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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답사-2015 천안여고 지리교과 캠프(2)

Geotopia 2015. 10. 28. 12:41

▶ 답사 일: 2015.10.17(토)

 

▶ 내용: 천안여고 지리교과캠프

 

▶ 답사 경로

  공세리성당-삽교천(선우대교)-예당평야-삽교천(구양교)-이존창생가지-추사고택-구만포-남연군묘-봉림리 한산이씨 종족촌락-서산마애삼존불-해미읍성   *이 글의 내용은 빨간 글씨 부분입니다.

 

 

 

▶ 남연군묘-조선왕조의 문을 닫은 명당?

 

  '二代天子之地'라는 남연군묘는 실제로 후손 중에 황제 둘을 배출했다. 하지만 그 두 황제가 조선왕조의 문을 닫았으니 과연 명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라가 어찌 되었든 개인적으로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면 명당일 수도 있겠다. 두 황제는 개인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았을테니까. 하지만 이 자리는 결코 명당이 아니다. 왕가의 몰락 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게 빼앗겼으니 명당은 커녕 심각한 흉당이 아니고 무엇일까? 결국 '음택 명당'은 허구라는 뜻이다. 조상의 기(氣)가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은 이미 조선시대 여러 실학자들에게 맹렬하게 비판을 받았다.

  명당은 겨울이 혹독하고 여름철 홍수가 심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전통 지리사상이다. 따라서 매우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묘자리를 잡는 음택 풍수가 성행하면서 과학성을 상실하고 도참사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곳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명당이란?-가야산 남연군묘 http://blog.daum.net/lovegeo/6780144

 

<요즘 아이들의 독특한 공통점은 날파리나 거미 같은 벌레를 엄청나게 무서워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뱀같은 파충류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많다. 남연군묘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파리가 좀 날아다니자 이리저리 장소를 찾아 다니더니 결국 길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바로 날파리 때문에^^>

 

<남연군묘 비석이 묘지 아래쪽에 있다>

 

<남연군묘로 올라가는 길>

 

<남연군묘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원효봉이 멀리 보인다>

 

▶ 남은들 상여

 

<상여를 복원해서 전시했는데 두툼한 쇠창살 때문에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갖혀있는 것 같다>

 

▶ 부수입^^

 

<묘 아래에 있는 밭에 이런 나무를 심었다. 오가피나무인데 열매보다는 줄기를 쓰는 나무라서 열매는 낯설다>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탈곡을 해서 바로 자동차에 싣는다. 쌀자루도 필요없고 들어 옮기는 수고도 필요없다>

 

<주차장에 내포문화숲길 안내판이 붙어 있다>

 

 

▶ 봉림리 한산이씨 종족촌락-불천지위가 있는 명문가

 

  한산이씨의 본관 '한산(韓山)'은 충남 서천이다. 고려말의 충신 목은 이색이 이 가문 출신이며 조선시대에도 토정 이지함, 아계 이산해, 명곡 이산보 등 유명한 사대부들을 많이 배출한 충청 우도 일대의 명문가이다. 그래서 한산이씨 종족촌락은 내포 일대에 여러 개가 있다. 이곳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독특한 점은 이의배라는 무신을 배출했고 옆 마을(사석리)로 거주지가 확대된 매우 번성한 마을이라는 점이다. 또한 부조묘와 독특한 형태의 신도비 등의 경관 요소가 잘 갖춰진 종족촌락이다. 

  병자호란 때 전사한 이의배의 묘 앞에 서있는 신도비는 규모가 상당히 크며 다른 신도비와는 달리 지붕이 이수(螭首)이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전각 안에 신도비가 들어있다. 또한 이전(李甸)의 부조묘가 있는 점도 독특하다. 부조묘(不祧廟)란 불천위(不遷位) 신주를 둔 사당이다. 사당에 안치된 신주는 원래 4대가 지나면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가례이다. 하지만 특별히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4대가 넘어도 옮기지 않고 기제사를 지낼 수 있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임금의 허락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부조묘, 또는 불천지위는 흔하지 않으며, 종족촌락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급 경관이다.

 

<충장공 이의배 신도비>

 

<문열공 이전 부조묘>

 

▶ 철학과 사상의 관성은 1백 년을 간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과 철학은 그 관성이 거의 1백여 년을 간다고 한다. 성리학은 조선시대 내내 사회를 지배한 철학이며 종교였다. 따라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이 패망한지 10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상과 철학의 중심점에서는 이미 그 의미가 상실되었더라도 오히려 주변지역으로 파급되어 오랫동안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산군 일대에서는 최근 새롭게 조성된 재실이나 사당 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뒤늦게 종족촌락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런 경관들을 조성하게 된 것은 그 예이다. 일종의 유행처럼 각 종족촌락으로 퍼져 나갔는데 봉림리는 기존의 경관을 확대, 재구성한 예이다.  

 

<최근에 후손들이 세운 부조묘 안내 비석>

 

<문열공묘 비석 역시 근래에 후손들이 세웠다>

 

 

▶ 서산 마애삼존불

 

☞ 마애삼존불상이 거기에 있는 이유  http://blog.daum.net/lovegeo/6779835

 

<출발점에서 바라본 가야산 마애삼존불 인근>

 

<주변이 모두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존불상이 조성되어 있는 화강암괴>

 

<마애삼존불>

 

 

▶ 해미읍성-꽃단장을 한 해미

 

  해미읍성이 꽃단장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게 되면서 읍성 뿐만이 아니라 해미면 전체가 꽃단장을 한 느낌이다. 체험과 학습 중심의 여행문화도 해미읍성의 인기가 높아지는 원인이 되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순교 성지라는 특징이 결합되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된 것도 인기가 높은 또 다른 원인이다. 이날은 마침 무슨 축제 행사가 있어서 사람이 더욱 많았다. 내부에 향토 농산물들을 파는 시장까지 개설되어 있어서 북적거렸다.

 

<꽃단장을 한 해미읍성 입구>

 

<조각상처럼 서있는 수문장. 이젠 흔한 풍경이 되어서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까?>

 

<천주교도들을 묶어놓고 고문을 했다는 회화나무. 나무는 아픔을 기억하고 있을까?>

 

<연들이 어지러이 하늘을 날고 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화분을 나무 둘레에 둥그렇게 세워 놓았다. 참 좋은 아이디어다>

 

<객사와 안채>

 

<안채 건물이 소박하다>

 

<읍성 인근의 건물들을 정비하고 음식점들을 모아놓아 깔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