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령~곡두재

오랜 숙원사업

Geotopia 2012. 11. 1. 14:19

▶ 답사 지역 : 금북정맥 곡두재~차령 구간 11.5km

▶ 답사 일시 : 2012년 10월 28일(일) 09:10~16:20

▶ 누구와 : 천안 지리 연구회-설레이며(설걷이)

▶ 내용

  -산이 있어 좋다?

  -오랜 숙원 사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산에 갈 때는 밥을 먹어야 한다.

  -허수아비 마을을 지나

  -출발!

 

<금북정맥 곡두재-차령 구간  *원도: Google>

 

 

▶ 산이 있어 좋다?

 

  2004년, 갑자기, 정말로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다가 갑자기 천안에 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로 와 보기는 많이 했지만 천안을 내가 살 곳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천안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매우 피상적인 사실 뿐일 수 밖에 없었다. 막상 천안에 살게 되고 보니 천안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히 언제까지 천안에 살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천안의 지리교사'가 되었으니 적어도 천안의 지리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은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 지리교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 따위의 구차한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심각한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사를 온 첫 학기는 거의 휴일마다 천안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마치 직접 밟아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채근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하는 강박증 환자처럼… 월봉산, 봉서산, 일봉산 등 시내에 있는 산에서부터 태조산, 성거산 등 천안시내와 주변 읍·면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산, 그리고 광덕산, 만뢰산 등 다른 시·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까지 주로 산을 집중적으로 답사하였다. 사실 나는 산을 타기에는 적합한 몸이 아니다. 몸이 무겁고 호흡기가 약해서 산을 잘 타지 못했고,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대부분 산의 정상에 오르면 주변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지리적 감을 잡는 데는 산처럼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에 체질에 안 맞는 산행을 강행했던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 말들을 꽤 듣는다.

  '우리 동네(또는 도시)는 참 좋아. 주변에 산이 있거든' 

  왜 이런 말들을 꽤 많이 듣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어느 동네, 또는 도시 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전체의 지형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30% 이내에 불과한 평지에 도시가 발달하므로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도 주변에 산을 끼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 산이 있어 좋다'는 말은 자랑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최적의 도시입지로 꼽히는 침식분지는 전형적으로 산지를 배경으로 하는 도시입지이다. 형성 원인 상으로 침식분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도시들은 하천을 끼고 발달하는 하곡분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도시 주변에 산지가 발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자랑거리 축에도 낄 수 없는 상식인 것이다.

  천안 역시 지질구조 상 뚜렷한 침식분지는 아니지만 하곡분지 상에 자리를 잡은 도시로 주변에 많은 산지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의 '흔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천안의 산들을 돌아 다니다 보니 해발 700m에 육박하는 광덕산을 필두로 해발 400m~500m 대의 산들이 즐비했다. 생각보다 높은 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새삼 놀라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시의 규모가 전에 살던 보령에 비해 훨씬 큰데도 주변의 산들은 보령에 못지 않은 밀도와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살면서 보니 천안은 금강 수계와 삽교천 수계, 그리고 안성천 수계의 분수령으로 제법 높은 산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 

 

<산지로 둘러싸인 천안시가지  *태조산에서>

 

▶ 오랜 숙원 사업

 

  천안 일대에 즐비한 400m 이상의 산지들은 천안의 동쪽과 남쪽에 주로 분포한다. 이들 대부분 금북정맥(錦北正脈)을 이루는 산지이다. 산맥 체계로 본다면 차령산맥에 해당한다. 산에 올랐다가 때로는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내가 마치 날아가는 기러기를 하염없이 부러워 하는 집오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금북정맥 상에 있는 봉우리 '하나'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대부분 나의 답사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몇 시간짜리 종주를 하기도 했지만 자주 하기는 어려웠다. 주로 식구들과 같이 가는 산행이기도 했지만 평소 산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이젠 천안 주변의 웬만한 산들은 얼추 발도장은 찍은 정도는 된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안의 남쪽, 즉 천안과 공주의 접경을 이루는 산지에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금북정맥의 허리에 해당하는 이 일대는 여러 겹의 산줄기가 통과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등산로가 잘 발달하지 않았다. 종주코스는 매니아들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일반 아마추어들이 독립된 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짧은 등산로라도 있어야 할텐데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바로 옆에 광덕산, 망경산 등 더 큰 산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산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인지… 어쨌든 천안 거주 십 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발걸음을 하지 못한 천안의 남부 산지는 그동안 나의 숙원 사업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결행하기에는 좀 겁이 나고 아내를 동반하기에는 너무 난코스였다.

 

<망경산에서 바라본 금북정맥 차령-곡두재 구간>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이 가을 우리 '설걷이(천안지리연구회-설레이며 걷는 이들)'의 번개 모임 답사지로 여기가 선택된 것이다. 지난 봄에 자전거로 천안 시내 하천 답사를 하고 난 후 꼭 여섯 달 만이다. 사실 나의 입김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동지들은 마치 먼저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이구동성으로 동의하여 번개 모임에 힘을 팍팍 실어 주었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로 날짜를 정하고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자료를 뒤져보니 역시 금북정맥의 허리에 해당하는 코스답게 이곳을 주파한 이들이 꽤 많다. 종주꾼들은 보통 4시간 30분 정도로 이 코스를 주파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린 5시간에서 5시간 30분 정도는 예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헐~' 비가 온단다.

  준비성이 철저한 총무 승규는 벌써 2주 전에 일기예보를 찾아 본 것이다. 일기예보 엉터리라고 욕을 해대던 것이 오래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요즘엔 일기예보가 잘 맞는다. 하지만 이번엔 제발 예보가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수학여행 때에도 기가 막히게 맞는 일기예보를 경험한 터라 이번에도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때도 2주 전부터 일기예보를 주시했는데 하필 한라산에 오르기로 예정되어 있는 10월 17일날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어 있었다. 제주도는 흐리다고 되어 있었지만 기상 변화가 심한 한라산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불행한 예상은 맞는 법인가? 결국 산 위에서 비를 만나고 말았다. 기상이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진면목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오랫만에 한라산 서쪽과 남쪽에서 볼 수 있는 용암돔과 영실기암의 장관을 놓친 것은 못내 아쉬웠었다.

  일기예보가 바뀌기를 목요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끝내 예보는 바뀌지 않았으므로 토요일 모임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비를 감수하기에는 우리 실력이 모자라는데다 결정적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비오는 날 산행은 어렵다. 1주일을 미루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하루 미뤄서 일요일날 강행 하기로 했다. 지원자는 딱 절반인 네 명! 아쉽지만 어쩌면 산행에 적당한 인원인 것도 같다. 원래는 내려와서 저녁을 먹는 것을 전제로 11시 쯤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일요일이므로 저녁은 부담스럽고 해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대한 일찍 출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일찍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여덟시에 시내에서 만나서 아홉시 전에 등산을 시작하는 것으로 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점심 때를 산에서 넘겨야 하니 간단한 도시락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가면 늦은 점심을 먹으면 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항상 식사 때를 피해서 산행 일정을 잡기 때문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겨서 산에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물 한 병이 전부인데 이 날은 아내가 챙겨주는 홍삼액과 초콜렛을 받아 넣었다.

 

▶ 산에 갈 때는 밥을 먹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차령쪽 보다는 곡두재 쪽으로 가는 것이 가까울 듯 싶어 곡두재에 차를 한 대 놔두고 차령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승규네 집이 차령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가는 길에 승규를 태우고 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즉, 차령에 차 한 대를 놔두고 곡두재로 가서 곡두재에서 차령으로 능선을 타기로 한 것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차령휴게소에서 막내 성환이를 기다렸다. 성환이는 우리가 도착하고 곧바로 도착했다. 그런데 앗! 배낭도 없는 맨몸이다. 진짜 그렇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승규형이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어쨌든 출발! 성환이 차를 휴게소에 놓고 곡두재로 향했다. 승규와 성환이는 그저께 상갓집에 갔다가 늦게 까지 술을 마셨고 승규는 어제도 술을 마셨단다. 게다가 둘 다 아침도 안 먹고 왔다. 이 젊은 청춘들의 이 근거없는 자신감을 어찌한단 말인가!

  반면에 늙은 우리는 최소한 이틀 이상은 술을 마시지 않고 몸을 만들었으며 아침을 배불리 먹고 왔다. 내 경험으로는 아침 식사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산행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는 쌀밥으로 아침을 먹지 않지만 산행을 할 때는 꼭 챙겨 먹는다. 해원이는 한 술 더 떠서 주먹밥을 싸 가지고 왔다. 어부인께서 아침 일찍부터 정성스럽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주먹밥을 아침밥도 생략하고 온 후배들에게 내 놓는다.

 

▶ 허수아비 마을을 지나

 

  정안천을 따라 상류쪽으로 604번 지방도를 타고 올라가다보니 길 옆으로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들이 서 있는 마을이 있다. 정안면 대산리, 월산리로 '허수아비 마을'로 알려져 있다. 허수아비는 시골 출신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분명하다. 그래서 이 마을의 아이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형색색으로 옷까지 훌륭하게 차려입은 허수아비가 떼로 몰려 서 있는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 보다는 '어스름한 밤에는 무섭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봄이나 여름에 만들었음직한 허수아비들이 옷도 벗겨지고 탈색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604번 지방도는 문천리에서 618번으로 나뉜다. 604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마곡사가 나온다. 예전에 대천에서 청주까지 2시간 길을 운전하며 대학원에 다닐 때 가끔 애용했던 길이다. 졸음이 많은 나는 운전 중에도 가끔 졸아서 여러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아내가 옆자리에 있으면 잔소리, 또는 먹을 거리를 공급해서 잠을 깨워주곤 하지만 혼자 운전할 때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안 가본 길로 가기'이다. 이 길도 그래서 가보게 된 길이었다. 그 때 대천과 청주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란 길은 모두 가 봤던 것 같다. 밤에는 지름길을 탔지만 낮에는 언제나 한 구간이라도 다른 길을 타곤 했다. 이 길은 '미호(충북 청원)-조치원(충남 연기)-고복저수지(충남 연기)-정안(공주)-마곡사(공주 사곡)-유구(공주)-신양(예산)-예당저수지(예산 신양, 대흥)-광시(예산)-비봉(청양)-대천' 코스에 포함된 구간이었다. 가을 오후에 이 길을 가다보면 계곡과 주변의 단풍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해바라기 하러 나온 뱀도 가끔 만났는데 어느 날인가는 로드킬을 피하려고 급히 핸들을 꺾었는데 대로를 후진해 오는 차가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나보다 앞서 뱀을 발견한 운전자가 그 뱀이 생각나서 되돌아 오는 것 같았다.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다.

  우린 618번으로 바꿔 타고 가야한다. 이 길은 승규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만만하다. 승규 부모님 산소가 이 길을 따라 들어가서 유구읍 세동리 금계산 자락에 있어서 오래 전부터 자주 가 봤기 때문이다. 해원이 역시 젊음을 불살랐던 첫 발령지 유구중학교 학구였기 때문에 이 동네 지리에 아주 밝다. 나는 이 구간은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이 길은 총 연장이 불과 3km 남짓으로  629번 지방도와 만나면서 끝이 난다. 우리의 1차 목적지는 바로 629번 지방도의 공주-천안 경계 부분인 곡두재이다. 629번 지방도는 공주 사곡에서 천안 청수동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장인, 장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는 가끔 이용했던 길이다. 처음 가던 날은 '알지도 못하는 길을 간다'고 마누라가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해댔지만 이후로는 길이 예뻐서 자주 이용했었다.

 

▶ 출발!

 

  드디어 곡두터널 앞 출발점에 섰다. 정안쪽으로 곡두터널 앞 길 옆에는 아담한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자갈을 깔아서 만든 이 주차장은 만들어진지가 얼마 안 된 것으로 이곳에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생긴 것으로 보인다. 좁은 길 옆에 주차를 해두면 아무래도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 놓는 것은 단순히 등산객의 편의를 봐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출발점에서 간단한 인증샷을 하고 대망의 장정에 올랐다. 혼자 온 중년의 등산객이 앞서서 길을 재촉한다. 이 사람은 우리가 가는 방향의 반대방향, 그러니까 곡두재에서 갈재로 넘어가는 사람이다. 당연히 욕심이 나는 코스지만 오늘은 갈 수가 없다. 방향도 반대지만 대부분 등산을 안 하던 몸이라서 욕심을 냈다가는 아무래도 무리가 올 것 같다. 해원이는 갈재까지 한 방에 가자고 제안 했었다. 원래 계획대로 차령에서 출발했다면 아마도 욕심을 냈을지도 모른다.

  출발시간은 약 9시 10분, 계획대로 약 5시간 후인 오후 2시30분 경에는 차령에 있어야 하는데…

 

<곡두터널 앞에서 출발 전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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