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령~곡두재

마지막 이야기: 장고개~차령

Geotopia 2012. 11. 17. 21:12

▶ 내용

  - 장고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통과한 이유

  -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 빚을 갚은 승규

  - 길이 없어도 간다

  - 또 다시 길을 잃다

  - 철탑이 금북을 타는 이유

  - 잘못 되었어도 리본은 무죄

  - 내리막에도 오르막이 있다

  - 사라진 인제원고개

  - 프린세스골프장

  - 임도가 관통하는 봉수산

  - 많은 해석이 필요한 봉수산 안내문

  - 바위와 나무의 싸움

  - 못 가본 곳 망배단

  - 차령의 대나무

  - 차령휴게소의 부활을 기원함

  - 다음 답사지는?

 

▶ 경로

<*Google 위성영상(편집)>

 

<장고개~차령휴게소 구간>

 

▶ 장고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통과한 이유

 

   그 유명한(?) 장고개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통과한 것은 그곳의 지형적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 장고개는 지형도 상으로 볼 때 해발 290m 등고선과 300m 등고선 사이에 위치한다. 그런데 고개 시작 지점의 300m 등고선과 고개 종료 지점의 300m 등고선 사이의 거리가 50여m에 이른다. 이 구간은 완전 평지는 아니지만 다른 고개처럼 한 부분만 낮아서 능선의 양쪽을 연결하는 고갯길인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낮은 부분이 상당한 거리 동안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고갯길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만약 지금도 통행량이 많은 고개라면 사람이 통행한 자취가 잘 남아 있겠지만 지금은 거의 통행이 없는 고개이다 보니 사람의 자취를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고 통과하고 만 것이다.

 

<장고개 지형도  *원도: Daum지도>

 

▶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장고개가 있는 긴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다가 잠깐 숨을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뒤에 오는 후배들을 잠시 기다렸지만 기척이 보이질 않는다. 옮겨간 무덤 자리 앞에 단풍나무 한 그루가 한 낮의 햇살을 받아 천연의 선홍색을 자랑한다. 연출되지 않은 날것의 자연 앞에서 요리조리 앵글을 돌려봐도 화면이 영 예쁘질 않다. 이런 장면은 사진이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실력의 한계를 의미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장 빛이 아름다운 순간을 찾아 여행하는 이른바 '출사' 여행은 내 구미에 맞지 않는다. 대신에 내 여행은 대부분 이런 한 낮의 여행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이런 한 낮의 빛을 잘 잡아내는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더 많이 연구하고 경험을 해야 할텐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이번에도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내 카메라로 들어와 흔한 단풍으로 전락한…>

 

▶ 빚을 갚은 승규

 

  20여 분 정도 오르막을 오르니 약간의 평지가 나온다.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는데 이게 또 헷갈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지도는 안 나오지만 내 GPS는 그쪽은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알려준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그 길은 태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로 가면 420m 정도의 작은 봉우리가 나오고 그 봉우리를 넘어 계속 능선을 타고 가면 태봉산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곳은 금북정맥에서 북쪽으로 작은 지맥이 갈라지는 자리인 셈이다. 후배들과 많이 떨어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길도 헷갈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후배들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나무 사이로 겨우 산을 하나 볼 수 있는데 대략 방향은 동북쪽이다. 우리가 갈 길이 맞다면 거기가 거의 마지막 봉우리 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산도 나중에 확인해 보니 태봉산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갈 길은 이곳에서 거의 동쪽 방향이고 그곳에 해발 430여m의 봉우리가 있으며, 또한 마지막 봉우리도 아니다.

  산 속이라서 그런지 후배들에게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질 않는다. 한 동안 기다리다 보니 인기척이 들린다. 절뚝거리는 성환이와 그를 에스코트 하는 승규가 모습을 나타낸다. 절뚝 거리는 이유는 허벅지에 쥐가 났기 때문이다. 쥐가 난 다리를 푸느라고 오랫동안 움직이질 못했으니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아리에 쥐가 난 적은 있어도 허벅지에 쥐가 나기는 처음이란다. 

 

  "성환이 덕분에 헬기 타는 것 아닌가 걱정했어요"

 

  듣고 보니 그랬을 것 같다. 그 덩치를 업고 올 수도 없고 쥐가 난 허벅지가 풀리기를 마냥 기다리면서 어찌 오만가지 생각이 없었겠는가. 작년 한성부 성곽 답사 때는 승규를 에스코트 했던 것이 성환이 였으니 이제 빚 갚은 셈이 되었다고 정리를 해줬다.

 

<후배들 기다리면서-나무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태봉산>

 

▶ 길이 없어도 간다

 

  어쨌든 다시 출발. 성환이는 쥐가 난 다리를 이끌고도 잘 따라 온다. 쥐가 난 덕분에 멋진 하늘 구경을 많이 했단다. 쥐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땅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가 하늘을 보게 된 것이었다. 신선이 따로 없더란다. 그 와중에도 신선의 경지를 느꼈으니 대단한 고수다.

  작은 내리막을 잠깐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 동안 올라가다 보니 임도가 나온다. 북쪽에서 올라오는 이 임도는 옛날 23번 국도변에 있는 음식점 '자연누리성' 뒷쪽으로 올라오는 길과 연결이 된다. 이 임도는 금북정맥 등산로와 만나는 부분에서 거의 끝이 난다. '거의' 끝이 난다고 한 이유는 그 이후로도 이어지기는 하지만 아까 봤던 사용하지 않아서 식생이 복원되고 있는 임도 처럼 이 임도도 이 부분에서 부터는 식생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 따르면 이 임도는 계속 이어져서 430봉우리 정상 부근의 송전탑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임도 때문에 등산로가 끊겨 있고 끊긴 부분이 약간 높아서 올라가기가 좀 불편하다. 무언가를 붙잡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주변을 살피는데 승규가 식생이 자라기 시작한 임도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있다. 하지만 곧 그 길이 끝이 난다. 능선이 임도의 왼쪽으로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능선을 보고 올라가면 된다며 승규가 앞서서 숲을 헤치고 가는데 길이 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낙엽이 거의 떨어진 숲이라서 장애물이 별로 없는 듯이 보였지만 실제로 숲을 헤치고 가다보니 생각보다 걸리는 것이 많다. 다행스럽게 길을 잃지 않고 가시밭길을 헤치고 능선에 올라섰다. 이곳부터는 능선의 방향이 완전히 동쪽으로 바뀐다.

 

<길이 없는 언덕>

 

▶ 또 다시 길을 잃다

 

  동쪽으로 약간 내려가면 440봉우리가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약간 고도가 낮은 430봉이 나오는데 그곳에 또 하나의 갈림길이 있다. 그런데 갈림길의 양쪽에 모두 길안내 표지 리본이 붙어 있다. 이건 뭘까? 우린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후배들은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아 탐색을 해 보기로 했다. 후배들이 길이 있다고 소리를 지른다. 갈림길의 왼쪽에 있는 길 안내 표지 하나를 떼어 가지고 오른쪽 길로 돌아왔다. 만약에 틀린 길안내 표지라면 옮겨 달 생각으로. 내려가 보니 커다란 고압선 철탑이 나타난다. 아까 봤던 폐기된 임도의 끝과 연결되는 철탑이다. 그러데 앞서 갔던 후배들이 길이 없다고 되돌아 온다. 지도로 확인해 보면 이 길은 프린세스골프장에서 끝이 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와 골프장이 생기기 전에는 인풍리로 이어지는 등산로 였으나 지금은 활용이 안 되는 길인 것 같다. 떼어 온 길안내 표지를 도로 묶어 놓았다.

  430봉우리를 지나면 다시 내리막 길이다. 내리막을 내려오다 보니 옆 계곡의 끝 부분에 아직도 형태가 멀쩡한 야외용 식탁과 술병 등 잡다한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벌목하는 사람들이 작업할 때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였다. 잠깐 내려가서 사진을 한 장 찍을까 하다가 갈 길이 멀어서 그만 두었다.

  또 하나의 작은 안부를 지나면 해발 410m 정도의 작은 봉우리를 만난다. 이 봉우리에서는 오늘 우리 루트의 마지막 봉우리인 봉수산이 멀리 동쪽으로 보인다.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과 합쳐지면서 약간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능선 옆 계곡의 나무들이 오후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410봉우리에서 바라본 봉수산. 바로 앞에 있는 철탑이 우리가 잘못 갔던 곳이다>

 

  능선을 따라 300여m를 내려가니 또 고압선 송전탑이 나온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뒤따라 가보니 한참 내려갔을 줄 알았던 일행들이 숲속에서 모두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먼저 갈 줄 알고 좀 여유있게 사진을 찍었는데 미안하게도… 다시 출발. 그런데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참나무 낙엽이 가득 쌓여 있는 등산로의 자취가 점점 옅어 지더니 급기야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GPS의 방향을 보니 이런! 다음 목적지가 대략 동북동 방향인데 우린 남동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순간 성환이 표정을 살피게 된다. 왜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지… 어쩔 수 없다. 돌아가야지. 자잘하게 길을 놓쳤던 것 두 번은 빼고 초반에 440봉우리에서 길을 잃었던 것에 이어 두 번 째인데 이번엔 훨씬 더 많은 거리를 벗어났다. 나의 손목GPS라는 것이 그래도 길을 벗어났을 때 벗어났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역할을 하기는 하는데 벗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화면이 작아서 지도를 디스플레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보조 LCD창을 별도로 제공해서 필요할 때 연결해서 지도를 디스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앓느니 죽는다고 그럴바엔 큰 GPS를 사는 것이 나을까?

 

<진행방향 쪽. 봉수산 서쪽 능선이 보인다>

 

▶ 철탑이 금북을 타는 이유

 

  철탑에서 진행방향 쪽으로는 봉수산 자락에 있는 철탑이 보이고 지나온 쪽으로는 좀 전에 430봉에서 잠깐 잘못 들어갔던 철탑이 보인다. 이 고압선은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한국동서발전(주) 당진화력본부(흔히 당진화력발전소라고 부른다)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의 변전소로 연결된다. 예전에 큰아들과 함께 국사봉(천안시 광덕면 원덕리와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 그리고 공주시 정안면 사현리 사이에 있는 산)에 갔을 때 만났던 그 철탑이나 작은 아들이 공부하던 경기도 안성의 학원 뒷산으로 지나는 고압선이 바로 이 고압선의 연장선에 있다. 그 때 알았더라면 철탑 밑에서 기라도 흘려 보내줄걸…

  150km가 넘는 구간 가운데 봉수산(예산군 대술면과 아산시 송악면 사이에 있는) 구간에서 국사봉까지는 금북정맥과 거의 나란히 지나간다. 정맥의 한가운데에 철탑이 서 있는 곳도 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를 운반하는 시설이지만 일제가 혈처에 박았다는 쇠말뚝은 상대도 안되는 거대한 쇠말뚝이 곳곳에 박혀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거대한 시설물을 설치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산을 깎아서 도로를 개설해야만 한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비용도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 일종의 필요악인 셈인데 좀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37만 몇 천 볼트(나는 들었지만 기억이 안난다) 짜리 고압선이라고 성환이가 알려준다. 쥐가 나서 절뚝 거리는 와중에도 그걸 보고 외워두었다니 대단한 탐구욕이다. 어쨌든 이 정도의 고압선이면 당연히 주변에 마을이 있을 경우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런 산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직선거리로는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 70km 정도에 불과한데도 그 두 배가 넘는 길을 돌아서 가는 이유도 아마 이런 민원의 소지 때문일 것이다.

 

<반대쪽. 좀 전에 잘못 들어갔던 길에 있던 송전탑>

 

 

▶ 잘못 되었어도 리본은 무죄

 

  긴 다리의 체력맨 해원이가 성큼성큼 앞서서 되돌아 가는 경사로를 오른다. 아까 봤던 반짝이는 나뭇잎이 아까처럼 아름답지 않다. 가지 않았어도 되는 오르막을 다시 오르려니 흥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시간이 어느 덧 오후 세 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잘못 내려온 길을 올라가는 해원>

 

  길을 되짚어 올라보니 420봉에서 갈림길이 있었다. 멀쩡하게 리본도 붙어 있는데 그 쪽은 왜 못 봤던 것일까? 하긴 잘못 갔던 길에도 리본이 붙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이런 실수를 해서 이런 힘겨운 다리품을 팔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경로로 산을 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잘못 들었던 경로를 이용해 산을 오르내릴 것이다. 따라서 리본은 무죄이다. 다만 이미 리본이 붙어 있는 자리에 덕지덕지 덧붙이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

  해원이가 뽑아 온 인쇄물에 이 구간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을 놓고 비교해 보니 정확히 이곳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선답자는 우리와는 반대쪽, 즉 차령에서 올라오면서 경로를 안내해 놨기 때문에 엄청나게 자세한 안내임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볼 수도 있는 장소가 꽤 있다. 즉, 모두 지나고 나서 되돌아 봐야만 확인이 되는 사진인 것이다.

 

<420봉 앞에서 선답자가 찍은 곳을 똑같이 찍어봄. 우리가 길을 잃었던 곳은 사진의 뒷쪽, 즉 이곳에 이르기 전이다>

 

▶ 내리막에도 오르막이 있다?

 

  다시 내리막이다. 이 내리막의 끝에 오늘의 마지막 고개인 인제원고개가 있고 그 다음의 봉수산을 넘으면 목적지인 차령이다. 내려가다 보니 신령스럽게 생긴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밑에서 부터 여러 줄기가 올라간 이 나무는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러 나무가 연리지처럼 합쳐진 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잎은 느티나무 같은데 줄기는 매끈한 것이 어떻게 보면 느티나무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우리 중에는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

 

<420봉 아래에 있는 신령스런 느티나무>

 

  내리막이지만 작은 봉우리들을 여러 개 거쳐야만 한다. 모든 능선길이 사실은 그렇다. 전체적으로 내리막이라고 해도 그냥 내리막인 능선은 없는데 금북정맥의 이 구간은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광덕산 강당골 코스를 가다보면 철마봉에서 잠깐 내려가는 구간이 있는데 광덕산을 많이 가보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이 구간에 불만이 많다. 다시 올라갈 것이 뻔한데 내려가니 애써 올라온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길을 즐길 만큼 되었지만 사실은 나도 처음엔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젠 이런 굴곡들이 그러니라 싶다. 과거에 비해 체력이 향상되었을리는 없고 경험이 좀 더 축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제원고개 직전의 작은 봉우리>

 

▶ 사라진 인제원고개

 

  인제원고개로 내려가는 내리막 직전에 작은 봉우리가 있다. 그 작은 봉우리를 넘어 인제원 고개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그러니까 북쪽으로는 광덕면 원덕리 태봉산 자락의 작은 마을이 보이고 반대쪽은 프린세스골프장이다. 골프장 때문에 이젠 통행이 불가능해진 인제원 고개엔 사유재산이니 무단출입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안내문'이라는 이름으로 붙어 있다. 한때 나는 대한민국 골프장 불가론자였지만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젠 전국 어디를 가도 골프장이 흔해 빠진 골프공화국이 되었다. 하천의 상류, 지형기복이 심한 곳에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의 골프장은 지형훼손이 불가피하다. 또한 춥고 긴 겨울과 덥고 비가 많은 여름이라는 기후 조건을 이기고 잔디를 키우기 위해서는 인간의 전폭적인 도움, 즉 농약과 비료의 사용도 불가피하다. 하천의 상류라는 것은 지형훼손 뿐만 아니라 수질오염도 동반하기 때문에 사실 골프장은 우리나라의 기후 및 지형 조건을 고려할 때 매우 반 환경적인 시설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간 한 곳에는 골프장이 없는 곳이 없을 만큼 골프 인구가 늘었으니 이젠 수질오염이나 지형훼손을 막는 건설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고개 아래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 마을 앞에 세워진 비문에는 인저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2014.12.7 촬영>

 

  그나저나 한 때 호남과 한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던 이곳이 골프장 때문에 이젠 완전히 끊겨 버렸으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미 차령으로 주요 교통로가 형성되었으므로 이 길이 다시 복원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역사 유적으로 보존하고 공부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골프장 출입 통제 안내문>

 

▶ 프린세스골프장

 

  인제원고개와 이어지는 안부는 해발 230~250m에 이르며 250m 이하인 곳의 거리는 약 350m 정도이다. 그러니까 해발 250m를 지나면 바로 인제원고개가 있고 그 다음부터 표고차 20m 안팎의 자잘한 봉우리와 안부가 350m 거리 안에서 반복되다가 봉수산 자락의 250m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350m 범위 내에서 가장 낮은 부분은 봉수산 자락의 임도이다. 이 도로 역시 고압선 철탑을 시설, 관리하기 위해 가설한 것으로 보이는데 봉수산에는 철탑이 세 개나 있어서 정상을 통과하지 않고 이 임도를 따라가도 금북정맥의 차령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여전히 절뚝거리고 있는 성환이와 에스코트맨 승규는 완만한 임도를 타고 가겠단다. 나는 그 임도가 우리의 경로와 만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워도 그냥 가자고 했지만 둘은 이미 임도를 따라 저만치 가 버린 후이다. 광덕산 임도를 생각하면 임도는 능선에 비해 경사는 완만하지만 거리는 훨씬 멀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개는 정상의 능선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다 이곳의 임도는 우리의 목적지인 봉수산의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임도에서 봉수산 자락으로 올라서니 바로 골프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조성되어 있는 골프장은 10월말인데도 짙은 녹색을 자랑하고 있다. 조성하기 전에는 그냥 야산이었을텐데 그 산을 깎아서 이런 평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그 설계하는 과정도 자못 궁금하다. 동쪽과 서쪽의 연결은 금북정맥 본줄기 쪽의 고속도로의 터널 부분에 만든 연결도로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봉수산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프린세스골프장 전경>

 

▶ 임도가 관통하는 봉수산

 

  봉수산 서쪽의 능선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또 하나의 철탑이 나온다. 이 철탑이 바로 아까 길을 잃었던 곳에서 보였던 철탑이다. 철탑을 지나면 바로 임도가 나오는데 임도를 따라 약간 내리막을 내려가니 앗! 승규와 성환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해원이가 출력해온 자료에는 봉수산 자락의 임도와 등산로가 여러 차례 연결이 된다는 사실이 나와 있었고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내 같이 움직여도 공유되지 않는 정보가 있으니 같은 나라에 살아도 전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진행 방향으로 봉수산 정상과 그 옆에 자리잡은 철탑이 보인다. 임도가 계속해서 봉수산 자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둘은 계속해서 임도를 타기로 하고 해원과 나는 정맥길을 타고 마지막 봉우리인 봉수산을 오른다.

 

<봉수산 정상과 그 옆의 철탑>

 

<임도에서 만난 매>

 

  봉수산 정상을 향해 능선을 오르다 보니 노출된 암석이 눈에 띈다. 코스 전체가 편마암 산지인 이 구간은 노출된 암석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암괴는 귀한 볼거리에 속한다. 편리 구조가 잘 드러나는 편마암이지만 모양은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다.

 

<봉수산 능선에 있는 암괴>

 

▶ 많은 해석이 필요한 봉수산 안내문

 

  해발 366m의 봉수산 정상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나무에 가려서 주변 경관을 볼 수가 없다. 봉수대(烽燧臺)는 시야 확보가 잘 되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상례이므로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 옛날에는 식생을 제거해서 주변이 잘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봉수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정상의 식생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다.

  정상에는 '쌍령산 봉수대'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산은 쌍령산이라고도 불리웠단 얘기가 된다. '쌍령'이라는 고개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생각되는데 쌍령이 인제원고개와 같은 고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까 본 것 처럼 봉수산과 그 너머 440봉 사이의 안부는 해발 250m 이하인 범위가 350m 정도이므로 고갯길이 복수로 발달했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안내판에 나와있는 '봉화산'은 또 뭔가? 그런 이름이 또 있었단 뜻인가, 아니면 '봉수산'의 오기인가? 게다가 '해발 324m'의 봉화산 정상'이라는 표현은 또 뭔가? 지형도에 따르면 분명히 봉수산 정상은 해발고도가 360m를 넘는다. 정맥꾼들이 붙여 놓은 사제 표지판은 봉수산의 높이를 정확히 표시해 놓았다. 이래서 관(官)은 민간의 전문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관의 안내 표지판 담당자는 그것이 업무일 뿐 관심분야 또는 전문분야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정해진 규정대로 일을 수행하면 그 뿐이다. 관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에 관은 전문가 집단을 잘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 전문가 집단을 잘 활용하기는 커녕 그 자발성을 억누르고 권력으로 통제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4대강 사업이나 광우병 사태, 심지어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수학능력시험에 이르기까지 관의 통제는 전문가 집단의 자율성을 옥죄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픈 우리의 현실이다.

 

<많은 해석이 필요한 봉수산 정상의 안내판>

 

<봉수산 정상의 민간 안내판. 정확한 정보도 있으나 너무 많다>

 

▶ 바위와 나무의 싸움

 

  봉수산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보니 서쪽으로 올라올 때 보다 훨씬 많은 암괴들을 볼 수 있다. 오늘 답사 구간 중에서 가장 많은 암괴들인데 모양은 둥그스름한 것이 서쪽에 있는 것과 같다. 석영질의 암맥이 섞여 있는 것도 있는 것이 화성암 기원의 변성암임을 알 수 있다. 나무 한 그루가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데 제법 크기가 크다. 생물적 풍화가 진행되어 바위를 깨뜨릴 것인지, 아니면 영양분이 부족하여 말라죽을 것인지는 좀 더 많은 시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나무가 바위틈에서 발아하여 자라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무가 자랄수록 어린 나무와는 달리 보다 많은 수분과 양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바위틈에 있는 소량의 풍화물과 비로 공급되는 수분 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단계가 온다. 그 단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바위틈을 벗어나 양분과 수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토양층에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토양층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다면 이 바위는 언젠가 생물적 요인에 의해 풍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봉수산 동쪽 능선의 편마암 암괴>

 

<석영질 암맥이 섞여 있는 편마암과 바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

 

▶ 못 가본 곳 망배단

 

  능선을 내려오면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승규와 성환이 벌써 도착해서 앞서 가고 있다. 금북정맥은 임도의 옆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임도와 높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정맥의 낮은 부분은 모두 임도와 닿는다. 굳이 '정맥을 모두 밟았다'는 이름표를 얻는 것 외에는 그 능선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답사기를 보니 이 구간 중에 '망배단'이라는 것이 있는 곳이 있다. 아마도 정안면에서 새해 첫 날 행사를 하는 곳인 모양이다.

  또 하나의 철탑으로 연결되는 임도 끝에서 차령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이 내리막은 경사가 상당히 급한데다 낙엽이 쌓여 있어서 많이 미끄럽다. 내려오는 길에 숲 사이로 23번 국도가 보인다. 속세의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안도감이 밀려온다. 차령휴게소 뒷편에는 계곡물을 모아두는 콘크리트 시설물이 있다. 여름에는 물을 가둬놓고 미니 풀장으로 쓰려고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지금은 휴게소가 폐허가 되었으니 이 시설물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숲 사이로 보이는 23번 국도>

 

▶ 차령의 대나무

 

  16:25! 미니 풀장을 지나 대나무 숲을 빠져 나와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 차령에 도착했다. 09:05에 출발했으니 장장 7시간 20분의 대장정이었다. 일반적인 '정맥꾼'들에 비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래서 더 의미있는 산행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허벅지에 쥐가 난 상태로 세 시간 이상을 분투한 성환이가 자랑스럽다. 빨강, 노랑, 녹색, 빛의 삼원색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등산로 입구에서 완주 인증샷을 한장 찍었다. 단풍나무의 빨간색과 대나무의 녹색, 그리고 은행나무의 노란색이 조합된 등산로 입구는 특별한 감흥을 준다. 특히 늦가을에 녹색을 자랑하는 대나무가 눈길을 끈다. 흔히 차령산맥을 온대의 경계라고 말한다. 물론 이젠 온난화로 좀 더 북쪽으로 경계선을 올려 잡아야 옳지만 차령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대나무는 대표적인 온대기후의 지표식물이다. 그래서 차령에서 보는 대나무는 특히 느낌이 큰 것이다.

 

<완주 인증샷>

 

<단풍나무, 대나무, 은행나무가 연출하는 빛의 삼원색>

 

▶ 차령휴게소의 부활을 기원함

 

  차령휴게소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킨다. 한 때는 전국적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목 좋은' 휴게소였으나 23번 국도가 터널로 통과하면서 일거에 몰락을 한 휴게소이다.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도로공사의 몫이고 그 주변에서 도로를 이용하여 상업행위를 하는 것은 민간의 선택이다. 따라서 도로공사가 민간의 선택까지 책임을 질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도로 노선이 바뀌면서 일거에 몰락한 당사자들은 참 난감할 것 같다. 특히 대자본이 아닌 소규모 영세업자들은 갑자기 밥줄이 끊기는 결과가 오는 것이다. 면단위 중심지에 우회도로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 있던 작은 가게들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언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활용방법을 모색하는 듯 차령휴게소에서는 새단장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시설물이 폐허처럼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것 보다는 무언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났으면 좋겠다.

 

<새단장으로 부활을 준비하는 차령휴게소>

 

▶ 다음 답사지는?

 

  아까부터 '시원한 맥주 한 캔만 있으면 좋겠다'는 성환이의 의견을 좇아 휴게소에 들러 시원한 맥주 한 캔씩을 들이켰다. 지친 몸과 빈 속은 단 한 캔의 맥주에 바로 반응을 한다. 곡두재로 돌아오는 길에 허수아비 마을 앞 개울에 내려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땀에 절은 옷을 빨아 입었다. 여벌 옷을 하나 챙겨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준비를 했을리가 없다. 미리 머리를 써서 준비하지 않았으니 몸이 고생이다. 차가운 냇물에 옷을 빨아 입었더니 개운하기는 한데 추운 것이 흠이다. 하지만 숙원사업 하나를 해결했으니 마음이 후끈거려서 이 정도의 한기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다음 답사를 준비하자! 곡두재에서 갈재, 아니면 각흘고개 구간에 도전을 해볼까?

 

<곡두재에서 장정을 마치면서>

'금북정맥 > 차령~곡두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번 째 차령-곡두재  (0) 2015.03.21
부록: 경로 정리  (0) 2012.11.19
네번 째 이야기  (0) 2012.11.12
세번째 이야기: 최고봉을 향하여  (0) 2012.11.11
길을 잃다 : 곡두재~440고지 구간  (0) 201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