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다뉴브강은 없다

Geotopia 2020. 3. 4. 00:08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이 있다. 이오시프 이바노비치가 만든 이곡은 곡의 일부가 '사의 찬미'라는 노래로 번역되어 유명한 곡이다. '사의 찬미'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6년에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라는 왈츠곡이 있다. 요한스트라우스2세가 만든 이 곡은 경쾌하고 선율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두 곡의 공통점은 강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한 곡은 '도나우강'을, 다른 한 곡은 '다뉴브강'을 소재로 쓰고 있다. 요한스트라우스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이바노비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니 각자 자기 고향에 있는 강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원제목은 'Donau wellen Walzer'이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An der schönen blauen Donau'다. 원제목에 모두 'Donau'가 들어간다. 같은 강이라는 뜻이라면 둘 중 하나는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다. 

 

 

 

 

 

  두 곡의 소재가 되는 도나우강은 유럽 동부를 관통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강이다. 독일에서 시작되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10개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 들어가는 유럽에서 두번째로 긴 국제하천이다. 이 거대한 국제하천은 사실 '도나우'라고 부르는 것도 옳지 않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 Donau

  슬로바키아 : Dunaj

  헝가리 Dunărea

  크로아티아 : Dunav

  세르비아 : Дунав/Dunav

  불가리아 : Дунав

  루마니아, 몰도바 : Dunăre/Дунэре

  우크라이나 Дунаи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는 '도나우'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이바노비치의 고국인 우크라이나에서는 '도나우'가 아니라 '두나이'로 부른다. 그렇다면 '다뉴브'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다뉴브'로 부르는데 말이다.

  범인은 영어다. 강이 지나가는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이름 'Danube[dǽnju:b]'는 다름 아닌 영어다. 

  영어는 참 못됐다. 아니면 수준이 낮은 언어이거나. 왜냐하면 이름은 그것을 붙인 사람이 발음하는대로 발음해 주는 것이 상식이고 예의이다. 

  예전에 레이건(D. Reagan)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리건'이 아닌 '레이건'으로 불러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던 적이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내내 '리건'으로 불렸었지만 그 요청 이후 그의 이름은 '레이건'으로 바뀌었다. 물론 철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발음으로 불러주는 것이 그에 대한 예의임을 잘 증명한 사례이다.

  그런데 영어는 다른 나라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고쳐 부른다. 발음이 안 되어 할 수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Moscow(Москва), Paris[pǽris], Rome(Roma), Milan(Milano), Venice(Venezia), Munich(München), Vienna(Wien), Lisbon(Lisboa)… 

  영어의 오만은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