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가장 긴 역사 이름을 갖고 있는 '천안-아산역(온양온천)'>
수 많은 우리나라의 기차 역사 가운데 혹시 어디에 더 긴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역이 바로 우리 지역의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다. 전철역 중에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이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뒤져보고 알았다. 전철역까지 다 치자면 한 글자 더 있는 역이 있는 셈이긴 하다.
이런 긴 이름은 왜 생겼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무엇보다 천안-아산역이 갖고 있는 절묘한 지리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지도 참조). 평범한 상태로 이어지던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선이 천안-아산역에 이르면 갑자기 천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와 있다. 하필 그 자리에 역사가 들어서면서 이런 긴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원래 계획된 이름은 천안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아산시에 해당하므로 아산의 입장에서는 '천안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선을 설정할 당시에는 가장 빠르고 공사가 수월한 노선을 선택했을 것이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역사의 위치를 결정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구체적인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산의 택시업계였다고 한다. 택시 영업권과 관련한 문제 제기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름을 '천안'으로 쓸 경우 외지인들이 천안 택시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영업권이야 행정구역으로 정확히 구분되는 것이므로 역사 이름이 어떻게 지어지든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호출은 승객들이 결정하므로 역사 이름이 무엇이냐가 크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천안역일 경우에는 천안 택시를 호출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표면화하고 결국 '천안-아산역'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손해와 이익'이라는 판단 기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천안의 인구가 많으므로 당연히 천안이 많다. 더욱이 천안-아산역은 아산 시내로부터는 약 9km, 천안시 중심부로부터는 약 4km정도 떨어져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천안역'으로 지을 수는 없지만 이용객들의 편의, 특히 다른 지역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승객들의 편의를 고려한다면 지명도가 높은 '천안'을 쓰는 것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이름'에 집착하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사고방식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경계에 있는 시설들(다리나 터널 등은 지형 장벽을 건너는 시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상 경계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다)의 이름을 붙일 때 두 지역의 첫 글자를 따서 짓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서로 자신의 이름을 고집하다가 둘 중에 어느 것도 아닌 의미없는 이름이 창조되는 것이다.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라는 긴 이름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온양온천을 알리고 싶은 주민들의 요구도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지역들이 유명 관광자원이나 산업시설 등을 이름으로 쓰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장항선의 삽교역이 한 때 수덕사역이었던 적이 있었다. 수덕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수덕사를 찾는 관광객들은 홍성이나 예산을 거쳐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혼란만을 초래하다가 결국 삽교역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온양온천도 사실상 천안아산역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실제로 온양온천을 가기 위해 KTX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승차권을 예매하기 위해 역이름을 검색해보면 '천안아산'만 나온다. '온양온천'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통하여 관광 수요를 늘리고자 했던 의도는 전혀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냥 우리 지역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자족만 하고 있는 셈이다.
이름은 일종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름은 문장이 아니라 상징적인 낱말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름에 모든 것을 담고자 하는 욕심으로 긴 이름을 지으면 오히려 중구난방이 되어 그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이름을 놓고 명분 싸움을 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소모적인 지역감정만을 촉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름을 계기로 지역 통합 등을 논의한다면 발전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천안과 아산의 통합 논의가 간간이 나온다. 대체로 지역의 입장이 강하게 개입된 '손-익 논쟁'이 대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손익 논쟁이 아니라 '옳고 그름', '의미의 유무'를 따지는 논쟁이 되어야 윈윈할 수 있다. '손-익 논쟁'의 결말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해 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지방자치의 성장 등으로 광역자치단체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감정 등 소모적인 다툼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굳이 중앙정부와 기초자치단체 사이에 광역자치단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기계 장치도 인터페이스가 적어야 효율적이듯이 행정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을 고려한다면 중앙정부와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을 장차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현재의 기초자치단체를 직접 관할하기에는 규모도 작고 숫자도 지나치게 많아 효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광역자치단체보다는 작고 기존의 기초자치단체보다는 큰 행정구역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천안과 아산은 통합을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많지 않은 도시들 가운데 하나의 좋은 사례이다. '이름'을 건 분리적 논쟁을 넘어 통합이라는 거시적 논의를 해볼 때이다.
<호수공원 건너편에서 바라본 천안-아산역>
<지산공원에서 바라본 천안-아산역( KTX)과 아산역(장항선). 장항선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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