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식물 가꾸기

깻잎을 먹는 녀석도 있다니...

Geotopia 2018. 6. 18. 00:15

■ 고라니도 먹지 않는 깻잎을 먹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무법자 고라니도 깻잎은 먹지 않는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이 생깻잎을 쌈으로 먹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적어도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서는 쌈이란 곧 상추와 같은 말이었고 깻잎은 장아찌로나 먹었다. 향이 강해서 날로 먹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깻잎에 작은 구멍이 나기 시작한 지는 한참되었다. 어떤 녀석이 잎을 파먹는 모양이기는 한데 심하지는 않았다. '깻잎은 쉽게 벌레가 먹지 않는다'는 나의 근거없는 고정관념은 구멍난 깻잎에 무관심하도록 했다. 그렇게 별일 없이 들깨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보니 깻잎 줄기가 뎅겅 잘려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여러 포기가… 밤새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 상추를 뜯어 먹은 그녀석인가 싶어서 일단 주변 흙을 파봤다. 샅샅이 뒤져봤지만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그녀석의 특징인 똥이 없다. 그때 아내가 옆 화분에서 벌레를 한 마리 잡아왔다. 잎에 붙어있던 녀석이다. 옅은 연두색인데 크기는 상추벌레보다 훨씬 작다. 아직 어린 벌레라기 보다는 아마 다 자란 녀석인 것 같다. 잎사귀에 꼬치를 만들고 있는 중인지 거미줄같은 하얀 줄로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 들깨잎말이명나방


  인터넷을 찾아 보니 '들깨잎말이명나방'이라는 놈이다. 잎을 말고 실을 뽑아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농약으로도 방제가 잘 안 되는 악질이란다. 밤에 날아와서 알을 낳는다는데 이를 어쩌나…


[들깨잎말이명나방]


■ 순을 싹뚝 잘라놓는 악질…


[줄기를 싹뚝 잘라놨다]


[고치를 만드는 중인 것 같다]


  샅샅이 뒤져보니 한 포기에 한 마리씩 벌레가 있다. 고치를 만드는 녀석과는 달리 회색의 세로 줄 무늬가 있다. 한 번 더 샅샅이 뒤져보고 줄기를 흔들어 털었다. 이 정도면 완전히 박멸이 되었겠지?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도석이는 손으로 잡으라고 하고, 필우는 박멸을 하지 않으면 줄기가 몽땅 죽는다고 겁을 준다. 순을 잘라놓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깻잎에 농약을 뿌리고 싶지는 않다. 공정 경쟁을 하기로 했다. 먼저 뜯어먹는 놈이 임자다.

  그런데,

  하룻밤을 자고 나가 보니 또 줄기를 두 개나 잘라놨다. 전날 샅샅이 뒤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녀석들이 줄기를 잘라서 시든 잎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거위벌레라는 참나무 벌레가 연상된다. 거위벌레는 맺히기 시작한 도토리 열매에 알을 낳고 열매가 달린 줄기를 잘라서 떨어 뜨린다. 열매 속에서 알이 부화해서 애벌레가 그것을 먹으며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도?


[시든 잎에 숨어있는 벌레. 왼쪽에 고치를 짓기 시작한 듯한 자취가 있다]


[줄기를 막 자른 녀석. 아직 잎이 시들지 않았다]


  추측해보건대 이 녀석들은 들깨 향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들깨가 자기 방어를 위해 내품는 냄새를 내품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후자라고 가정하고 줄기를 흔들어서 들깨 냄새를 물씬 풍기도록 해봤다. 만약 향을 좋아한다면 더 달려들겠지만


도무지 대책이 없다


  또 하루가 지났다.

  아침 일찍 올라가 보니 또 몇 개가 희생을 당했다. 활동중인 녀석은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줄기를 잘라놓고 시든 잎에 숨어 있는 녀석을 찾을 수 있다. 영락없이 시든 잎에 한 마리씩 들어있으니까. 그렇다면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 녀석들이 밤에만 활동하고 낮에는 시든 잎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고, 둘째는 잎을 갉아먹을 때는 크기가 아주 작은 유충 상태였다가 몸집이 커져서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 줄기를 잘라서 고치를 만들 가능성이다.


[잎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놨지만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줄기를 잘라놓고 미처 대피(?)를 못한 녀석. 자라면서 이런 모양으로 변한다]


[시든 잎에 숨어있던 놈]


■ 식초 희석액 뿌리기


  완전 공정 경쟁은 불가능할 것 같다. 이 상태로는 들깨가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유기농 약제를 만드는 방법이 인터넷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 역시 약간의 불공정 경쟁이기는 하지만 부득이 이 방법이라도 써 봐야 할 것 같다.

  식초와 물을 3:7로 섞어서 뿌리면 효과가 있다는 글을 읽고 희석액을 만들어 뿌렸다. 하지만 아침에 올라가 보면 계속 희생자가 나온다. 그래도 연속 이틀을 뿌렸더니 희생자가 한 개로 줄었다. 잘라내고 한번 더 뿌렸다. 일부 잎의 끝이 말랐는데 식초의 영향인 것 같다.

  나흘 째,
  여전히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식초 희석액을 조롱이나 하듯이 순이 두개나 잘라졌다. 다섯 개 화분, 열 두 포기에서 무려 여섯 마리를 색출했다. 이건 뭐 뿌리기 전 보다도 많은 숫자다. 효과를 전혀 믿을 수 없지만 네번째로 희석액을 뿌렸다. 한방에 해결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만은 확인을 했다.

  녀석이 밤에 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침에 식초액을 뿌렸던 것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토요일을 활용하여 낮에 올라가 보니, 왠걸!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잘 만 식사를 하고 계시다. 낮에만 세 마리 색출, 식초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나방의 접근을 막지 못하면 깻잎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저녁에 식초액을 뿌렸다. 식초액을 뿌려도 애벌레는 죽거나 달아나지 않는데 어쩌면 밤에 날아오는 나방은 식초 냄새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에 보니 순이 잘라지지는 않았다. 닷새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여전히 잎은 많이 뜯겼다. 뒤져보니 또 세 마리나 나왔다. 전쟁이 따로없다.
  낮에 들여다봤더니,
  헐~
  또 순이 두 개나 잘렸다. 샅샅이 뒤졌더니 고치를 짓고 숨어 있는 녀석들(줄무늬)을 두 개 화분에서 한 마리씩 색출할 수 있었다. 화분을 멀리 떼어놔봤다. 밤에 나방이 날아온다고 가정하면 아무래도 모여있는 것 보다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알을 낳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해서…


[네번이나 식초 희석액을 뿌렸지만 처참한 광경은 여전하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유유히 활동중인 벌레. 식초 희석액 때문에 잎이 말랐다]


■ 식초액은 고추 진딧물에 효과가 있다


  안타깝지만 식초 희석액은 들깨 벌레에는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대신에 고추 진딧물에는 효과가 좋다. 고추 한 포기에 진딧물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잎의 뒷면을 겨냥해서 살포를 했더니 거의 사라졌다. 천연 방제약은 해충을 죽이기보다는 싫어하는 냄새로 쫓아 내는 것 같다.


■ 천연 방제약 제조법 http://cafe.daum.net/627-85/1hA9/1856?q=%EB%93%A4%EA%B9%A8%20%EB%B2%8C%EB%A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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