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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海'일까, 카스피'湖'일까?

Geotopia 2023. 12. 4. 09:23

  그게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물이 흘러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바다니까 당연히 바다다. 바다는 '하천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명한 이스라엘의 사해가 있다. 작지만 어엿한 바다다, 그래서 死'海'다. 건조지역에 있는 소금호수를 플라야(Playa)라고 하는데 이 역시 스페인어로 '바다'라는 뜻이다.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고 하천이 끝나기 때문에 '바다'이다. 카스피해는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인 볼가강을 비롯하여 테레크강 등 여러 하천들의 종착지이며, 크기도 매우 크다(37만1,000㎦). 그래서 이미 이름이 카스피'해(海)'이다. 

  하지만 '호수'라는 주장도 나름 이유가 있다.  대양과 연결되지 않은 고인 물이므로 호수라고 할 수도 있다. 염분 농도는 1.2%로 민물보다는 높지만 일반적인 바다(3.5%)보다는 훨씬 낮다. 그래서 생태계가 담수 생태계에 가까운데, 하나의 예로 민물에 사는 철갑상어가 많이 살고 있어서 세계 캐비어 생산량의 90%가 이곳 카스피해에서 난다. 그러므로 매우 큰 호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카스피해가 '바다'인지, 또는 '호수'인지가 세계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둘러싸고 있는 바다 카스피해 *원도: 구글지도

 

원유 500억 배럴, 천연가스 8조4,000억㎡ 매장, 캐비어 90% 생산

  전 세계 매장량의 5% 수준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 특히 석유는 세계 7위권으로 잠재 매장량은 2,600억 배럴로 추정. 지역으로는 페르시아만 연안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지금 생산량은 세계 18위권으로 매장량에 비해 생산량이 훨씬 적은데다가 대부분 깊지 않은 대륙붕에 묻혀 있다니, 안 싸울 수가 있나···

  ▶호수라면?

  다국가 접경 호수에 관한 법률(Legislation on Transboundary Lakes)에 따라 호수 연안에 인접한 나라들이 협의를 하여 면적을 분할. 단, 거대한 호수는 연안국들이 수역 전체를 똑같이 나누어 공동으로 관리한다. 오대호, 빅토리아호 등과 같은 경우인데 이 경우 매장된 모든 자원도 연안국들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이익을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

  ▶바다라면?

  바다는 UN 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 1982)에 따라 12해리 영해선과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을 적용해야 하며, 연안에서 이어지는 대륙붕에 대한 독점적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영해를 넘어선 공해상에 대해서는 항행의 권리를 국제사회에 청구할 수 있다.

 

▣ 카스피해를 둘러싼 분쟁 역사

▶1차대전 때

  1918년 8월26일 독일, 오스만 연맹군과 연합군이 카스피해를 놓고 격돌하여 연맹군이 바쿠 점령. 왜? 당연히 석유 때문. 석유 개발 초기였는데도 이곳은 당시 널리 소문이 난 유전지대로 바쿠는 당시 카스피해 연안 최대 유전이었다. 세계 최초로 유전을 개발했던 영국이 유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전세가 불리해지자 모든 유전을 파괴하고 후퇴하는 바람에 연맹군이 별 재미를 못 봤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는 뭐하고 있었을까? 볼셰비키 혁명(1917)으로 정신이 없던 참이라 이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1차대전 후

  -소비에트-페르시아 우호 협력 조약(1921), 카스피해 상업과 항해에 관한 협정(1940)으로 소련과 이란이 나눠 관할. 바다로 보지 않았으므로 당사국이 협의하여 관할권을 정했다.

  -국경을 따라 그은 선(아스타라Astara,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남쪽 끝)-가산쿨리(Gasan-Kuli,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남쪽 끝)를 잇는 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어 관할(소비에트연방 85%, 이란15%). 

소련 해체(1991년) 이전 소련-이란 관할 경계 *원도: 구글지도

  -연안에서 10해리까지 영해로 정하고 나머지 공해에서는 두 나라가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고, 어업도 자유로왔다.

▶ 소비에트연방 해체(1991) 이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독립하면서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됨. 

  -핵심은 국제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바다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카스피해가 바다가 되면 UN해양법을 적용해야 하고, 이에따라 연안으로부터 12해리가 무조건 연안국의 영해가 된다. 반대로 호수라면 연안국들이 협의하여 영유권과 자원 개발권을 정할 수 있다. 즉,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입장차가 불거졌다.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는 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자 마자 미국과 유럽의 열강들이 개입하였다. 지금은 세계 석유 관련 자본들이 대거 유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2004년 이후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다.

카스피해 자원 분포와 연안국간 협상 구획 *Geographical Intelligence Service(우양호, 2019, '바다'로 합의된 바다: 카스피해의 영유권 분쟁과 해결, 「해항도시문화교섭학」21,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pp.149-188.)

 

▣ 이란은 줄기차게 호수라고 하고, 대부분 나라들은 바다라고 한다, 왜?

  안타깝게도 기존 점유국이었던 러시아와 이란 쪽 바다에는 석유가 많지 않고, 새로 독립한 세 나라,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연안에 석유가 잔뜩(70%) 묻혀 있으니···

▶ 호수로 주장하는 입장

  -소비에트연방 해체 전까지 이곳을 점유하고 있던 두 나라, 러시아와 이란은 새로 독립한 세 나라와 영유권을 나눠야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협상으로 최대한 영유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신생국에 비해 국력이 월등했으므로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이란은 해안선이 짧고 연안에 석유 매장량이 적기 때문에 호수로 주장함으로써 자원을 공동 개발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연안에 자원이 적고 해안선이 짧아(650km, 15%) 독립 이후 호수라는 입장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입장을 바꿈. 

  -지금은 이란만이  호수라는 주장을 외롭게 하고 있는 중.

▶ 바다로 주장하는 입장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독립한 세 나라(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는 강대국 러시아와의 협상을 피하고 안정적으로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UN해양법을 적용받는 것이 유리했으므로 바다로 주장. 예를 들면 카스피해 최대 연안 유전을 가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해양법의 적용을 받으면 쉽게 유전을 소유할 수 있으므로 '바다'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유전도 많지만 특히 해안선이 가장 길어(2,320km) 전체의 30%에 이르기 때문에 바다라는 주장 고수

  -러시아는 1991년 직후에는 호수라는 주장을 했으나, 자국 연안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1992년 이후 바다라는 입장으로 바꿈. 그런데 해저는 연안국의 등거리선, 또는 중간선으로 영유권을 정하고 해상과 해수면은 연안국이 공동관리하자는 입장이고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이에 동의하는 입장.

  -투르크메니스탄은 2000년 이후 바다라는 입장으로 바꿨는데, 인접국인 이란이 독립을 가장 먼저 지지하였고 이슬람교도가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등 이란과의 유대가 깊었으나, 다른 연안국,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입장을 바꿈. 시아파가 대부분인 이란과는 달리 카자흐스탄은 수니파가 대부분임.

 

카스피 해 이야기

카스피 해 이야기 ■ 카스피 해는 바다일까, 호수일까? ▲카스피 해의 위치와 위성 사진(출처: 에듀넷)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는 면적이 371,000 km2로서, 한반도 전체 면적의 2배나 되는 세계에서

if-blog.tistory.com

 

카스피해, ‘바다’일까 ‘호수’일까…주변국들 해법은?

주변국 12일 해묵은 영유권 갈등 해소할 협정 서명 ‘호수’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별도 법적 지위 부여 15해리까지 영해, 25해리까지 배타적 어업권 인정 해저 영토 문제는 추가 합의를 통해

www.hani.co.kr

 

▣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논쟁

  러시아는 환경문제를 들어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해저 파이프라인 반대. 유럽 시장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을 막고자 함. 조지아 분쟁에 개입했던 것도 파이프라인과 관련되어 있음.

 

▣ 특수한 바다로서의 호수, 또는 특수한 호수로서의 바다

-15해리 영해, 25해리 배타적 어업권, 해저 영토는 당사국 간의 추가 협의하기로( 2018.8.13)