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청산도

청산도 Ⅳ

Geotopia 2012. 3. 4. 08:14

◈ 청산도 Ⅳ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에 새롭게 배운 것들

  -소박하고 정갈한 청산도 음식

  -슬로길 4코스의 절경

  -남해안의 해안단구?

  -보리수가 상록수라니!

  -느림은 행복하다

  -아름다운 구장리

 

<둘째날 일정(편집) *원도: Daum 지도>

 

 

▶ 아침식사 시간에 새롭게 배운 것들

 

  어제 1차에서 끝낸 덕분에 아침은 가뿐하다. 여유있게 세수를 하고 여관을 나섰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여관 아래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고 바로 옆의 식당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넓지 않은 실내에 여러 장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해녀가 작살로 돔 한 마리를 꿰고 있는 사진인데 상당히 생동감이 있는 것이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누가 찍었어요?"

  "그게 납니다!"

 

  '엥! 주인아주머니가 찍었다고?… 아! 사진 속의 주인공이 주인아주머니 자신이라고!'

  사진과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니 정말 사진 속의 주인공이다. 사진작가 아무개씨(이름을 잊어 버렸다)가 물질하는 곳에 따라와서 찍었단다. 사진을 보노라니 여러가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바다속에서 저런 물고기들은 아주 빠를텐데 어떻게 작살로 잡아요?"

  "먹이로 유인해서 잡습니다"

 

  아하! 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근데 저 귀한 자연산 도미를 작살로 잡으면 죽어서 횟감으로는 못쓰지 않나요?"

  "오래 삽니다. 광어같은 것은 내장이 나와도 며칠씩 살기도 합니다"

 

  이것도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다.

  물질하는 사진 옆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산기슭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저 사진은 청산돈가요?"

  "아뇨. 제주돕니다. 제가 제주도가 친정입니다"

 

  한라산 사진에서 제주도 얘기로 자연스레 옮아갔다. 제주도에서 펜팔로 청산도 총각을 만나서 시집을 온 원조 해녀란다. 유명한 해녀라서 취재를 오기도 하는데 방안에는 자신의 얘기가 있으니 한 번 보란다. 당연히 그냥 말 수는 없다. 내실에 들어가보니 손주로 보이는 꼬맹이가 아직도 자고 있다. 잠을 깰까봐 조심조심 살펴보니 한 쪽 벽에 주인아주머니 사진과 함께 해녀의 삶을 노래한 시가 들어있는 커다란 액자가 있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또 두리번거리다 보니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눈에 띤다. 무슨 척추전문병원이다. '개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던가? 요즘 허리가 시원찮다보니 그런 것이 눈에 띤다. 혹시 알아두면 좋은 정보가 있을까 해서 또 물었다.

 

  "저 달력은 어떻게 여기에 걸려 있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녔어요"

  "어디에 있는거죠?"

  "서울입니다. 물질하고 배에 오르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그 때 다쳐서 고생을 좀 했어요. 한 10년 전인데 지금도 매년 달력을 보내줍니다. 지금도 좋지는 않은데 물질하는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그럼 바닷일 하시기가 어려우시겠네요?"(명일이)

  "아닙니다. 바다는 허리 아픈 사람에게는 보약입니다"

 

  듣고보니 그렇다. 허리병에는 수영을 제일로 치기도 하지 않던가? 그런데 갑자기 혼란스럽다. 아주머니 말씀은 물질과 허리병 발병이 상관관계가 있는 거라고 해석되었는데 한편으론 물질이 허리엔 보약이니 결국 물질은 병주고 약을 준 셈이다. 결국 물질을 하지 않으면 허리가 더 아플 수도 있는 셈이니 이야말로 진퇴양난이다.

 

▶ 소박하고 정갈한 청산도 음식

 

  백반을 주문했는데 어제 저녁에 먹었던 식탁이 생각나는 소박한 식단이다. 다른 집, 다른 음식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반찬 가짓수가 화려한 전라도식과는 다른 간단하면서도 정갈한 식단인데 두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청산도식 식단이라 할 만하다. 색깔은 맑간하지만 맛은 구수한 미역국과 크기가 가지각색인 전복 조림, 그리고 반건조한 생선을 조린 생선조림이 입맛을 당긴다. 전복의 크기가 가지각색이라는 것은 자연산이라는 뜻인데 서로 양보하며 먹다보니 가장 큰 전복만이 남았다. '둘이 싸우면 어쩌라고 큰 것을 한 개만 줬느냐'고 농담을 했더니 전복을 좀 더 내 오리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가위가 나온다. 헐~, 영락없이 전복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알고보니 전복이 마침 모두 떨어졌단다.

 

<청산도의 아침>

 

▶ 슬로길 4코스의 절경

 

  어제 청산중학교 선생님들이 알려준대로 슬로길 4코스부터 오늘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 갔던 당리고개를 넘어 읍리에 도착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구장리, 권덕리 방향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지도를 잘 못봐서 약간 혼동이 있었지만 4코스의 시작점을 찾아 산책을 시작했다. 4코스는 구장리 끝부분의 방파제 앞에서  시작하는데 시작점이 자연스런 오솔길이 아니라 최근에 중장비를 동원해서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이다. '슬로길'의 '작은' 어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막 시작한 공사장 입구' 같은 '커다란' 입구라서 오히려 시작점이 아닌줄 알았던 것이다.

  해안 절벽 위로 난 오솔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바다로 돌출한 부분이기 때문에 해안 바로 앞까지 푸른 색의 깊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모두 김 양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슬로길 4코스 앞의 김 양식장>

 

  중간쯤 갔을까? 흐린 하늘에서 그예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찌뿌둥해서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더니 제주도에는 비가 온다고 했었다. 비가 온다니 오늘 제주도에 갈 현준이형 생각이 났다. 내 앞길 걱정은 안 하고 전화해서 약이나 올려볼까 나쁜 생각을 했는데 그 비가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래서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한다. 정말 진퇴양난이다. 돌아가자니 못 가본 길이 아쉽고 그대로 전진하자니 맨몸으로 맞을 비가 두렵다. 틀림없이 비가 올 것이므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명일이가 의외로 강경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조건 오케이다. 그런데 또 신학기 업무분장 문제로 전화가 와서 명일이를 괴롭힌다. 전화에 매달리느라 '슬로'길의 정취를 맛보지도 못하고 본의 아니게 두뇌를 '패스트'하게 움직여야 하는 명일이가 안쓰럽다. 이럴 땐 휴대폰이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웬수다. 바쁜 현실을 단 하루라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하니… 슬로길에서는 휴대폰이 통화가 안되도록 할 수는 없을까?

 

 

<Slow길에서도 머리는 Fast하게 움직여야 하는 명일이>

 

▶ 남해안의 해안단구?

 

  가다보니 길 옆 노두에 자갈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해수면과의 차이는 대략 20~30m쯤 되어 보이므로 단구라고 볼 수 있다. 남해안도 경동성 요곡운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슬로길 제4코스의 해안단구>

 

▶ 보리수가 상록수라니!

 

  4코스의 해안길은 50여분 정도 걸린다. 해안길을 벗어나면 권덕리 해안을 지나 범바위로 오르는 5코스가 이어지지만 우리 차가 있는 구장리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가기가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내리지 않지만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은 서둘러야 한다. 해안길을 벗어나기 전에 상록수가 한 그루 길 옆에서 자라는데 가만히 보니 보리수다. 잎이 무성할 뿐만 아니라 익지 않은 열매까지 달려있다. 중부지역에서는 보리수가 낙엽활엽수인데 이곳에서는 낙엽을 떨어뜨리지 않는 상록수인 것이다. 그러니까 원산지가 인도인 이 나무는 원래 상록수였을까? 하지만 상록수가 기온이 낮은 곳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 낙엽수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원래 낙엽수와 활엽수 두 종류가 있었을까?

 

 

<청산도의 보리수-2월인데 푸른 잎과 열매를 달고 있다>

 

▶ 느림은 행복이다

 

  해안길을 벗어나 권덕리 해안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시계와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구리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느림은 행복'인 것이 분명하다. 서두르지 않고 삶을 음미하며 살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가장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은지 오래다. 나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빨리빨리'와 '무한 경쟁'의 문화는 '느림은 행복'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잊도록 만들었다. 구호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평범한 진실은 사회의 구조를 바꿈으로서 진실로 만들어야만 한다.

 

<느림은 행복이다>

 

 

<권덕리 해변-도대체 왜 이렇게 길안내 리본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일까?>

 

  권덕리에서는 어제 봤던 범바위가 올려다 보이고 정겨운 돌담이 길 옆으로 쌓여 있다. 작은 만에는 백사장이 발달하는데 낚시꾼들이 많이 오는지 낚시 관련 안내 글귀가 써있는 가게를 여럿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 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 슬로길이 아닌 포장도로라서 정취는 덜하지만 구장리로 넘어가는 길을 걸어서 넘기로 했다.

 

 

<권덕리 돌담길>

 

  고개를 넘어 구장리로 되돌아오는 길은 포장도로지만 오히려 왔던 길보다 멀다. 고개를 넘어 마을에 도착할 무렵 우리가 있는 곳을 제외한 주변의 산기슭이 하얀 눈으로 뒤덮이면서 점점 우리를 향해 마치 포위망을 좁히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장관인데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이 될까 싶다. 이 쯤에서 비를 만났더라면 정말 어려웠을텐데 눈을 만나 정말 다행이다.

 

<포위망을 좁혀오는 눈>

 

▶ 아름다운 구장리

 

  고개를 내려와서 구장리 해안으로 되돌아 가는 길은 한참 돌아가야 하는 큰 길을 버리고 논둑길을 택했다. 산이 깊지 않기 때문에 논 옆으로 흐르는 하천은 물이 마른 건천이다. 논은 모두 이 지역 특유의 구들장논인데 하천 옆의 어떤 논은 논둑의 아랫부분이 하천에 의해 깊이 파인 상태여서 일부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상태이다. 그 아래에 나무가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경운기나 소를 이용해서 논을 갈 때 하중 때문에 위험할 것 같다.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하천을 건널 수가 없어서 한참 돌아가야만 한다. 명일이 앞에서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아쉽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구장리 돌담길>

 

  돌담이 아름다운 구장리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작은 마을이다. 주변 밭에는 마늘, 보리, 봄똥이 자라기 때문에 겨울인데도 마을의 색은 연두빛이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방파제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비를 피하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이다. 비가 내린다면 돌아다니는 것도,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장리 봄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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