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청산도

청산도 Ⅲ

Geotopia 2012. 3. 3. 14:38

◈ 청산도 Ⅲ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형도 다 됐구먼

  -산을 괴롭히는 이기심의 잔해들

  -석영반암과 화강암의 차이

  -빙하기에는 청산도도 툰드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동결과 융해의 반복으로 물질의 이동이 일어난다

  -아는 만큼 본다 : 장소의 의미

  -나를 이긴 명일이

 

<첫날 일정(편집) *원도: Daum 지도>

 

 

▶ 형도 다 됐구먼...

 

  원래 계획은 슬로길 제1코스를 산책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지만 첫번째 일정을 보적산 산행으로 바꾸기로 했다. 보적산은 높이가 321m로 그다지 높은 산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해발 0m에서 시작하는 섬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르는 높이는 제법 되리라 생각되었다. 만약 예정대로 내일 오전에 산행을 하면 땀에 젖은 몸으로 오후를 보내야 하므로 아무래도 찜찜할 것 같아 오늘 오후 일정으로 해결하고 간단하게 씻은 후에 상쾌한 저녁을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잘한 어선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도청항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아기자기하다. 시멘트 계단으로 되어있는 부두 옆으로 부두와 평행으로 도로가 발달하고 그 뒤쪽으로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관공서와 상업시설, 그리고 주택들이 어촌답게 밀집하여 분포한다. 좁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항구와의 접근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항구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고개를 하나 넘는데 고갯마루가 청산도의 상징처럼 된 서편제 촬영지 입구이다. 일단 오늘은 통과. 고개를 넘어 내리막(당리)에서 오른쪽으로 보적산과 범바위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지도상으로는 그 길로 가도 될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찾아보고 온 길이 아니므로 역시 통과!

  고개를 완전히 내려오면 읍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고인돌과 하마비가 유명한데 지나다 보니 길 옆에 바로 있다.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므로 역시 통과! 그래도 한 가지 관심이 가는 것은 고인돌이 만들어진 청동기시대에도 이곳은 섬이었을텐데 고인돌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청동기시대로 볼 수 있는 고조선은 서기전2333년에 세워졌으므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시작을 그 이전으로 본다고 해도 대략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 정도를 청동기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이미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해있던 시기이므로 남해안은 모두 침수되어 많은 섬이 만들어진 이후이다. 육지의 청동기인들이 이주를 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읍리를 지나면 신풍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또 나온다. 고갯마루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보적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길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출발. 시원찮은 곳이 많다보니 보조장구가 많이 필요하다. 무릎아대에, 스틱에, 오늘은 속에 허리보조대까지 하고 왔다. 무릎아대를 하는 날 보고 명일이가 웃는다. "형도 다 됐구먼, 허리에 무릎에..." 내내 아픈 허리 얘기를 하면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메라 가방은 반드시 가지고 가야한다.

 

▶ 산을 괴롭히는 이기심의 잔해들 

 

  등산로 초입은 양쪽이 모두 상록활엽수이다. 동백나무 비슷하기는 하지만 동백은 아닌 것 같은데 양쪽으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등산로가 여름 숲길처럼 컴컴할 지경이다. 남해안의 섬임을 실감할 수 있다. 가다보니 이 등산로에는 유난히 등산로 표시 리본이 많이 매달려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크지도 않은 이 산에 왜 이렇게 많은 리본을 달아놨단 말인가? 요즘 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런지 특히 눈에 거슬린다. 제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삶과 지리' 메뉴에 있는 글 '누구를 위한 이름표인가' 참조).

 

<보적산 등산로에 있는 길안내 리본들>

 

  상록수 숲을 지나 작은 고개를 하나 넘는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멀리 보적산이 보인다.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경로인데 그다지 먼 길이 아니라 조금 실망스럽다. 가는 내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길안내 리본들이 마음을 괴롭힌다. 이건 누가봐도 말이 안된다. 짧은 등산로에 뻔히 보이는 길에 붙어있는 길안내 표시라니! 타인을 배려한 흔적이 아니라 자기를 홍보하기 위한 이기적인 노력의 잔해일 뿐이다. 

 

▶ 석영반암과 화강암의 차이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산불 때문인지(전에 산불이 났었다는 글을 자료를 찾다가 봤다) 산 중턱 위쪽으로는 나무가 거의 없다. 돌이 많은 산이다보니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정상부분에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암설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애추(崖推, talus)가 발달하고 있다. 애추의 원료를 공급한 정상부분의 노출된 바위는 제법 규모가 큰데 얼핏 보기에 화강암 계열의 바위이다. 지질도를 찾아보니 이 일대는 석영반암(石英斑岩, quartz porphyry)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영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불국사통의 화성암으로 화강암과 형성원인과 시기가 유사하다. 청산도는 거의 대부분이 석영반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적산의 북쪽 신흥리 일대에는 화강암이 분포한다. 한 눈에 명확히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화강암에 비해 석영반암이 좀더 표면이 거친 느낌이 든다.

 

<청산도 지질도 *지도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빙하기에는 청산도도 툰드라였다

 

  정상 아래에 발달한 애추를 찍으려니 장비의 열세가 느껴진다. 오후의 강한 역광이 적정 노출을 어렵게 하는데다 표준렌즈를 끼우니 화각이 너무 좁고, 새로 산 수동 광각렌즈는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도무지 촛점을 맞출 수가 없다. 눈감땡감 감으로 찍는 수밖에 없다. 남해안 섬에 애추가 있다는 것은 빙하기 우리나라의 기후상태를 짐작케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애추는 동결과 융해가 반복되는 주빙하 환경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므로 빙하기에 우리나라는 남해안까지 상당히 기온이 낮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기온이 내려간 정도는 지구 전체적으로 비슷했지만 남해안 지역은 특히 일본과 아시아대륙이 붙어서 태평양에서 유입하는 난류의 유입이 차단했기 때문에 지금에 비해 더욱 온도가 낮았던 것이다.

 

<보적산 애추>

 

  정상은 전망이 상당히 좋다. 주변에 큰 나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방의 틔여서 주변을 잘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범바위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신흥리 일대가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권덕리에서 화랑포에 이르는 해안을 볼 수 있고 서북쪽으로는 당리와 읍리가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청산도는 마을 이름이 외자인 곳이 많다. 당리, 읍리, 지리...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도청항은 당리고개와 이어지는 작은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보적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범바위와 권덕리, 그리고 멀리 여서도가 보인다. 그런데 왜 거기에도 길 안내 리본이 붙어있는 것일까?>

 

<북동쪽 신흥리 방향-전형적인 반농반어촌과 다도해를 볼 수 있다>

 

<서쪽 권덕리(좌)와 화랑포(우)-정면의 산 앞쪽 해안은 슬로길 제4코스로 해안 절벽을 따라 길이 나 있는 절경이다>

 

 

<화랑포 앞바다>

 

▶ 우리나라에서도 동결과 융해의 반복으로 물질 이동이 일어난다 

 

  정상에는 누군가 크게 고생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상표지석이 있다. 오석으로 만든 이 표지석은 관청에서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땅이 얼었다 녹으면서 뿌리가 뽑혀 움직여진 상태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동결과 융해의 반복으로 물질이 이동하는 매스무브먼트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툰드라 환경 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철의 서릿발 작용으로 물질이 이동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겨울철 동결층보다 더 깊은 곳까지 땅을 파고 기초를 묻어야만 하는데 이 표지석은 뿌리가 얕아서 겨울철 동결과 융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기후환경에서도 물질의 이동이 일부 일어날 수 있는데 툰드라에 비해 그 에너지가 약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작은 입자에 국한된다.

 

<보적산 정상의 표지석-동결, 융해 작용으로 뿌리가 뽑혔다. 멀리 당리와 읍리가 보인다>

 

  올라온 길을 역순으로 되짚어 내려 오려니 좀 지루하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올랐다가 내려왔는데도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산행길이다. 그래도 청산도의 전체적 윤곽을 대략 훑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최고봉인 매봉산(385m)이나 대봉산(379m) 보다는 낮지만 오히려 주변을 조망하기에는 더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  아는 만큼 본다-장소의 의미

 

  산을 내려온 시각이 대략 여섯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다. 산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어서 오는 길에 서편제 촬영지에 들르기로 했다. 읍리를 거쳐 당리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는데 평일인데다 겨울철이어서 주차장이 한산하다. 관광객을 위한 순환버스가 주차장에 서 있는데 성수기가 아니라서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서편제의 그 아릿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차에서 내렸더니 제법 싸늘한 바람이 엄습해 온다. 역시 영화 속의 그 기분은 영화 속 계절인 봄에 맞춰와야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신학기 교과분담 문제로 전화가 와서 한참 떠들고 났더니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다. 아까 보적산 가는 길에서는 명일이에게 전화가 와서 명일이 기분이 가라앉았었는데 무슨 돌림병 처럼 전화가 온다. 능선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영화에서 소리를 배우던 초가집 세트장이 있고 그 뒷쪽으로는 서편제의 명장면인 진도아리랑 장면을 찍은 곳이 있다. 초가집 세트장에서는 도락리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데 도락리는 도청항 못지 않은 깊고 아늑한 만의 안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방풍림이 좀 듬성듬성한 것이 흠이지만 워낙 아늑하게 둘러싸인 만이라서 바람의 피해가 거의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도청리보다 더 조건은 좋아 보이지만 이곳에 항구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해안에 백사장이 발달하는 것으로 보아 수심이 얕기 때문일 것이다. 

  세트장의 바로 아래쪽 계단식 밭에는 초분이 하나 있다. 실제 초분인지, 아니면 모형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초분은 초분이다. 최근에는 대부분 직접 매장을 해서 봉분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거에는 경지가 좁은 섬지역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분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행 중에 길 주변에서 많은 봉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 좁은 섬이 점차 무덤으로 잠식되어 가는 느낌도 들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농업의 중요도가 떨어졌지만 과거 조상들의 방법이 훨씬 친환경적이고 합리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편제 세트장에서 바라본 도락리 해변. 오른쪽에 초분이 보인다>

 

  세트였던 초가집 뒷편 돌담길은 진도아리랑 장면으로 유명한 그곳이다. 언덕받이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무려 5분30초를 컷트없이 길게 찍은 롱테이크(Long Take) 기법으로 유명한 장면을 찍은 바로 그곳이다. 안내판을 보고 영화의 그 장면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흐릿한 기억 때문인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원래의 돌담길이 주민들 편의 때문에 시멘트 포장이 되었다가 관광객이 많이 찾게 되면서 다시 흙길로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주민의 편의와 관광자원의 가치가 상충하는 경우는 그 해법이 참 어렵다. 한 번 와보면 그만인 관광객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영화 속 장면이 그대로 있기를 기대하겠지만 매일같이 그곳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흙길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결국 이 경우에 솔로몬의 해법이란 공감과 이해라는 '공자님 말씀' 외에는 방법이 없다.

  돌담길을 걸어 '봄의 왈츠' 세트장이라는 건물까지 가 보았다. 이 드라마는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감흥이 오질 않는다. 이것도 '아는 만큼 보는' 예 가운데 하나이다. 드라마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장소가 갖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의미는 커녕 내 입장에서는 서편제의 아릿한 기억을 방해하는 생뚱맞은 건축물로 보일 뿐이다.

 

<영화 서편제의 바로 그 장면>

 

 

▶ 나를 이긴 명일이

 

  싸늘한 바람에 쫓기듯 돌담길을 내려왔다. 청산도의 상징이고 선뜻 여행지로 결정을 하게 했던 그곳인데 너무 쉽게 보고 만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든다. 중요한 과목을 대충 본 느낌이랄까? 내일 시간이 나면 다시 봐야 할까?

  당리고개를 내려와서 도청리 시내로 돌아왔다. 우선 숙소를 정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오기 전에 찾아 본 곳은 항구의 서쪽 끝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어쩌면 석양이 보일지도 모르는 위치여서 골랐는데 그 음식점과 가장 가까운 여관에 갔더니 방이 없단다. 그 옆에 있는 여관에는 사람이 없다. 다음 여관은 얼추 항구의 중간쯤에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방이 있다. 락스 냄새인지 화장실 냄새인지 구별이 잘 안되는 약간의 냄새가 화장실에서 나는 허름한 방이지만 둘이 하루를 묵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명일이도 대번에 냄새를 지적했지만 샤워를 하면 씻겨 나간다고 안심을 시켰다. 내가 먼저 들어와서 방이 있는지 알아만 봤을 뿐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마치 주인이라도 된 듯 변명을 해야되는 것은 왜일까?

  간단히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러 나섰다. 여관 아래층에 여관 이름과 이름이 같은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여관에서 물어보니 이름만 같을 뿐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음식점은 아니란다. 하지만 특별히 아는 곳이 없으니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내린 선택이다. 좁은 식당인데 손님은 두팀이나 들어있다. 한 팀은 우리같은 외지인으로 보이고 우리와 나란히 앉게 된 한 팀은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원주민이다. 외지인 한 팀은 왠지 우리같은 교사일 것 같다. 순진하게 생긴 모습과 다양한 연령대,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성비, 결정적으로 오늘 같은 평일날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을 자기만의 창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청항의 횟집. 봄똥 맛이 일품이다>

 

  옆 자리의 원주민 두 사람은 이미 술을 한잔 걸쳤는데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훔쳐듣지 않을 수가 없다. 듣자하니 이 분들도 교사이다.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천안에서 왔노라고, 우리도 교사라고. 이분들은 이곳 청산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이다. 기왕 대화를 트게 되었으니 내일 일정에 관한 정보를 얻어야겠다 싶어서 슬로길 추천을 부탁했다. 한참 생각을 하시더니 4코스가 가장 좋다고 추천을 하신다. 오늘은 3코스의 일부를 돌았는데 내일은 1코스에서 3코스까지 돌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예정을 바꿔서 4코스를 돌아야겠다. 여행, 또는 답사에서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지리학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지는 않지만 인터뷰를 통하여 지리학적 접근을 하는 것은 지리학도의 몫이다.

  자연산이라는 회는 1kg에 6만원으로 싸지 않은데 더욱이 마늘, 된장과 몇 개 반찬을 제외하고는 소위 스끼다시라는 것이 거의 없다. 주인도 미리 '스끼 없어요'를 선언해서 기대를 원천봉쇄한다. 그래도 맛이 깔끔하고 정갈한데 특히 자연산 봄똥이 단연 돋보인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자연산 봄똥을 상추 대신으로 먹을 수 있는데 고소하고 달콤한 것이 상당히 맛이 좋다. 얼근한 술기운으로 소주를 두어병씩 마셨다. 방학 동안 많이 자제를 했기 때문에 나도 좀 오랜만에 많이 마신 편인데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인 명일이도 내 분위기에 쏠려 제법 많이 마셨다.

  얼근한 술기운으로 한 잔 더할까 다른 술집을 찾아봤지만 마땅칠 않다. 게다가 명일이에게 또 새학기 업무관계로 전화가 와서 장시간 통화를 계속한다. 빨리 끊으라고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술기운까지 더해져서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하릴없이 항구의 야경이나 찍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화통화는 끝날 기미가 없어 먼저 여관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잠시 후에 들어온 명일이는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쓰러지더니 헉! 코를 곯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술먹고 코골기'는 나의 전매특허인데 오늘은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내 홈피의 러시아여행기 한 편을 다운 받아서 모두 읽고 났더니 겨우 눈이 슬금슬금 감기기 시작한다.

 

 <도청항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고기잡이배>

'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 > 청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산도 Ⅴ  (0) 2012.03.04
청산도 Ⅳ  (0) 2012.03.04
청산도Ⅱ  (0) 2012.03.01
청산도-서편제의 아릿한 기억을 찾아서  (0) 201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