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삼과 임진왜란 격전지는 연결 고리가 있을까?
'금산'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으면 열 중 아홉은 '인삼', 또는 '칠백의총'이라고 답할 것이다. 금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삼 생산지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순절지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작하여 수도 없이 들어온 '대한민국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인삼'과 '임진왜란 의병'은 연관성이 있을까?
'금산'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두 가지 상징이 발생했으므로 최소한 비슷한 지리적 배경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역사적 맥락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상상력을 좀 동원한다면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다름 아닌 '산간 오지'라는 지리적 특성이다. 주요 도로에서 떨어져 있는 오지성, 산지가 대부분인 지형 특징이 두 가지 사실을 하나로 엮는 연결 고리다.
인삼으로 유명한 이유는 상식적으로 '깊은 산이 많기 때문' 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금강 상류지역에 자리잡은 금산은 충남 최고봉 서대산(904m)을 필두로 크고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산간분지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의병과 오지성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금산은 왜군 침입로였던 대로에서 벗어나 있었고, 따라서 군사적으로 요충지도 아니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왜군과 의병이 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즉, 영남로로 진격했던 왜군이 호남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선택한 침입로가 바로 금산이었다.
조선시대 10대로를 나타낸 위 지도를 보면 금산으로는 주요 도로가 통과하지 않았다. 산지가 많아 대로가 발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왜군은 영남로를 따라 북상하여 수도 한성을 장악하였다. 파죽지세로 수도까지 장악했지만 보급 때문에 호남 지역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왜군은 일부 군대를 돌려 호남지역을 침략하게 된다. 이때 선택한 통로가 바로 금산이었다. 이미 장악한 영남로에서 호남으로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 얼마나 깊은 산지이기에?
금산은 금강의 상류에 있다. 최상류인 전북 장수-진안-무주에서 내려온 금강이 '무진장'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금산이다.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은 '비단 같은 산', 또는 '금강(錦江)'과 관련이 있을까 생각하게 하지만 사실은 '기다란 냇물'이라는 뜻의 '진내'에서 왔다. '내가 길다'는 것은 곧 '산이 깊다'는 것을 뜻한다. 1872지방도를 보면 '진내'를 잘 알아볼 수 있다.
▣ 답사 일정
금산IC(통영대전고속도로, 10:30) - 권충민공순절비(11:00)/닥실나루 - 칠백의총(12:00) - 점심(금산읍) - 개삼터(13:30) - 백령성(14:30) - 이티(15:30) - 이티대첩비(15:50) - 추부IC(16:20)
▣ 지도
1. 권충민공순절비/닭실나루(갯터)
-왜 금산이었을까?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실패한 왜군: 대동여지도, 임진왜란 격전지 지도
-답사 일정: 지형도(답사경로도)
2. 칠백의총
-금산전투: 대동여지도, 1872 금산지도(의총리)
3. 개삼터
-지리적 조건(산록부, 동북사면): 지형도
4. 백령성
-삼국시대 금산의 위치: 신라와 접경 *무주 나제통문과 직선거리 36km
-지형: 산경도
-지질구조(화산암, 옥천층, 화강암): 지질도
5. 이티
-이동 경로: 대동여지도, 지형도
6. 이치 대첩비
-이치대첩(금산전투)의 의미: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가 됨.
-지형을 활용한 전투: 조총을 무력화
7. 표충사(조헌 사당)/수심대
-1872지방지도(진산군)
-금강상류(유등천) 감입곡류
-기호사림: 송시열과 관련
'충청남도 > 금산: 인삼과 임진왜란 전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군의 호남 침략을 저지한 금산 전투 (0) | 2022.04.28 |
---|---|
충청과 호남의 점이 지대: 행정 구역 변천 (0) | 2022.04.22 |
금산 인삼 (0) | 2022.04.21 |
금산: 위치와 자연환경 (0) | 2022.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