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청산도

청산도 Ⅴ

Geotopia 2012. 3. 4. 16:30

◆ 청산도 Ⅴ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 신흥리 갈대밭의 비밀은?

  - 진산리 갯돌해안

  - 위치가 헷갈리는 지리(池里)

  - 방파제 안의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걸까?

  - 빗 속에 범바위를 가다

  - 여행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

 

▶ 신흥리 갈대밭의 비밀은?

 

  비가 제법 쏟아지기 시작한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므로 오후 1시 배를 타려면 세 시간 정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비가 내리다니… 먼저 구장리를 출발해서 권덕리로 되돌아 가서 범바위에 가기로 했다(지도는 '청산도 Ⅳ' 참조). 어제 청산중학교 선생님들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범바위 앞에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막걸리가 특별히 당기는 것은 아니지만 청산도에서 유명한 곳이라니 가 봐야 할 것 같다. 권덕리에서 시멘트로 포장이 된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니 산 중턱에 주차장이 있다. 어제 보적산 정상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범바위 앞 능선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이곳은 산 중턱에서 끝이 난다. 길을 잘못 찾은 것이다. 내려서 걸어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빗방울도 좀 무섭다.

  아쉽지만 차를 돌렸다. 읍리로 되돌아 가서 신흥리-국화리-지리를 잇는 반 시계 방향으로 섬을 일주하기로 했다. 읍리에는 고인돌과 하마비 뿐만 아니라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서 전통있는 마을의 풍모를 느끼게 해준다.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나무가 멋지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더니 명일이가 알아 듣고 차를 세운단다. 지나면서 보기에 멋지긴 하지만 비를 맞으면서 까지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인돌과 하마비를 지나 어제 올랐던 보적산 등산로 입구를 넘어서면 신풍리, 청계리, 신흥리 등 청산도 제2의 중심지가 나온다. 제1중심지인 도청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제2 중심지인 이곳은 반대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내려가면서 오른쪽에 있는 상서리는 관광지도에 따르면 옛담장으로 유명한 마을이란다. 눈으로 보기에는 구장리나 권덕리의 옛 담장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고개를 거의 다 내려가니 학교가 하나 있다. 이건 무슨 학교일까? 청산중학교와 청산초등학교가 이 섬에 있는 학교의 전부라고 했으므로 아마도 폐교인 모양이다. 양중리에는 슬로푸드체험관이라는 곳이 한창 공사중인데 운동장과 그 주변의 오래된 나무 등 전체적으로 학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곳도 폐교인 모양이다.

<신흥리 계곡(편집) *원도: Daum 지도>

 

  동쪽을 바라보는 제법 큰 계곡에 여러 마을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가운데로는 하천이 흐르는데 하류로 가면서 하천의 양쪽에 무성한 갈대숲을 볼 수 있다. 땅이 귀한 곳인데 왜 갈대숲을 경지로 이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을 간척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해안에는 백사장(신흥해수욕장)이 발달하고 백사장 안쪽으로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안에 발달한 백사장과 방풍림은 사주에 발달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이곳이 깊은 만이었고 만의 입구를 사주가 막아서 형성된 석호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평지가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은 이 섬의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갈대밭의 일부가 듬성듬성 논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제 조금씩 소금기가 빠지고 서서히 벼농사를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흥리해수욕장 뒷편의 갈대밭-앞쪽 소나무숲이 방풍림이며 갈대밭 중간중간이 논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진산리 갯돌 해안

 

  원래는 오늘 아침에 신흥리해수욕장을 거쳐 해안도로를 타고 항도 앞까지 가서 일출을 볼 계획을 세웠었지만 오늘 아침 날씨가 좋지 않아 움직이지 않았었다. 항도는 지금은 방파제로 청산도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이다. 일출은 못봤지만 잠깐 들렀다 갈 생각이었는데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지도로 익힌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신흥리를 지나 북쪽으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진산리 갯돌 해수욕장이 나온다. 진산리 해안으로 빠지는 하천은 길이가 짧아서 공급물질의 입자 크기가 클 수 밖에 없다. 하천의 길이가 짧은 섬지역에서는 자갈 해수욕장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진산리해수욕장은 특히 퇴적물의 입자 크기가 크다.

 

<진산리 갯돌 해수욕장-앞에 보이는 섬은 신흥리 앞바다의 항도이다>

 

▶ 위치가 헷갈리는 지리(池里)

 

  진산리를 지나 고개 하나를 또 넘으니 또 제법 큰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앞쪽으로 기다란 방풍림이 펼쳐져 있다. 방풍림과 바다가 마을이 다 지날 무렵에 보여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대범한 운전자 명일이는 그대로 후진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무리없이 방풍림에 진입할 수가 있다. 방풍림으로 진입하는 마을 길은 매우 좁아서 앞에서 차가 오면 공터로 비켜줘야만 한다. 여름에 혹시 해수욕객이 많이 오게 되면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어디일까? 지도를 보지 않고 그냥 내렸더니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가 없다. 해가 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더욱 그렇다. 진산리를 지났으니 섬의 북쪽 어디쯤 되나부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도청리의 바로 위쪽 마을인 지리이다. 이미 섬을 거의 한바퀴 다 돌아서 출발점 가까이에 온 것이다. 어제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맨 처음 봤던 그 마을인데 마을을 돌아다니는 내내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배에서 봤던 그 마을이 이 마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더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고운 모래로 덮여 있는 지리 해안-사구 위에 방풍림이 발달하고 있다>

 

  진산리에서는 잦아들었던 빗방울이 다시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바람도 쌀쌀하지만 해수욕장 앞에 세워져 있는 방파제까지 가보기로 했다. 방파제 밖으로 양식장이 펼쳐져 있는데 구장리 앞바다에서 봤던 부표만 떠있는 양식장이 아니라 가두리 양식장도 많다. 앞쪽에 크레인이 달린 배가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는데 모양으로 보아 아마도 김을 수확하는 배로 보인다. 김 수확 전용 배가 필요할 정도로 양식업의 규모가 큰 곳이다.

 

<지리 앞바다의 가두리 양식장과 김 양식장>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서 얼른 비를 피해야겠다. 그래도 방풍림을 가까이까지 가서 보고 가고 싶다. 방풍림은 주로 해송으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수종을 갖추고 있는 경우보다는 모양이 단순하다. 누군가가 두 개의 해송 사이에 줄을 매어 놓고 김을 널어서 말리고 있다. 비바람과 함께 마른 자연산 미역은 맛이 남다를 것 같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해안을 따라 계단을 설치해서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경관을 해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구조물들이 지형을 훼손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계단들은 바람과 모래의 이동을 차단하여 사구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젠 상식에 속한다. 청산도가 관광지로서 많은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만큼 이런 세세한 부분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지리 해안 사구의 방풍림과 인공 구조물>

 

  고개를 넘으면서 바로 청산초등학교가 보이고서야 아까 지난 곳이 지리란 것을 알았다. 마을 한가운데에 커다란 못(池)이 있어서 池里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곳도 과거에는 앞의 사구가 만을 막아서 만들어진 석호였다는 뜻이다. 地理학도에게 池里는 이름만으로도 친근감을 준다.

 

▶ 방파제 안의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걸까??

 

  도청항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11시 30분이 조금 못 된 시간이다. 한시간 반의 여유가 아직 있으므로 또 무언가를 도모(?)해야 한다. 우선 서편제 촬영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 도락리를 가보기로 했다. 슬로길 1코스에 속하지만 비가 내리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양식도구와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고 지금은 가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김공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 곳이다. 도청항의 맞은 편에 있는 곳으로 상당히 긴 절벽이 드러나 있다. 이 일대의 지질구조 역시 보적산과 같은 석영반암인데 가만히 보니 절벽은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천연 해안절벽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폭파를 시킨 인공절벽이다. 엄청난 양의 바위를 떼어 내어 무엇을 했나 했더니 바로 도청항 방파제를 쌓는데 이용을 한 것이다. 건너편 항구의 북쪽에도 똑같이 절벽이 드러난 곳부터 방파제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바위를 떼어냈고 그 결과 상당한 넓이의 평지가 생겼으며 그 평지가 공장이나 양식시설물 하치장, 심지어는 폐기된 전자제품 등의 쓰레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도청항 건너편 암반 발파지-떼어낸 암반은 도청항 방파제를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도청항 앞에 쌓은 방파제는 상당히 길어서 항구 안으로는 거의 파도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섬은 육지의 해안보다는 외해에 노출되어 있어 파도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처럼 항구의 방파제가 더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연안류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바뀌게 할 것이다. 방파제의 남쪽 끝에는 연안에서 배출된 쓰레기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양쪽 연안에서 뻗어나온 방파제 사이로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가 있는데 연안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그곳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가면 돌고 돌아 5대양의 한가운데에 커져가고 있는 쓰레기섬에 동참하게 될테니까('삶과 지리'-'내가 버리는 쓰레기는 어느 바다로 갈까?' 참조).

 

<도청항 방파제 구석으로 쌓이는 쓰레기들>

 

▶ 빗속에 범바위를 가다

 

  도락리로 가는 길은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길 한쪽 편에 출입을 통제하는 원뿔형 통이 세워져 있다. 시간도 충분치 않고 날씨도 궂어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참 모호하다. 못가본 범바위에 가자니 시간이 부족할 것 같고 일찌감치부터 배를 기다리자니 너무 시간을 맥없이 보내는 것 같다.

  역시 명일이! 다시 한 번 범바위에 도전을 해 보잔다. 권덕리로 올라가는 길은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번엔 청계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읍리를 지나 청계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를 넘으면서부터 이번엔 아까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표지판과 길을 잘 살피면서 내려갔다. 가다보니 청계리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조수인 나도 못 본 '범바위' 표지판을 운전사인 명일이가 발견을 한 것이다. 길은 앞에서 다른 차가 오면 걱정이 될만큼 좁다. 겨우 한 대가 갈 수 있는 길인데 중간중간에 교행지점이 설치되어 있지만 교행지점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진짜로 만난다면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다. 그런 여건들을 고려하고 보니 비가 와서 다행이다. 비가 내리는, 평일 날 이 길을 찾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실제로 마주치는 차가 한 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범바위를 도는 동안 만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오죽하면 그 유명한(?) 범바위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매점마저도 문을 닫았을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제법 빗줄기가 굵다. 명일이는 방수가 되는 외투에 방수가 되는 등산바지를 입었는데 나는 방수와 무관한 파커와 청바지를 입고 있으니 빗 속을 뚫고 가려면 꼼짝없이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으니 가지고 가나 마나일 것 같아 맨몸으로 길을 나섰다. 하필이면 그 흔한 트렁크 속 우산도 하나 없을 것이 무엇인가. 주차장에서 두 갈래 길이 나 있는데 하나는 범바위라고 되어 있는 오르막길이고, 다른 하나는 범바위휴게소라고 되어 있는 산허리를 돌아가는 평평한 길이다. 당연히 오르막길을 택했다.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건너편에 더 큰 바위가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휴게소 건물이 있는 것이다. 무슨 표지판이 이런가? 어제 보적산에서 봤을 때 앞쪽에 작은 바위가 있었고 좀 더 먼 곳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큰 바위가 바로 범바위인 것이다.

  휴게소는 굳게 문이 닫혀있다. 열려 있다고 해도 편하게 앉아 막걸리를 마실 시간은 이미 부족해졌지만 화장실에라도 들르려 했었는데 그 마저도 못하게 되었다. 범바위 앞바다에서는 나침반도 오작동을 한다는 안내문이 있는데 카메라 가방을 놓고 오는 바람에 나침반도 모두 놓고 와서 실험을 해 볼 수가 없다. 강한 자성을 띤 바위라는 뜻인가? 보적산 기슭에 있는 범바위 역시 보적산의 다른 곳과 같이 석영반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인데 이 바위가 강한 자성을 띠어 나침반의 동작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바위는 당연히 자성을 띨 수 있다. 강자성체에 해당하는 적철석이나 자철석의 함유량에 따라 바위의 자성 정도는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화성암이 퇴적암이나 변성암보다 자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영반암은 전형적인 심성 화성암으로 강한 자성을 띨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범바위는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데 위로 올라가는 길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사랑아일랜드호에서 바라본 도청항 방파제-방파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방파제 축조에 쓰인 암석 발파지점이다>

 

▶ 여행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

 

  시간이 낭비없이 거의 정확하게 맞는다. 점심은 완도에 나가 어제 점심을 먹었던 기사식당에서 하기로 했으므로 그만큼 청산도에서는 시간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 배에 올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크고작은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뜻하지 않은 두 남자의 여행이었지만 청산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지리학도로서 청산도의 지리적 특징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지만 못지않게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나눔으로써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이 좋았다. 아마 의도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올 겨울에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특별한 여행을 하지 못했지만 청산도가 있어서 아쉬움을 덜 수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아 간다.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여행은 그런 면에서 더욱 특별한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다음 여행을 기다린다.

 

<안녕~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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