달한 직선상의 하천

  이어서 온직천과 합류한 다음 구비구비 지천구곡을 흐른다. 온직천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발달한 전형적인 구조선을 따라 직선상으로 발달한 하천으로 이 선구조 곡지를 따라 29번 국도가 놓여서  나발티고개를 넘어서 부여군 은산면 나령리로 넘어간다.

 

▶ 지천구곡과 까치내

  구비구비 지천 구곡은 좁은 협곡을 이루면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대치면 장곡리에서 칠갑산 남쪽 자락을 타고 내려온 장곡천과 합류한다. 보통 '까치내'라고 하면 여기부터를 말한다. 동쪽으로 흐르다가 거의 180도 휘돌아서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까치내는 공격사면의 암벽과 퇴적사면의 백사장이 결합하여 수려한 경치를 만들어내었다. 물놀이터로 오래전부터 이름이 자자했던 이곳은 근래에 전원마을이 들어서고, 팬션 등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청양군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까치내 유원지

 

  ▶ 왜 까치내일까?

  ‘까치내’의 유래에 대해서는 ‘까치’를 ‘鵲’의 뜻으로 보고, ‘까치가 많이 날아오는 내’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鵲川’이라는 한자 지명을 쓴다. 그러나 ‘내’와 ‘까치’가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까치내’의 ‘까치’는 다른 어형으로부터 변형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까치내’라는 내 이름이 ‘가지내’라는 고유어 지명 및 ‘枝川’이라는 한자 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1) ‘까치내’의 ‘까치’가 ‘鵲’의 그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까치내’의 ‘까치’는 ‘가지’의 변형이고, ‘가지’는 ‘枝’의 뜻으로 판단된다.
  ‘가지내’에도 ‘枝川’ 또는 ‘之川’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2) 이는 ‘가지내’의 ‘가지’가 ‘枝’의 뜻임을 더욱 분명히 알려 준다. 이렇게 보면 ‘가지내’는 ‘물줄기가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내’로 해석된다.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물줄기가 한 곳으로 모이는 내가 된다. ‘가지내’ 가 ‘물줄기가 分岐하는 내’라면 이것에서 변한 ‘까치내’도 그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3) ‘까치내’에 결부되어 있는 ‘까치’와 관련된 유래 설은 ‘가지내’ 가 ‘가치내’를 거쳐4) ‘까치내’로 변하면서 형태적 유연성이 상실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까치내’는 내 이름이지만 들이나 마을 이름으로도 쓰인다. 내에 인접한 들이나 마을을 후행 요소 ‘들’, ‘말’을 생략한 채 그렇게 부른다. ‘까치내들’ 이라는 완성형 들 이름도 쓰인다.

1) 충남 청양군 적곡면 소재 ‘까지내’는 ‘가지내’와 함께 쓰이며,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소재 ‘까치내’는 ‘枝川’ 내지 ‘之川’과 함께 쓰인다.
2) 물론 ‘가지내’에는 ‘鵲川’이라는 한자 지명이 더 적극적으로 결부된다. ‘가지내’의 ‘가지’가 ‘鵲’의 방언 ‘가치’와 어형이 유사한 나머지 ‘鵲’으로 訓借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물론 ‘까치내’의 ‘까치’가 ‘아치’에서 온 것이라면 ‘까치내’는 ‘작은 내’로 해석되어야 한다. 실제 ‘아치내’도 존재하는데, ‘아치내’의 ‘아치’는 ‘앛-[少]’과 관련된 어형으로 추정된다.
4) ‘가지내’가 ‘가치내’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지’가 ‘까치’의 방언인 ‘가치’와 어형이 유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항범, 2004, 지명 어원 몇 가지(3), 새 국어 생활 제14권 제1호, 국립국어원.

 

장평면 지천리에서 바라본 지천 곡류

 

  ▶ 지천1교에서 부여군 은산면과 경계를 이뤄

  까치내 유원지를 지나면 다시 남쪽으로 90도 방향을 꺾어 산지곡류를 계속한다. 장평면 지천리에서 흘러나오는 장재천과 합류하여 다시 180도 방향을 꺾는데, 산지곡류는 변함없이 유지하지만 하류가 되면서 하곡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은산면에서 내려오는 장벌천, 청남면에서 흘러나오는 아산천과 합류할 때까지는 부여군 은산면과 장평면이 경계를 이루다가, 청남면 대흥리가 장평면을 대신하여 은산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금강으로 흘러든다.

 

▣ 이름도 참 많다!

  ▶ 을항천, 얼항천, 작천, 사수탄, 금강천, 별천···

  길지 않은 하천인데도 이름이 참 많다. 지류들의 이름이 많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본류도 여러 이름이 전한다. <1872지방지도(청양현)>에 청양읍치에서는 乙項川, 금정역 아래쪽에는 鵲川, 그 아래로는 泗水灘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 아래쪽은 <1872지방지도(정산현)>에 金剛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1872지방지도(청양현)

 

  <동여도>에는 청양읍치에서는 乻項川, 금정역 일대에서는 鵲川, 백월산천(지금의 흥산천/남양면 용두리)과 합류한 곳부터는 '사수탄(泗水灘)', 그리고 금강과 만나는 하류 일대는 '金剛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동여도>에 표시된 지천 지명들&nbsp; *서울대학교 규장각

 

  「호서읍지」에는 금정역을 설명하면서 '별천(鱉川)'과 '별산(鱉山)'이 등장한다. 「호서읍지」가 나온 때가 1871년이므로 <1872지방지도>와는 같은 시대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별천과 별산은 옛날 지도에서도, 지금 지도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1915) 지형도에는 '琴江川(之川)'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상류지역까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쓰이고 있는 지천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방 이후에 나온 지형도들은 모두 '지천(之川)'으로 표기하고 있다.

 

  ▶ 金剛川 → 琴江川  錦江川

 

  하류 표기도 재미있다. 조선시대 지도들은 '금강(金剛)천'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아마도 연안에 있던 '금강사(金剛寺)'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금강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오랫 동안 유지되었던 절이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琴江川이 섞여서 쓰였던 듯 하다. <1872지방지도> 부여현 지도에는 琴江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급기야  1967지형도부터는 錦江川으로 바뀐다.

 

 

 

사적 부여 금강사지 (扶餘 金剛寺址)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부여 금강사지_입구쪽 전경 (촬영년도 : 2015년)

www.heritage.go.kr

 

▣ 웃다리 풍물의 시작 까치내

 

  장구와 꽹과리 명인이었던 송순갑 까치내 일대를 근거지로 걸립패를 이끌고 주변 지역을 순회하였다. 특히 1930년대 전후로 다리를 세우기 위한 걸립(乞粒)이 유행을 했고 송순갑패도 까치내 인근에 다리를 세우는 걸립굿을 여러 차례 펼쳤다. 칠갑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청양 시내를 거쳐 까치내로 흘러드는 지천은 까치내를 지나면서 하곡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한다. 하천의 폭이 넓어지므로 다리가 큰 의미를 갖는 곳이다. 까치내 다리는 이들 다리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있는 다리이다. 

까치내 다리와 충청웃다리 농악 표지석

 

 

  이 과정에서 '웃다리'가 태어났다. 송순갑 걸립패를 '위', '아래' 패로 나눴는데 이때 까치내 다리가 기준이 되었다. 까치내 윗쪽을 담당한 걸립패를 '웃다리', 아랫쪽을 담당했던 걸립패를 '아랫다리'로 불렀는데, '아랫 다리'는 사라지고 '웃 다리'만 남은 셈이다. 

  송순갑은 부여 은산 출신인데 까치내 하류는 곧바로 부여군 은산면과 이어진다. 이 일대가 부여생활권임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백제문화체험박물관 전시 자료

 

벡제문화체험박물관 전시 자료

 

  ▶ 걸립(乞粒)

 

  걸립, 또는 걸립굿이란 어떤 집단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구하는 전통 놀이이다.

 

 

걸립(乞粒)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떤 집단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구하는 민속놀이.걸립굿.

encykorea.aks.ac.kr

 

▣ 까치내 전원마을

 

  대치면 작천리에는 '까치내 전원마을'이라는 전원주택 단지가 있다. 2007년 처음 만들어져서 까치내 풍경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고자 청양군 차원에서 펼친 사업이다. 경치 좋고 환경이 쾌적한 작천리 81번지 일대에 2만 7,486㎡(8,643평)를 작천 지구 전원마을로 지정하여  이듬해인 2008년 5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조성사업을 마쳤다. 까치내가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30가구가 그림처럼 앉아 있다.

  청양군의 인구는 2022년 현재 30,507명(6월20일 현재)으로 3만 명 문턱에 걸려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2만 명대로 내려갈 것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것이 청양 입장에서는 남 얘기가 아니다. 까치내 전원마을은 이러한 청양의 현실을 잘 나타내주는 경관이다. 30 가구가 청양의 인구 감소 물결을 되돌리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의 돌파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행복이 너울지는 ‘까치내 전원마을’ - 청양신문

행복한 꿈과 웃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까치내 전원마을’.전원마을은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 젖무덤처럼 야트막한 칠갑산 마지막 산자락을 뒤에 두고, 맑은 하천 지천 9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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