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광덕산

예안이씨 진사공파 선산

Geotopia 2015. 1. 11. 12:26

  광덕산 북록은 예안이씨 진사공파의 사유지이다. 정확히 어느 시기에 어떤 연유로 이 땅이 예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외암리가 종족촌락으로 융성하는 데 있어 중심 인물인 외암 이간(1677~1727)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 마을은 예안이씨가 주로 살고 있었는데 입향조(이사종, 조선 명종 때)가 처가인 평택진씨 마을에 들어온 것이 시초였다. 따라서 입향과 동시에 이미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간이 생존했을 당시에도 이미 강당골에 강당사를 짓고 학문을 논했던 것으로 보아 이간 이전부터 이 일대의 토지를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산지는 조선시대 당시 논이나 밭에 비해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은 토지였기 때문에 종족촌락에서 사유화한 것은 농지에 비해 더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 개인이 농지를 사유하는 방법은 왕으로부터 사급을 받거나, 아니면 개간의 형태로 소유(임진왜란 이후)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로 가면서 국가 소유 원칙의 토지제도가 붕괴하면서 토지의 사유가 확대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왕실과 척족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권세가로 확대되었다. 이간의 관직은 정5품(익위)직에 불과했지만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이후 여러 명의 관료가 이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정치적 지위와 토지 소유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와 관련된 토지 소유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간과 관련하여 토지가 사급된 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는 것도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예안이씨 종회에서 세운 안내판>

 

☞ 예안이씨 종족촌락 외암리  http://blog.daum.net/lovegeo/6780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