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부여

역사지리: 고지도와 고문서로 보는 부여

Geotopia 2022. 9. 14. 09:03

■ 이름의 기원: 夫餘國에서 내려온 백제의 왕족

 

扶餘는 지명의 기원이 夫餘國에 있다. , 백제를 세운 온조의 아버지가 부여국에서 내려온 주몽이다. 백제의 성왕이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꾼 것은 이러한 그들의 뿌리를 부각시킨 것이다.

부여의 기원은 더 멀리 단군왕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조선 숙종 2(1676) 재야 사학자 북애(北崖)노인이 저술한 <규원사화 揆園史話>에는 단군의 네 아들이 기록되어 있다.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가 그들이다. 부여는 단군의 넷째 아들 이름이며 부여의 상징 부소산은 둘째 아들 이름과 같다. 부여국에 기원하든, 단군신화에 기원하든 부여라는 지명은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세종실록지리지의 부여

 

  백제의 도읍지였던 사실과 관련된 내용, 특히 백제의 멸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 이후로는 시대 순으로 연혁을 나열한 수준으로 특기할 만한 내용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도시가 되었다는 뜻이다.

 

■ 택리지(1751)의 부여

 

  공주의 서남쪽이 부여인데 백마강가이며 백제의 옛 도읍터이다. 조룡대, 낙화암, 자온대, 고란사는 모두 백제 시대의 고적이며, 강에 다다르면 암벽이 기이하고 경치가 매우 훌륭하다. 또 땅이 기름져서 부유한 자가 많으나 도읍터로 논한다면 판국이 작고 비좁아서 평양, 경주보다는 훨씬 못하다.(이익성 역, 을유문화사)

 

■ 광여도(19세기 전반)의 부여현

 

  -백제 멸망과 관련된 경관: 조룡대, 고란사, 낙화암

  -서원, 사우가 강조됨

  -두 개의 못: 新池, 萬光池 . 의열사와 향교를 기준으로 위치를 비정해 보면 만광지가 궁남지로 추정됨

  -창고: 하항으로서 세곡이 집산되어 반출되었음

 

광여도(부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538(성왕 16)에 웅천(지금의 공주)에서 옮겨와 이곳을 백제의 수도로 삼았다. 부여읍 관북리가 궁궐터에 해당된다. 신라 경덕왕이 부여로 이름을 고쳤다.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은 부여현, 임천군(임천면, 장암면, 세도면, 충화면, 양화면), 홍산현(홍산면, 외산면, 내산면, 구룡면, 남면, 옥산면), 석성현(석성면), 이산현(초촌면의 일부)이 합해진 것이다. 부여현은 현재의 부여군의 북쪽부분에 해당하는 부여읍, 은산면, 규암면, 초촌면 일대의 지역이다. 부여읍내가 邑治가 되며 부소산이 鎭山에 해당한다. 邑治客舍, , , 鄕校가 그려졌다. 지도 가운데의 강은 백마강으로 河中島, , 이 표시되었고 강변에는 海倉이 보인다. 백마강의 釣龍臺(부여읍 쌍북리 용바위)는 당나라 장수 蘇定方이 흰말을 미끼로 용을 낚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며 落華巖(落花巖)은 의자왕 때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皐蘭寺(부여읍 쌍북리)는 백제 말기에 지었다는 설과 1028(고려 현종 19)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절 뒤에서 나는 皐蘭草와 우물로 유명하다. 義烈寺(義烈祠, 顯義祠, 부여읍 용정리)1576(선조 9)에 현의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어 백제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의 충신 이존오를 배향하였으며 1578년 사액된 곳이다. 浮山書院(규암면 진변리)1719(숙종 45)에 세워지고 사액된 서원으로 김집, 이경여를 배향하였다. 이 밖에 (용전역, 은산역)이 지도에 표시되었다. (이현군/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광여도의 석성현

 

  -다리, 포구, 고개 등 교통 관련 경관

  -저수지(堤)가 많음: 논산평야가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었음

 

광여도(석성)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려 초에 석성으로 고쳤으며 1414(태종 14)에 이산과 합쳐져 이성이 되었다가 1415년에 현감을 두었다.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과 논산시 성동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가 과거의 석성 읍치였다. 읍치에 客舍, , , 鄕校가 표시되었는데 객사터는 현재 석성초등학교가 되었다. 읍치 앞의 하천은 석성천으로 서쪽의 금강에 합해지고 泗津이 표시되어 있는 남쪽의 하천은 과거에 泗水로 불리던 지금의 논산천이다. 강에는 , , 橋梁, 江倉이 표시되었다. 江倉은 석성면 봉정리에 있던 것이다. 곳곳에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한 堤堰이 보인다. 읍치를 지나는 이 지역의 도로는 북쪽의 白也峙, 강가의 과 연결되어 은진, 이산, 부여, 임천과 통한다. 이 밖에 蓬湖書院, 正覺寺(석성면 정각리) 등이 지도에 표시되었다. (이현군/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광여도의 임천현

 

  -다리가 매우 많음: 강의 하류 지역으로 많은 지류들이 발달함

  -금강을 따라 포구가 발달

  -성홍산성

  -공주태실, 선조대왕태실

 

광여도(임천)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413(태종 13)에 임천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1914년에 부여에 편입되었다.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의 남쪽 부분에 해당하는 임천면, 장암면, 세도면, 충화면, 양화면 일대이다. 지도 오른쪽의 강은 錦江으로 충청도의 석성, 은진, 전라도의 여산, 용안, 함열과 경계가 된다. 임천면 군사리가 과거의 임천 邑治에 해당한다. 邑治에는 客舍, 衙舍, , 鄕校, 萬波亭이 표시되었는데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과거에 邑城이 있었다. 객사터에는 현재 임천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읍치 뒤의 聖興山(임천면 군사리와 장암면 지토리의 경계)古城이 표시되었는데 501(백제 동성왕 23)에 쌓은 성으로 의자왕 때 왕자 이 나당연합군에 항거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유금필이 이 성에서 백성들을 진휼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사당을 짓고 제사지냈다고 전한다. 금강에는 菁浦津(세도면 청포리)을 비롯한 여러 나루, 船泊處, 海倉이 표시되었고 금강으로 들어가는 여러 하천에는 교량이 그려졌다. 역원으로는 靈楡驛이 보인다. 이 밖에 堤堰, 書院, 胎室, 가 표시되었다. (이현군/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광여도의 홍산현

 

  고려 초에 홍산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1914년에 부여군에 병합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의 서쪽 부분에 해당하는 홍산면, 외산면, 내산면, 구룡면, 남면, 옥산면 일대의 지역이다. 이 지역의 하천은 모두 동쪽으로 흘러 백마강(금강)에 합하여진다. 지도 오른쪽 아래에 백마강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서 읍치에 客舍, 倉, 衙가 표시되었는데 현재의 홍산면 북촌리에 해당한다. 객사터(북촌리)는 현재 홍산 면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지도에는 성곽이 그려져있지 않으나 과거에는 邑城(홍산면 남촌리)이 있었다. 읍치 남쪽에 社壇이 있었으며 홍산면 교원리 향교골에 鄕校가 있었다. 향교 옆의 淸逸寺(淸逸祠의 誤記, 淸逸書院, 교원리)는 매월당 김시습의 화상과 위패를 모신 곳이며 북쪽의 彰烈祠(彰烈書院)는 숙종 때에 세워져 윤집, 홍익한, 오달제를 배향하였으며 1721년(경종 원년)에 사액되었다. 宿鴻驛(홍산면 교원리 역말)은 부여로 통하는 도로에 있던 역으로 地官의 말이 홍산현의 형국이 나는 기러기의 형세가 있다하여 역 이름을 宿鴻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백마강 옆의 扶餘頭(규암면 부여두리)는 부여, 홍산, 임천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부여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되므로 부여두, 부여머리, 부두리 등으로 불렸다. 북쪽의 無量寺(외산면 만수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지어진 사찰로 앉은 부처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며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피신하여 살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현군/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대동여지도(1861)

 

  -역(驛): 은산(恩山), 용전(龍田, 부여), 숙홍(宿鴻, 홍산), 유경(楡炅, 임천)

  -나루

    *임천현: 상지포, 남당진, 청포진, 낭청진(浪淸進), 점다진(占多津), 장암진

    *석성현: 저포(猪浦)

    *부여현: 구랑포, 대왕포, 고성진, 왕지진

  -창고: 海倉(감조구간), 江倉(지류(석성 수장천), 상류(부여 금강천))

 

대동여지도 부여군 일대

 

1872 지방도

 

-八景 : 천정대, 조룡대, 낙화암, 자온대, 반월성, 대왕포, 고란사, 삼충사  *반월성: 泗沘城의 다른 이름으로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半月城이라고도 불렀다.  *自溫臺: 규암진의 수북정 아래에 있는 바위. 왕이 행차할 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충사: 義烈祠의 다른 이름. 백제의 충신 계백, 흥수, 성충을 봉안한 사당이다.

 

1872 지방지도(부여)&nbsp;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지금의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은산면, 규암면, 초촌면 일대로서 백제의 古都이다. 지도의 하단 여백에 고을의 연혁과 부여의 八景을 주기하여 地志로 지도를 보완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東西南北의 글자로 방위를 표시하고 북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백마강을 연하고 있는 읍치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는데 전체적인 지도의 구도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충청도읍지의 지도와 대략 유사하다. 산지는 풍수의 山圖에서 보이는 방식으로 맥세를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天政臺, 落花岩, 自溫臺 등의 기암절벽은 회화식 기법으로 절경을 강조하였다. 신라 김유신과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平濟塔이 그려져 있다. 白江 李慶輿, 愼獨齋 金集 등을 배향한 浮山書院이 훼철된 상태로 그려져 있고, 백제 충신 成忠階伯, 그리고 고려충신 李存吾 등을 배향한 義烈祠도 마찬가지로 1871년에 훼철된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각지의 社倉, 길가의 , 堤堰 등도 비교적 자세히 그려져 있다.(규장각 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