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계룡

계룡: 신도안에 자리 잡은 3군 본부

Geotopia 2022. 5. 29. 22:40

▣ 역사적 맥락이 부족한 도시, 그러나 빠르게 만들어진 독특한 지역성

 

  계룡시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지역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어떤 행정 단위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연산현, 진잠현, 공주목에 조금씩 걸려 있었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충청남도 논산군·대덕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1990년 계룡출장소 설치)들어 독립 행정구역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약 20년 전인 2003년에 이르러서야 독립 행정구역이 된 전형적인 형식지역이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성을 갖는 지역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어떤 행정구역에도 속해 있지는 않았으나 비교적 뚜렷한 지역성을 갖는 내포와 비교할만 하다. 내포는 여러가지 문화요소가 공통적으로 분포하고 지리적 경계도 비교적 뚜렷한 하나의 실질지역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3군 본부를 중심으로 '국방' 아이덴터티를 배경으로 발달한 도시여서 뚜렷한 지역성을 빠르게 형성하였다. 짧은 역사에 비해 행정구역으로 획정된 이후에는 매우 뚜렷한 지역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정단위지만 우리나라 지형 환경 덕분에 자연지리적 경계는 비교적 뚜렷하게 설정이 된다. 물론 지형 장벽이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형성할 정도는 못 되지만 산줄기와 물줄기로 구분되는 경계는 비교적 뚜렷한 자연경계를 이루고 있다.

 

계룡시는 공주목, 진잠현, 연산현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자료: 동여도

 

▣ 충청남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면적은 일반 시·군의 거의 1/10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다. 충남에서 계룡시 다음으로 면적이 좁은 시·군은 홍성군으로 443.97㎢이다. 인구 역시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 시(市) 승격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즉, 인구 5만 이상의 읍이 1개 있거나, 2만 이상의 읍이 2개 이상 되어야 하는 법규정을 만족하지 못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특례법으로 2003년 시가 되었다. 

  인구는 시(市) 중에서는 단연 가장 적고, 전체 시·군 가운데에서는 청양군(30,532/2022.04) 다음으로 적다.

 

계룡시 인구, 면적, 행정구역  *위키백과

 

▣ 2003년 특례법으로 독립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육군·해군·공군 3군 본부가 이곳의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충청남도는 전원·문화·국방 신도시 건설을 목표로 1990 2월 계룡출장소를 설치하였고, 2003 9월에 논산시에서 분리되어 계룡시로 승격하였다. 펜타곤이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이나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가 있는 뉴욕주 하이랜드와 같은 국방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도시가 조성되었으며, 충청남도는 인구 15만명 수용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 아래 택지개발 및 주택건설, 도시기반시설 구축, 생활편익시설 확대 등의 개발사업을 진행해 왔다(위키백과).

 

1895년 : 충청도 연산현
1914년 :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1989년 :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가 두마면에 편입
1989년 : 육군·공군 본부 계룡대 이전
1990년 : 충청남도 계룡출장소 설치(두마·남선지소 설치)
1991년 : 대통령 "계룡신도시 특정지역 지정" 지시
1993년 : 해군 본부 계룡대 이전
1996년 :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1998년 : 계룡 · 증평시 설치를 위한 법률(안) 국회상정
2001년 9월 20일 : 대통령, 충남도 방문시 특례시 설치 약속
2003년 6월 30일 : 계룡시 설치법 국회 본회의 의결
2003년 7월 18일 : 계룡시 설치법 공포(법률 제6929호)
2003년 9월 19일 : 계룡시 출범(2면 1동)
2006년 3월 2일 : 두마면의 북부를 분리해 엄사면 신설(3면 1동)
2009년 5월 21일 : 남선면을 신도안면으로 개칭

 

▣ 계룡대: 3군 본부

 

  신도안을 빼면 특별한 역사성을 갖지 못한 도시이다. 그러나 '국방 도시' 이미지로 빠르게 아이덴터티를 만들어낸 도시이다. 따라서 계룡시는 옛날 모습보다는 계룡시 독립 이후를 중심으로 지역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특히 '3군 본부'라는 아이덴터티를 중심으로 지역을 설명하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3군 본부 이전은 군 전략상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려는 군사적·사회적 측면을 고려해 추진되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1983년부터 '6·20계획'이란 암호명으로 추진되어 1989년 7월 육군 본부와 공군 본부가 입주한 뒤, 1993년 6월 해군 본부의 이전이 완료되면서 3군의 새로운 통합기지가 되었다. 계룡대는 '신도안' 중심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총 면적은 900만 평이다.

 

 

해군본부 어제 이전현판식/3군본부 계룡대시대 개막

 

www.hankookilbo.com

 

▣ 3군 본부가 계룡대에 있는 이유와 장단점

 

  과거 육군본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삼각지에 위치하였고, 해군본부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공군본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에 있었다. 1989년에 육군본부와 공군본부가, 1993년에 해군본부가 신도안으로 이전하면서 계룡대는 새로운 3군의 통합 본부가 되었다.

 

옛날의 3군 본부. 용산의 육군본부와 대방동 공군본부, 신길동 해군본부는 각각 직선거리로 5km, 6km정도 떨어져 있었다. 대신에 육군본부는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와 같이 있었다.

 

  6.20 계획을 세운 이유는 각기 떨어져 있던 3군 본부를 한 곳에 모음으로써 작전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각 군의 본부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면 그만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3군 본부가 같은 곳에 있게 되어 매우 가까워진 반면, 각 군이 지휘 통제를 받는 청와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는 모두 서울에 그대로 있다. 따라서 전체 지휘 체계로 본다면 오히려 빠른 대응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 알링턴(Arlington)에 있는 팬타곤을 본땄다는 얘기도 있지만 팬타곤에는 국방부와 3군 본부가 함께 있으며, 백악관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계룡대로 내려간 육해공 3軍본부… 작전체계 허점 노출

서울 - 계룡대 물리적 거리 무시못해 합참의장 휴대전화로 지휘… 보안우려 "각군총장에 작전권 분산 필요" 지적도

www.mk.co.kr

 

 

▣ 범위가 좁으니 볼거리도 많지 않다

 

-계룡 5일장(4일, 9일): 두마면 두계리

-사계고택(은농재)

-사계 솔바람길: 은농재 뒷산

-모원재와 김국광묘

-신원재

-계룡산 앉은바윗골 산신당(공주시 계룡면 안터길 41-44)

-숫용추, 암용추

-주초석

-계룡산 자연사박물관(공주)

-무궁화 학습원(괴목정)

-천마산/금바위(천마정)

-무상사

-향적산: 무상사에서 45분(1.6km)

 

▣ 답사 일정

 

천안 출발(08:30) - 은농재 도착(10:00) - 모원재와 김국광묘(10:30) - 신원재(11:00) - 두계 시장/장옥미술관(11:30) - 점심(두계 팥죽/12:00) - 천마산 금바위(13:30) - 두계1교(14:30) - 수구(용남고 뒷산 끝자락/15:00) - (큰길을 타지 말고 남선교부터는 두계천 서쪽 작은 길로 이동) - 신도안교(잠두봉=두계천 본류와 용동천 합류 지점/15:30) - 시천교 마을 터(16:00) - 신도안 주초석/대궐평(16:30) - 숫용추(허락없으면 못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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