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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합 답사-제2회 설렘으로 걷는 이들 지리캠프(Ⅳ)

Geotopia 2015. 11. 20. 20:42

▶ 답사일: 2015.10.24(토)~10.25(일)

▶ 답사지역: 서울 사대문 안(중구, 종로구 일대)

▶ 참가교: 설화고, 온양고, 천안월봉고, 총 47명

▶ 주최: 지리교사동아리 '설렘으로 걷는 이들'

▶ 답사 경로

  -10월 24일(토)   ☞ 이 글의 내용은 아래 일정표의 빨간 글씨 부분까지 입니다.

    : 아산역 출발(07:48) - 서울역 도착(09:15) - 서울역 문화 284(10:00) - 숭례문(10:15) - 서울광장(10:45) - 광화문 광장(11:10) - 경복궁(11:25) - 인사동(12:30) - 점심 - 사진전시회 관람(14:00) - 낙원상가(15:05) - 종묘(15:25) - 청계천(16:20) - 세운상가(16:55) - 숙소(서울유스호스텔/17:15)) - 저녁 식사(17:35) - 지리콘서트(18:40) - 명동 야간 답사(21:30) - 취침(23:30)

  -10월 25일(일)

   : 숙소 출발(09:00) - 타임캡슐광장 / 남산골 한옥 마을(09:10) - 남산 케이블카(10:30) - 남산N타워(11:15) - 남대문시장(13:00) - 점심 식사 - 서울역 출발(14:45) - 아산역 도착(16:08)

 

<10월 25일(일) 답사 경로  *원도: Google Earth>

 

▶ 서울유스호스텔

 

<둘째 날 답사를 시작하기 전 숙소 앞에서 인증샷>

 

<첫 번째 답사지는 타임캡슐광장과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숙소에서 남산창작센터를 지나 500m 쯤 걸어가면 된다>

 

<남산창작센터에서 타임캡슐광장 방향으로 넘어가는 인도교>

 

▶ 타임캡슐광장

 

<타입캡슐광장에서는 남산N타워가 잘 보인다. 타입캡슐은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한 지 600년이 지난 해였던  1994년에 당시 서울 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 600개를 담아 조성하였다. 서울 정도(定都) 1,000년이 되는 2394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타임캡슐에는 당시 여러 나라의 수반들이 보낸 축하메시지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타입캡슐광장을 나서면 바로 남산골한옥마을로 이어진다. 타임캡슐광장 입구>

 

▶ 남산골 한옥마을

 

<타임캡슐광장과 남산골한옥마을 안내도>

 

<타임캡슐광장과 한옥마을 중간에는 서울남산국악당이 있다. 전통 한옥으로 지었다>

 

<이 근처에서는 어딜 가도 남산N타워가 보인다>

 

<남산국악당은 건물 모양이 퓨전이다>

 

<이런 물건들은 도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 '추억'이나 '향수'는 옛날에 대한 기억을 전제로 한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기억'들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 많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에게 이런 물건들을 그냥 '전통 공예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억'이나 '향수'가 가미되지 않은…>

 

 

<남산골은 북촌과 반대되는 위치이다.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입사를 한 사대부들이 거주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주로 '남산골샌님'으로 일컬어졌던 입사하지 못한 양반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이다. 그런데 남산골한옥마을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무려 다섯 채나 버티고 있다. 어인 연유일까?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있던 대표적인 한옥들을 이곳에 옮겨다가 복원을 한 것이 그 연유다>

 

<마침 전통 혼례가 있는 날이어서 안마당에 차일을 쳐놓았다. 햇빛이나 눈비를 가릴 수 있는 차일은  옛날에는 잔치에서 필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에는 넓은 홀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잔치를 하려면 마당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마당을 넓은 홀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차일을 쳐야만 했던 것이다>

 

<'제기동 민씨가옥'은 한말의 친일 문신이었던 민영휘(:1852~1935 ) 대저택의 일부다. 민영휘는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동학농민운동 때 청군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일삼다가 임오군란 때 탐관오리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후 일본정부의 자작이 되어 친일행위에 앞장섰고 일제 강점기의 대부호로 천일은행, 휘문학교를 설립했다. 1970년대까지 민영휘 일가가 거주했었다. 대부호의 집 답게 안마당이 엄청나게 넓다. 이런 집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사회구조와 관련이 깊다. 친일 행위자에게 적극적으로 이익을 보장해줌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고 제국주의 지배를 영구하게 유지하고자 했던 일제의 요구가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고혈 위에 지은 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전통 한옥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집이면서 민족의 아픔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민씨가옥의 사랑채>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인데 어지간한 집 본체보다도 더 크고 화려하다. 윤택영가의 위세를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윤택영은 본관이 해평(海平)으로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의 아버지이다. 왕의 장인을 '부원군'이라 하는데 해풍부원군이라는 작위는 바로 왕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그는 딸을 황후로 간택받기 위해 온 재산을 동원하여 뇌물을 바쳤고 그 결과로 왕의 장인이 되는데 성공을 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엄청난 빚을 짊어지고 파산하고 말았다. 그의 친형이었던 윤덕영(을사늑약에 관여하고 황제의 권력을 농단하는 등 대표적인 친일행위자였음)의 도움도 받고 황실의 도움도 받았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도피하여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건물 역시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시기 민족의 아픔이 담겨있는 집인 셈이다>

 

<'날아갈 듯한 처마'는 우리 전통 한옥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윤덕영가 재실은 특히 처마의 선이 날렵하다>

 

<윤덕영가 재실 안마당>

 

<한옥마을 바깥에 전시된 설치 미술 작품.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뜬금없이 세월호 떠올랐다>

 

<이 작품 역시 알쏭달쏭하다>

 

<마지막에 들른 '옥인동 윤씨가옥'. 마루를 모두 문으로 막은 것이 특징이다>

 

<참새가 비둘기 새끼라는 우스개가 있던데 한옥마을 연못가의 참새들은 진짜로 자기가 비둘기인줄 아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면 비둘기들은 곧잘 다가와서 먹이를 받아 먹지만 참새는 의심이 많아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참새들은 비둘기 사이에 섞여서 천연덕스럽게 먹이를 받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