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하노이 文廟(Van Mieu)-베트남 유교문화의 상징

Geotopia 2012. 11. 24. 00:18

  동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여러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유교문화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3국의 유교문화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유교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대표적인 공통점이 분명하다.

  그런데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문화의 전통이 남아있는 나라는 한중일 외에도 한 나라가 더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중국 남쪽에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베트남도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으로 유교가 전래되었던 것이다. 베트남 유교문화의 전통은 하노이의 文廟(Van Mieu)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뜻하는 문묘는 유교문화권의 대표적인 상징경관이다. 용어도 똑같이 '文廟'로 쓰는데 베트남어로는 'Van Mieu'에 가깝게 발음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몇 곳에 문묘가 있는데 성균관이 대표적이며 향교와 서원에도 '대성전'을 설치하여 공자의 신위를 제향하였다.

 

<Van Mieu 정문>

 

  文廟의 정문에는 '文廟門'이라는 한자(漢字) 현판이 걸려 있는데 베트남이 한자 문화권이었음을 의미하는 경관이다. 지금은 프랑스어를 변형한 문자를 쓰고 있지만 베트남어의 뿌리는 한자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하노이(HàNội)는 한자로 河內에서 온 이름이다. 옛 이름이 용이 승천했다는 의미의 탕롱(昇龍)인 하노이는 실제로 홍강과 두옹강이 갈라지는 곳에 위치하므로 두 하천(河)의 안쪽(內)에 있다.

  문묘는 전통적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명한 유학자를 제향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최고교육기관으로서 수많은 학자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늘날 문묘는 하노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유산이다.

 

<문묘 전체 모형도>

 

  문묘는 모두 다섯 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정원들은 모두 4각형 형태이며 각 정원은 작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문을 지나면 입구 정원이 나오는데 특별한 건축물이 없는 정원이다. 두번째 정원은 가운데에 연못이 있고 양 옆에 작은 전각이 있다. 세 번 째 정원은 양 옆으로 82개의 비석이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비석들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새겨 놓은 것으로 '진사제명비'라고 한다. 네 번 째 정원은 공자와 그 제자들을 제향한 대성전이다. 마지막은 Thai Hoc 정원이다. 

 

<두번째 정원의 연못>

 

<1484-1780 과거시험 합격자들의 명단을 적어 놓은 82개의 비석(진사비)>

 

  과거 합격자들의 명단을 새겨놓은 진사제명비는 거북등 위에 비석을 얹은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조까지 성행했던 비석 양식이다. 또한 초시(初試)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진사(進士)의 칭호를 주었던 우리나라의 과거제도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 철이 되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고득점을 기원하는 풍습도 우리와 많이 닮아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이곳으로 몰려 들어 거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한다.

 

<네 번 째 정원의 대성전> 

 

  文廟의 가장 안쪽에 있는 다섯 번 째 정원인 Thai Hoc(太學)은 과거 Quoc Tu Giam(國子監)터에 세워진 것으로 탕롱 정도(定都) 990주년을 기념하고 베트남의 문화와 교육의 전통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은 전후좌우 건물과 종각(鐘閣), 북각(鼓閣)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재료는 경질(硬質)의 열대몬순림을 이용하였다. 건축물의 모습이 팔작지붕이나 끝이 들려 올라간 치미 등 낯이 익어서 동아시아와의 문화적 공통성을 엿볼 수 있다.

  전면의 건물은 과학,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이며 후면의 건물은 유학과 관련한 전시 및 선현 제향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타이혹-북각과 함께 文廟 주변의 민가들이 보인다>

 

<Thai Hoc의 Quoc Tu Giam 건물>

 

  후면 건물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베트남의 유교와 관련된 내용 및 文廟와 國子監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은 유학과 관련된 중요 인물 네 명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베트남 유학과 관련된 인물은 세 명의 왕과 한 명의 학자인데 나무로 만든 조상이 있고 그 위에 각각 뜻을 달리하는 한자 현판이 붙어 있다. 첫 번째 인물은 Ly Thanh Tong왕(李聖宗, 1023~1072)으로 1070년에 文廟를 세운 인물이다. 그 다음은 1076년에 國子監(국립대학)을 세운 Ly Nhan Tong왕(李仁宗, 1066~1127)이며 세 번째는 Le Thanh Tong왕(黎聖宗, 1442~1497)으로 1484년 박사비석을 세웠다. 나머지 한 사람은 국자감 책임자였던 Chu Van An(朱文安, 1292~1370)으로 1370년 이래로 문묘에 제향되어 추앙을 받고 있다.

 

<유학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조상 위에 한자 현판이 붙어 있다>


<종각>

 

<북각>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전통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도시이다.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 이어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전쟁 등 오랜 전쟁 때문이다. 하노이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다른 지역들도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대부분 복원한 건물들이지만 이곳 문묘는 하노이에서 유일하게 전통건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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