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령~곡두재

길을 잃다 : 곡두재~440고지 구간

Geotopia 2012. 11. 6. 02:36

▶ 내용

  -전형적인 편마암 산지

  -이름이 없는 이유

  -길을 잃다

  -오랫만에 만난 제대로 된 등산로 안내 리본

  -호도나무의 경계선=문화권의 경계

 

<북쪽에서 조망한 곡두재~440고지 동쪽 안부(350 고개) 구간  *원도: Google(편집)> 

 

▶ 전형적인 편마암 산지

 

  낙엽이 두껍게 쌓인 등산로는 예상대로 그다지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날은 더덕을 캐러 왔다는 초로의 부부동반팀을 만난 것을 빼면 단 한 사람도 등산로에서 만나지 못했다. 일요일이기 때문일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것보다는 이 코스가 일반인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등산로라는 뜻일 것이다. 가다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등산로가 훨씬 험하다. 멀리서 봤을 때 대체로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였는데 의외로 능선의 봉우리들이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령에서 곡두재 방향으로는 전체적으로 계속 오르막이고 오르막 부분의 경사가 더 심한데 우린 반대 방향으로 코스를 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좀 나은 것 같다. 승규 때문에 갑자기 코스가 바뀌었으므로 이건 순전히 승규 덕이다.

  첫 번째 봉우리인 390고지 까지는 표고 차 80여m의 얕으막한 고갯길이다. 전형적인 편마암 산지 답게 고운 풍화토가 덮여 있는 토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출된 암석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390고지 부근의 능선에서 겨우 한 무리의 편마암 덩어리들을 만날 수 있다. 나무의 종류도 산성토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류 보다는 참나무류의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노출된 편마암과 편마암 풍화토, 그리고 활엽수림>

 

▶ 이름이 없는 이유

 

  며칠 술에 쩔은데다 아침까지도 굶고 온 성환이가 440고지 앞에서 주저 앉는다. 출발한지 겨우 1시간이 채 안됐는데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재작년 한성부 성곽 답사를 생각하면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 때도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라운드의 야생마 답게 거뜬히 완주를 하고 저녁엔 술로 우리 '설걷이'를 평정했던 바 있다.

  이 산 줄기는 해발 4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여러 개 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 이름이 없다. 차령 바로 옆의 봉수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한 것은 봉수산 보다 높은 봉우리도 여러 개 인데 모두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두드러진 특징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것이 또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천안의 남부 산지에 해당하는 이곳에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크게 발걸음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언가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 못한 산들이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440고지 앞에서>

 

▶ 길을 잃다

 

  오늘 코스 중에 있는 봉우리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440고지에 도착했다. 정상이 헬기 이착륙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벽돌로 만든 흰색의 'H'자가 억새로 거의 덮여 있다. 둘레에 자잘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상태도 못된다. 북쪽으로 억새풀 사이로 길이 나 있어서 의심할 것 없이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참나무류의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는 비탈을 내려가다 보니 땅 바닥에서 부터 두 세 갈래로 자라는 참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이 근처에만 여러 그루가 있는 것으로 보아 품종이거나 아니면 주변 환경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이 나무들이 떨어뜨려 놓은 낙엽이 두텁게 길을 덮어서 내려 갈수록 점점 길이 희미해 진다. 그러다가 급기야 길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GPS 시계를 봤더니 다음 목적지의 방향이 지금 우리의 진행 방향에서 동쪽으로 거의 90˚ 정도나 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동쪽으로 계속 진행해야 하는 길을 벗어나 거의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지도 참조-지도의 440고지에서 북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내려갔음).

 

<440고지에서 길을 잃어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세 갈래로 자라는 특이한 모양의 참나무>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최대한 빨리 돌아서는 것이 현명한 산행법이다. 하지만 되돌아 서면 가파른 오르막이다. 원래 가야할 코스라면 그러니라 생각하지만 헛걸음한 구간을 되돌아 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힘이 훨씬 많이 든다. 성환이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사용법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GPS시계가 나름 역할을 조금 한다는 것이다. 미리 코스를 지도에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취미활동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올라가다 보니 정원이나 길 가에서는 볼 수 없는 정말 새빨간 색의 단풍나무가 눈길을 잡아 끈다. 카메라를 들이대 봐야 별볼 일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길을 잃었어도 단풍은 아름답다>

 

▶ 오랫만에 만난 제대로 된 등산로 안내 리본

 

  길을 잃은 원점인 헬기 이착륙장으로 되돌아 왔다. 돌아와서 보니 금북 루트에는 누군가가 매어 놓은 작은 리본이 매달려 있다. 리본의 진짜 역할은 이것이다. 하지만 리본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얼핏 보기에는 우리를 유혹했던 길 쪽으로 훨씬 큰 길이 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눈여겨 보지 않으면 우리와 같은 실수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진짜 리본이 필요한 곳이지만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을 정말로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오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리본이 이미 있는 곳에는 리본을 덧붙여 달지 않는 불문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뻔히 다 아는 길에 덕지덕지 붙은 선전리본(**산악회를 선전하는) 때문에 불쾌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비록 길은 잃었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길을 잃었던 당시를 돌이켜 보니 금북 루트의 왼쪽 옆에 지름이 10여cm 쯤 돼 보이는 노란 색의 플라스틱 통이 있어서 무슨 용도일까 서로 얘기하면서 지나쳤었다. 학창 시절에 설악산으로 비정기 답사를 갔을 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수렴동에서 내려와 마등령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의 반대 쪽에 쓰레기통이 하나 서 있었는데 거기에 마침 해원이 매형의 성함과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 이름을 놓고 한 동안 농담을 주고 받느라고 갈림길을 그냥 치나쳤었다. 결국 백담사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오느라고 몇 시간을 헤매었다.

 

<숨겨진 금북 루트와 그 왼쪽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관(잘 보면 보임^^)>

 

<GPS에 기록된 이탈 경로>

 

 

▶ 호두나무의 경계선=문화권의 경계

 

  440고지를 지나면 가파른 내리막인데 낙엽까지 듬성듬성 쌓여 있어 미끄럽다. 차령 쪽에서 왔다면 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이 정도 경사면 내리막이 쥐약인 나에게는 치명적인데 이 날은 그냥저냥 견딜만 했다. 기실 저울에 올라서 보면 몸무게가 예나제나 똑같은데도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날씬한 해원이와 승규는 내리막도 잘 탄다. 다리까지 길어서 성큼성큼 한 걸음이 내 두 걸음은 족히 된다.

  

<440고지에서 내려오는 길. 군데군데 낙엽이 쌓인 급경사길이다>

 

  급경사면이 끝나면 얕은 고개가 이어진다. 이 고개 역시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의 통행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안면 문천리와 광덕면 광덕리(광덕산휴게소 뒷편)를 연결하는 고개로 높이가 해발 350m를 조금 넘는다. 곡두재가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곡두재와 높이도 같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이 주요 통로로 이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고개마루에서는 불규칙하게 배열된 편마암과 그 사이에서 자라는 참나무를 볼 수 있다. 이 일대의 편마암은 편리구조가 눈에 띄게 발달하지 않았고 육안으로 보기에는 암석의 구성도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생대에 주로 만들어진 암석들로 지구 환경이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암석이므로 퇴적암 기원이기 보다는 화성암 기원의 변성암이기 때문일 것이다.

 

<편마암과 참나무>

 

  440고지를 기점으로 금북정맥은 남동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해발 350m에서 420m까지 표고차 70m 이내의 자잘한 봉우리를 넘나드는 전체적으로 완만한 오르막을 약 1.5km 정도 진행하면 이 구간의 최고봉인 469.3m 고지이다. 진행방향의 오른쪽은 공주시인데 나무에 가려서 산 아래의 경관을 볼 수가 없는 반면 왼쪽의 천안시 쪽은 안부(鞍部 *능선의 고도가 낮은 부분)에서 계곡을 따라 발달한 마을을 가끔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능선을 경계로 천안시 쪽 계곡에는 거의 대부분 호두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무와는 달리 이미 낙엽이 모두 떨어져서 육안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호두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반면 능선 남쪽의 공주시 쪽에서는 호두나무를 전혀 볼 수가 없다.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 환경의 차이 때문이기 보다는 문화적 경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보통 문화적 경계는 문화경관에 적용이 되지만 이처럼 생물 경관에서도 문화적 경계가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즉, 천안 지역의 호두나무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때문에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경관이라고 볼 수 있다. 금북정맥은 호두나무(호두과자)라는 문화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문화권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천안시쪽 계곡의 호두나무  * 태봉산 조망점>

 

  호두나무가 보이는 계곡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숲을 헤치고 내려가니 멀리 높직한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방향은 대략 동북쪽인데 모양이 얼핏 망경산 같이 생겼다. 망경산이려니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정리하면서 사진을 보니 망경산이 아니다. 계곡의 방향을 볼 때 이곳에서는 망경산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망경산은 광덕산과 이어진 긴 산줄기의 끝에 있지만 이 산은 주변의 산 보다 월등하게 높이 솟아 있다. 이 산은 태봉산(469m)으로 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상에 있다. 이 산줄기는 오늘 우리 산행의 종점인 차령 인근의 프린세스 골프장 뒷편에서 갈라지는 산줄기로 망경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태봉산이 멀리 보인다>

 

<이 글 속의 경로  *원도: Daum지도(편집)>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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