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운하로 연결하여 삼남의 세곡 운송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시도가 고려시대 이후 여러차례 있었다. 태안반도 외곽의 서해안은 외해로 돌출되어 있어 풍랑이 심하고 더욱이 왜구의 출몰이 잦아서 약탈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구간에는 가야산-서산팔봉산-태안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대보화강암 암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로는 굴착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러차례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조선 인조 때 태안반도의 중간 부분을 굴착하여 천수만으로 배가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안면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진은 서산시 팔봉산에서 태안반도 방향으로 찍은 것으로 사진의 오른쪽이 가로림만이고 왼쪽이 천수만이다. 과거에 굴착했던 곳은 지금도 고도가 낮고 평평하기 때문에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팔봉산에서 바라본 굴포운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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