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지리/풍화&침식

등산로가 산을 깎는다

Geotopia 2022. 6. 20. 09:11

▣ 공간감각과 개척정신이 뛰어난

 

  오랫만에 광덕산에 올랐다. 1월에 올랐으니 꽤 오랫만이다. 정상을 찍고 이마당으로 내려오려고 가다보니 옆으로 새 길이 생겼다. 까만 흙이 드러난 것이 얼마 안 된 길이다. 능선길은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다음에는 급경사가 이어지므로 옆으로 돌아가면 봉우리를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올라가지 않으니 그만큼 내려가는 거리도 짧다. 숲으로 이런 길을 낸 사람은 누구일까? 개척정신이 뛰어나고 해발고도 감각도 남다른 사람이겠지?

광덕산-이마당 우회로. 봉우리를 피해서 가므로 등산이 훨씬 쉽다.

 

등산로가 불편한 이유

  능선 등산로에는 돌이 많이 드러나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녔기 때문에 식생이 사라지고, 흙이 다져졌다. 그러다 보니 비가 내리면 물이 몰려들고, 그 결과로 침식이 주변보다 많이 진행되므로 바위나 돌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등산이 불편해진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딱딱하니까.

 

바위와 돌이 드러나 있는 광덕산 정상

▣ 디딤발이 좋은 숲속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서면 디딤발이 좋은 푹신한 흙이 있다. 사람이 밟지 않으니 식물이 자라고, 그러니 비가 와도 침식이 잘 막아진다. 미생물도 잘 자라고 낙엽이 자꾸 쌓이니 좋은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람 발길이 닿으면 순식간에 호순환 구조가 깨져버린다. 풀이 죽고, 낙옆이 사라지고, 흙이 쓸려 나가면서 돌이 튀어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겨운 자갈길 : 인공 암괴류

등산을 하다 보면 이런 돌길을 가끔 만난다. 하천도 아닌데 왜 이런 돌들이 쌓여서 산행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등산로 옆의 숲을 보면 전혀 돌이 없는데 모든 돌들이 다 등산로에 몰려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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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거면 왜 등산을 할까?

 

고운 흙이 드러나 있다.
침식이 진행되기 전이라서 흙이 덮여있다.

 

  이 길이 만들어진 이유는 뻔하다. 봉우리를 피하려고 만든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산에 왜 왔을까? 편한 길을 찾자면 안 오면 될 일인데··· 산에 온 이상 산을 괴롭힐 수밖에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이미 있는 길을 따라가면 좋겠다. 

 

▣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배방산

 

  배방산은 좀 더 심각하다. 가깝고 산이 낮다보니 등산객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몇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는데 최근 1, 2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로 실내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등산객이 늘었다고 하더니 등산로가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을 해준다. 

새로 놓은 계단. 계단은 좀 지루하지만 등산객이 땅을 직접 밟지 않도록 해서 침식을 막아준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이렇게 변한다. 귀찮은 계단 옆에 새 길을 내는 것이다. 심지어는 돌아가는 길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발걸음 편한 곳을 따라가게 되어 있으니···
이렇게 변한 다음에는 되돌리기 어렵다. 다 알면서도 인류가 한결같이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기후변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