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볼수록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만으로도 특별한데 환한 미소까지 지었다. 앞에 붙은 '백제'는 백제를 대표하는 불상이니 시대를 뜻하는 말을 붙였으리라. 그런데 '백제의 미소'라는 표현을 처음 써서 영원히 잊힐 수 없는 히트작을 만든 김원용박사는 그것 이상의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백제 불상의 얼굴은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미소 또한 현세적이다. 군수리 출토 여래좌상은 인자한 아버지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도 듣고 앉은 것 같은 인간미 흐르는 얼굴과 자세를 하고 있어서 백제 불상의 안락하고 현세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 중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작년(1959)에 발견된 서산 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 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김원용, 1960, 한국 고미술의 미학, 세대(5월호) |
불상은 모두 '근엄한' 모습이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 말고는 보통사람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의 불상을 아직 본적이 없으므로 '모두'라고 단언해 본다. 근엄한 모습의 불상은 권위적인 지배층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가 지배층을 중심으로 전래되었고 자리를 잡은 뒤로는 통치에 적절히 활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위 글에서 보면 김원용박사는 서산마애불만으로 '백제'란 수식을 붙이지 않았다. 군수리 여래좌상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두 사례를 통해 그것이 당시 백제 불상의 특징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제의 미소'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당시 백제 사회는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덜 권위적이고, 피지배층들을 덜 억압했던 것일까?
1959년 근처에서 금동불상이 출토되면서 보원사터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부여박물관이 이끌었던 조사에서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연재(然齋) 홍사준(1905~1980)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혹시 부처님이나 탑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곤 했다고 한다. 워낙 폐사지가 많은 곳이므로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산을 오르내리다가 절터를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도장바위(印巖) 아래 골짜기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처님이나 탑은 못 봤는디 저기 도장바위에 가먼 환허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슈. 근디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어서 손가락으로 볼때기를 찔르고 실실 웃으먼서 용용 죽겠지 허고 놀리니께 본마누라가 짱돌을 쥐고 쥐어박을라고 허구 있시유. 근디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디 서 계셔서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질 뭇하고 있지유. |
불상은 근엄하다. 노인이 들려준 얘기는 보통 사람들이 불상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웃는 얼굴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아니고 산신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백제의 미소'는 특별하다.
보원사터에서 개심사로 넘어가는 등산로 입구에 장승이 서있다. 그런데 장승이 웃고 있다. '웃는 장승' 역시 '웃는 부처님' 만큼 귀하다. 용현계곡의 '웃는 장승'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백제의 미소가 만들어낸 용현계곡의 장소성이라고 느껴진다. '백제의 미소'라는 이름이 생긴지가 육십여 년 되었으니 그리 유서가 깊은 장소성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이 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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