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낙남정맥은 없다

Geotopia 2015. 1. 2. 12:36

▶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구요?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산경(山經), 즉 분수계의 개념으로 산을 파악했던 우리의 전통적 지리인식체계에 바탕을 둔 명제이다. 물줄기를 나누는(分水) 것이 산줄이이므로 물이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의 아버지 백두산은 이 땅의 모든 산과 이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에서 출발하면 한 번도 냇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에 이를 수 있다. 백두대간 준령에 있는 산이 아니어도, 전국 어디에 있는 야산이라도 모두 그렇다. 이 역시 산경 개념에서 나온 명제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다. 섬이 아닌 이상 이 땅의 모든 산줄기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이 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이 산을 넘지 못하니까 반대로 모든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서로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땅의 모든 산은 봉서산(천안 시내에 있는 산)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은 한반도를 넘어서 아시아 대륙으로 확대해 봐도 마찬가지다. 섬이 아닌 이상은 독립된 산줄기가 발달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아래의 두 지도 가운데 산경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강을 피해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경도와 산맥도

 

진달래가 좋은가, 빈대떡이 좋은가?

진달래가 좋은가? 빈대떡이 좋은가? 우리나라의 산지 인식체계는 산경의 개념과 산맥의 개념,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산경도는 산줄기의 이음, 즉 분수계를 강조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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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진짜로 물은 산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구요?

  

  아닐 때도 있다(아~주 특수한 예이지만)

  산이 물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물이 산을 넘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제(2015.1.1) 처음 알았다. 그것도 우연히.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팔자에 없는(?) 경상도 진주라는 도시를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작년 10월 이래로 벌써 네 번째이니 '자주'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직접 가는 버스도 없고 기차는 뱅뱅 돌아서 다섯 시간도 더 걸리는, 우리 동네와는 심리적 거리가 매우 먼 지역이다. 당연히 가 본 적이 별로 없다. 여태까지 두어 번 가 보았던가? 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것저것 지리학도의 눈길을 끄는 것이 의외로 많다.

 

  남강댐, 백악기 퇴적층, 녹차밭 등등의 사진을 찍어왔는데 사진을 정리하느라 자료를 찾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무엇인고 하니, 남강댐으로 흘러드는 지류 가운데 하나인 가화천이라는 냇물이다. 남강은 낙동강의 지류지만 남해안과 상당히 가깝게 흐른다. 그러니까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자잘한 하천들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남해안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동해안 만큼은 아니지만 남해안도 경동성 요곡운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수계가 어디쯤일까 궁금해서 지도에서 가화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봤다.

 

  앗! 그런데…

  분수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남쪽으로 하천이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하천의 폭이 점점 넓어진다. 급기야는 사천만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가화천은 진양호로 유입하는 남강의 지류가 아니라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인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엄연히 본류가 남강댐을 거쳐서 진주 시내를 관통하여 낙동강으로 빠져 나가는데…

  지도를 보다가 처음엔 인터넷 지도의 오류려니 했다. 그래서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보니, 

  헐~ 

  분명히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진양호의 물이 직접 사천만으로 빠져나간다.  *원도: 국토지리정보원>

 

  생각해보니 어제 2번국도를 타고 지나가는데 아내가 차창 밖을 가리키면서 저게 뭐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흘낏보니 커다란 수문이 진양호쪽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분명 남강댐은 아닌데 무얼까?' 얘기하고 넘어갔었는데 지도를 보니 그것이 진양호와 가화천이 만나는 부분에 설치된 수문이었던 것이다. 

  이건 뭔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어떤 하천이든 상류에는 지류가 있어도 하류로 지류는 없는 법이다. 삼각주처럼 하구에 퇴적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본류가 갈라지는 경우는 있지만 여기처럼 상류지역에서 멀쩡한 산을 넘어 직접 바다로 유입하는 분류가 발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잘 드러난다. 산경도에서 낙남정맥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줄기가 대동여지도에는 잘 표현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까지 내려온 백두대간이 천왕봉부터 약간 기세를 낮추면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데 이 산줄기가 바로 낙남정맥이다.

 

 

<낙남(落南)정맥(빨간선)  *원도: 대동여지도>

 

▶ 낙남정맥(落南正脈)은 없다

 

  그렇다면 낙남정맥이 절단이 된 것이다. 그리고 가화천 동쪽 부분은 어떻게 해도 물을 건너지 않고는 백두산에 도달할 수 없는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쪽, 또는 북쪽으로 낙동강을 넘거나 아니면 서쪽으로 가화천을 넘어야 하므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알고보니 사람이 한 일이다.

  그러면 그렇지…

  자연 상태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으므로.

 

  자초지종은 이렇다.

 

  1969년에 남강댐이 건설되었다. 남강댐 건설 전에는 낙남정맥을 분수계로 현재 가화천의 북쪽은 낙동강 수계(덕천강)으로 유입하고 있었고 남쪽 부분은 사천만으로 유입하고 있었다. 그 경계선, 즉 낙남정맥은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유수교 남쪽을 지나고 있었다. 지형도를 통해 추정해 보면 이 부근인데 실제로 좁은 직선상의 유로와 노출된 퇴적암 노두, 그리고 서쪽의 콘크리트 피복 등을 통해 이 부근이 절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남정맥은 원래 유수교 남쪽으로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도: 국토지리정보원>

 

 

<유수교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가화천. 직선상의 유로와 콘크리트 피복, 퇴적층 노두 등을 통해 절단면임을 알 수 있다. *자료: Daum 로드뷰>

 

  이곳을 절단한 이유는 진양호의 수위가 올라갈 때 수위 조절을 위한 방수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분수계 북쪽에 해당하던 원래의 낙동강 수계는 남강댐 건설과 함께 수위가 올라가 거의 분수계 높이에 육박하게 되었으므로 분수계 부분을 잘라 고도를 약간 만 낮추면 고 수위 때 물이 분수계를 넘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낙동강 하구까지 연결되었던 낙남정맥은 이곳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 낙남정맥의 거의 대부분이 백두산에 도달할 수 없는 미아 신세가 된 것이다.

 

 

 

 

▶ 유로 변경의 영향

 

  그 여파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낙남정맥이 끊겼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 뿐으로 피부로 거의 느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적지 않다.

  첫째는 사천만으로 유입하는 담수의 양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하천이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댐 방류수까지 가세를 하게 되었으니 유입량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사천만 연안 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둘째, 유량이 증가하면 하천의 침식력도 증가한다. 과거보다 하방 침식력이 증가하며 중상류 지역에서는 하상의 높이가 낮아진다. 실제로 침식력이 증가하면서 새롭게 퇴적층이 드러나게 되었고 백악기 공룡 화석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침식력의 증가와 관련하여 하천에서 연안으로 공급되는 물질의 양도 늘어난다. 이는 연안 퇴적지형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우연히 이런 에피소드 거리를 발견하는 것은 지리학도로서 소소한 즐거움이다. 다음 주에 아들이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진주를 떠나니 내가 또 다시 진주에 오려면 큰 맘을 먹어야만 한다. 하지만 기회를 만들어서 가화천 유로를 답사해 보고 싶다. 이 글의 완성은 그 때로 미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