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령~곡두재

네번 째 이야기

Geotopia 2012. 11. 12. 22:20

▶ 내용

  - 삼각점이 있는 420봉

  - 월산리의 개치 고개: '개'가 들어가는 이름의 의미는?

  - 3시간30분 만에 중간지점에 이르다

  - 특이한 리본

  - 촌사람도 알 수 없는 열매

  - 토목 강국의 비결

  - 왜 임도는 폐기된 것일까?

  - 길바닥에 화살표 만들기

  - 바람을 막는 숲

  - 공주와 천안을 잇는 중요한 연결 통로였던 장고개

 

 

 

▶ 삼각점이 있는 420봉

 

  식사를 하면서 잠깐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길지 않은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또 하나의 봉우리에 도착한다. 높이가 420m를 조금 넘는 최고봉 부분은 아주 작은 동산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삼각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삼각점은 정확한 좌표값을 아는 지점에 설치하며 이를 기준으로 다른 지점과의 거리나 각도 등을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오늘 답사 구간에서는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기준점으로 이곳 역시 다른 봉우리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산이름이 없지만 중요한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는 위치라고 볼 수 있다.

 

<420봉의 삼각점>

 

▶ 월산리 개치 고개-'개'가 들어가는 이름의 의미는?

 

  또 다시 내리막이다. 이 내리막은 중간에 특별한 굴곡이 없이 20여 분을 계속해서 내려가서 곡두재~차령 구간에서 가장 낮은 고개로 이어진다. 해발 270m가 약간 넘는 이 고개는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와 천안시 광덕면 지장리를 연결하는 고개인데 지도에서는 이름을 확인할 수가 없지만 어느 선답자의 글을 보니 개치고개라고 한다. 황소고개 또는 말고개 같은 이름은 많지만  개고개라는 이름은 흔치 않다. '황소', 또는 '말'은 '큰'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개'는?

  '개'字가 들어가면 대개 '보잘 것 없는', '제대로 되지 않은' 따위의 의미로 쓰인다. 참 불쌍한 것이 개다. '개같이 충성한다'는 말처럼 사람에게 온갖 충성을 다해 놓고 받는 취급이 '보잘 것 없는', '제대로 되지 않은' 따위의 의미라니… '개판', '개새끼', '개 같은 놈' 등등 좋지 않은 상황이나 성품을 일컫는 표현에서 '개복숭아', '개살구', '개옻' 등등 먹지 못하는 과일을 일컫는 말 등 '개'字가 들어가면 무언가 좋지 않은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개치(개고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잘 것 없는 고개'일까? 높이가 높지 않으니 아주 힘겨운 고개는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개나 넘나드는 사람이 많이 통행하지 않는 고개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와 천안시 광덕면 지장리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고개인 장고개 보다도 해발고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 곳이 주요 교통로가 되지 못한 것은 고개 양쪽에 큰 마을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치라는 보잘 것 없는(?) 이름이 된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최저점의 고갯길에 도착하기 직전에 진행 방향의 왼쪽, 그러니까 공주시 쪽에 나무들 사이로 언뜻 마을이 보인다. 전원주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무서울 것 같은 건물과 비각이나 정려 쯤 되어 보이는 작은 전각이 하나 있고 그 아래쪽으로 듬성듬성 집들이 있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조금만 옆으로 가면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좋을 것 같다.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사진을 찍기 위한 시야를 조금 더 확보해볼 욕심으로 등산로를 벗어났더니 앞서간 승규에게서 경고가 날아온다.

 

  "거기 절벽이니 조심 하셔요!"

 

  자연적으로 절벽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조건일 것 같고 어떤 이유로 산을 파서 절벽이 만들어진 모양이다. 등산로로 돌아와서 좀 더 내려와 보니 출입금지의 뜻으로 등산로를 따라 줄을 쳐 놨다. 고개까지 내려와서 절벽쪽으로 내려가 봤더니 길이 끊겨서 이젠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통행이 많은 길이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산리 고갯길>

 

▶ 3시간 30분 만에 중간지점에 이르다

 

  최저점을 지나면 해발 370여m 지점까지 오르락 내리락 아기자기한 오르막을 오른다. 안부와 봉우리 사이의 최대 표고차가 40m를 넘지 못하는 자잘한 봉우리가 예닐곱 개 정도 이어진다. 특히, 해발 350m를 넘으면 표고차 10~20m 정도의 작은 봉우리들이 약 600여m 이어지는 거의 평평한 능선 상에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해발 350m부근이 오늘 우리 답사 경로의 중간쯤 된다. 이 일대는 오늘 답사 구간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구간이어서 이 부근부터 능선의 방향이 북북동쪽으로 바뀐다. 현재 시각은 대략 12시 40분, 출발한지 3시간 30분 쯤 되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가면 거의 일곱시간은 걸어야 오늘 예정된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조금 마음이 급해지면서 걱정도 된다. 월산리 고갯길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왔던 성환이가 계속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환이를 혼자 놔두고 올 수는 없을 것이므로 승규 역시 계속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길안내 표지>

 

▶ 특이한 리본

 

  작은 리본이 아니라 흰색의 긴 줄을 묶은 특이한 길안내 표지가 나타난다. 각흘고개를 지나 봉수산을 오르는 금북정맥 상에서 봤던 그 표지이다. 누군가 금북정맥을 탐사하면서 붙여 놓았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 표지는 그러나 정맥을 탐사하는 고수의 작품 답지는 않다. 커서 눈에 잘 띄기는 하지만 오래 둬도 전혀 썩을 가능성이 없는 비닐 재질로 친환경적이지도, 미관상 아름답지도 못하다. 길이라도 잘 안내 해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나중에는 이 표지 때문에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매력적인 것은 표시가 아주 잘 나면서도 경로표시 리본에서 거의 예외없이 볼 수 있는 'OO산악회' 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자작나무 숲>

 

  이 부근에서도 때때로 자작나무 숲이 나타나서 눈길을 끈다. 숲이라고 하기엔 나무의 개체 수가 너무 작지만 자작나무에 눈길이 가는 것은 해원이도 똑같다. 시베리아 자작나무의 경험이 똑같기 때문이다. 나무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거나 그 나무들이 모여서 멋진 숲을 이룬 것도 아닌데 다만 그것이 자작나무인 것을 구별해 내는 것 만으로도 이상하게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매>

 

▶ 촌사람도 알 수 없는 열매

 

  등산로 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류이다. 굴참나무나 갈참나무가 많은 것 같은데 낙엽 속에서 특이하게 생긴 열매를 발견했다. 물론 발견한 사람은 눈이 건성인 내가 아니라 보배 눈을 가진 해원이다. 아까 출발 직후에 하나를 주워서 무슨 열매인지 우리끼리는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을 주고 받다가 버렸었는데 버리고 나니 사진을 찍을껄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되돌아 가서 주워올까 했더니 해원이는 마치 이 길을 가본 사람 마냥 이따가 또 나올 것이니 그냥 가잔다. 해원이의 운동신경은 가만히 보면 이런 순간적인 판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운동을 잘 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 하는 것이다. 참 신기한 것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자동으로 '아! 이 친구는 이 길을 가 봤으니 잘 알지!'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린 모두 이 길이 처음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어쨌든 두어 시간도 더 지나서 나의 그 근거없는 믿음을 해원이는 증명을 해 냈다. 앞서 가다가 하나를 주워서 내게 건네주는 것이다. 나는 벌써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요리조리 살펴봤지만 난생 처음 보는 열매이다. 명색이 촌 출신인데다 이 나이에 처음보는 나무 열매가 있다니 참 신기하다. 전체적으로는 둥글고 끝이 뾰족하게 튀어 나왔는데 튀어 나온 부분은 점점 얇아져서 가시처럼 마무리된다. 이 열매는 왠지 그 속에 무언가 쓸모 있는 내용물이 들어있을 것 같지 않다. 정상적으로 완성된 열매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열매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참나무류의 열매인 도토리나 상수리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왜 껍질을 깨 볼 생각을 안 했던 것일까? 그 껍질을 깨 보러 금북정맥을 다시 가야 한단 말인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천안-논산고속도로가 간신히 보인다>

 

▶ 토목 강국의 비결

 

  야트막한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다 보니 숲 사이로 멀리 고속도로가 보인다. 천안-논산고속도로다. 정안면 태성리와 인풍리 사이를 지나가는 구간으로 태성리 계곡에서 빠져나가는 사현천의 지류를 넘는 긴 다리로 되어 있는 구간이다. 우리의 목적지가 차령이니 저 고속도로를 건너야 한다.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고속도로를 눈으로 보니 거의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냇물이 넓어서 다리가 길어진 것은 아니고 이 고속도로가 전체적으로 고도가 높은 산중턱을 지나기 때문에 계곡 부분은 높고 긴 다리를 놓아야만 한다. 다리를 놓으려면 엄청난 공사비가 들겠지만 평지를 지날 때 맞닥뜨리는 토지보상 문제 및 다양한 민원 해결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토목 기술의 발전은 산과 하천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 조건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그 외에도 이런저런 사회적 이유로 빠른 기간 안에 세계적인 토목 기술을 갖춘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숲으로 복원되고 있는 능선 바로 아래의 옛 임도-사진의 왼쪽 부분>

 

▶ 왜 임도가 폐기된 것일까?

 

  능선 옆으로 평지가 눈에 띈다. 집터 하나 정도 될 만 한 크기인데 능선 바로 아래이기 때문에 집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산 속에 숨어 살고자 하는 은둔거사라도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이런 곳에는 집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연 상태에서 이런 모양의 지형이 나올 수는 없다. 사람의 손이 닿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누가, 왜 이런 곳에다 집터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조금 더 가보니 약간 의문을 풀 수 있었다. 평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산 속의 평지는 임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 둘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데 나중에 뒤따라온 후배들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만장일치로 옛 임도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자잘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임도가 방치된지 여러 해가 지났다는 얘기가 된다. 그 이유 역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알 수 없는 것으로…

 

▶ 길바닥에 화살표 만들기

 

  북북동쪽으로 계속 이어지던 능선이 해발 370m 봉우리를 정점으로 다시 낮아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봉우리에서는 동남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다. 허접하지만 나의 손목GPS는 우리의 목적지가 계속 북북동 방향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뒤따라 오는 후배들은 지도도 없고, GPS는 물론 없고, 더욱이 오늘 경로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다. 게다가 다른 길 쪽으로도 길안내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맥없이 기다리기도 그렇고…

  역시 몸이 가뿐한 해원이다. 잽싸게 길에 쌓여있는 낙엽을 치우더니 부러진 나무를 주워다가 바닥에 화살표를 만들어 놓는다. 앞서 이 길을 간 선배 종주꾼이 친절하게 주요 경로 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놓은 사진을 해원이는 모두 출력을 해 가지고 왔다. 그 중에서 우리가 이미 지난 포인트 사진이 들어있는 출력물 한장을 커다란 나무 밑에 깔아 놓아 그 화살표의 주인이 우리란 사실을 표시하는 것으로 멋진 마무리를 한다.

 

<화살표를 만드는 해원>

 

▶ 바람을 막는 숲

 

  이 봉우리 아래 안부는 장고개이다. 내리막 길을 내려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갑자기 북서쪽(천안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데 뿌연 먼지가 바람에 실려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바람 역시 사람처럼 고도가 낮은 계곡으로 몰려든다. 광덕쪽에서 불어오는 먼지 바람이 이곳 장고개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런데 바람이 능선의 숲을 만나면 속도가 떨어진다. 당연히 물질의 운반 능력도 떨어진다. 우린 마침 그 순간을 보게 된 것이다. 바람을 맞닥뜨린 능선의 서북쪽은 뿌옇게 먼지로 덮여 있는데 능선의 동남쪽은 아직 먼지의 습격이 미치지 않아 맑은 공기를 유지하고 있다.

 

<북서쪽(사진의 왼쪽)에서 쳐들어온 먼지바람이 아직 능선을 넘지 못했다>

 

  능선의 오른쪽, 그러니까 동남쪽은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이다. 구름 사이로 반짝 드러난 햇살이 마침 태성리 마을 최상류 다랭이논을 비춘다.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아 예쁜 노란색을 띠고 있는 논이 햇살을 받아 그림이 멋지다. 저 순간을 지금의 느낌으로 잡아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고수이다. 나는 그걸 잡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카메라를 꺼낼까 폼을 잡다가 셧터도 못 눌러보고 순간을 놓쳐 버렸다. 세상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장고개 바로 아랫 마을인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 공주와 천안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던 장고개

 

  해원이와 내가 미리 뽑아온 자료에는 모두 장고개가 표시되어 있어서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경관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우리는 이 장고개를 잘 모르고 지나쳤다. 장고개란 이름은 말 그대로 옛날에 '장을 보러 다니던 고개'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안과 광덕 사이에 장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통행량이 꽤 많았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안의 광정장은 대표적인 공주목 관내 장 가운데 하나였다. 개시일(開市日)은 5, 10일로 공주장(1, 6일)과 연이어져 있었다. 가축이나 생필품이 주로 거래되었던 광정장과 곡물, 가축, 식품, 의류 등이 주로 거래되었던 공주장은 인접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이었으므로 꽤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광정장은 또한 공주목과 천안현을 연결하는 역할도 했다. 곡물류, 잡화류, 우시장이 유명했던 천안장은 3,8장으로 그 중간에 매개가 되는 장이 필요했다. 그 장이 바로 풍세장으로 개시일이 4,9일이었다. 공주장과 천안장을 매개하는 장으로는 전의장(개시일 2,7일, 고추, 곡물류, 우시장)도 있었다. 결국 이 다섯 개의 장은 개시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시장권을 형성했던 것이다.

  인접 지역 간에는 상호 보완적인 특성 때문에 구매를 위한 이동이 발생하고 또 전문적인 상인들은 다섯 개의 인접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판매와 구매를 동시에 했으므로 이런 길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인구밀도가 낮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재화의 도달범위 밖에 최소요구치의 범위가 성립되기 때문에 이런 장시권역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각의 중심지들의 도달범위가 확대되어 독립된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장시권은 소멸했다. 이 과정에서 장고개 역시 그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우리가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로서의 기능이 쇠락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남았으니 다행스럽다. 다음에 이 구간에 도전할 때는 꼭 눈여겨 찾아 봐야겠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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