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령~곡두재

세번째 이야기: 최고봉을 향하여

Geotopia 2012. 11. 11. 14:23

▶ 내 용

 

  - 고개가 많은 우리나라

  - 최고봉을 향하여

  - 산골 마을이 사는 법

  - 이름도 감동도 없는 최고봉

  - 명당?

  - 종주중에 만난 사람들

  - 점심: 五餠二魚의 기적

 

 

▶ 고개가 많은 우리나라

 

  최고봉까지는 동남향으로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면서 자잘한 고개와 봉우리가 되풀이 된다. 해발고도가 350m가 넘고 양쪽에 큰 마을이 없는 곳에 있는 고개인데도 사람이 다닌 자취가 있다.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은 아닐 것 같고 마을 사람들이 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하러 다닐 때 이용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아주 가끔 다녀도 그 자취가 남는 것을 보면 사람의 자취는 대단한 것이다. 하긴 동물이 다니는 비밀스런 통로도 사람이 구분해 내는 것을 보면 굳이 자취를 없애려 하지 않는 사람의 통로가 표시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걷는 것이 주요 교통 수단이었던 시절에는 최단코스가 최선의 코스였을 것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그래서 고개가 아주 많다. 실제 고개 뿐만 아니라 '보릿고개', '눈물고개', '아리랑고개' 등 어려운 고비를 뜻하는 비유어로 많이 쓰이는 것도 이러한 자연환경과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능선 중에서 높이가 얕은 부분은 대부분 사람이 다니는 고개로 이용되었다. 이 길도 그런 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 답사하는 구간도 이 능선을 넘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개의 고개인 차령과 곡두재 사이의 능선이다. 차령과 곡두재가 주요 통로가 된 것은 무엇보다 고도가 다른 곳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차령은 해발 200m를 조금 넘는 고개로 이 구간에서 가장 고도가 낮다. 곡두재는 310m를 조금 넘는 높이로 이 구간에 있는 장고개(290m)나 420봉 동쪽의 이름 없는 고개(270m)에 비해 높지만 도로가 개설되면서 이용도가 많아진 고개이다. 이외에도 금북정맥의 고도가 낮은 곳에는 갈재, 각흘치 등 여러 고개가 어김없이 발달하고 있다.

 

<공주시 정안면 문천리와 천안시 광덕면 지장리 사이의 작은 고개>

  

<폭이 좁은 능선-풍화층이 발달하여 식생이 풍부하다>

 

▶ 최고봉을 향하여

 

  능선은 모두 나무로 덮여 있어서 주변 경관을 관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면 몇 군데 정도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겠지만 이 길에서는 너무 큰 기대이다. 사실 없는 것이 더 낫다. 그게 진짜 산이니까. 나무 사이로 감질나게 언뜻언뜻 보이는 주변 경관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묘미가 있다.

  전형적인 편마암산지 답게 암석이 드러나 있지 않고 고운 흙으로 덮여 있는 흙산이면서 대체로 능선의 폭은 좁은 편이다. 풍화가 잘 진전되지 않는 편마암의 특성 때문에 대개 협곡이 발달하며 같은 이유로 능선의 폭도 좁게 발달하는 것이다.

  420봉에 이르기 전에 천안쪽으로 제법 큰 계곡이 하나 발달하는데 그 끝으로 집이 몇 채 살짝 보인다. 광덕면 지장리의 가장 마지막 지점 쯤 될 것 같다. 역시 계곡에는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다.

 

<광덕면 지장리 최상류 마을과 호두나무>

 

  조금 내려가서 보니 북쪽으로 망경산이 보인다. 방향과 모양으로 보아 이 산은 망경산이 분명하다. 지장리 복판까지 길게 뻗은 능선 너머로 보이는데 이 능선에 자라는 나무와 능선의 굴곡이 시야를 가려 망경산 주변의 다른 산들은 잘 보이지 않아 마치 독립 구릉 같다.

 

<지장리로 뻗은 능선 너머로 보이는 망경산>

 

  다시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시간이 10시 50분, 출발한지 벌써 1시간 40여 분이 지났다. 앞 봉우리의 나무 사이로 아침 냄새를 거의 털어버린 햇살이 비춘다. 동남향으로 뻗은 능선 상에 위치한 봉우리이므로 이 시각에는 거의 정면으로 해가 보이는 것이다.

 

<420봉 쪽으로 보이는 아침 햇살>

 

  420봉 직전에서는 진행방향의 10시~11시 방향으로 높고 긴 능선이 보인다. 오늘 코스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469.3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이 능선은 북동쪽으로 뻗어 지장리로 내려 가는데 그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아 끝부분이 급경사를 이룬다. 이곳에서 최고봉까지의 루트는 거의 반원형에 가깝게 휘어져 있는데 완만하게 남쪽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형태이다. 

 

<최고봉과 최고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 산골 마을이 사는 법

 

  곧 이어 지장리 최상류 마을이 잘 보이는 작은 안부가 나타난다. 앞의 안부에서는 계곡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마을과의 사이에 지형 장벽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을이 잘 보인다. 모두 사람이 거주하는 집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마을의 규모는 가옥 다섯 채 정도이다. 길이 끝이 나는 곳으로 옛날 기준으로 본다면 손꼽히는 오지였을 것이다. 지금도 지리적 위치는 변함이 없지만 요즘 이런 곳들은 특용작물이나 농촌체험마을 같은 형태로 특화하여 독특하게 수입원을 창출해 가는 곳이 많다. 이 마을도 얼핏 보기에도 궁핍한 촌동네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지장리 최상류 마을>

 

  420고지를 넘으면 최고봉과의 사이에 안부가 나타나는데 대략 높이가 385m 정도 된다. 이 안부에서는 멀리 광덕산 능선이 비교적 잘 보인다. 오늘 코스는 전체적으로 능선 양쪽의 나무에 가려서 시야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덕산 정상은 볼 수가 없다. 옆으로 좀 더 이동하면 볼 수 있을까 해서 자리를 옮겨봤지만 헛수고다.

 

<420고지와 최고봉 사이의 안부에서 바라본 광덕산맥>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재미있는 식생 경관을 관찰할 수 있다. 진행방향의 오른쪽, 그러니까 공주시쪽은 아직 나뭇잎이 무성한 반면 왼쪽의 천안시쪽은 낙엽이 거의 다 떨어져서 잎이 남아있지 않은 나무가 대부분이다. 남사면과 북사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평상시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마침 그 미세한 차이가 드러나는 시기에 이 코스를 택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경관이다. 

 

<남쪽사면에는 아직 나뭇잎이 많이 남아있다>

 

▶ 이름도 감동도 없는 최고봉

 

  안부에서 오르막을 오르면 길이 약간 오른쪽으로 휘어졌다가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최고봉까지는 완만한 능선이 계속된다. 명확한 이름이 없는 최고봉은 정상이 동북동-서남서 방향의 길고 평평한 능선인데 나무가 듬성듬성 자란다. 식생의 밀도는 다른 곳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주변 경관을 관찰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멀리 광덕산 능선이 언뜻언뜻 보인다.

  누군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노란 리본 아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간단한 휴식을 겸한 관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전형적인 북동-남서 방향의 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이 봉우리 전체의 방향과도 일치하는 방향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느라고 GPS 설정을 변경했는데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GPS연결이 끊어졌던 모양이다. 나중에 파일을 다운 받아 보니 로그기록이 여기 이후로는 사라져 버렸다.

  이 능선 상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서쪽의 봉우리는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반면 동쪽의 봉우리는 북쪽으로 길게 발달하고 있다. 최고봉은 동쪽의 봉우리로 높이가 469.3m이다.

 

<최고봉의 서쪽 봉우리>

 

<서쪽 봉우리에 있는 편마암 암편과 북동-남서 방향의 절리>

 

  서쪽 봉우리의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150m 정도 가면 최고봉이다. 이 봉우리는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금북정맥의 본줄기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누군가가 480봉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는데 지도에 따르면 이것은 틀린 정보이다. 최고봉의 높이가 469.3m이므로 480m가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최고봉에서도 약간 내려온 곳이므로 만약에 480이 해발고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정보인 것이다. 혹시 480봉이라는 표현은 해발고도가 아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팻말>

 

  최고봉은 다른 봉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없다. 두드러진 특징이 없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최고봉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 밋밋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자체 경관이 수려하지도 않고 전망이 뛰어나지도 않다. 우리 모두는 최고봉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이곳을 지났다. 다음 답사자를 위하여 간단한 리본이라도 달아두면 좋겠다. 이름을 지어주면 어떨까?

 

▶ 명당?

 

  최고봉을 지나면 바로 급경사의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 내리막길은 해발 340m 까지 이어지는데 그 내리막의 끝부분 능선에는 묘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명당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금북정맥을 타는 모든 사람들이 꼭 지나쳐야 만 하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최고봉을 지나 만나는 첫번째 안부>

 

  10m 조금 넘는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또 작은 고개가 하나 나오는데 여기도 역시 많지는 않지만 사람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사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런 산 길을 넘나들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길이 나 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이 길을 이용하여 어떤 일을 한다는 뜻이다.

 

<작은 고개길>

 

  작은 고개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다시 마을이 보인다. 최고봉 전에 보였던 마을과 같은 광덕면 지장리인데 앞의 마을 보다는 하류 쪽에 있다. 그런데 이곳은 건물의 밀집도가 높고 건물도 시골집이 아니라 3~5층 정도 되는 빌딩과 방갈로처럼 생긴 집들이다. 종교단체나 기업의 수련시설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광덕면 지장리>

 

▶ 종주 중에 처음 만난 사람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앞쪽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앞서 간 우리 일행은 아니다. 오늘 산행 중에 처음 만나는 이방인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다가오질 않는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반대쪽에서 금북정맥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내가 있는 쪽으로 접근을 해와야 맞는데 소리가 계속 일정한 거리에서 들리는 것이다.

  작은 언덕을 넘어가 보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부부동반으로 열심히 땅을 파서 무언가를 캐고 있다. 궁금해서 무엇을 캐는지 물었더니 더덕을 캔단다. 서너 쌍은 되는 것 같은데 이 많은 사람들이 땅에 붙어서 캘 만큼 더덕이 많을 것 같지는 않고 무언가 다른 것을 캐는데 성의껏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어차피 산중에서 먹을 것을 채취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바로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오르막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멋진 능선이 뻗어 있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능선에는 하얀 자작나무가 눈길을 끈다.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를 보고 온 뒤로 숲 속의 자작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작나무를 보면 언제나 그 때의 즐거웠던 기억과 영화 닥터지바고의 쓸쓸함이 오버랩된다. 왠만하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그다지 많은 개체 수가 아닌데도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경험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마누라는 수많은 군중 속에 있어도 이상하게 눈에 띤다.

 

<자작나무가 있는 숲>

 

▶ 점심 : 五餠二魚의 기적

 

  자작나무 숲을 찍고 야트막한 고개를 올라 섰더니 앞서 간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점심을 먹고 가잔다. 점심시간이 11시30분인 해원이가 때가 됐으니 배가 고파서 먹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계를 보니 11시 40분이 넘었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출발한지 두 시간 반이 지났으니 예정보다 훨씬 일정이 길어지게 생겼다. 코스를 잘 모르는 후배들이 지칠까봐 반도 못 왔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벌써 식량을 바닥내면 어

찌한단 말인가?

  점심은 해원이가 준비해 온 주먹밥이 전부다. 준비할 필요 없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해원이는 내 말을 안 믿고 준비를 해 가지고 온 것이다. 만약 이 주먹밥이 없었다면 우린, 적어도 성환이는 조난을 당해서 헬리콥터를 탔을지도 모른다. 해원이는 곰살맞게 복분자 액기스까지 한 병 만들어가지고 왔다. 알콜 기운이 약간 들어있는 복분자 액기스를 한 잔씩 마시고 나니 힘이 부쩍 나는 것 같다. 코스가 길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나도 홍삼 음료와 초콜릿을 넣어 왔는데 그것도 요긴하게 쓰인다.

  항상 마음이 넉넉한 해원이 답게 원래 도시락 두 개를 준비해 왔으나 한 개는 아까 차에서 해치웠으니 한 개로 네 명이 요기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도시락 한 개를 나눠 먹고 나니 제법 든든해지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도: Daum 지도(편집)>

'금북정맥 > 차령~곡두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록: 경로 정리  (0) 2012.11.19
마지막 이야기: 장고개~차령  (0) 2012.11.17
네번 째 이야기  (0) 2012.11.12
길을 잃다 : 곡두재~440고지 구간  (0) 2012.11.06
오랜 숙원사업  (0) 201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