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천안 물 난리와 토지 공개념

Geotopia 2020. 8. 4. 10:10

▣ 하늘 아래 편안한 땅

 

  '天安, 하늘 아래 편안한 땅'

  예로부터 '천안'을 그렇게 불러왔다. 어떤 지명이든 살펴 보면 근거가 없는 이름은 없다. 천안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지리 환경들을 살펴보면 전해 내려오는 말처럼 '하늘 아래 편안한 곳'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여럿 가지고 있다.

  중부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우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이다. 천안의 남쪽 경계인 차령산지는 전통적으로 온대와 냉대의 경계로 인식되어 왔는데 천안은 차령산지 북쪽에 있기 때문에 냉대에 속한다. 하지만 냉대의 남쪽 끝이며 비교적 서해안에 인접하여 내륙 지역에 비해 온화한 편이다.

  서해안으로부터 다습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어서 강수량이 적당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서해안에서 곡교천을 따라 밀려온 다습한 공기가 천안에 도착할 즈음에는 적당히 냉각되어 주변 다른 지역에 비해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다. 

  지형적으로 하천의 최상류에 속하여 큰 하천이 발달하지 않는다. 바다와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하천의 상류인 이유는 분수계인 차령산지가 서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차령산지는 금강과 삽교천(천안천, 곡교천은 삽교천의 지류이다)의 분수계를 이룬다. 따라서 홍수가 나더라도 하류와는 달리 많은 물이 모여들지 않으며 또한 물이 잘 빠진다.

  태조산, 흑성산, 광덕산, 성거산 등 400m급~600m급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지형으로 산지가 방벽 역할을 해서 바람도 강하게 불지 않는 편이다.  

  이처럼 천안은 기온, 강수, 바람 등 기본적인 기후 요소가 사납지 않고 순한 편이다.

 

▣ 하늘 아래 편안한 곳에 물 난리가 났다

 

  그런데 하늘 아래 편안한 곳에서 물 난리가 났다.  2020년 8월 3일, 다른 해 같으면  여름이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에 때늦은 장마가 왔다. KTX 천안아산역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고, 쌍용동 이마트 일대도 도로가 하천으로 변했다. 냇물로 물이 쏟아져 나와 하천 양쪽의 완충지대인 강터가 몽땅 물에 잠겼다. 기록적인 폭우가 원인이었다. 천안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렸다. 

 

하천이 구부러지는 지점이 집중공략을 당해서 둑이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천안천 하류)
콘크리트 포장 아랫 부분이 모두 깎여 나갔다
물살이 얼마나 셌던지 아스팔트 포장도 뜯어냈다

 

▣ 데자뷰, 천안아산역 주변 침수

 

  '하늘 아래 편안한 땅'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아마도 다른 지역과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지역에 일어난 '편안하지 않은 기상 현상'이 천안에서 도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전국 뉴스에 나올 정도로 천안은 오히려 '하늘 아래 불편한 땅'이었다. '편안한 땅'이란 말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KTX역 일대가 물바다가 된 사건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KTX역 침수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데자뷰가 떠올랐다.  사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아산역 주변(2020.8.3)

 

*자료: 페이스북 천안놀이터(국제신문 2017.7.16 재인용)

  

  몇년 전 KTX천안아산역 물난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충격이 있었다. 천안터미널 주변이나 청룡지하차도 등이 침수된 적은 예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지대가 낮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천안아산역이라니?  

 

▣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홍수 피해

 

  천안에서 걸핏하면 물에 잠기는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도시화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택지들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하천에 가깝다. 천안이 하천 상류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하천 주변은 작은 범람원이기 때문에 원래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그런 곳을 메워서 택지로 바꿨으므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구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 아래 지도(1914년 지형도)를 보면 물난리가 자주 나는 지역은 모두 작은 범람원으로 옛날에는 논이었던 곳이다.

  전통적으로 마을은 배산임수형으로 산기슭에 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대부분 좀더 지대가 낮은 곳으로 주거지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신도시는 대개 기존의 거주지가 아닌 곳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표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기 때문에 물난리가 더욱 악화된다. 땅속으로 스며들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강수 충격이 고스란히 지표에 전달된다. 그래서 도로가 하천처럼 변하는 것이다. 대개 도로는 장애물이 없고, 특히 도시 내 도로는 주변보다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비가 많이 오면 순식간에 하천으로 변해버린다. 탄생할 때부터 구조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넘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타고 난 셈이다. 

 

침수지역의 원 지형 *조선총독부(1914)

 

 

▣ 토지는 모두의 재산이다

 

  토지의 효율성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적 범위를 보다 넓게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천안, 아산 지역에서 새롭게 조성되는 택지는 어딜 가도 도로가 좁고 맨땅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공원 등)이 턱없이 좁다. 지형(배후습지) 조건과 강수 특성(집중호우) 등 지리적 특성을 조금만 고려해보면 경사가 완만하고 하천과 고도차가 거의 없는 택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온난화와 함께 앞으로 여름 강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더욱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 도시 계획이 더욱 절실하다.

  인구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 공간을 확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천안 구시가지의 상당 지역은 슬럼화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가 늘고 있는 지금도 시내에 인구가 감소하는 지구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택지를 확대하기 전에 기존 택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택지나 토지가 이익 실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도시 공간이 무질서하게 확대된다거나 효율성만이 강조되는 택지 조성은 모두 토지가 이익 실현 수단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새로운 토지에 대한 요구가 계속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유=이익'의 등식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익 실현에는 효율성이 가장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움직일 수도 없고 늘어날 수도 없는 것이 땅이다. 가능하면 공공재로써 공개념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63055_32524.html 

 

천안·아산도 '물바다'…"도시가 멈춰 버렸다"

앞서 김태욱 기자의 이야기 들으신 것처럼 시간당 50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하루 종일 쏟아지면서, 이 지역에서도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아산에서는 노인들이 급류에 휩쓸렸고...

imnews.imbc.com

 

http://www.icj.kr/news/view.php?no=32967(천안신문, 2020.8.3)

 

천안 도로 곳곳 침수 피해 잇따라...150여 명 대피

천안 도로 곳곳 침수 피해 잇따라...150여 명 대피 – 공정한 참 언론 천안신문

www.icj.kr

https://m.mk.co.kr/news/society/view/2020/08/803114/(매일경제, 2020.8.5)

 

'비만 오면 잠기는' 천안 신도심…구조적 문제 있나

지대 낮고 도시계획 과정서 구축된 배수능력 초과…"폭우 땐 속수무책" 담배꽁초 등 쓰레기에 배수시설 막는 것도 한몫

www.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