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바위 옷이 마애여래삼존상의 풍화를 막는다

Geotopia 2021. 6. 24. 11:40

▣ 술판의 高談峻論


  마애삼존불이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백제의 미소'니, '국보 몇 호'니 하는 흔히 있을 법한 얘기는 아니었다. 바위 옷 이야기를 하다가 화강암 풍화로 넘어갔다. 어쩌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바위 옷을 소재로 한 이정록 시인의 '애인'이라는 시 얘기가 발단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시인의 상상력에 내 관심사가 결합해서 '진지한(?)' 취중토론이 오갔다. 취중토론이란 것이 술꾼들에게는 심각하고 의미있는 고담준론이지만 안타깝게도 술이 깨면 모두 휘발되어 버리고 만다. 술기운으로 살았다면 역사를 몇 번은 바꿨을 것이다. 그래도 이날 토론은 술 기운 속에서도 기억에 남아서 주섬주섬 파편을 주워담아 봤다.

 

천년을 간직해온 삼존불의 미소는 바위옷 덕분이다

 

  언제나처럼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타고난 이야기꾼 이정록시인은 새롭고 재미있는 '풍화억제론'으로 이날도 헤게모니를 사뿐히 채갔다.

  ‘백제의 미소’가 뜻하지 않은 호강을 했던 적이 있다. 1965년에 보호각이 설치되어 천년도 넘게 맨 바위로 드러나 있던 마애불이 집을 얻었던 것이다. 마애불을 감싸고 있는 집은 언뜻 풍화를 방지하고 마애불의 원형을 유지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과연 마애불의 집은 마애불의 모습을 보전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일까?

 

철거되기 전 마애삼존불 누각 *자료: 방방곡곡( http://www.bbggnews.com/news/2365 )

 

  시인은 특유의 관찰력으로 마애불을 위해 집을 지은 이후로 바위에 자라던 이끼가 사라지고 그 결과로 바위에 금이 갔다는 사실은 발견해 냈다. 그는 추측하기를 이끼가 바위 표면에 자라면 바위의 풍화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나무에만 이끼가 자라는 것을 볼 때 이끼가 자라는 바위가 살아있는 바위’라는 시인다운 주장도 재미있다. ‘이끼는 3천 년을 산다’는 말이 있으니 마애삼존불이 입고 있었던 이끼는 삼존불이 탄생한 백제시대 이후 적어도 천 년 이상 삼존불을 감싸고 있었을 터이다. 물론 이끼는 수명이 수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포자로 종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재생산을 거듭하기 때문에 수 천 년을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천 년을 넘게 삼존불의 옷이 되어주었던 이끼가 집이 생기면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시인의 주장에 따르면 삼존불이 집을 얻으면서 오히려 '죽은' 바위가 된 것이다. 죽었으니 깨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화강암 암반 위에 자라는 이끼-아산시 영인면 고룡산

 

습기는 바위를 풍화시킬까?

 

  시인의 주장을 지리학도의 눈으로 보자니 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얄팍한 전공 지식을 앞세워 삐딱하게 생각한 결과다. 바위옷이 바위 표면에 수분을 유지시켜 주므로 오히려 풍화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않을까?

  바위가 풍화(風化, weathering)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나누면 화학적인 원인과 물리적인 원인이 있다. 화학적 풍화의 대표적인 예는 가수분해이다. 화강암은 마그마에 기원하는 암석이므로 그 구성물질이 매우 다양한 암석이다. 그 중에 일부 광물질(흑운모, 사장석)이 물과 반응하기 때문에 물을 만나면 풍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온도와 함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수분 공급이 필수다. 맨 바위로 노출되어 있을 때보다 이끼로 덮여 있을 때 수분이 더 안정적으로 유지될테니 풍화에 더 유리한 환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집을 얻은 이후 마애불이 당한 고통은 이끼가 사라졌기 때문이기 보다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도 크다. 누각 안에 있던 수십 년 동안 백화현상과 함께 불상 표면에 자주 이슬이 맺히곤 했는데 보호각이 통풍을 방해하고 햇빛을 막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었다. 습기는 바위가 풍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우려할 만한 현상인 것은 틀림없다.

 

이끼는 열팽창을 막아준다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에 취하다 보니 문득 돈오점수가 왔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위의 옷이 되어 주었던 이끼(선태류)는 바위가 급격히 가열되거나 냉각되는 것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바위가 열을 받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 조직이 약해진다. 열팽창은 주로 일교차가 큰 건조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바위가 직접 깨지는 일은 흔치 않다. 다만 오랜 세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 바위 조직이 물리적으로 약화된다. 즉, 바위가 부서지지는 않더라도 '골병'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모래 바람과 같은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면 바위가 쉽게 풍화될 수밖에 없다.

  식생이 풍부하고 여름이 습한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서는 열팽창으로 바위가 풍화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한여름 폭염에 바위가 노출되면 팽창과 수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천 년 넘게 이를 반복하다 보면 제 아무리 바위라도 골병이 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바위가 옷을 입고 있다면 어떨까?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겨울 찬 바람도 조금은 막아줄 것이다. 적어도 바위가 ‘골병드는’ 불상사를 어느 정도는 막아주지 않을까? 시인의 상상력은 지리학도가 보기에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 언젠가는  마애삼존불도 사라질 것이다

 

  다행히도 수십년 유지되었던 마애불 보호각이 2006년에 철거되었다. 그해에 기둥과 지붕만 남기고 벽과 문이 철거되었고, 이듬해 12월에는 인공 구조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사실 생태적인 고민 때문이 아니라 해가 자리잡은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지적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마애불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천 몇 백 년 동안 조금씩 옷 두께를 두껍게 해왔을 이끼가 언제 다시 삼존불의 옷이 되어 줄지 알 수가 없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끼가 앉는 기미가 없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그 옷이 생기기 전까지는 삼존불의 점차적인 훼손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한국건설안전기술원의 조사보고서는 보호각 때문에 생긴 백화현상뿐만 아니라 오랜 풍화작용과 화강암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박리형 균열 등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박리형 균열의 경우, 그 갈라진 틈으로 스며든 수분이 자연현상에 따른 동결융해를 반복하면서 점진적으로 갈라진 틈의 이격이 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절리가 발달한 마애불 바위

 

  '바위처럼 단단하다'고 하지만 그 단단한 바위도 조금씩 깨진다. '풍화'는 조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바위도 피해갈 수는 없다. 국보84호인 서산마애여래삼존상도 예외는 아니다. 단단한 화강암에 새겨진 삼존불상은 무려 천년을 버텨왔다. 천년을 버텨온 모습이 이정도라면 앞으로도 천년은 너끈할테니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