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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지대의 수리시설

Geotopia 2017. 6. 13. 23:19

◆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벼농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벼농사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노동을 필요로 한다.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등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단일 작물인 벼를 너른 경지에서 재배하므로 온 마을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일을 해야만 한다. 벼농사의 거의 북한계에 해당하는 한반도에서는 때를 놓치면 벼를 수확할 수 없으므로 시기에 맞춰 한꺼번에 일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두레나 품앗이 등 공동작업을 위한 장치들이 발달했다. 함께 일할 때 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민요들이 대부분 벼농사와 관련된 노래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밭농사가 가족 노동으로도 충분히 감당이 되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1년 내내 바쁜 밭농사, 하지만 식구끼리 만으로 감당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lovegeo/6780812).


◆ 벼농사에 협동 노동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 수리 시설 설치와 유지


  벼농사에 협동 노동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벼농사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사철 이외의 기간에도 대규모로 노동력을 투여해야 하는 협동작업이 필요하다. 수리 시설을 만들고 유지, 보수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벼농사에서는 관개용수가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개용수를 논에 공급할 수 있었을까?

  대개 논은 하천 주변에 분포한다. 물이 가까이에 있기는 하지만 하천의 수면보다 논이 더 고도가 높기 때문에 양수기가 없었던 옛날에는 하천에서 물을 퍼올려서 관개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물을 댄 것일까?

  하천의 상류에 저수지, 또는 보(洑)를 설치한다. 여기에 고인 물을 하천 옆으로 따로 물길을 내서 흘러 내리게 한다. 이 물길은 하천에 비해 경사가 훨씬 완만하게 만들어서 하류로 갈수록 하천과의 고도차가 커진다. 이 고도차를 이용하여 관개를 한다. 즉, 하천 주변의 계단식 논의 가장 위쪽으로 물이 흐르도록 하여 고도차를 이용하여 자연 관개를 하는 방식이다.

  이런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홍수가 나서 시설이 파손되는 일도 빈번했으므로 보수하는 데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대규모 토목 공사를 자주 해야하기 때문에 협동 노동을 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논농사를 하기가 어렵다.


◆ 여럿이 모여살지 않으면 벼농사는 불가능하다


  농사도, 농사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도 모두 협동작업이 불가피하므로 벼농사 지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대부분이 집촌(集村)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기계화와 함께 이런 전통적 의미가 오늘날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벼농사가 발달한 농촌에는 기존의 관성이 많이 살아 있다.


◆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여주이씨 종족촌락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여주이씨 종족촌락이다. 인근의 양동마을 출신 회재 이언적을 제향한 서원인 옥산서원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이다. 종족촌락 역시 전형적인 집촌으로 벼농사를 경제적 기반으로 했다. 옥산리에서 전통 방식의 수리시설을 발견할 수 있다.

  옥산저수지 바로 아래에 작은 보를 막아서 인공수로로 물을 끌어들인다. 이 수로는 옥산천 서쪽에 분포하는 농경지 뒷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 수로를 흐르는 물은 마을의 논을 고루고루 적신 후 하류에서 다시 옥산천과 합류하면서 임무를 마친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원도: Google earth>


<사진 1 옥산리 상류쪽에서 바라본 장면>


<사진 2 정혜사지10층석탑 앞으로 지나는 수로. 사진 왼쪽에 활엽수림이 우거진 곳이 옥산천 본류이다>


<사진 3 독락당 앞. 산 기슭으로 지나는 수로에서 물이 흘러나와 계단식 논에 물을 공급한다>


<옥산서원. 수로와 본류가 합류하는 곳 바로 아래 옥산천변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